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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획기사는 교회개척입니다. 아직도 교회가 더 필요하냐는 말이 있지만 교회는 여전히 필요합니다. 지금도 교회개척이 필요하냐고 말하지만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 땅의 소망이 복음을 맡은 교회에 달려 있다고 믿습니다. 말은 그럴듯해도 교회개척이 성공하기가 하늘의 별을 따기보다 더 힘든 시대가 되었고, 교회개척에 수많은 유혹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 장미빛 꿈을 내려놓고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길을 찾아야 합니다. '비둘기처럼 순결하게, 뱀처럼 지혜롭게'가 교회개척에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교회개척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기획기사를 엽니다. -편집장 주- 




교회개척과 부당거래


황대우.jpg


 

황대우 목사  
고신대학교 교수  
개혁주의학술원 책임연구원  



      오늘날 교회 개척은 이전에 비해 훨씬 어려워졌고 빈도도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발적이지만 개척은 지속되고 있다. 주로 영세한 교회 개척은 개인의 가정이나 상가를 주로 이용한다. 요즘은 학교와 같은 공공시설을 이용하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다. 독지가나 큰 교회로부터 든든한 후원을 받아서 개척하는 교회는 땅을 매입한 후 건물까지 짓기도 한다. 큰 교회가 스스로 분립개척을 하는 경우도 매우 드물기는 하지만 전혀 없지는 않다.
      이처럼 오늘날 다양한 이유와 근거로 시작되는 교회개척이 순수하고 적법하게 진행되는 것만은 아니다. 교회개척의 과정에는 수많은 비양심적이고 비도덕적인 일뿐만 아니라, 불법적이고 불신앙적인 일들도 비일비재하다. 소위 교회개척이라는 미명아래 자행되고 묵인되는 비성경적이고 불법적인 일들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알아야 한다.


      교회개척과 시모니즘(Simonism)
      가장 잘 알려진 비정상적 행태가 개척교회를 사고파는 것이다. 부동산인 교회 건물을 사고파는 행위 자체가 불법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위 ‘권리금’에 해당하는 ‘프리미엄’을 계산한다는 것이 문제다. ‘아니, 교회 건물을 사고파는데 무슨 권리금인가’라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와 같은 ‘권리금’에 해당하는 것이 존재한다. 
      가령, 개척교회를 먼저 시작한 사람이 개인적인 이유로 그만 둘 경우 그 개척교회를 판다고 광고를 하게 되는데 이 때 단순히 [상가의] 교회 공간의 시세뿐만 아니라 기존 교인들의 수를 계산에 넣어서 거래하는 일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아니, 이제는 더 이상 비밀도 아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 그 일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그들은 그 일이 마치 상점과 점포를 사고 팔 때 단골과 왕래하는 고객수를 감안하여 ‘권리금’을 계산하는 원리와 같은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시몬이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돈으로 사고자 했던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이것을 “시모니즘”(Simonism)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시모니즘적 거래에서는 가장 중요한 신앙 양심은 완전히 배제된 채 ‘사기’의 요소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시모니즘적인 부당거래의 대안은?
      그렇다면 신앙과 신학을 감안한 가장 바람직한 거래는 무엇일까? 아마 여러 가지 대답이 가능할 것이다. 예컨대, 먼저 개척한 사람은 개척을 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아무런 대가와 조건 없이 넘기고, 넘겨받을 사람은 넘겨줄 사람의 형편을 고려하여 사례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것은 가장 이상적인 경우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만일 이것이 같은 교단 내의 일이고, 총회나 노회가 개척을 주도하는 경우라면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다. 
      신앙 양심에 호소하는 이상적인 거래라면, 개척교회를 팔 사람은 자신이 투자한 자본의 최소한의 금액만 요구하고, 반면에 개척교회를 살 사람은 팔 사람의 형편을 살피고 고려하여 좋은 가격으로 구입하는 것이다. 이것 역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돈’이 걸려 있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문제이긴 하지만, 신앙 양심이 살아 있고 교회에 대한 생각만 바르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기존교회가 교인수가 많아져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경우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팔 사람은 돈을 더 많이 받으려 하고 살 사람은 돈을 한 푼이라도 덜 지불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하지만 거래의 내용이 교회 건물이고 거래의 당사자들이 교회라면 아무리 ‘상거래’라 하더라도 다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기존교회를 반드시 시세에 맞게 팔아 처분하는 것만이 능사일까? 교회건물은 특수한 목적으로 지어진 것이기 때문에 교회가 아니라면 대부분 잘 팔리지도 않는다. 예배를 위한 특수 공간의 교회는 가능하다면 보존하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기존교회를 반드시 파는 조건의 가격을 감안하여 새 교회건물을 건축하기 보다는 분립개척을 하는 것이 성경적이고 신학적으로 가장 바람직하다.
      개척교회를 시작하면서 땅을 사고 건물을 지을 경우 모든 것을 합법적인 절차대로 하기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고 호소한다. 이유는 건축과 관련한 일반적인 관행, 즉 편법적으로 탈법적인 관행을 따르면 경비를 절감할 수 있지만, 합법적으로 처리하면 경비가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이 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눈 질끈 감고 건축자의 관행적인 이중거래와 이중장부에 동의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법이 불합리하다는 핑계를 대면서 자신을 합리화한다. 결국 교회건물을 건축한다는 거룩한 명분으로 편법과 탈법을 일삼는 불의를 자행하고 만다. 

