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을 환영합니다.
최종편집
기획기사

 

 

   이번 기획기사는 '코로나 19와 신앙생활'입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전세계가 큰 두려움과 혼란에 빠졌고, 우리 한국사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아니, 이제는 한국이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걱정거리가 되었다고 할 정도입니다.

   우리 기독교인은 이 코로나 19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코로나 19가 우리 신앙생활에 큰 변곡점이 되지 않겠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심판과 예배논쟁부터 시작하여 세상에 대한 태도 등 코로나 19가 바꾸어 놓고 있는 우리 신앙생활의 모습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 편집장 주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바뀌는 주일의 풍속도, 어떻게 볼 것인가?

 

 

안재경.png

 

 

 

 

 

 

안재경 목사

(온생명교회)

 

 


코로나 19로 인해 우리 사회가 큰 충격에 휩싸여 있다. 코로나 19가 우리 사회에 거대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우선, 코로나 19에 감염된 사람들이 받은 충격이 너무나 클 것이다. 자신이 죽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힐 것이다. 최근 몇 달간 미국인들이 독감으로 16,000명이 죽었다고 말한다고 해서, 그리고 국내에서 해마다 독감으로 인해 천 몇 백 명이 사망한다고 말한다고 해서 위안이 되겠는가? 아직까지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았지만 코로나 19는 중증질환이 아니기 때문에 금방 회복될 수 있다고 말하더라도 자신이 코로나 19에 감염되었다는 그 충격이 결코 가시지 않을 것이다. 일단 감염되어 완치되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불안한 마음을 버리지 못할 것이다. 그 감염환자를 지켜보는 이들의 시선이 너무나 따가운 것도 사실이고 말이다. 마치 예전에 사람들이 한센병 환자를 대하듯이 대하지 않는가? 접촉만 해도 감염이 될 것처럼 지레 겁을 집어먹는 것 말이다. 이래 저래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람은 한 순간에 마치 범죄자가 된 것 같지 않겠는가?

 


예배와 주일의 모습이 바뀌고 있다

초기에 코로나 19에 감염된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을 때에는 다들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문제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광범위한 지염감염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내 옆에 있는 누구라도 나에게 코로나 19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바짝 경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제일 지혜로운 것은 대중집회를 포함하여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 가지 않는 것이다. 사람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누구를 통해 감염이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우리는 공간과 거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겠다. 그 동안 우리 한국 사람들은 친하면 스킨십을 포함하여 너무 거리가 없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 할지라도 최소한의 거기를 두어야 하는데, 그 거리 없이 막 밀고 들어왔다. 쉽게 말하자면 너무 무례하게 행동했다. 이번 기회에 우리는 거기를 두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코로나 19는 교회생활도 급속하게 바꾸고 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세계의 어떤 교회들보다도 가장 자주 모이는 교회였다. 툭하면 모였다. 주일만이 아니라 주중에도 매일 교회에서 산다고 할 정도였다. 주중에 직장에 다니지 않는 분들이 교회에 오는 것이야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하지만 주중에 가정생활을 제대로 하기 힘들 정도로 교회에서 하는 프로그램을 따라가야 했다. 교회생활이 너무나 힘겨웠다고 말한다면 오해를 살 것이다. 교회생활을 즐겁게 하고 있는데 무슨 그런 말을 하냐고 할 것이다. 문제는 이제 이런 모임에 대한 태도가 다른 쪽으로 급격하게 기울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아무리 모이자고 해도 모이지 않는 상황으로 급격하게 기울고 있다. 코로나 19 사태는 이렇게 모이는 것이 힘들어져가는 상황을 더 부채질할 것이다. 그 추가 급격하게 기우는 데 힘을 보탤 것이다. 우리는 각종 모임에 대한 근본적인 전환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급기야 대구 경북지역에 있는 교회들을 포함하여 주일에 예배당에 모여서 예배하는 것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상황마저 발생했다. 이 결정을 세속화의 단면이라고 몰아붙이는 이들이 있는데, 지나친 생각이다.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생각해서 성전에서 예배하지 않으면 예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논외로 치자. 지금은 핍박을 받아서 예배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아니다. 교인들이 밀집해서 예배하는 것을 통해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될 위험이 크고, 그것으로 인해 우리 사회 전체가 큰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교회가 사회에 폐를 끼치지 않는 측면에서 잠시 예배를 중단하는 것이다. 비상시국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렇기 때문에 더 문제라고 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무언의 압력에 의해 예배를 하지 않겠다고 자발적으로 결정한 것이니 교회가 핍박받는 상황에서 예배중지가 강제된 상황보다 더 심각하다고 말이다. 여기서 예배의 장소성에 관해 활발한 논의가 필요하겠다. 이미 예배당에 가지 않고 집에 앉아서 방송을 통해 예배에 참여하는 이들이 많은 상황이니 말이다. 설교만 강조되고 성례의 중요성을 시위하지 못하는 한 예배는 또 다른 계기를 통해 ‘예배의 장소성’을 잃게 될 것이다.

