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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이 지나갔습니다.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조금이나마 회복하였을까요? 행사만 요란했지 세습을 포함하여 개혁에 역행하는 일들이 더 많았습니다. 한국이 복음을 받은 지 130여년 후에 교회는 이 민족에게 길을 제시하기는커녕 스스로 길을 잃어버린 느낌입니다. 우리가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지 않고서는, 그리하여 ‘오직 그리스도’를 붙잡지 않고서는 교회는 지속적으로 짓밟히고 조롱거리가 될 것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종교개혁의 정신을 차분히 돌아보고 나아갈 길을 치열하게 모색해야 하겠습니다. 서양교회를 포함한 전 세계 교회가 처한 도전과 고민을 함께 나누면서 근원적인 질문과 문제제기를 하려고 합니다. 새로운 500년의 문을 여는 이 작업에 함께 뜻을 모아주시기를 바랍니다. - 편집장 주

 

 

 

[교회조롱시대, 길찾기] 신학교육, 원점에서 검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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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호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신학대학원에서 교수 사역을 직접 담당하는 자로서 이런 글을 쓰는 것은 큰 부담이다. 신학교에 대해서 주로 비평적인 입장을 취했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신학교육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글이며 학교의 공식적인 입장과 무관하다는 점과 신학교수인 본인의 자기성찰적인 글이라는 점을 먼저 밝힌다. 또한 이 글이 신학교육 전체가 잘못되었다는 식으로 읽혀지지 않기를 바란다. 정답이 아니라 논의의 출발점이 되기를 희망하면서 필자의 개인적 생각을 진술하도록 하겠다.

 

 

신학은 실천적인 학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신학은 다른 학문과 달리 실천적인 학문이다. 신학의 궁극적인 목적이 교회를 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신학교육은 실천적이 되어야 한다. 이 말은 실천신학을 더 많이 가르쳐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실천신학도 강의실에서 이론적으로 가르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신학이 실천적이어야 한다는 말은 신학교에서 배운 내용이 이론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세우고 변화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안타깝게도 이 점에서 현대 신학교육은 미흡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 신학교육이 얼마나 실천적이지 않은지 하나의 대표적인 예를 들겠다. 신학교 교수 중 어느 누구도 교회가 건물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신학교에 들어오면 학생들은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는 말을 지속적으로 듣는다. 그런데 신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개척을 하려는 목사들은 이상하게도 거의 대부분 가장 먼저 교회 건물부터 알아본다. 이것은 한국 신학교육의 문제가 무엇인지 가장 분명하게 보여 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3년 동안의 신학교육이 신학생에게 별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교회를 개척하거나 세우는데 있어서 신학교육은 전적으로 무기력한 상태에 있다. 심지어 상당수의 목사들은 신학교에서 배운 대로 하면 목회가 잘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신학교육의 목표는 전인격의 변화가 되어야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서 과연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교수들은 똑바로 가르쳤으니 실천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잘못이 있는가? 여기서 우리는 교육의 목표에 대해서 질문하게 된다. 교육의 목표는 올바른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오늘날 신학교는 전혀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확신한다. 이전과 달리 올바른 신학정보는 얼마든지 쉽게 구할 수 있다. 예전과 달리 서점에는 수많은 양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인터넷은 수많은 정보들로 가득 차 있다. 마음만 먹으면 빈번하게 열리는 학회와 세미나에 참석하여 수준 높은 정보도 획득할 수 있다.

 

   교육의 목표는 정확한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전인격의 변화다. 정확한 지식은 변화의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이것은 신학교육인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신학은 객관적인 정보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유일하시고 참된 삼위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다루기 때문이다. 이 지식은 철저하게 실천적이어야 한다. 만약 삼위일체 교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데 예배 속에서 삼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분을 찬송하지 않는다면 그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강의실에서의 수업과 채플에서의 경건회가 일치하지 않는 한 진정한 의미에서 실천적 신학은 불가능하다. 이론과 실천의 불일치는 신학교에서부터 고쳐져야 한다.

 

   찬송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한 마디만 더 하도록 하겠다. 우리 총회 헌법에 따르면 찬송 인도는 목사가 해야 할 직무 중에 3번째에 속하는 매우 중요한 직무다. 따라서 목사를 양성하는 신학교는 이 직무를 잘 할 수 있도록 가르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신학 3년 동안 신학생들은 찬송에 있어서 어떤 변화도 없이 졸업한다. (심지어 지식적인 측면에서도!) 신학교에서는 찬송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또 강조하지만 찬송을 가르친다는 것은 찬송에 대해서 가르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의 경우와 달리 전적으로 신학교에서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아예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학교육을 받은 이들의 철저한 헌신이 따라와야

 

   교육을 통한 변화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요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분명한 지식, 굳건한 확신, 그리고 철저한 헌신. 다시 “교회가 건물이 아니다”라는 말로 돌아가 보자. 이것은 비교적 분명한 지식이다. 하지만 지식만으로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목회 현장에는 이 명제에 대해서 말로만 동의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들은 “교회가 건물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현실을 앞세우며 신학교육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분명한 지식에 대한 굳건한 확신이다. 어떤 경우에도 분명한 지식에 대한 흔들림 없는 확신이 있어야 교회를 개척할 때 건물부터 알아보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게 된다.