      돈과 욕망에 멍드는 교회
      이러한 현상은 교회를 하나님의 교회가 아닌 자기 교회로 착각하고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공명심이 빚어낸 결과다. 이것은 자기 교회를 자신의 자랑거리로 삼고 싶어 하는 불신앙적인 욕망의 열매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한 부당거래일 뿐만 아니라, 교회적으로도 한없이 부끄러운 부당거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부당한 일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복음’의 이름으로, ‘은혜’의 이름으로 교회 안에서 자행되는 것은 그야말로 불신앙 그 자체다. 교회가 도적의 소굴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큰 것’과 ‘성공’에만 올인(All-in)하는 교회의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 
      개척은 아니지만 비슷한 현상이 점점 보편화되어 가고 있는 불편한 진실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교회가 담임목사를 청빙할 때 후임목사에게 전임목사의 은퇴금이나 전별금을 요구하는 일이다. 아마도 집안이 부유한 목사나 차용할 능력이 탁월한 목사는 돈을 지불하고 담임목사의 자리를 꿰찰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계산에 능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담임목사 자리를 위해 지불할 만큼 자신에게 어떤 이득이 있는지, 또한 지불한 돈을 어떻게 회수할지 있을지 판단하고 행동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담임목사 자리를 놓고 흥정을 한 당사자들은 그것이 교회의 은사와 직분을 돈으로 사고파는 명백한 ‘부당거래’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러한 사실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그게 뭐 어때서?’라고 반응할 정도로 뻔뻔하기까지 하다. 돈 때문에 양심도 신앙도 복음도 은혜도 하나님도 몽땅 팔아 처분할 자들이다. 중세교회의 타락상 가운데 가장 심각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시모니즘’, 즉 성직을 사고파는 ‘성직매매’였다. 지금 한국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직매매 현상은 중세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다. 
      언젠가부터 ‘돈 없으면 교회 직분자가 되기 어렵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더니 이제는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담임목사 자리도, 개척교회 교인수도 이 부당거래의 매매 대상이 되고 있다. ‘돈’ 때문에 발생하는 교회 안의 기묘한 풍경들이다. 근자에 어느 노(老)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교회가 돈의 우상으로부터 해방되지 않는다면 희망은 없어 보인다. 

