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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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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기획기사는 '기도'입니다. 모든 종교는 다 그들의 신께 기도합니다. 기독교도 예외가 아닙니다. 심지어 종교를 가지지 않는 이들도 어려움을 당하면 누구에겐가 기도를 합니다. 힌국 기독교인들은 기도를 많이 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기도하면 다 된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그냥 기도하면 되지 왜 말이 많냐고 할지 모르겠는데 우리는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이번 기획기사를 통해 기도를 잘 배워 하나님과 교제하는 복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 편집장 주-

 

 

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가?1)

 

 

손재익.jpg

 

손재익 목사

(한길교회 담임)

 

 

서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기도를 마칠 때 똑같은 말로 기도를 마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 말을 하기 전까지는 각기 다른 내용으로 기도한다. 어떤 사람은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어떤 사람은 회개의 기도를 드린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영혼과 몸에 필요한 것을 간구하는 기도를 드린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한다. 그런데 어떤 내용이었건 상관없이 마칠 때는 똑같은 말로 마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렇게 마치는 건 한국의 그리스도인들만이 아니다. 미국과 호주의 그리스도인들도 “in the name of Jesus. Amen.”이라고 기도를 마친다. 네덜란드의 그리스도인들도 “In Jezus’ Naam bid ik U dit. Amen.”이라고 기도를 마친다. 중국의 그리스도인들도 “奉耶稣的名祷告. 阿门.”이라고 기도를 마친다. 전 세계의 모든 기독교인들이 기도를 마칠 때에 항상 하는 말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이다.

   I. 왜 이렇게 마칠까? 그냥 우리 마음대로 그렇게 하는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기독교 전통을 따라 하는 것일까?  II. 이렇게 마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기도가 다 끝났다는 신호인가? 아무 의미 없이 그냥 하는 소리일까?  III. 이렇게 마쳐야만 하는가? 이렇게 안 마치면 큰일 나는 것일까?

 

 

본론

 

I. 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가?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함

 

   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가? 이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다. 요한복음 14:13-14 “(13)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이 말씀에 따르면 예수님은 자신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행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되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다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6:23-24 “(23)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또한 지금까지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지 않았으나 이제는 구하라고 하셨다. 그러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한다.

   요한복음 14:13-14; 요한복음 15:16; 요한복음 16:23-24. 이 본문들의 가르침에 근거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독교 신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약간의 수사적인 차이는 있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는 말로 기도를 맺는다.

 

요리문답의 복창(復唱)

 

   앞서 말한 성경적 가르침에 근거하여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117문답도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17문: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들으시는 기도는 어떠한 것입니까?

   답: 첫째, 그의 말씀에서 자신을 계시하신 유일하신 참 하나님에게만3) 그가 우리에게 구하라고 명하신 모든 것을4) 마음을 다하여 기도합니다must pray from the heart.5) 둘째, 우리 자신의 부족need과 비참함misery을 똑바로 철저히 깨달아 그의 엄위 앞majestic presence에 겸손히 구합니다.6) 셋째, 비록 우리는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이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에서 약속하신 대로,7) 우리 주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의 기도를 분명히 들어주신다는 이 확실한 근거unshakable foundation8)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3) 요 4:22-24; 계 19:10   4) 잠 28:9; 롬 8:26; 약 1:5; 요일 5:14   5) 시 145:18-20; 약 1:6-8; 4:3,8   6) 대하 7:14; 20:12; 시 2:11; 사 66:2   7) 시 27:8; 마 7:8   8) 단 9:17-19; 요 14:13-14; 15:16; 16:23; 엡 3:20-21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117문답은 이 주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2) 맨 마지막에 나오는 “우리 주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의 기도를 분명히 들어주신다는 이 확실한 근거를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라는 문장과 그 근거구절인 요한복음 14:13-14; 15:16; 16:23이라는 사실을 유념 있게 볼 필요가 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의 경우 제180-181문답에서 각각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무엇입니까?”와 “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합니까?”라는 주제를 다룸으로써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한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3)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이유

 

   우리가 기도할 때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그렇게 마치는 이유는 그냥 우리 마음대로 하는 것도 아니요 단순히 기독교 전통을 따라 하는 것도 아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근거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말씀하셨다. “내 이름으로 기도하라”

 

 

II. 이렇게 마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하셨을까?

 

   예수님은 왜 자신의 이름으로 구하라고 말씀하셨을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하신 이유는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가 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너무나 거룩하시고 하나님이시기에 사람인 우리가 감히 나아갈 수 없다. 죄 많고 연약한 사람이 감히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없다. 그런데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사람이시고, 또한 죄가 전혀 없으신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기도도 마찬가지다. 감히 하나님께 직접 기도할 수 없는 우리들이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이렇게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중보 해 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가 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80-181문답의 증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예수님의 중보자로서의 사역과 관련됨에 대해서는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81문답이 잘 설명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181문: 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합니까?