 

   최종적으로 이 확신에 철저한 헌신이 따라와야 한다. 교회를 실제로 세우는 것은 지식이나 확신이 아니라 헌신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분명한 지식에서 철저한 헌신으로 이어지는 목회자를 양육할 수 있을 것인가? 먼저 신학 교수부터 자기가 가르치는 내용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할 것이다. 자기가 가르치는 내용대로 하면 교회가 든든하게 설 수 있다는 확신 없이 어떻게 제자들에게 확신을 심어 줄 수 있겠는가? 신학교의 교육은 증명을 통한 지식보다는 설득을 통한 확신에 더 무게 중심이 실려야 할 필요가 있다.

 

   지식에서 확신, 확신에서 헌신으로의 변화는 단지 강의실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물론 수업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학생들의 진정한 변화는 교수들과의 오랫동안의 친밀한 교제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지금 고려신학대학원은 이 점에서 다른 신학교에 비해서 탁월한 점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서 교수 사택이 학교 내에 있고 학생들이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기 때문에 학생들과 교수들이 함께 새벽기도를 하거나 심야에 교수연구실에서 학생들과 면담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하드웨어가 잘 갖추어졌다고 해서 신학교육이 잘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이런 면들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신학교는 일반 대학과 달리 학문적 탁월성(academic excellency)이 주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배운 대로 성장하는 교회가 생겨나고, 목회현장에서 검증된 이를 교수로 선발해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교회가 건물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면 개척교회 목사가 무엇을 구체적으로 준비해야 하는가? 아쉽게도 여기에 대한 답을 신학교가 제대로 제공해 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교회가 건물이 아니고 사람이라면, 당연히 사람을 먼저 준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목사 자신이 철저하게 신학적으로/목회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가정을 튼튼하게 준비해서 자녀들이 개척교회에 다닌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정도로 믿음을 강화해야 한다. 구역예배를 통해서 소규모 예배를 잘 인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하고 믿음의 3가정을 먼저 든든하게 세우는데 진력해야 한다. 교회가 건물이 아니라는 것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그렇다면 교회를 어떻게 세워야 할 것인가도 구체적으로 함께 고민하며 가르쳐져야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라는 말이 실질적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신학교육이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 또 하나의 대표적인 예는 사도신경이다. 사도신경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어려서부터 모든 신자들은 예배시간에 암송을 한다. 하지만 그것들이 신자의 삶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가? 교회에 대한 고백을 한 번 살펴보자. 사도신경을 통해서 우리는 “거룩한 교회를 믿는다”고 고백을 한다. 하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목사들은 목회현장에서 거룩한 교회가 아니라 거대한 교회를 지향하고 있다. 머리로는 거룩한 교회를 믿지만 손과 발은 거대한 교회를 믿는 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교회의 거룩성을 이론적으로 가르칠 뿐만 아니라 그 거룩성을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교회를 세워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가르쳐야 신학이 진정한 의미에서 실천적이 될 것이다.

 

   신학교육이 진정으로 실천적이 되기 위해서는 신학교에서 배운 대로 성장하는 교회가 생겨나야 한다. 신학을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방법은 모범이기 때문이다. 모범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신학교는 분명한 한계를 가진다. 3년의 신학교육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없다. 그와 같은 모범을 가장 잘 보여 주는 방법은 신학교수가 그런 모범적인 교회에 출석하여 목사와 동역하여 그 교회를 함께 세워가는 것이다.

 

   신학이 실천적이 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현장 목회에서 신학적으로 검증된 사람 중에서 교수를 선발하는 것이다. 박사학위는 그 사람의 연구 능력을 보장하지 (실천적으로) 교육 능력을 보장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능력은 목회 현장에서 검증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고려신학대학원의 선교학 교수의 경우 선교사 중에서 선발하는 것이 제도적으로 정착되었다. 앞으로 이런 관례들이 점차적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 자기가 배운 지식을 현장에 적용하여 확신을 가지고 난 다음에 학생들을 가르칠 때 그 가르침이 진정으로 실천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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