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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획기사는 성령론입니다. 시대마다 신학주제에 대한 관심이 달라졌는데 현대는 성령론이 가장 핫한 이슈입니다. 오순절운동과 오순절파 교회의 거대한 성장이 성령론을 뜨거운 이슈가 되게 만들었습니다. 한편, 불건전한 성령운동과 은사운동이 교회를 망치거나 신앙생활을 왜곡시키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에 바른 성령론 정립이 필수적입니다. 성령을 아는 지식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보증해 주시고, 최종구원의 날까지 우리를 지키시기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 편집장

 

성령세례, 제2의 축복인가?

 

안재경.png

 

안재경 목사

(온생명교회)
 


현대 기독교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오순절 운동일 것이다. 대부분의 교회가 침체하는 상황에서 오순절 운동을 따르는 교회들은 지금도 성장하고 있다. 오순절파 교회가 아니면 교회는 침체를 벗어나기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다. 전 세계교회는 오순절신학으로 통일되었다는 말이 나돌 정도이다. 한국에서 대표적인 오순절파 교회가 바로 순복음교회이다. 이제는 순복음교회를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다. 예전에는 순복음교회를 이단이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어느 누구도 이단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다들 순복음교회를 부러워한다. 그들의 열정과 그 교회의 은사운동을 부러워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방언과 치유기적을 동반한다고 하는 ‘성령세례’이다. 요즘에는 은사운동이 대부분의 교회들로 퍼져 나갔기 때문에 순복음교회가 자신들의 전매특허로 주장하기 힘들게 되었지만 ‘우리가 원조’라는 말을 할 것이다. 문제는 이제 순복음교회 내에서도 치유기적이 점차로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성령세례’라는 말은 계속해서 남아서 신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오순절운동에서 치유기적이 점차로 사라져가도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것이 ‘성령세례’라는 말이다.
 


1. 성령세례가 무엇인가?

‘성령세례를 받지 않으면 무능한 기독교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오순절파 교회들의 주장이다. 명목상의 기독교인이 너무나 많고, 성령세례라는 독특한 체험을 하고 나면 능력 있는 기독교인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성령세례를 받으면 죄에 쉽게 빠지던 사람이 죄를 미워하게 되고, 침울했던 사람이 기쁨이 넘치는 사람이 되고, 기도하지 않던 사람이 기도하게 되고, 입이 닫혔던 사람이 복음을 담대하게 전할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을 막연하게 알던 사람이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성령세례를 받음으로 일어나는 변화라는 것이다. 성령세례를 소위 말해서 제2의 축복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1의 축복, 즉 물세례, 아니면 중생만 받은 사람은 너무나 초라한 모습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신자라고 불리는 것도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를 쓰고서 제2의 축복을 받아 내어야 하지 않겠는가?

   도대체 성령세례가 무엇인가? 성경에는 성령세례라는 말이 문자적으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분이라고 말했다(막 1:8; 요 1:33). 이것을 반향하기라도 하듯 부활하신 예수님은 승천하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주님이 떠나시고 난 다음에 몇 날이 못 되어 제자들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라고 말이다(행 1:5). 오순절 성령강림 후에 사도 베드로가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에 관해 말한 적이 있다. 그가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그 집에서 먹고 마셨다는 것을 들은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이 베드로를 비방하자 그가 말한다. 고넬료의 가정에 성령께서 임하신 것을 보면서 예수님이 하셨던 말씀, 즉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는 것이다(행 11:16). 이 말씀들을 종합해 보면 예수님이야말로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 마지막 성경구절이 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3)라는 말씀이다. 사도는 고린도교회에 편지하면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한 성령을 마셨다고 말한다. 성령을 물질 취급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기독교인들은 누구든지 예외 없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 성령세례가 어떤 신자들의 특별한 체험이라는 인상을 받을 수 없다.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공통되는 체험이 바로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무난하다. 기독교인이라면 예외 없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다고 하는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성령께서는 믿는 그 순간부터 역사하신다. 아니, 성령께서는 믿게 역사하신다. 성령님을 받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다.
 


2. 물세례 이후에 성령세례를 받아야 하는가?

