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을 환영합니다.
최종편집
기획기사
조회 수 2847 추천 수 0 댓글 0

 

이번 기획기사는 성령론입니다. 시대마다 신학주제에 대한 관심이 달라졌는데 현대는 성령론이 가장 핫한 이슈입니다. 오순절운동과 오순절파 교회의 거대한 성장이 성령론을 뜨거운 이슈가 되게 만들었습니다. 한편, 불건전한 성령운동과 은사운동이 교회를 망치거나 신앙생활을 왜곡시키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에 바른 성령론 정립이 필수적입니다. 성령을 아는 지식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보증해 주시고, 최종구원의 날까지 우리를 지키시기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 편집장

 

 

병고침의 은사에 대하여

 

 

 

크기변환_이성호.png

 

이성호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청소년 시절에 필자는 "신앙계"라는 월간지에 한동안 푹 빠진 적이 있었다. 그 잡지에는 항상 여러 종류의 기적적인 치유에 대한 간증이 실려 있었다. 어떤 경우에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내용들도 실려 있었다. 필자는 그런 간증에 큰 매력을 느꼈고 그것들을 읽고 또 읽었다. 그런 간증문들을 읽을 때마다 “정말 대단하다!”라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1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센가 모르게 그런 간증문을 읽지 않게 되었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신앙계를 읽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암이 나았다”는 것은 환자에게는 큰 복음일 수 있을 것이다.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암에 걸리더라도 나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병이 나았다”는 사실은 비교적 건강했던 필자에게 큰 의미가 없어졌다. 청소년 시절에 나에게는 학업이나 이성교제가 훨씬 더 중요한 문제였다. 결국 “병이 나았다”는 반복적 이야기가 점점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신유의 은사를 나도 가졌으면 좋겠다는 열망도 완전히 사라졌다.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 병고침의 여러 간증들은 나의 삶에 아무런 영적 유익을 주지 못하였다. (실제로 병이 나은 사람은 다를 수 있을 것이다)

 

   병고침의 은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아쉽게도 성경은 이 부분에 대해서 정확하게 말하지 않는다. 물론 병고침의 기사는 성경 여러 곳에 나온다. 또한 병고침의 은사에 대한 언급도 분명히 있다.(고전 12:28) 하지만 그것이 도대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이 없다. 따라서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자의적으로 판단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특히 성경에 기록된 병고침과 오늘날 일어나는 병고침을 동일하게 생각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성경에 기록된 병고침의 기사는 오늘날 우리가 따라야 할 본보기로 기록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을 구분해야 병고침의 은사에 대한 오류들을 최대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이 병고침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단언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이 가장 성경적이다. 그러나 병고침에 대해서 성경은 분명하게 말하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이 부분만큼은 성도들은 분명하게 인식하여야 한다. 이 부분만 제대로 성도들이 인식해도 병고침과 관련된 대부분의 그릇된 오류들로부터 스스로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병고침에 대한 믿음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동일하지 않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치유하시는 사역에 대한 기사가 많이 등장한다. 당연히 우리는 그것을 사실이라고 믿어야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셨다는 것을 믿는다고 해서 그 믿음이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기도를 통해서 병이 기적적으로 낫는 경우 그것을 구원과 동일하게 생각하기 쉬운데 이 경우 병고침은 오히려 참된 신앙에 큰 방해물이 될 수 있다. 병이 나았으나 그것이 오히려 불신과 심판에 대한 근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눅 17:17)

 

   둘째, 병고침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과 병고침의 은사는 다르다. 병고침이 복음의 본질은 아니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병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명하고 있다. 특히 병이 들었을 때 성도들은 교회의 장로(목사)들을 초청하여 자신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해야 한다(약 5: 13-16). 그런데 야고보서가 이것을 명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목사가 병고치는 은사가 더 많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원하시기 때문이다.