 


우리 교회의 풍경도 바뀌고 있다

우리는 흔히들 예배는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예배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것이 먼저이다. 교회의 예배는 드리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받는 것이 먼저이다. 우리가 예배를 귀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배가 아니고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아무 것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그 다음이다. 받은 것이 있어야 드릴 수 있지 않겠는가? 즉, 예배는 하나님과 그 백성간의 교제라는 것을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는 그동안 어떻게 예배했을까? 수많은 무리들 속에 묻혀서 감정적으로 고양되는 것이 예배라고 생각하지 않았는가? 교인 머리수를 보고 내가 이 교회에서 신앙생활하면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가? 단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예배에 모이는 숫자에 관심이 많았다. 그 교회회원 중 몇 명이 예배에 참석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주일에 예배 딱 한번 하는 결정을 통해 예배에 대해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예배에 모든 것을 다 담아야 하겠다는 조바심은 넘어서야 하고 말이다.

우리는 그동안 농담처럼 ‘주일은 죽일 날이다’라는 말을 하곤 했다. 목사들과 헌신적인 교인들은 실감할 것이다. 일반 교인들도 저녁 늦게까지 성가대 연습이라든지 여러 가지 일도 기진맥진해진다. 정작 그것이 주일에 꼭 해야 하는 일인지 따지지 않고 주중에 하기 힘드니까 주일에 다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새벽부터 저녁까지 쉴 틈이 없었다. 우리는 주일에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주일을 잘 보낸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코로나 19는 주일의 이런 모습을 많이 바꾸어 놓고 있다. 우리 교회는 이번에 두 주일로 한정하기는 했지만 주일오전만 예배하고 점심식사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예배 때도 다들 마스크를 쓴 채 예배했기에 답답하기도 했을 것이다. 서로 인사하는 것도 최소한으로 하고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예배가 끝나자 다들 마스크를 쓴 체였지만 아쉬워서 돌아가지 못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이 있었다.

목사는 오전예배로 모든 것이 끝나자 너무나 허전했다. 주일에 할 일을 하지 못한 것처럼 느껴졌다. 많이 가르쳐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서운한 것이 아니었을까? 말 그대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휴일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몇몇 청년들이 아쉬워서 집으로 가지 않고 남았다. 컵라면으로 점심을 떼우고 마당에서 운동도 하고, 별 시답지 않은 이야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몇몇 자매들은 방에서 누워 빈둥거리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대부분의 교인들은 가족 단위로 집으로 바로 돌아갔을 것이다. 다른 곳으로 놀러가지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식사하고 가족들끼리 시간을 많이 가졌을 것이다. 사실, 오전예배만으로 모든 것이 끝나서 남은 시간 뭘 해야 할지 알지 못해서 당황했을 것이다. 이런 것을 행복한 당황이라고 해야 할까?

 


개인주의화된 신앙생활이 대안이 아니다.

코로나 19는 우리 사회에 중대한 변곡점이 될 것이다. 우리의 교회생활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배당에서 예배하는 것을 왜 포기하냐는 논쟁이 계속되고 있지만 우리는 현실을 잘 직시해야 한다. 이제는 과거와 다르다. 신자들에게 아무리 모이라고 해도 이미 모이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주일에 모든 것을 다 헤치우려고 하는 모습이 강하다. 교인들이 이제는 주일에도 하루 종일 교회에 붙잡혀 있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눈치챈 많은 교회들은 주일 예배 한 번에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다. 주일 예배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예배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은혜를 다 받는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배 한 번 참석했다고 해서 주일을 잘 지킨 것이고,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다했다는 인상을 주는 예배는 좋은 예배가 아니다.