성령세례를 제2의 축복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물세례와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성경에서 물로 세례를 받는다는 표현은 없지만 세례를 물로 받기 때문에, 그리고 성령세례와 구분하기 위해 물세례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물세례는 말 그대로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이다. 성령세례를 강조하는 쪽에서는 물세례에 크게 가치를 두지 않는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마 28:19)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은 형식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믿음이 없이도 물로 세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렇다. 물로 세례를 받은 사람들 중에서 구원받지 못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이 자동적으로 구원을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성례가 자동기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참여하지 않는 성례는 공허한 예식이 되기 때문이다.


   오순절운동에서는 성령세례를 물세례만이 아니라 중생과도 구분한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 예수님이 유대인의 랍비인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이 바로 중생이다. 예수님은 거듭난다는 것을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성령으로 난 사람은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중생은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이고, 성령의 역사는 우리가 예측하기 힘들다고 말씀하신다. 예측하기 힘들다는 것은 우리가 조작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오순절파에서는 중생이 제1의 축복이고, 성령세례는 중생 이후에 오는 제2의 축복이라고 부른다. 이들에게는 중생마저도 성령세례에 비해서는 하찮은 은혜일 수밖에 없다. 그만큼 성령세례는 신자에게 아주 뚜렷한 증거를 남기는 것이라고 본다. 중생받은 것을 능가하는 은혜와 능력이 있다는 말인가?

   성령세례를 물세례와 구분하고, 물세례 이후에 오는 특별한 체험이라고 보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오순절 성령강림의 역사를 경험하기 전에는 무력했다. 예수님과 함께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무력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다들 예수님을 배반하고 떠나가 버렸으니 말이다. 그들은 분명히 물세례를 받은 사람들일 것이고, 거듭난 사람들일 것인데 말이다. 오순절 성령강림을 경험하자 그들이 180도로 달라졌다. 이렇게 달라질 수 있겠나 싶을 정도이다. 약 먹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오순절 운동에서는 오순절 성령강림을 성령세례라고 본다. 그들은 오순절 성령강림전후로 너무나 달리진 제자들의 모습을 모든 신자들에게 적용한다. 우리도 물세례만 받고 성령세례를 받지 않으면 제자들처럼 무기력한 신자들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우리를 오순절 성령강림이전으로 되돌리려는 것이다. 우리는 오순절 성령강림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고, 오순절 강림후를 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오순절에 오신 성령께서는 교회에 충만하게 머물러 계신다. 우리는 믿는 순간부터 성령의 강력한 역사를 체험한다. 그 시작이 바로 물세례이다.

 


3. 성령세례를 받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성령세례는 왜 믿을 때에 일어나지 않는가? 성령세례는 왜 물세례를 받을 때 일어나지 않는가? 성령세례를 받았다는 확증은 무엇인가? 오순절운동에서는 처음에 그 증거를 방언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방언을 받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까지 했다. 지금은 어느 누구도 그런 말을 하지 않지만 말이다. 어쨌든 성령세례는 처음부터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조건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성령세례받기를 간절히 갈망해야 한다고 하지만 어느 정도로 갈망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조건이 더 강화될 수밖에 없다. 성령께서는 믿는 모든 자들에게 자동적으로 역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세례는 믿음만으로 받을 수 있지만 성령세례는 믿음에다가 특별한 조건을 첨가해야 한다. 회개가 우선적인 것이고, 그 다음에는 열렬히 구해야 한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열심히 기도하자 성령께서 오셨다는 것을 그 대표적인 증거라고 생각한다. 기도하면 성령께서 오신다는 것이다. 사도행전을 보면 교회가 기도할 때 성령께서 충만히 임하시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 것도 그 예가 될 것이다.