 

   목사의 기도를 통해서 병고침을 받게 되면 목사의 말씀 사역도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접하게 되는데 병고침을 위해서는 누구나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어떤 특별한 사람만이 병을 고칠 수 있다거나 더 큰 능력을 가진다고 믿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실, 병을 고치시는 분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목사를 초청하라는 야고보의 명령도 목사가 병고치는 능력이 더 많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것을 원하시기 때문이다. 목사의 기도를 통해서 병이 낫지 못하였다고 해서 더 “용한” 사람을 찾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셋째, 거짓 선지자들이 더 큰 병고침의 은사를 가질 수 있다. 이것은 마태복음 7장 마지막 부분에서 잘 드러난다. 거짓 선지자들은 1) “주여, 주여”하는 자들이다. 2) 주의 이름으로 행동하는 자들이다. 3) 주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노릇”이라는 단어는 원문에 없음),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하는 자들이다. 병고침은 “많은 권능”의 대표적인 예이다. 거짓 선지자들이 무슨 잘못을 했는가? 주의 이름으로 열심히 사역을 했을 뿐이다. 겉으로 보기에 거짓 선지자들은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그들은 그와 같은 행위들을 자신의 의로움에 대한 근거로 생각하였다. 거짓 선지자들도 얼마든지 병고침의 사역을 주의 이름으로 행할 수 있다고 한다면 우리도 병고침에 대해서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넷째, 병고침을 이해함에 있어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예수님의 병고침과 오늘날의 병고침을 동일한 선상에 놓는 것이다. 어떤 목사가 맹인의 눈을 뜨게 했다고 가정하자. 그것이 예수님의 사역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다른 모든 행위도 마찬가지이지만 예수님의 치유 사역은 구속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수님께서 눈을 뜨게 하신 것은 본인이 세상의 빛이시라는 것을 증거하시기 위함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아무리 맹인의 눈을 많이 뜨게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 사람의 능력의 대단함을 나타낼 뿐이다.

 

   다섯째, 소위 병고침의 은사를 가진 자들 중에 가장 악한 자들은 병고침을 댓가로 돈을 요구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을 돈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은 그 자체가 신성모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생각 자체가 이교도적인 생각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정성을 원하시지만 그 정성 때문에 움직이는 분이 아니시다. 구원과 마찬가지로 병고침도 하나님의 자유로운 선물로 우리에게 주어질 뿐이다.

 

   여섯째, 병고침의 은사는 병고침의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다. 성경에서 말하는 병고침의 은사는 그야말로 병고치는 능력을 의미하는 것 같다. 즉 이 은사를 가진 사람이 “병이 나아라”라고 선언하면 병이 바로 낫는 역사가 일어난다. 상황에 따라 병이 낫기도 하고 안 낫기도 하는 것은 병고침의 은사로 보기에는 곤란한 것 같다.

 

   일곱째, 병고침의 은사와 관련된 논쟁 중 가장 치열한 부분은 이 은사가 오늘날 계속되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에 관한 것이다. 필자는 여기에 대해서 성경이 침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성령의 모든 은사가 지속되는 것은 아니며(예언이나 사도), 성령의 모든 은사가 멈춘 것도 아니다(섬김이나 다스림). 그런데 병고침의 은사는 어디에 속할까? 필자는 여기에 대해서 성경이 분명하게 말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만약 이 은사가 계속된다고 생각하면 이 은사를 열심히 구하고 그런 사람을 잘 분별하여 교회의 직분자로 세워서 교회에 유익하도록 하면 될 것이고, 이 은사가 이제는 중지되었다고 생각하면 지속적인 다른 은사들에 힘을 써서 교회를 바로 세우면 될 것이다. 하지만 둘 중에 어느 하나에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는 것은 성경이 명한 바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저작권자 ⓒ 개혁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1. [기획-총선] 4.15총선, 그리스도인이 투표 전에 생각해야 할 것들

    코로나 19사태에 파묻혀 있지만 4월 15일은 지역의 국회의원과 정당투표를 하는 총선일이다. 국회의원은 개개인이 입법기관이라고 말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맡고있다. 우리 사회는 어떤 법을 만들고 그 법을 어떻게 집행하느냐가 결정한다. 국회의원 선거는...
    Date2020.04.07 By개혁정론 Views576
    Read More
  2. [기획-총선] 하나님 나라, 체제 그리고 415 총선

    코로나 19사태에 파묻혀 있지만 4월 15일은 지역의 국회의원과 정당투표를 하는 총선일이다. 국회의원은 개개인이 입법기관이라고 말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맡고있다. 우리 사회는 어떤 법을 만들고 그 법을 어떻게 집행하느냐가 결정한다. 국회의원 선거는...
    Date2020.04.03 By개혁정론 Views848
    Read More
  3. [기획-총선] 그리스도인에게 정치란?

