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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가정들이 위기를 겪고,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해체되는 실정입니다. 기독 청년들 조차 가정에서 어려움 가운데 자라왔고, 자신이 이룰 독립된 가정에 대해서도 막연함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가정의 건강한 일원으로 자리매김할 뿐 아니라 독립된 가정을 준비할 수 있도록 성경적 가정관에 관한 기획 기사를 만들었습니다. 청년들은 직장이나 미래에 대해 꿈꾸지만 사실 가정의 문제가 제일 중요합니다. 언약가정의 기반이 없는 샤회생활은 허왕된 꿈을 쫓는 것입니다. 기독청년들이 언약가정을 아름답게 세워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격려하고 지원하기를 바랍니다. - 편집장 주

 

 

다름의 미학: 남편과 아내의 위치와 역할

 

 

안정진.jpg

 

안정진 목사

(한울림교회)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는 남성과 여성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그릇된 생각이 어떻게 가정과 사회 전체를 혼란과 파멸로 이끄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야기는 종종 현실이 되기도 한다. 남편과 아내의 역할이 역행하거나, 그 고유한 위치에 교란이 생기면 가정을 하나님의 왕국으로 바로 세울 수 없다. 성경은, 남편과 아내가 그 지위와 역할에서 각자 고유한 “다름”이 있다고 가르친다(고전 11:3-16, 엡 5:21-33, 딤전 2:11-14).1) 남편이 아내를 대신할 수 없고, 아내 역시 남편을 대신 할 수 없다. 이는 하나님이 다르게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이 다름은 창조 질서에 기초하며, 타락 때문은 아니다. 비록 인간의 죄와 부패로 인하여, 혼란과 역행, 갈등과 다툼이 일어나지만, 본래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은 “다름”을 통하여 남녀가 서로의 연약함을 보완해 주고, 한 몸으로 온전하게 세워가게 하신 것이다. 남편과 아내는 어떻게 다른가? 그것은 왜 아름다운가?

 

 

남편은 “아내의 머리”다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고전 11:3). 14세기에 살았던 그리스도인 제프리 초서는 “여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캔터베리 이야기』에서 교훈적인 이야기 형식으로 말한 바 있다. 그것은, “남자에 대해 주도권”을 가지는 것이다. 타락 후에 하나님은 이 주도권 다툼에 대하여 여자에게 경고하셨다.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창 3:16)” 결혼 생활의 주도권을 가지려는 아내를 제압하기 위해 이보다 좋은 말씀을 어디에 있을까?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편이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아멘! 그러나 남편들이 “아멘”을 해도 “머리 됨”과 “통치”에 대한 의미를 깨닫지 못하면 말씀에 대한 오해와 오용, 자기만족만 있을 뿐, 진정한 순종을 할 수는 없다. 우리 주변에는 각 분야에서 선한 영향을 끼치는 훌륭한 사람들이 많지만 성숙한 남편을 찾기란 힘들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대체로 성경이 가르치는 남편의 지도력에 대하여 무지하거나, 알지만 순종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남편의 머리 됨(headship) 곧 지도력이란 무엇일까?

        먼저, 머리됨은 가부장적 권위가 아니다. 당연히 남편이 그리스도의 위치에 있으면 안 된다. 남편은 그리스도가 아니며, 단지 그리스도를 위하여 행하고, 그리스도처럼 행하고, 그리스도께로 아내와 자녀를 인도하는 사람이다. 이는 남편의 머리가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남편들은 자신의 성(性)의 우월함을 아내에게 증명하려 해서는 안 된다. 성숙한 남편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뿐 아니라, 아내의 모든 능력을 이끄는 사람이다. 비록 서로의 의견이 불일치할 때도, 최종적인 결정권이 자신에게 있지만, 일방적 결정으로 아내를 무시하지 않는다. 아내에게 묻고, 아내를 위하여 자주 자신의 주장을 포기하고, 아내의 생각을 택한다. 그 결과가 심각하리만큼 만족스럽지 못할 때도 있다, 하지만 “당신 때문이야”라고 말하지 않는다.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지고 견딘다. 머리로서 남편은, 가족의 영적, 도덕적 삶을 주도하고 수행하는 책임 의식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래서 머리다.

        둘째, 머리됨은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다. “돈만 벌어 주면 돼”라고 생각하는 남자들이 더러 있다. 이런 생각은 일종의 자폭에 가깝다. 내가 얼마나 미성숙한 남편인지를 보여주는 자기 증명이니 절대 입에도 담지 마라. 아내는 돈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남편의 영적이고 정서적이며 성적인 공급을 원한다. 믿는 아내들의 불만을 들어 보라. 그는 경제적 필요보다 성숙한 남편의 영적 돌봄에 굶주려 있다. 식탁에서 누가 기도를 주도하는가? 주일 예배와 정기적인 기도회로 자녀들을 이끄는 사람은 누구인가? 누가 자녀들을 깨우고 준비시키고 지도하는가? 누가 말씀을 가르치는가? 머리인 남편은 아내와 자녀들을 생명나무이신 그리스도께로 아내를 인도하고 먹이는 직분자다.