   답: 사람의 죄악sinfulness of man과 이로 인하여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생긴 거리가 매우 크므로 중보자 없이는without a mediator 하나님 앞에into his presence 접근할 수 없으며,1) 하늘과 땅에 그리스도 한 분 밖에는 그처럼 영광스러운 사역을 위해 임명받았거나appointed to 적합한fit for 자가 없으므로,2) 우리는 다른 이름이 아닌, 오직 그분의 이름으로만 기도해야 합니다.3)

 

1) 요 14:6; 사 59:2; 엡 3:12   2) 요 6:27; 히 7:25-27; 딤전 2:5   3) 골 3:17; 히 13:15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80문답 역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은 그분의 중보자로서의 사역과 관련된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180문: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고, 그분의 약속들을 신뢰함으로 그분의 공로로 긍휼을 간구하는 것인데to ask mercy for his sake,1) 단순히 그분의 이름을 언급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not by bare mentioning of his name,2) 그리스도와 그분의 중보로부터from Christ and his mediation 우리가 기도할 용기encouragement를 얻고, 또한 기도에서 우리의 담대함boldness과 힘strength, 수납되리라는 소망hope of acceptance을 얻음으로써 하는 것입니다.3)

 

1) 요 14:13,14; 16:24; 단 9:17   2) 마 7:21   3) 히 4:14-16; 요일 5:13-15

 

다른 중보자가 있는가?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그렇다면 다른 이름으로도 기도할 수 있는가? 대부분의 건전한 그리스도인들은 아예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할 뿐 아니라 그렇게 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로마가톨릭이다.

   로마가톨릭교회도 중보자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사람이 하나님께 바로 나아갈 수 없다고 본다. 그런데 그들의 생각에는 문제가 있다. 그들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이외의 다른 중보자를 둔다. 하나님이면서 사람이신 중보자가 아닌 사람 중보자를 둔다. 바로 ‘신부’(priest)다. 로마가톨릭은 신자가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직접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신부(priest)를 통해서 고백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신부가 신자들의 죄를 대신 고백해 준다. 우리가 잘 아는 ‘고해성사’(告解聖事, penance)가 바로 그것이다.

   또한 로마가톨릭의 기도 중 “성 요셉에게 바치는 기도”라는 기도에서 “우리 주 예수님을 기르신 아버지시오 정결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이시며 임종하는 이의 수호자이신 성 요셉께 간절히 청하오니 하느님께 빌어주시어 저희가 예수님을 사랑하며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또한 죽을 때에 저희를 지켜 주소서. 아멘.”4)이라고 해서 요셉을 중보자로 삼고 있다. 그들은 신부(priest)를 통해서 기도하기도 하고, 성자(saints)를 통해서 기도하기도 한다.5)

   그렇다면 과연 그들의 생각은 건전한가? 성경적인가? 아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이어주시는 중보자는 오직 예수님 한 분 뿐이다. 그래서 ‘유일한’ 중보자라고 한다. 디모데전서 2:5을 보자.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 이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매개해 주는 유일한 중보자는 예수 그리스도다. 그리고 이 말씀에 근거하여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36문답도 유일한 중보자가 예수 그리스도임을 밝힌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36문: 은혜 언약의 중보자the Mediator는 누구입니까?

  답: 은혜 언약의 유일한 중보자the only Mediator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니,1) 그분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이시고, 성부와 하나의 본질이시요of one substance 동등하시며equal,2) 때가 차매 사람이 되셨고,3) 과거와 영원토록 계속해서 하나님God이시요 사람man이시니, 완전히 구별되는 두 본성two entire distinct natures을 가지신 하나의 위격one person이십니다.4)

 

1) 딤전 2:5   2) 요 1:1,14; 10:30; 빌 2:6   3) 갈 4:4   4) 눅 1:35; 롬 9:5; 골 2:9; 히 7:24-25

 

   예수님 외에 다른 중보자는 없다. 오직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신 분만이 우리의 중보자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 외에 다른 이름으로 기도할 수 없다(참조. 행 4:12).

