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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획기사는 '기독교인의 일'입니다. 우리는 일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의 말대로 항상 사랑을 할 수도 없고, 항상 잠만 잘 수도 없지만 우리는 항상 일하며 삽니다. 이렇게 항상 세상속에서 일해야 하는 우리가 의외로 일하기를 거부하고, 일을 고역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세상에서의 일을 줄이고 영적인(?) 일에 힘쓸수록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특히 청년들에게는 일거리가 없다는 것이 가장 고통스러운 문제일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일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같이 고민하기를 원합니다. - 편집장 주

 

 

종교개혁가 루터가 말하는 일(work)과 소명(vocation)

 

 

 

최정복.jpg

 

최정복 목사

(세종시 장로교회 담임)

 

 

   오늘날 많은 청년들이 자신이 어떤 직업으로 부르심을 받았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장래에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 주변 어른들로부터 질문을 받습니다. 초등학교부터 적성검사 혹은 직업을 소개하는 교육과정에 참여하게 됩니다. 상급학교로 입학을 앞두고 이 고민은 좀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옵니다. 사회에 진출할 시점이 되면 이 고민은 더욱 치열해 집니다. 자신이 갖고 싶은 직업이 경쟁률이 높아 진입하기가 어려울수록 이 고민은 더욱 깊어집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 직업이 자신에게 주신 ‘소명’인지 알 수 있을까요? 아쉽게도 오늘날 존재하는 많은 직업들은 성경이 기록된 시기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경도, 목사님도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물론 자신이 선택한 직업이 하나님이 주신 소명인지 아닌지 꿈이나 예언이나 환상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아쉬운 것은 ‘일’이 무엇인가, ‘소명’이 무엇인가에 대한 지식이 없이 좋아 보이는 ‘일’과 ‘소명’ 그 자체만을 찾으려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무엇이 나의 소명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일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소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숙고해 보아야 합니다. 이 글에서는 종교개혁가 루터가 말하는 “일”과  “소명”에 대해 소개하려고 합니다.

 

 

   마르틴 루터가 말하는 일과 소명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세 교회에서 일과 소명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세 로마 교회는 하나님을 섬기기로 작정하고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한 수도사들이야말로 영적인 그리스도인들이요, 일등급 그리스도인이었던 반면, 세속적 일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2등급 그리스도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종교개혁가의 선봉에 섰던 루터는 사제들과 일반 백성들 사이에 존재하는 이분법적 구별을 무너뜨리기 시작했습니다. 루터는 중세 로마교회의 구별이 “기회주의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허울 좋은 고안물”이라고 비판했습니다.1) 중세교회는 영적이고 종교적인 직분자들을 제사장이라고 불렀지만, 루터는 고린도전서 12장 12절, 베드로전서 2장 9절 등의 말씀을 따라 세례 받은 자는 모두가 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루터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대한 기준이 미사를 섬기는 일이냐, 혹은 푸줏간의 일이냐의 구분에 있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는 “오직 믿음”으로 행하는 일이라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일반 성도들과 주교 사이에 존재하는 구별은 “직무의 차이 이외에 아무것도 없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지위는 차이가 전혀 없다”고 했습니다.2)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긴다면 그가 서 있는 자리가 예배당이나 수도원이 아닌 시장 한복판이라 하더라도 거룩한 장소가 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루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매일 하는 집안일은 수도사들의 엄격한 경건생활이나 성자들과 비교해도 훨씬 거룩합니다.3)” 루터가 이렇게까지 일에 대해 긍정적인 이유는 그리스도인이 가진 자유의 중요성 때문이었습니다.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라는 글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소유하며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4)고 하면서 중세 로마 교회는 이러한 자유를 억압한다고 한탄했습니다.

   루터는 일반 성도들의 노동을 다음과 같은 말로써 격려했습니다. “세속적인 통치자, 관리, 구두수선공, 대장장이, 농부는 각기 자기들의 일과 직무를 맡고 있으면서도 다 성별 받은 사제와 주교와 같다.”5) 그는 심지어 “세속적인 일로 보이는 일은 사실은 하나님께 대한 찬양”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6) 오늘 날에는 루터의 만인제사장 교리를 당연하게 가르치지만, 루터의 이러한 가르침은 중세 시대에는 파격적이었습니다. 루터의 파격적인 가르침은 세속을 떠나 은둔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오직 믿음”이라는 구호를 통해 평범해 보이는 세상적 직업도 긍정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물론 루터가 세상에서 행하는 일을 일방적으로 긍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중도”를 가르쳤습니다.7) 루터는 교회의 직분적 일의 중요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영적으로 우리를 먹이고 다스릴 뿐 아니라, 세속 군주를 통해서도 우리를 다스리시며, 또한 제빵사의 손을 통해 우리를 먹이신다고 본 것입니다. 루터는 「세속 권세: 어느 정도까지 복종하여야 하는가」라는 글에서 하나님께서 영적인 통치를 통해 신자를 경건하게 하시고, 세속 군주를 통해 악한 자를 다스리시고 “평화”를 유지시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세속 군주의 가면, 혹은 제빵사의 가면을 쓰고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내가 수행하는 직업은 곧 내 이웃을 향한 “하나님의 가면”인 것입니다.8)