        셋째, 머리됨은 보호를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경작하는 사명 뿐 아니라, 지키는 사명도 주셨다(창 2:15). 지키는 것은, “보호하는 것”(guard)이다. 아담은 동산 안에 뱀을 꾸짖고 죄가 침입하지 못하도록 동산을 지키고, 아내를 지켜야 했다. 타락 후에도, 아담의 책임은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찾으신다. 가정의 도덕적 영적 삶을 지키는 책임이 “여전히” 아담에게 있기 때문이다(창 2:15). 아내는 이 책임을 남편과 공유한다. 자녀를 훈육하는 것은 가정을 지키고 보호하는 차원이다. 그것은 주로 아내의 책임이지만, 성숙한 남편은 아내에게만 그것을 미루지 않고 주도적으로 자녀를 훈육하려고 한다. 아내가 남편이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훈육을 미루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남편은 자신의 위치를 항상 의식하면서 그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요컨대, 머리인 남편은 인도자, 공급자, 보호자로서의 지위와 역할을 감당할 때 가장 아름답다. 머리됨(주도권)은 하나님이 부르신 책임과 역할을 수행할 때 올곧게 드러난다. 남편이 이 책임 의식에 민감할수록 자신이 연약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더 깊이 느끼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이 일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겸손함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남편은 기도하는 사람으로,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으로, 성숙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게 될 것이다.

 

 

아내는 “남편의 돕는 배필”이다

 

아내에게 중요한 것은 남편의 머리됨에 어떻게 반응하느냐 하는 것이다. 성경은 아내들에게 남편의 지도력에 순종하라고 가르친다(엡 5:22, 골 3:18, 딤전 2:11, 벧전 3:1).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이런 가르침은 탈근대사회에서는 계몽을 강요하는 일종의 폭력적 가치가 되어가고 있다. 요즘 학교에서는 “순종”이라는 단어를 잘 가르치지 않는다고 한다. 교사와 학생이 서로 대등한 위치에 있으므로 “존중”할 뿐이란다. 이 시대정신은 결혼 생활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친다. 가령, 어떤 여성은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을 굴욕으로 느낀다. 남편과 아내의 지위와 역할의 평등을 요구한다. 그렇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는 하나다(갈 3:28). 그러나 가치가 같다고 역할이 같은 것은 아니다. 가치와 역할이 무질서한 가정에서는 순종하는 자녀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성경이 정의하는 아내의 순종은 무엇인가? 존 파이퍼의 말처럼, 그것은 남편의 지도력에 대한 구체적인 행위가 아니라, 기꺼이 따르려는 성향과 마음으로 정의 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남편이 아내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먹이고, 보호하려고 할 때, 성숙한 그리스도인 아내는 그 지도력을 기꺼이 따르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러나 남편이 자신을 죄악으로 이끌어 가려고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가령,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술을 권하거나, 음란물을 보자고 한다면? 그때도 순종할 것인가? 당연히, 아내는 죄인의 길을 따르지 않고, 그러한 자리에 앉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시편 1편을 보라). 하지만 그때도 아내는 “순종의 영”으로 충만해야 한다. 그래서 남편이 성령의 지도력으로 자신을 인도하여 주기를 갈망하며 기도해야 한다. 죄를 뿌리치고 성경적 지도력을 갈망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헌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 남편이 주도권(머리 됨)을 바르게 행사할 때 아내는 그 지도력을 격려하고 수용하고 세워주고 싶은 강한 욕구를 가지게 된다. 나는 하나님이 여성을 그렇게 창조하셨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아내는 남편의 돕는 배필이다. 그러면 어떻게 남편을 도와야 하는가?

        첫째, 남편을 지지함으로써 돕는다. 남편도 아내를 지지해야 한다. 남편과 아내는 피차 복종하라는 명령을 받는다(엡 5:21). 아내의 지지는 어떤 점에서 다른가? 개인적으로, 나는 아내의 격려와 기도가 다른 어떤 사람의 것과 모든 점에서 다르다는 것을 종종 느낀다. 나를 더 창조적이고 지적이고 영적인 진보를 이루도록 해 주는 것은 언제나 아내의 격려와 기도다. 반대로, 아내의 냉소와 거절과 비난은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들다. 베드로는 성숙한 아내의 모습으로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에 대해 말씀한다(벧전 3:4). 자신의 주장이 강한 아내는 남편을 수동적으로 침묵하게 만들거나 쉽게 화를 내도록 만들기 싶다. 아내가 남편의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하나님이 남편에게 부여하신 선한 지도력을 격려하고 지지하여 그것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둘째, 남편을 받아들임으로써 돕는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성숙한 남편의 지도력을 환영하고 기뻐한다는 것이다. 아내는, 내가 기도하고 말씀과 성령이 충만할 때 함께 기쁨과 자유의 영으로 충만하다. 슬프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그렇다. 부부는 신비롭게 연합되어 있다. 그러므로 남편들은 무엇이든지 아내가 수용하고 받아들여 주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를 향한 같은 방향의 헌신이 있을 때 성숙한 아내는 남편의 지도력을 기뻐하고 받아들이며 따르도록 코딩되어 있다. 그러한 예를 “나발의 에피소드”에서 본다(삼상 25:2-42). 다윗이 베푼 선을 나발이 악으로 갚으려고 했을 때 그의 아내 아비가일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환영하거나 기뻐하지 않는다. 그녀는 하나님의 나라에 헌신 된 사람이었기에, 남편의 입장에 서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이 다윗의 집을 든든히 세워주시기를 갈망한다(28-29절). 이처럼 아내는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위하는 명확한 신앙 기준을 세우고 남편의 지도력을 판단해야 한다. 그래야지 맹목적이고 어리석은 순종이 되지 않는다.