   그래서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81문답은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181문: 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합니까?

   답: 사람의 죄악sinfulness of man과 이로 인하여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생긴 거리가 매우 크므로 중보자 없이는without a mediator 하나님 앞에into his presence 접근할 수 없으며,1) 하늘과 땅에 그리스도 한 분 밖에는 그처럼 영광스러운 사역을 위해 임명받았거나appointed to 적합한fit for 자가 없으므로,2) 우리는 다른 이름이 아닌, 오직 그분의 이름으로만 기도해야 합니다.3)

 

1) 요 14:6; 사 59:2; 엡 3:12   2) 요 6:27; 히 7:25-27; 딤전 2:5   3) 골 3:17; 히 13:15

 

   우리는 성경과 요리문답의 가르침에 따라 반드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기도해야 한다. 그분의 이름으로도 기도하고 다른 이름으로도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분의 이름으로만 기도해야 한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믿지 않는 사람들은 기도할 수 없다. 예수님을 전혀 믿지 않는 불신자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단지 평범한 사람으로만 믿는 유대인들, 예수님보다 마호메트를 중보자로 믿는 모슬렘들, 예수님 외의 다른 중보자를 허용하는 로마가톨릭의 기도는 참된 기도일 수 없다.6)

 

 

III. 이렇게 마쳐야만 하는가?

 

주술적인 것인가?

 

   마지막으로 1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말을 빠뜨리고 기도를 마치면 큰일 나는 것일까? 역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말만 붙이면 그 기도는 바른 기도일까?

   우리는 요한복음 14:13-14; 15:16; 16:23의 가르침과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180-181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117문답의 가르침에 따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말을 빠뜨린다고 해서 큰일 나는 것은 아니다. 간혹 우리가 실수로나 다른 이유에 의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표현을 빠뜨릴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한 사람의 흉을 보거나 그렇게 한 스스로에 대해 자책할 필요가 없다. 예수님께서 “내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하셨기에 우리는 평소의 기도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표현으로 마쳐야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참으로 우리의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분명한 믿음과 확신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주기도문으로 기도할 때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모든 기도를 할 때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붙이지만 주기도문으로 기도할 때는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말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표현을 빠뜨렸다고 해서 기도를 잘못 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를 절대적으로 붙여야 한다고 기를 쓰거나, 믿음 없이 습관적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쓰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혹 실수로 그 표현을 붙이는 것을 잊었다 하더라도 우리가 정말로 그 의미를 잘 담아서 기도했느냐 하는 것을 늘 생각해야 할 것이다.

   역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말을 붙인다고 해서 다 바른 기도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형식적인 측면에서 그렇게 마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기도하는 이유가 분명해야 한다. 그 말을 붙이는 것에 핵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참으로 하나님과 나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지금 드리는 기도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상달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냥 아무 의미 없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를 남발하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은 제180문답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분명한 정의를 해 놓았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180문: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고, 그분의 약속들을 신뢰함으로 그분의 공로로 긍휼을 간구하는 것인데to ask mercy for his sake,1) 단순히 그분의 이름을 언급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not by bare mentioning of his name,2) 그리스도와 그분의 중보로부터from Christ and his mediation 우리가 기도할 용기encouragement를 얻고, 또한 기도에서 우리의 담대함boldness과 힘strength, 수납되리라는 소망hope of acceptance을 얻음으로써 하는 것입니다.3)

 

1) 요 14:13,14; 16:24; 단 9:17   2) 마 7:21   3) 히 4:14-16; 요일 5:13-15

 

   “단순히 그분의 이름을 언급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not by bare mentioning of his name)라는 표현에 유의해야 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말 자체에 힘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말할 뿐 아니라 그분을 주인으로 모시고 있다는 고백, 그분께서 이루신 모든 일에 대한 감사가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중보에 대한 참된 확신이 있어야 한다.

