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정론이 새롭게 시작하는 기획기사 ‘김 집사가 알아야 할 교회법’은 교회법의 전반적 내용을 쉽게 해설하는 시리즈입니다. 기독교보와 함께 진행하는 시리즈로서 여기에 싣는 것은 기독교보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글 내용은 기독교보에 실린 그대로인 경우도 있으며, 오프라인 신문 지면의 한계상 다 싣지 못한 내용을 여기에는 그대로 싣습니다. - 편집자 주
당회는 무엇을 하는 기관인가요?

조재필 목사
(새언약교회)
김집사님! 교회 생활에서 아주 익숙하지만 사실 무관심하고 정작 무지한 부분이 당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모든 교인은 집사님이 하신 질문을 한 번은 제대로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질문은 본질적으로 우리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나아가 성경적인 교회인가? 라는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성경에서 찾았는데, 당회를 구성하고, 당회가 제 기능을 하는 교회를 성경적인 교회로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적인 교회는 당회를 구성하고, 당회가 제 기능을 하는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개혁자들이 이 질문을 하게 된 이유는 중세 동안 감독이 교회를 다스리는 교회 정치 형태(Form of Church Government)의 폐단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정치 형태란 그리스도의 다스림, 즉 치리가 교회에서 실현되는 방식을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과 권징을 도구로 교회를 다스리십니다. 그런데 중세로마교회는 ‘감독(Episcopal) 정치’를 추구했습니다. 이는 계급화된 성직자들로만 교회를 다스리는 형태를 말합니다. 로마교회는 교황을 정점으로 대감독, 감독, 사제 등의 교회 계급을 만들어 폐쇄적인 방식으로 교회를 지도합니다.
중세 감독정치제도의 폐단에 반발하여 나타난 형태로 ‘국교회(Terretorial) 정치’ 형태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루터교회가 해당합니다. 위대한 개혁자이지만 루터는 구원 교리에 관심을 가졌을 뿐 성경적 교회 형태에 대해서는 무관심했습니다. 국교회는 교회가 세 층으로 구성된다고 보았습니다. 정부로부터 임명된 교회의 치리자들, 교육하는 자들(목사), 그리고 신자들입니다. 이러한 교회 정치 형태는 국가와 교회의 영역이 혼돈됩니다. 또한 교회에는 목사 직분만 있고 장로와 집사 직분은 없습니다. 목사는 치리(감독)하지 못하고 단지 경고할 뿐입니다. 결국 권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교리와 생활의 순수함을 상실할 우려가 큽니다.
종교개혁 이후 등장한 또 다른 교회 정치 형태는 회중교회(Congregational) 형태 정치입니다. 주로 침례교와 안식교 등에서 받아들였습니다. 이 정치 형태는 교회의 구성원 모두, 즉 회중이 교회를 다스립니다. 교회에 치리 기관이 없습니다. 회중의 대표자들이 세워지지만 그들은 회중의 뜻을 집행할 뿐입니다. 이 형태는 교회의 유산인 교리 체계와 신앙고백을 경시하고 공교회의 유기적인 관계를 무시하여 고립을 자초하게 되어, 결국 시간이 갈수록 교리면에서 표류하게 됩니다.
개혁자들은 당회를 통한 교회의 다스림을 성경에서 발견하였습니다. 이를 ‘장로회(Presbyterial)’ 정치 형태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장로회’가 질문하신 ‘당회’를 가리킵니다. 당회(堂會)는 한자로 보면 ‘예배당에서의 모임’이라는 뜻입니다. ‘함께 앉는다’라는 뜻을 가진 산헤드린(Sanhedrin)과 같은 의미를 지닌 영어 표현 ‘Session’을 고려해서 한국교회가 ‘당회’라는 말을 쓰게된 것으로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원보다 개념입니다. 당회는 장로들의 모임인데 기능은 다스림입니다. 그래서 당회는 치리회(consistory)입니다. 당회는 시무목사와 시무장로로 조직합니다(정치 제108조 1항). 장로교회 역사에서는 집사를 포함하는 당회를 구성하기도 합니다. ‘도르트 교회 질서’에서는 집사가 포함된 당회를 ‘일반 당회’라고 부르고 집사를 제외한 당회를 ‘제한 당회’라고 부릅니다. 제한 당회는 “회중의 감독과 권징”에 관한 것을 다루고, 일반 당회는 “자비의 사역”을 다룹니다. 한국교회에서는 제직회가 일반 당회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는 장로로만 구성된 당회의 책무가 회중의 감독과 권징에 관한 것임을 보여줍니다. 당회의 직무는 ‘교인들의 신앙과 행위를 총찰’을 필두로 14가지 항목으로 헌법에 규정되어 있습니다.(정치 제117조 당회의 직무)
이러한 당회에 의한 교회의 감독과 권징은 성경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예루살렘교회로부터 초대교회는 그리스도가 맡기신 권한(마 16:18~19)을 수행하기 위해 복수의 장로들로 구성된 당회를 구성한 사실을 보여줍니다.(딤전 4:14; 행 11:27~30) 사도들은 선교지 교회들에 항상 장로들을 세워 집단 체제로 교회를 다스리게 했습니다.(행 20:28; 14:23; 딛 1:5; 벧전 1:1; 5:1)
종교개혁자들이 장로회에 의한 교회의 치리를 회복할 때 강조한 것은 당회원들이 동등한 지위와 권한을 갖는다는 점입니다. 개혁된 교회에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자연스럽게 다스리는 장로와 가르치는 장로 두 반(班)이 생겼습니다(딤전 5:17). 이 두 반의 장로들 사이에는 지위의 차별이 없고 역할의 구별만 있을 뿐입니다. 가르치는 장로인 목사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봉사하기에 더욱 존경할 것이지 장로들 사이의 지위의 차이를 뜻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당회장은 가르치는 장로인 목사가 맡습니다. 그러나 이는 어떤 지위가 아닙니다. 목사는 교회를 가르치고, 다스리고, 감독하는 일에 전적으로 헌신하는 전문인입니다. 그러므로 목사가 치리회의 사회를 담당하는 것이 교회의 질서에 유리하기 때문일 뿐입니다. 목사는 당회장의 직함을 가지고 대표자로 행하지만 그것이 언제나 혼자가 아니라 장로들과 함께 합니다. 이를 목사의 지도력이 약화된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목사는 교회의 목자로서 전문가의 지도력을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같은 자들(동료) 중의 첫째’(a primary member)라고 일컫습니다. 이는 베드로와 바울의 경우와 같이 사도들에게서 이미 확인이 됩니다. 그러나 받은 은사와 능력에 따른 차이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지, 인위적으로 나서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차원에서 임직 순서에 따라 ‘수장로’의 지위를 주장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세속적인 계급문화의 영향이고 사람의 영광을 구하는 잘못입니다(살전 2:6). 당회는 동료 중에 첫째 되는 자를 인정하되 지도력이 집중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고 허순길 교수는 장로정치제제의 유익을 몇 가지로 제시하였습니다. 인간의 연약성을 극복할 수 있다. 무거운 짐을 나누어질 수 있다. 권력의 부패를 막게 된다. 장로들 간 직임 수행에 관해 서로 감독하고 격려할 수 있다. 인내와 겸손을 갖는 지도자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