    코로나 19사태에 파묻혀 있지만 4월 15일은 지역의 국회의원과 정당투표를 하는 총선일이다. 국회의원은 개개인이 입법기관이라고 말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맡고있다. 우리 사회는 어떤 법을 만들고 그 법을 어떻게 집행하느냐가 결정한다. 국회의원 선거는...
    Date2020.04.01 By개혁정론 Views921
    Read More
  4. [기획- 코로나, 와중에서]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예배논쟁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

    이번 기획기사는 다시 코로나다. 코로나 19는 우리 사회 전체를 뒤흔들고 있고, 지금까지 견지해왔던 우리의 모든 경제생활과 사회생활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하라는 사인이다. 신앙생활도 예외가 아니다. 작금에 국가와 교회의 관계, 예배 자체에 대한 논쟁이...
    Date2020.03.30 By개혁정론 Views1909
    Read More
  5. [기획-총선] 기독교연합(ChristenUnie), 네덜란드 기독교 정당을 소개합니다

    한국에도 기독교 정당이 가능할까? 불가능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가능하다고 보는 견해도 있고 그런 움직임도 있다. 아래의 글은 네덜란드 정당 가운데 하나인 <기독교 연합>(Christen Unie)에 대한 소개이다. 네덜란드 정치는 기본적으로 입헌군...
    Date2020.03.26 By개혁정론 Views132681
    Read More
  6. [코로나 19와 신앙생활] 코로나 19 사태에 관한 신학적 목회적 고찰

    이번 기획기사는 '코로나 19와 신앙생활'입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전세계가 큰 두려움과 혼란에 빠졌고, 우리 한국사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아니, 이제는 한국이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걱정거리가 되었다고 할 정도입니다. 우리 기...
    Date2020.03.07 By개혁정론 Views1821
    Read More
  7. [코로나 19와 신앙생활] 코로나 19 제2국면에 대처하고 있는 우리

    이번 기획기사는 '코로나 19와 신앙생활'입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전세계가 큰 두려움과 혼란에 빠졌고, 우리 한국사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아니, 이제는 한국이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걱정거리가 되었다고 할 정도입니다. 우리 기...
    Date2020.03.06 By개혁정론 Views1448
    Read More
  8. [코로나 19와 신앙생활] 코로나 19와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

    이번 기획기사는 '코로나 19와 신앙생활'입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전세계가 큰 두려움과 혼란에 빠졌고, 우리 한국사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아니, 이제는 한국이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걱정거리가 되었다고 할 정도입니다. 우리 기...
    Date2020.03.04 By개혁정론 Views477
    Read More
  9. [코로나 19와 신앙생활] 재난 속의 그리스도인, 어떻게 해야 하나?

    이번 기획기사는 '코로나 19와 신앙생활'입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전세계가 큰 두려움과 혼란에 빠졌고, 우리 한국사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아니, 이제는 한국이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걱정거리가 되었다고 할 정도입니다. 우리 기...
    Date2020.03.02 By개혁정론 Views1473
    Read More
  10. [코로나 19와 신앙생활]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바뀌는 주일의 풍속도, 어떻게 볼 것인가?

    이번 기획기사는 '코로나 19와 신앙생활'입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전세계가 큰 두려움과 혼란에 빠졌고, 우리 한국사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아니, 이제는 한국이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걱정거리가 되었다고 할 정도입니다. 우리 기...
    Date2020.02.29 By개혁정론 Views760
    Read More
  11. [코로나 19와 신앙생활] 코로나 역병으로 인해 제기되는 질문들

    이번 기획기사는 '코로나 19와 신앙생활'입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전세계가 큰 두려움과 혼란에 빠졌고, 우리 한국사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아니, 이제는 한국이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걱정거리가 되었다고 할 정도입니다. 우리 기...
    Date2020.02.28 By개혁정론 Views1748
    Read More
  12. [코로나19와 신앙생활] 저의 어리석음을 용납해주시겠습니까? -코로나 19 사태와 우유부단한 목사의 어리석음-

    이번 기획기사는 '코로나 19와 신앙생활'입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전세계가 큰 두려움과 혼란에 빠졌고, 우리 한국사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아니, 이제는 한국이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걱정거리가 되었다고 할 정도입니다. 우리 기...
    Date2020.02.27 By개혁정론 Views2806
    Read More
  13. [코로나19와 신앙생활] 코로나 19와 예배

    이번 기획기사는 '코로나 19와 신앙생활'입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전세계가 큰 두려움과 혼란에 빠졌고, 우리 한국사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아니, 이제는 한국이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걱정거리가 되었다고 할 정도입니다. 우리 기...
    Date2020.02.22 By개혁정론 Views5071
    Read More
  14. [기획-전도와 선교] 이런 전도는 전도가 아니다!