 

의미 있는 읊조림이 되어야

 

   기도를 마칠 때마다 항상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다 보니 이것이 하나의 습관이나 관례가 되어 버려, 정작 이렇게 기도하는 것의 의미를 잊어버릴 때가 많다. 왜 하는지에 대한 이유도 불분명한 채로 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사람들은 “이제 드디어 기도가 끝났구나”라는 신호(sign)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하나의 주문(呪文)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는 기도의 단순한 후렴구가 아니다. 땅에 있는 사람인 우리가 드리는 기도를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올려드리는 방편이 된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우리의 고백이 담겨 있다. 우리의 참된 중보자를 통해 드리는 기도는 반드시 응답되리라는 확신이 담겨 있다. 이 사실을 항상 기억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결론

 

   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가?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왜 그렇게 하라고 하셨는가? 예수님이 우리의 중보자가 되시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항상 기억하며 기도를 마쳐야 할 것이다.

   우리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기도해야 할 것이고,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신 예수님의 뜻에 합당하게 기도해야 할 것이다. 그런 기도는 반드시 응답될 것이다.

 

 


1) 이 글은 필자가 섬기고 있는 한길교회 주일 오후예배 시간 전한 설교를 수정한 것이다.

2)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117문답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기도는 ‘마음을 다하여, 솔직히. 확신’을 가지고 하라는 것이다. Fred H. Klooster, Our Only Comfort: A Comprehensive Commentary on the Heidelberg Catechism (Grand Rapids: Faith Alive, 2001), 1059, 1062. 마지막에 해당하는 확신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말한다.

3) 이 주제는 칼뱅의 『기독교 강요』에서도 다루고 있다. Institutes, III. xx. 17-20. 칼뱅은 기도라는 주제를 다루는 Institutes, III. xx의 가장 첫 부분에서부터 기도의 본질이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칼뱅의 제네바교회 요리문답 제251문답에서도 “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하는가?”를 다루고 있다. 이 사실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이 무엇의 영향을 받았는지를 잘 보여준다.

4)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가톨릭 기도서』(서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7), 30.

5) 성자들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으로 Institutes, III. xx. 21-27을 참고하라.

6) 그렇다면 구약시대를 살았던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떠한가? 그들은 비록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오실 메시아에 대한 약속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기도했으므로 그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즉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삼아 기도했다. Johannes G. Vos, The Westminster Lager Catechism: A Commentary, edited by G. I. Williamson (Phillipsburg: P&R, 2002),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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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68회 총회 상정안건분석] 주일날 임직식에 관하여

    이번 기획기사는 '제68회 총회상정안건분석'입니다. 총회는 교회의 가장 넓은 치리회인데 총회회의야말로 교회의 자태를 잘 드러냅니다. 총회에 상정된 안건 하나 하나가 현 교회의 모습과 우리 시대의 도전을 잘 담고 있습니다. 총회를 통해 교회의 ...
    Date2018.09.06 By개혁정론 Views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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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68회 총회 상정안건분석] 결혼, 잔치지만 가벼워서도 안 되는 거룩한 예식

    이번 기획기사는 '제68회 총회상정안건분석'입니다. 총회는 교회의 가장 넓은 치리회인데 총회회의야말로 교회의 자태를 잘 드러냅니다. 총회에 상정된 안건 하나 하나가 현 교회의 모습과 우리 시대의 도전을 잘 담고 있습니다. 총회를 통해 교회의 ...
    Date2018.09.04 By개혁정론 Views3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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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68회 고신총회 상정안건 분석

    이번 기획기사는 '제68회 총회상정안건분석'입니다. 총회는 교회의 가장 넓은 치리회인데 총회회의야말로 교회의 자태를 잘 드러냅니다. 총회에 상정된 안건 하나 하나가 현 교회의 모습과 우리 시대의 도전을 잘 담고 있습니다. 총회를 통해 교회의 ...
    Date2018.09.03 By개혁정론 Views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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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그리스도인의 데이트] 갈등,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이번 기획기사는 '데이트'입니다. 청년들이 데이트를 통해 결혼에까지 이르는 과정은 파란만장할 것입니다. 아슬아슬한 데이트, 데이트과정과 그것을 끝장내면서 평생 씻기 힘든 상처를 주고 받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요. 당사자만이 아니라 지켜보는 ...
    Date2018.09.03 By개혁정론 Views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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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그리스도인의 데이트] 이성교제의 꽃이 꺾여 버린 기독 청년에게

    이번 기획기사는 '데이트'입니다. 청년들이 데이트를 통해 결혼에까지 이르는 과정은 파란만장할 것입니다. 아슬아슬한 데이트, 데이트과정과 그것을 끝장내면서 평생 씻기 힘든 상처를 주고 받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요. 당사자만이 아니라 지켜보는 ...
    Date2018.08.16 By개혁정론 Views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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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그리스도인의 데이트] 누구와 데이트 할 것인가?