   루터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인 직분과 원리 뿐 아니라 세속 세계의 원리를 따라서도 하나님의 일을 수행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각각의 다른 장소에서 각각 다른 일을 통하여 이웃의 유익을 도모하고 섬김으로서 한 분 하나님의 “부르심”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루터는 영적인 소명과 세상에서의 소명을 구분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소명을 ‘영적 소명’으로 불렀고, 세상에서의 일을 ‘외적 소명’이라고 불렀습니다.9)

   이 외적 소명은 “성령을 받고 중생한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복음을 믿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자부심을 가질 만큼 고귀한 것입니다.10) 하물며 그리스도인의 외적 소명은 어떠해야 할까요? 하나님을 향한 감사를 이웃 사랑으로 표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서 전적으로 하나님과 관련한 일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왜 루터가 일상적 일을 “찬송”이라고까지 지칭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외적 소명을 통해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모든 사람을 섬기는 자발적 종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것은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명으로 종합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11)

   루터는 이처럼 자기에게 주어진 부르심의 자리에 최선을 다하라고 권면하면서, 이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이 가르침은 중세의 이분법적인 사제주의를 깨뜨렸고, 모든 직업이 평등하다는 사실을 인식시켰습니다. 나아가 이 소명을 통해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을 섬기는 “창조의 동역자”가 된다고 가르쳤습니다.12)

   이러한 루터의 일과 소명에 대한 관점은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시사 하는 바가 큽니다. 자신의 직업에 대해 허탈감을 느끼는 현대인이나, 반대로 자신의 직업적 소명 자체에 높은 의미를 두고 성취감을 느끼고 싶어 하는 현대인들 모두에게 유익이 있습니다. 자신의 일상의 일에 권태감과 허탈감을 느끼고 “해외 선교”나 “복음 사역”만을 의미 있는 것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루터는 “당신의 일상이 바로 그 현장”이라고 권고할 것입니다. 반대로 자신의 꿈을 투사하여 이기적인 직업적 소명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도 루터는 “당신이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이웃 사랑을 실천하라”고 권고할 것입니다. 루터는 하나님이 주신 일상의 소명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결코 그것을 목표로 삼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루터는 오히려 언제 어디서나 일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말해 주었을 것입니다.13)

 

 

   대부분의 종교개혁가들은 루터의 세속적 직업에 대한 긍정적 태도를 공유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14) 루터를 통해 일상의 일을 “소명(부르심)”으로 여기는 강조점이 확산되었습니다.15) 열등한 것으로 여겨지는 세속의 일은 창조세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고귀한 일로 격상되었습니다.16) 심지어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주위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교회의 일과 세속의 일을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극단으로 쉼 없이 일에 중독되어 살면서 일을 통한 성취만을 위해 살기도 합니다. 이를 위해서 오늘날 우리는 루터의 일과 소명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루터의 가르침을 통하여 이미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부르신 것을 기쁜 마음으로 찬송하고, 지금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섬기듯이 이웃을 섬기는 거룩한 소명자들, “창조의 동역자들”이 확산되기를 소망합니다. Soli Deo Gloria!

 


1) 마르틴 루터, “독일 민족의 귀족에게 호소함” in 「루터 저작선」, 이형기 역(서울: 크리스찬 다이제스트, 1994), 485.

2) 마르틴 루터, “독일 민족의 귀족에게 호소함” in 「루터 저작선」, 487.

3) 마르틴 루터, 「대교리문답」, 최주훈 역 (서울: 복있는 사람, 2017), 117.

4) 마르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in 「루터 저작선」, 122.

5) 최주훈, 「루터의 재발견」, (서울: 복있는 사람, 2017), 244.

6) 마이클 리브스, 팀 체스터, 「종교개혁 핵심질문」 오현미 역(서울: 복있는 사람, 2017), 257.

7) 마르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in 「루터 저작선」, 128.

8) 마이클 리브스, 팀 체스터, 「종교개혁 핵심질문」, 256.

9) 우병훈, 「처음 만나는 루터」, (IVP, 2017), 186.

10) 우병훈, 「처음 만나는 루터」, 187.

11) 마르틴 루터, 「대교리문답」, 174.

12) 우병훈, 「처음 만나는 루터」, 195-196.

13) 루터의 직업적 소명에 대한 보수적 태도는 사회 구조적 개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받는다. 그러나 이것은 개혁가 루터의 말을 오독한 것이다. 우병훈은 루터가 직업 이동을 부정하지 않았다고 반론을 제기한다. 이에 대해서는 우병훈, 「처음 만나는 루터」, 191. 그리고 마이클 리브스, 팀 체스터, 「종교개혁 핵심질문」, 261.을 참고하라.

14) 앨리스터 맥그래스, 「종교개혁 사상」, 최재건 역(서울: CLC, 2006), 400-404.

15) 맥그래스, 「종교개혁 사상」, 406.

16) 맥그래스는 “잃어버린 창조의 질서를 다시 찾는다는 주제는 칼빈의 사상 전체를 통해 울려 퍼진다”고 바르게 지적합니다. 앨리스터 맥그래스, 「종교개혁시대의 영성」,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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