        셋째, 남편을 세워줌으로써 돕는다. 세운다는 것은, 드라마로 치면 단지 조연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공동 주연을 맡은 것과 같다. “이인삼각” 경기를 생각해 보라. 두 사람이 함께 보조를 맞추어야 넘어지지 않고 걸어가거나 뛸 수 있다. “이것이” 세우는 것이다. 아내는 동반자로서, 조력자로서 함께 공동의 역할을 감당한다. 여기에는 어떤 남성 중심의 사고이나 여성비하의 그릇된 것이 들어올 여지가 없다. 단지 그런 식으로 자신을 정당화하고 사용하려는 죄인만 있을 뿐이다. 성숙한 아내는, 남편을 더 강하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길러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잠언 31장에서 말하는 현숙한 아내는 바로 이런 능력과 강함을 가진 여성이다.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하지 아니하겠으며 그런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의 남편에서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아니하느니라 ... 남편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며 ... 그의 자식들은 일어나 감사하며”(10-28절).

        아내들은 종종 이런 여성상과 자신이 거리가 멀다고 여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좋은 출발이라고 믿는다. 성경은 우리의 연약함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진다(고후 12:9). 하나님은 여성의 모든 연약함 때문에 남성의 능력을 강조하신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마치며 

 

하나님이 남녀를 다르게 창조하신 것은 “다름”을 통하여 “온전하도록” 의도하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남녀의 다름은 아름답다. 그러니 각자의 성(性)에 대하여 우월함을 주장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다. 오히려 서로의 연약함을 겸손히 받아들이고, 그 연약함이 온전함과 강함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라 믿으며, 서로를 보완해 주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면, 남편은 아내를 통해 완성되어 가고, 아내도 남편을 통해 완성되어 갈 것이다.       

 

 


1) 남편과 아내의 “다름”에 대한 나의 생각은 존 파이퍼의 책, 『남자와 여자, 무엇이 다른가』(부흥과 개혁사)에서 가져와 새롭게 구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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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2019.05.31 By개혁정론 Views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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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기획-청년의 교회생활] 청년, 교회 권위자와의 관계

    이번 기획기사는 '청년의 교회생활'입니다.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교회봉사에 지쳐 떠나기도 하고, 교회 직분자들과의 다툼을 일으켜 떠나기도 합니다. 추측컨대 이런 추세는 더 가속화될 것입니다. 교회에 그리스도께서 계시기에 교회가...
    Date2019.05.24 By개혁정론 Views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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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사설
[사설] 제7차 개정헌법 헌의안, 총...
[사설] 총회장은 교단의 수장이 아...
[사설] 명예집사와 명예권사, 허용...
[사설] 총회가 계파정치에 함몰되지...
[사설] 최근에 일어난 고려신학대학...
세계로교회 예배당 폐쇄 조치를 접하며 3
[사설] 총회(노회)가 모일 때 온라...
총회가 졸속으로 진행되지 않으려면
[사설] 누가 고신교회의 질서와 성...
공적 금식과 공적 기도를 선포하자
칼럼
왕처럼 살고 싶습니까? 왕처럼 나누...
푸틴의 머릿속에 있는 그림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3부)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2부); 교회...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1부)
우리 악수할까요?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 (Peter Holt...
관심을 가지고 보십시오.
동성애 문제에 대한 두 교단의 서로...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잘못을 통해서...
기고
직분자 임직식에서 성도의 역할
죽음을 어떻게 맞을까를 잠시 생각하며
제73회 총회가 남긴 몇 가지 과제
전임목사는 시찰위원으로 선정될 수...
고신교회와 고재수 교수; 우리가 왜...
왜 고재수는 네덜란드에서 고려신학...
제73회 총회를 스케치하다
신학생 보내기 운동에 대한 진지한 ...
명예 직분 허용이 가져다 줄 위험한...
[고신 70주년에 즈음하여 9] 고신교...
논문
송상석 목사에 대한 교회사적 평가 ...
송상석 목사와 고신 교단 (나삼진 ...
송상석 목사의 목회와 설교 (신재철...
네덜란드 개혁교회 예식서에 있어서...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 예배지침 부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SFC 강령의 “전통적 웨스트민스터 ...
지역교회의 적정 규모(規模 size)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