    이번 기획기사는 '데이트'입니다. 청년들이 데이트를 통해 결혼에까지 이르는 과정은 파란만장할 것입니다. 아슬아슬한 데이트, 데이트과정과 그것을 끝장내면서 평생 씻기 힘든 상처를 주고 받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요. 당사자만이 아니라 지켜보는 ...
    Date2018.08.06 By개혁정론 Views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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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그리스도인의 데이트] 공동체 내에서의 이성교제

    이번 기획기사는 '데이트'입니다. 청년들이 데이트를 통해 결혼에까지 이르는 과정은 파란만장할 것입니다. 아슬아슬한 데이트, 데이트과정과 그것을 끝장내면서 평생 씻기 힘든 상처를 주고 받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요. 당사자만이 아니라 지켜보는 ...
    Date2018.07.30 By개혁정론 Views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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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그리스도인의 데이트] 결혼 결심, 무엇을 고려해야 하나?

    이번 기획기사는 '데이트'입니다. 청년들이 데이트를 통해 결혼에까지 이르는 과정은 파란만장할 것입니다. 아슬아슬한 데이트, 데이트과정과 그것을 끝장내면서 평생 씻기 힘든 상처를 주고 받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요. 당사자만이 아니라 지켜보는 ...
    Date2018.07.25 By개혁정론 Views1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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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그리스도인의 데이트] 그리스도인의 데이트, 무엇이 다른가?

    이번 기획기사는 '데이트'입니다. 청년들이 데이트를 통해 결혼에까지 이르는 과정은 파란만장할 것입니다. 아슬아슬한 데이트, 데이트과정과 그것을 끝장내면서 평생 씻기 힘든 상처를 주고 받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요. 당사자만이 아니라 지켜보는 ...
    Date2018.07.23 By개혁정론 Views1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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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우리가 세우려는 교회] 개혁교회는 세상을 위한 교회

    개혁교회 건설 두 번째 기획기사는 ‘우리가 세우려는 개혁교회’입니다. 요즘 시대는 교회론의 혼란이 극심한 시대입니다. 교회에 대한 다양한 실험들을 하고 있고요. 개혁한 교회는 삼위 하나님께서 택하신 주의 백성들을 말씀과 성령으로 불러 ...
    Date2018.07.09 By개혁정론 Views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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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우리가 세우려는 교회] 교회의 4가지 속성

    개혁교회 건설 두 번째 기획기사는 ‘우리가 세우려는 개혁교회’입니다. 요즘 시대는 교회론의 혼란이 극심한 시대입니다. 교회에 대한 다양한 실험들을 하고 있고요. 개혁한 교회는 삼위 하나님께서 택하신 주의 백성들을 말씀과 성령으로 불러 ...
    Date2018.07.06 By개혁정론 Views2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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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우리가 세우려는 교회] 교회 세우기, 어떻게

    개혁교회 건설 두 번째 기획기사는 ‘우리가 세우려는 개혁교회’입니다. 요즘 시대는 교회론의 혼란이 극심한 시대입니다. 교회에 대한 다양한 실험들을 하고 있고요. 개혁한 교회는 삼위 하나님께서 택하신 주의 백성들을 말씀과 성령으로 불러 ...
    Date2018.07.02 By개혁정론 Views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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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그리스도인의 혼인] 혼인과 교회

    혼인과 교회 : 혼인하는 청년들을 위한 교회의 역할 조재필 목사 (부산 연합교회) 오늘날 혼인은 다분히 사적인 문제로 여겨집니다. 혼인을 결정하는데 개인과 개인의 의사가 거의 유일한 토대입니다. 과거에는 혼인이 집안과 집안의 만남이라는 전통적 사고...
    Date2018.05.28 By개혁정론 Views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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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기획-교회개척프로세스] 교회개척사례

    이번 기획기사는 교회개척 프로세스입니다. 지금도 교회개척이 필요하냐고 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제 더 이상 교회를 개척할 필요가 없다고요. 있는 교회도 정리해야 할 판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여전히 필요합니다. 이제는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
    Date2018.05.17 By개혁정론 Views3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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