코로나 19는 그동안 한국교회가 집단주의 신앙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을 바꿀 수 있는 계기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이제는 개인주의 신앙으로 옮겨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다. 개인의 경건생활과 개인의 결단을 강조하는 신앙으로 갈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너무 안일한 생각이다. 불교는 신도 개개인이 혼자서 수도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끊어버리려고 애쓰는 것으로 다 되는지 모르겠지만 기독교는 다르다. 기독교는 개인주의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에 달린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교회로 보내시고, 그 교회 안에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가신다. 코로나 19가 미칠 가장 부정적인 모습은 이제 신앙생활을 혼자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 혼자라도 잘하자고 하는 것이다.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보내어 주신 아드님의 이름은 ‘예수’였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그 이름의 뜻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러 오신 분이다. 지금 교회의 모습은 가뜩이나 함께 모이기를 원치 않는 상황에서 이제는 함께 모여서 예배하고 무언가를 하는 것을 회피하고, 신자 개개인에게 모든 것을 맡기라고 할 가능성이 크다. 그것이 어린아이의 모습에서 성숙해지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공예배에 참여하는 것 없이, 성도의 교제를 나누는 것없이 나 혼자서 고독하게 결단하고 행동하는 것이 제일이라고 합리화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런 것을 꼭 오프라인에서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전근대적인 발상이라고 말할 것이다. 온라인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이다. 개인주의화된 신앙생활이 대안이 될 수 없다. 코로나 19는 우리가 새로운 방식으로 잘 모여 예배하고, 성도의 교제를 나눌 것을 요청하고 있다.

 


주일은 세상과 깊이 연결되는 날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코로나 19를 허용하신 이유가 무엇일지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기도하면서 주님께서 이 코로나 19를 허락하신 섭리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한 가지 생각해 본 것이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신앙체질을 바꾸도록 요구하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속된 말로 표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이어트를 요구하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허례의식에 사로잡혔고, 신앙생활이 거품이 잔뜩 끼었던 것이 사실이다. 온갖 프로그램과 모임의 홍수 속에서 정작 나누어야 할 말씀과 교제를 뒷전이기도 했고 말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만족과 욕구를 위해 모이고 떠들어 대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이제부터는 함께 모일 필요 없이 각개전투를 잘하면 된다는 것을 영적 다이어트라고 불러서는 안될 것이다.

몇 주 뒤면 주일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겠지만, 그래서 주일은 여전히 분주복잡한 날이 되겠지만 말이다. 그동안 우리는 주일에 모든 것이 결정난다는 듯이 예배했고, 모임을 가졌다. 모든 것이 결정나는 것은 정작 주일이 아닌 주중, 공예배가 아닌 일상인데 말이다. 이번에 주일의 모든 모임을 잠정 중단하는 것을 계기로 예배와 교제에 집중하는 길을 찾는 것이 좋겠다. 신자는 프로그램으로 바뀌지 않는다. 신자는 예배와 교제로 바뀐다. 주일은 하나님과의 만남, 그리고 교인들 간의 진솔한 만남의 장이 되어야 하겠다. 특정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세분화된 프로그램, 몇몇 사람들의 끝없는 헌신을 요구하는 프로그램들을 대부분 중단하고 함께 예배하고, 함께 교제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 말이다.

우리는 코로나 19가 바꾸어 놓은 주일의 모습을 잘 활용하는 것이 좋겠다. 그동안 우리는 주일이 여러 날들 중에 하루면서 동시에 타락한 시간 속에 들어와 있는 거룩한 시간이라는 것을 잊고 지냈다. 그동안 예배당 자체를 거룩하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회중이 모여 예배하기에 그 공간이 이 땅에 하늘이 펼쳐지는 공간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는 주일에, 그리고 예배를 통해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다. 모든 날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주일이니 말이다. 모든 활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예배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일에 다른 것을 할 여유가 없다. 예배와 교제 외에 말이다. 코로나 19는 우리가 주일과 예배를 새롭게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었다. 주일은 모든 관계가 산산조각난 이 세상을 향해 하늘과 연결될 수 있고, 세상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시위하는 날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해야 하겠다.