    이번 기획기사는 '전도와 선교'입니다. 가면 갈수록 전도와 선교가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전도하면 '너희나 잘하라'는 소리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고, 선교에 대한 교회의 열의도 점차로 쇠퇴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
    Date2020.02.07 By개혁정론 Views944
    Read More
  15. [기획-전도와 선교] 지역사회에 교회 알리기

    이번 기획기사는 '전도와 선교'입니다. 가면 갈수록 전도와 선교가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전도하면 '너희나 잘하라'는 소리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고, 선교에 대한 교회의 열의도 점차로 쇠퇴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
    Date2020.02.04 By개혁정론 Views366
    Read More
  16. [기획-전도와 선교] 개혁교회 선교원리

    이번 기획기사는 '전도와 선교'입니다. 가면 갈수록 전도와 선교가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전도하면 '너희나 잘하라'는 소리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고, 선교에 대한 교회의 열의도 점차로 쇠퇴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
    Date2020.01.30 By개혁정론 Views474
    Read More
  17. [기획-신앙생활지도] 성도의 직장 생활

    이번 기획기사는 신앙생활지도입니다. 교회가 신자의 신앙생활전반을 지도한다는 것이 시대착오적일지 모르겠습니다. 현대교인들은 각자가 옳은대로 생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지도를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신자들에게 교회의 지...
    Date2019.10.18 By개혁정론 Views776
    Read More
  18. [기획-신앙생활지도] 학교생활지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번 기획기사는 신앙생활지도입니다. 교회가 신자의 신앙생활전반을 지도한다는 것이 시대착오적일지 모르겠습니다. 현대교인들은 각자가 옳은대로 생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지도를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신자들에게 교회의 지...
    Date2019.10.14 By개혁정론 Views582
    Read More
  19. [기획-신앙생활지도] 장례생활지침

    이번 기획기사는 신앙생활지도입니다. 교회가 신자의 신앙생활전반을 지도한다는 것이 시대착오적일지 모르겠습니다. 현대교인들은 각자가 옳은대로 생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지도를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신자들에게 교회의 지...
    Date2019.10.08 By개혁정론 Views861
    Read More
  20. [기획-신앙생활지도] 결혼식 지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번 기획기사는 신앙생활지도입니다. 교회가 신자의 신앙생활전반을 지도한다는 것이 시대착오적일지 모르겠습니다. 현대교인들은 각자가 옳은대로 생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지도를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신자들에게 교회의 지...
    Date2019.10.04 By개혁정론 Views1285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4 Next
/ 24

기획기사

사설
[사설] 성찬상을 모독하지 마라
[사설] 제7차 개정헌법 헌의안, 총...
[사설] 총회장은 교단의 수장이 아...
[사설] 명예집사와 명예권사, 허용...
[사설] 총회가 계파정치에 함몰되지...
[사설] 최근에 일어난 고려신학대학...
세계로교회 예배당 폐쇄 조치를 접하며 3
[사설] 총회(노회)가 모일 때 온라...
총회가 졸속으로 진행되지 않으려면
[사설] 누가 고신교회의 질서와 성...
칼럼
왕처럼 살고 싶습니까? 왕처럼 나누...
푸틴의 머릿속에 있는 그림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3부)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2부); 교회...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1부)
우리 악수할까요?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 (Peter Holt...
관심을 가지고 보십시오.
동성애 문제에 대한 두 교단의 서로...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잘못을 통해서...
기고
직분자 임직식에서 성도의 역할
죽음을 어떻게 맞을까를 잠시 생각하며
제73회 총회가 남긴 몇 가지 과제
전임목사는 시찰위원으로 선정될 수...
고신교회와 고재수 교수; 우리가 왜...
왜 고재수는 네덜란드에서 고려신학...
제73회 총회를 스케치하다
신학생 보내기 운동에 대한 진지한 ...
명예 직분 허용이 가져다 줄 위험한...
[고신 70주년에 즈음하여 9] 고신교...
논문
송상석 목사에 대한 교회사적 평가 ...
송상석 목사와 고신 교단 (나삼진 ...
송상석 목사의 목회와 설교 (신재철...
네덜란드 개혁교회 예식서에 있어서...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 예배지침 부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SFC 강령의 “전통적 웨스트민스터 ...
지역교회의 적정 규모(規模 size)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