   성령세례를 받기 위한 갖추어야 할 다양한 조건 중에 제일 중요한 복종이다. 죄로부터 멀어져야 하고, 마음을 성결하게 해야 한다. 거룩하지 않으면 성령께서 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거룩한 영이시기에 거룩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주객이 전도된 것이 아닐까? 성령께서 임하셔야 거룩해지는 것이지 거룩해야 성령께서 임하시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우리의 거룩이 조건이 되어서 성령께서 임하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복종은 능동적인 것만이 아니라 수종적인 측면도 있다. 자기를 철저하게 비워야 한다. 성령님께 완전히 굴복해야 하기 때문에, 심지어 방언이 성령세례의 확증이기 때문에 혀도 부드러워져서 성령의 통제하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령세례는 개인적인 체험이기도 하겠지만 특히 성령을 기다리는 집회에서 강력하게 역사한다. 성령세례를 받기 위한 집회에 참여하여 간절히 기도하면 성령께서 쉽게 임하신다는 것이다. 성령세례를 받기 위한 조건으로 수동성을 강조하지만 사실은 열렬한 능동성이 더 크게 강조된다고 하겠다.

   성령세례와 성령 충만의 관계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오순절 운동은 처음에는 성령세례를 물세례, 그리고 중생에 뒤이어 오는 제2의 축복이라고 주장했고, 이 성령세례를 반복적인 경험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성령세례를 단회적 사건으로, 그리고 이후의 성령세례를 성령 충만이라고 표현하기 시작한다. 문제는 지속적인 성령체험을 성령 충만이라고 표현하면서 여전히 특별한 체험에 치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별한 체험을 하지 않으면 성령 충만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 조용하지만 강력한 인격의 변화, 그리고 공적의 영역에서 그리스도를 잔잔히 증거 하는 것은 성령 충만으로 보지도 않는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갈 5:22,23)라는 말씀이야말로 성령의 역사를 가장 분명하게 증거하는 것인데 말이다.

 

   * 성령세례는 제2의 축복인가? 이 제2의 축복을 받지 못하면 2류 신자가 될 수밖에 없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물세례가 곧 성령세례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중생이 곧 성령세례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물 세례가 중요하다. 바람처럼 역사하시는 중생의 역사가 중요하다.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지 않으셨는가? 제자들이 해야 할 일은 다름 아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것이라고 말이다. 개혁교회의 세례 예식문에서는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을 때 삼위께서 어떤 약속을 해 주시는지 잘 묘사하고 있다.

“우리가 성부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을 때, 성부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영원한 은혜의 언약을 맺어 주심을 선언하시고 인을 쳐 주십니다. 성부께서는 우리를 그분의 자녀와 상속자로 삼아 주시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을 내려 주시고 모든 악은 피하게 하여 주시거나 합력하여서 선을 이루도록 하여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우리가 성자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을 때, 성자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보혈로써 우리의 죄를 모두 씻어서 정결케 하시고 우리를 그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시켜 주심을 약속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죄로부터 해방을 받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여김을 받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을 때, 성령 하나님께서는 이 성례로써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를 그리스도의 살아 있는 지체(肢體)로 만들어 주실 것을 우리에게 확신시켜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소유한 것을 실제로 누리게 하셔서 죄 사함을 얻고 매일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십니다. 마지막에는 우리가 거룩하고 흠이 없이 영원한 생명을 누리면서 택함 받은 무리 가운데서 한 자리를 차지할 것입니다.”
 