      돈과 사람만 있으면 교회개척은 가능한가?
      무엇보다도 ‘교회개척은 사람 있고 돈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부터 과감하게 뜯어 고쳐야 한다. 교회를 세우는 일은 하나님께서 하신다. 이것은 교회개척이 무엇보다도 인간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천명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척교회의 주인은 삼위하나님이 아닌 인간일 경우가 허다하다. 개척한 사람이 주인행세를 한다는 뜻이다. 소위 개척자금의 출처가 주인을 결정한다. 그래서 개척교회는 그 인간 주인의 ‘독재적 횡포’에 몸살을 앓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그 독재자가 사라진 다음 후폭풍은 또 어떠한가? 참으로 가관이 아닐 수 없다. 교회가 이름만 하나님의 교회이지, 실상은 인간을 위한, 인간에 의한, 인간의 교회일 뿐이다. 돈으로 시작한 교회는 돈으로 망하고, 사람으로 시작한 교회는 사람으로 망하리라. 믿음으로 시작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시작해도 거룩한 교회의 역사를 이어가기가 힘든데 시작부터 잘못되었다면 결말이 잘못될 가능성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교회를 개척할 때 현실적으로 돈도 필요하고 사람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믿음보다,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되고 우선적인 문제가 될 때 교회개척은 결코 순수한 복음의 기치를 내걸 수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돈과 인간관계로 얽히고설킨 교회개척은 돛 없는 배처럼 어디론가 움직이기는 하겠지만 복음이 인간을 위한 그 무엇으로 왜곡되기 십상이고,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라는 목적지를 향해 항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교회의 최고 가치와 우선순위
      교회 안에서 우선순위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한다. 종교개혁자들이 16세기 종교개혁을 통해 이룬 최고의 업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복음의 우선순위를 바르게 정립한 일이다. 즉 꼭대기에 교황, 교황 밑에 교회, 교회 밑에 성경이라는 중세 로마교회의 잘못된 복음의 순서를 거꾸로 뒤집어서 꼭대기에 성경을, 성경 아래 교회를, 교회 아래 교황과 같은 직분자를 정위한 것이다. 교회개척을 위해 최고의 자리를 차지해야 하는 것은 당연히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뜻이다. 어쩌면 이것을 너무 당연한 일로 여겨 중요한 문제로 고민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과 복음에 대한 관심은 너무 쉽게 잊고 너무 빨리 건너뛰어 돈과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직행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교회를 개척하기 위해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누가 적임자인가’ 등과 같은 문제는 분명 무시할 수 없는 중차대한 요소다. 그렇다고 그것이 교회개척의 1순위일 수는 없지 않는가? 누구를 위한 개척이요, 무엇을 위한 개척인지를 먼저 물어야 할 것이다. 개척의 필요성은 묻지도 따져서도 안 되는 당연지사로만 생각하면 곤란하다. 왜 필요한 것인지 물어야 한다. 그리고 필요한 이유가 하나님의 뜻과 부합한다고 확인된 이후, 돈과 사람을 찾아도 늦지 않다. 아니 오히려 개척의 정당성이 확보되었다면 돈과 사람을 찾기가 훨씬 쉬울지도 모른다. 돈과 사람을 찾을 때 주의해야 하는 것도 역시 인간적인 욕심과 이해관계에 대한 계산이 아닐까 싶다. 이런 것들이 개입될 경우 하나님의 일은 인간의 일로 둔갑하기 십상이다. 만일 이렇게 되면 개척교회의 기초요 출발점인 복음의 순수성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다. 

      순수한 복음의 진리 위에 세워지는 교회
      교회개척은 더 이상 인간의 목회 성공 수단으로 잘못 인식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교회개척뿐이겠는가? 교회의 중직자의 자리도, 담임목사의 자리도 역시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하나님의 복음이라는 기초 위에 설립되어야 하는 것이 교회라면 기초와 기본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개척을 하고자 하는 기본 정신이 바르게 세워져야 한다.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라는 미명 아래 인간의 욕망과 능력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지 못하도록 단속할 필요가 있다. 개척을 시작하려고 하는 사람들과 교회가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이고, 만일 이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총회나 노회가 감독자로 나서야 하겠지만 얽히고설킨 이해관계와 교회 권력 구도 때문에 정당한 감독이 이루어질지 의문이다. 
      성경이 요구하는 그리스도인의 정당한 삶과 목표를 이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 속에서 그것은 너무 자주 ‘이상적인 생각’으로 치부된다. 그리고 ‘현실을 모른다’면서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가장 큰 설득력을 행사하는 것이 오늘 우리의 불행한 ‘현실’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복음이 지상에서 ‘어떤 큰 것’에 매도되거나 ‘어떤 난감한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고고히 진리의 좁은 길을 고수해 왔다는 것 또한 역사적 사실이다. 이 복음의 진리를 놓치지 않는 교회개척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만한 진정한 하나님의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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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문제에 대한 두 교단의 서로...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잘못을 통해서...
기고
직분자 임직식에서 성도의 역할
죽음을 어떻게 맞을까를 잠시 생각하며
제73회 총회가 남긴 몇 가지 과제
전임목사는 시찰위원으로 선정될 수...
고신교회와 고재수 교수; 우리가 왜...
왜 고재수는 네덜란드에서 고려신학...
제73회 총회를 스케치하다
신학생 보내기 운동에 대한 진지한 ...
명예 직분 허용이 가져다 줄 위험한...
[고신 70주년에 즈음하여 9] 고신교...
논문
송상석 목사에 대한 교회사적 평가 ...
송상석 목사와 고신 교단 (나삼진 ...
송상석 목사의 목회와 설교 (신재철...
네덜란드 개혁교회 예식서에 있어서...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 예배지침 부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SFC 강령의 “전통적 웨스트민스터 ...
지역교회의 적정 규모(規模 size)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