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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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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획기사는 '예배'입니다. 교회는 예배하는 공동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예배가 없는 기독교는 앙꼬 없는 찐빵입니다. 우리는 제대로 예배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의 예배는 다른 종교의 예배와 어떻게 다를까요? 구약성경 말라기서에 보면 당시 제사장들이 제사 드리는 것을 지겨워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예배가 지겨워지고 있지 않은지, 아니면 예배를 흥미를 돋우는 공연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예배 하나면 잘 해도 되지 않을까요? 세상이 우리의 예배를 보고는 저기에 정말 하나님을 깊이 경외하는 자들이 있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게 곧 전도일 것입니다. - 편집자 주

 

 

 

주일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성희찬.jpg

 

 성희찬 목사

 

 

 

 

 

주일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이 주제는 성경시대 뿐 아니라 교회역사에서도 항상 첨예하게 다루어져 왔다. 이것으로 성도 개인과 교회가 서고 넘어질 뿐 아니라, 신학자들이 이 주제를 가지고 서로 격렬하게 논쟁하며 대립하기도 하고 심지어 이것으로 교회가 큰 내분과 홍역을 겪기도 하였다. 네덜란드교회역사에서는 한 때 무려 100년 동안 이 문제를 가지고 신학자들과 교회들이 씨름한 적도 있다. 본 글은 주일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주제로 신학적인 토론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주일 공예배와 관련해서 주목해야 할 몇 가지 중요한 원리를 제시하려고 한다.

 

 

 

 

1. 예배가 중심이 되게 하라

 

 

‘주일성수’-고신 교회에 속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용어다. 도대체 주일을 왜 ‘성수’ 즉 거룩하게 지키려는 것일까? 이는 교회 공예배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은 주일을 다룰 때 <공예배>와 연결시키고 있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21장에서 ‘종교적 예배와 안식일’에서 그렇게 다루고 있고, 교리문답(대교리문답 117문답, 소교리문답 60문답)에서도 주일이 무엇보다도 예배의 날이라 말하고 있으며, 특히 예배지침은 주일 공예배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전에 제2장에서 ‘주일성수’라는 항목으로 주일을 언급하고 있다.

   이 말은 결국 주일성수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우리 교회의 공예배를 더 잘 드리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법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가 주일을 얼마나 거룩하게 보냈는가를 말한다면 적어도 주일 공예배라는 목적과 표준을 가지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공예배와 상관없이 주일을 성수한다거나, 공예배를 약화시키거나 훼손해놓고서는 주일을 성수했다고 하는 것이야말로 율법주의식으로 주일을 대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주일에 돈을 쓰지 않은 것 그 자체가 아니라, 이 날에 예배를 잘 드렸는가가 더 중요하다. 주일에 돈은 쓰지 않았지만 예배 시간을 집중하지 못해서 폰을 만지작거리고 머리로는 온갖 것을 다 생각하며 다중 멀티 작업을 하며 드린 후에는 교회당에 있는 카페에서 목사의 설교를 평하고 교인들을 험담하다가 집에 와서는 종일 텔레비전을 보면서 주일을 보냈다면 이것이 과연 주일을 거룩하게 보낸 것일까? 혹은 주일에 예배를 드린 후에 교인들과 은혜를 나누기 위해 예배당 안에서 적당한 장소를 찾지 못하여 인근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 말씀의 교제를 가졌다면 이는 주일을 거룩하게 보내지 못한 것일까?

 

 

 

 2. 예배의 위선을 경계하라

 

 

대교리문답 제121문답을 보면 제4계명을 해설하면서 안식일을 기억하는 이유 중에 하나를 ‘그 날을 지킴으로써 다른 모든 계명들을 더 잘 지키기 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 주일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라는 문제는 결국 주일에, 그리고 주일예배를 통해 얼마나 다른 계명들을 지키고 있는가가 그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단순히 예배를 드렸다고 해서 주일을 지켰다고 말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하여 선지자 아모스 시대의 교회는 여로보암 2세의 주도로 경제와 군사 등에서 부흥을 구가하는 때였지만 안식일을 지키는 ‘그들의 모든 행위’에서 신앙의 타락과 예배의 위선을 지적 받았다(특히 아모스 8장). 안식일은 그들만의 안식일이었다. 겉으로 볼 때는 안식일에 예배를 드렸다. 그러나 안식일이 본래는 이웃들 특히 가난한 자, 힘없는 자들을 배려하는 날임에도 불구하고(출애굽기 20:9-11, 신명기 5:12-15, 너같이 안식하게 하라), 이 날을 ‘가난한 자를 삼키며 땅의 힘없는 자를 망하게 하려는’ 기회로 삼았다. 아모스 8장을 중심으로 안식일을 보내는 이들의 위선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월삭(이 날도 안식일이다)에 예배는 드리지만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고 ‘안식일이 언제 지나갈까’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는 마치 우리 역시 예배 시간에 언제 마칠까 하며 시계를 쳐다보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이는 한마디로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과 예배를 향한 갈망이 없다는 증거이다. 이들은 예배는 드렸지만 동시에 사업도 구상하고 회의도 생각하는 동시다중작업(멀티태스킹)을 하였다.