   세례는 물로 받는 것일 뿐만 아니라 성부세례, 성자세례, 성령세례라고 부를 수 있다. 물세례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의 이름으로 한꺼번에 세례받는 것이다. 세례 하나면 충분하다. 세례 하나면 충분하기 위해 준비하고 세례교육을 받으면서 세례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세례받는 것으로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이 명확하게 갈려야 할 것이다. 물론, 세례받은 사람도 죄악에 빠지기도 한다. 무력함에 빠지기도 한다. 이때 필요한 소위 말하는 성령세례가 아니라 세례의 의미를 다시금 확인하고 힘입는 것이다. 굳이 특별한 체험이 필요하다면 그리스도를 체험해야 할 것이다.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받은 세례를 다시금 상기하고 삼위 하나님께 도움을 구할 때에 신자는 다시금 놀랍게 회복된다. 신자는 세례로 태어났고, 세례로 사는 사람들이다. 세례는 한번밖에 받지 않지만 그 한번 받은 세례가 신자를 영원히 하늘나라 백성으로 살게 해 준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개혁을 하면서 끊임없이 자기 양심의 소리와 로마교회의 거대한 공격 앞에서 자신에게 계속적으로 되뇌었던 말이 바로 ‘나는 세례받았다’는 말이었다. 신자는 ‘나는 세례받았다’고 외치면서 늘 새롭게 회복된다. 소위 말하는 성령세례라는 화끈한(?) 체험과 뜨거움은 금방 사라지기 쉽다. 마약과 같다고나 할까? 제2의 축복을 기대하면서 자신의 무능을 방관할 것이 아니라 ‘나는 세례 받았다’고 외치면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제1의 축복만으로도 예수님처럼 살 수 있다. 세례는 예수님과 연합하는 성례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입은 사람은 예수님을 나타낼 수밖에 없다. 한편, 신자는 연약할 그 때에 강함을 체험하다. 신자는 가면 갈수록 연약해지면서 오직 은혜로 인해 끝까지 인내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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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기획기사는 '청년의 교회생활'입니다.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교회봉사에 지쳐 떠나기도 하고, 교회 직분자들과의 다툼을 일으켜 떠나기도 합니다. 추측컨대 이런 추세는 더 가속화될 것입니다. 교회에 그리스도께서 계시기에 교회가...
    Date2019.06.18 By개혁정론 Views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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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기획-청년의 교회생활] 청년 사역 매뉴얼

    이번 기획기사는 '청년의 교회생활'입니다.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교회봉사에 지쳐 떠나기도 하고, 교회 직분자들과의 다툼을 일으켜 떠나기도 합니다. 추측컨대 이런 추세는 더 가속화될 것입니다. 교회에 그리스도께서 계시기에 교회가...
    Date2019.06.14 By개혁정론 Views1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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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기획-청년의 교회생활] 청년들의 경건 생활, 어떻게 지도할 것인가?

    이번 기획기사는 '청년의 교회생활'입니다.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교회봉사에 지쳐 떠나기도 하고, 교회 직분자들과의 다툼을 일으켜 떠나기도 합니다. 추측컨대 이런 추세는 더 가속화될 것입니다. 교회에 그리스도께서 계시기에 교회가...
    Date2019.06.11 By개혁정론 Views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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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기획-청년의 교회생활] 소그룹 운영에 대하여

    이번 기획기사는 '청년의 교회생활'입니다.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교회봉사에 지쳐 떠나기도 하고, 교회 직분자들과의 다툼을 일으켜 떠나기도 합니다. 추측컨대 이런 추세는 더 가속화될 것입니다. 교회에 그리스도께서 계시기에 교회가...
    Date2019.05.31 By개혁정론 Views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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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사설
[사설] 제7차 개정헌법 헌의안, 총...
[사설] 총회장은 교단의 수장이 아...
[사설] 명예집사와 명예권사, 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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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가 졸속으로 진행되지 않으려면
[사설] 누가 고신교회의 질서와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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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왕처럼 살고 싶습니까? 왕처럼 나누...
푸틴의 머릿속에 있는 그림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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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1부)
우리 악수할까요?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 (Peter Holt...
관심을 가지고 보십시오.
동성애 문제에 대한 두 교단의 서로...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잘못을 통해서...
기고
직분자 임직식에서 성도의 역할
죽음을 어떻게 맞을까를 잠시 생각하며
제73회 총회가 남긴 몇 가지 과제
전임목사는 시찰위원으로 선정될 수...
고신교회와 고재수 교수; 우리가 왜...
왜 고재수는 네덜란드에서 고려신학...
제73회 총회를 스케치하다
신학생 보내기 운동에 대한 진지한 ...
명예 직분 허용이 가져다 줄 위험한...
[고신 70주년에 즈음하여 9] 고신교...
논문
송상석 목사에 대한 교회사적 평가 ...
송상석 목사와 고신 교단 (나삼진 ...
송상석 목사의 목회와 설교 (신재철...
네덜란드 개혁교회 예식서에 있어서...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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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차 헌법개정초안 예배지침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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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C 강령의 “전통적 웨스트민스터 ...
지역교회의 적정 규모(規模 size)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