 

둘째, 언제 예배와 주일이 지나갈까 라고 하며 안식일에 정작 안식이 없고 도리어 마음이 불안과 염려로 가득 차 있다.

 

셋째, 심지어 예배 도중에 악을 꾀하였다. 에바(곡식파는 용기)는 작게 하고 세겔(은의 무게)은 많이 하겠다는 둥, 거짓 저울을 사용하고 찌꺼기 밀을 팔겠다는 둥 이들은 예배 시간에도 자신의 탐욕과 안일에 빠져 ‘요셉의 환난을 근심하지 않는 완고한 마음’(6:4-6)을 가진 자들이었다. 다시 말하면 이들은 이웃사랑 없이 안식일과 예배를 지킨 자들이었다. 겉으로는 안식일에 예배를 드림으로 제4계명을 지키고 있는 것 같지만 정작 제8계명(도둑질 하지 말라)을 어긴 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죄의식을 갖지 않았다. 이들은 평소 힘없는 자와 가난한 자를 물건으로 취급하여 은과 신발 한 켤레 값에 팔아 종으로 삼으면서 예배를 드렸던 것이다.

 

이같이 아모스 당시 교회는 안식일에 예배는 멀쩡히 드렸지만 심각한 예배의 위선과 타락에 빠졌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그들의 행위를 결코 잊지 않겠다고 하시며 준엄한 심판을 선포하셨다.

 

 

 

 3. 따라서 주일을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예배의 부패와 예배의 위선에서 참 예배를 지키기 위해 저항하는 날로 여기라

 

 

‘저항의 날’이라는 표현은 저명한 구약 학자 월터 브루그만의 책『안식일은 저항이다』에서 인용한 것이다. 그래서 주일은 예배의 위선에 빠지지 않고 진정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이 시대의 정신과 문화, 불신앙에 대해 저항하는 날로서 의미가 있다.

 

 

첫째, 주일은 창조의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 무엇보다 안식(쉼)의 하나님을 기억하기 예배하는 날이기에 이 시대에 안식을 주지 않고 탐욕과 불안을 부추기는 거짓 신(우상)에 저항하는 날이다. 이 점에서 주일은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제1계명과 관계가 있는데, 주일 예배는 어떤 신을 선택하는지를 고백하는 날이다. 사탄과 세상은 우리가 창조와 구원의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하게 하고 안식을 누리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둘째, 주일은 죄악된 일을 그만두는 날이기에(대교리문답 117문답), 우리의 탐욕, 우리의 죄와 씨름하며 이에 저항하는 날이라 할 수 있다. 탐욕과 죄와 싸우지 않고서 주일을 지켰다거나 예배를 드렸다고 말할 수 없다. 설교를 들으면서, 찬송하면서, 기도하면서 자기의 탐욕과 죄와 싸우는 저항이 있어야 한다.

 

셋째, 주일예배는 세상(시대)의 정신에 저항하는 것으로 의미가 있다. 특히 지금 시대는 소비시대로서 모든 것, 이웃과 사람(노동자 뿐 아니라 친구, 가족 등)을 물건(상품)으로 여기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기들의 종교에서 신조차 형상으로 만들어 자기를 위해 상품으로 소비하기도 한다. 이 점에서 주일은 하나님을 어떤 형상으로든 만들지 말라는 제2계명과 관계가 있는데, 우리는 주일예배를 통해 신과 가족과 이웃을 상품 취급하는 이 시대정신에 저항하여 하나님과 이웃과 바른 관계를 다시 정립하고, 하나님과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기로 작정하는 날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일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참 사랑이 더욱 고양되어야 한다.

 

넷째, 주일예배는 안식하며 예배를 드림으로 우리 안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불안과 염려에 대해 거룩한 저항을 하며 나아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배우는 날이다.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4. 결론

 

 

주일은 당연히 교회가 드리는 예배의 날이지만, 그러나 예배의 타락과 위선에 빠지지 않고 예배의 순전함을 지키고 진정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세상과 사탄과 우상과 자기의 탐욕과 거룩하게 저항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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