 

 

< 저작권자 ⓒ 개혁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1. [기획-부부의 세계] 사모, 그 아름다운 이름

    이번 기획기사는 ‘그리스도인 부부의 세계’입니다. 최근에 종영된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것은 부부세계의 민낯을 여과없이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위태위태한 것이 바로 부부관계가 아닐까...
    Date2020.07.20 By개혁정론 Views1075
    Read More
  2. [기획-부부의 세계] 부부의 신앙 갈등

    이번 기획기사는 ‘그리스도인 부부의 세계’입니다. 최근에 종영된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것은 부부세계의 민낯을 여과없이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위태위태한 것이 바로 부부관계가 아닐까...
    Date2020.07.15 By개혁정론 Views1101
    Read More
  3. [기획-부부의 세계] 중년의 결혼생활

    이번 기획기사는 ‘그리스도인 부부의 세계’입니다. 최근에 종영된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것은 부부세계의 민낯을 여과없이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위태위태한 것이 바로 부부관계가 아닐까...
    Date2020.07.07 By개혁정론 Views795
    Read More
  4. [기획-그리스도인 부부의 세계] 배우자 부정!? 이해한다고 하니 더 미치겠어요

    이번 기획기사는 ‘그리스도인 부부의 세계’입니다. 최근에 종영된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것은 부부세계의 민낯을 여과없이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위태위태한 것이 바로 부부관계가 아닐까...
    Date2020.07.03 By개혁정론 Views822
    Read More
  5. [기획-부부의 세계] 도대체 결혼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이번 기획기사는 ‘그리스도인 부부의 세계’입니다. 최근에 종영된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것은 부부세계의 민낯을 여과없이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위태위태한 것이 바로 부부관계가 아닐까...
    Date2020.06.25 By개혁정론 Views688
    Read More
  6. [기획-그리스도인 부부의 세계] 무엇이 그리스도인 부부를 흔드는가?

    이번 기획기사는 ‘그리스도인 부부의 세계’입니다. 최근에 종영된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것은 부부세계의 민낯을 여과없이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위태위태한 것이 바로 부부관계가 아닐까...
    Date2020.06.18 By개혁정론 Views704
    Read More
  7. [기획-청년멘토] 개혁주의 교회와 목회를 소개한 허순길

    이번 기획기사는 '청년멘토'입니다. 멘토라는 말이 유행한지 제법 되었습니다. 기성세대는 너도 나도 청년들의 멘토가 되려고 합니다. 스스로 멘토노릇하려는 이들은 꼰대가 되기 쉽다는 것도 모르고 말입니다. 청년들의 미래가 불투명하기에 맨토들...
    Date2020.06.06 By개혁정론 Views672
    Read More
  8. [기획-청년멘토] C. S. 루이스 같은 변증가가 나오기를

    이번 기획기사는 '청년멘토'입니다. 멘토라는 말이 유행한지 제법 되었습니다. 기성세대는 너도 나도 청년들의 멘토가 되려고 합니다. 스스로 멘토노릇하려는 이들은 꼰대가 되기 쉽다는 것도 모르고 말입니다. 청년들의 미래가 불투명하기에 맨토들...
    Date2020.06.01 By개혁정론 Views394
    Read More
  9. [기획-청년멘토] 영원한 청년 렘브란트에게 배운다

    이번 기획기사는 '청년멘토'입니다. 멘토라는 말이 유행한지 제법 되었습니다. 기성세대는 너도 나도 청년들의 멘토가 되려고 합니다. 스스로 멘토노릇하려는 이들은 꼰대가 되기 쉽다는 것도 모르고 말입니다. 청년들의 미래가 불투명하기에 맨토들...
    Date2020.05.25 By개혁정론 Views460
    Read More
  10. [기획-청년멘토] 팡세에 나타난 파스칼의 고민

    이번 기획기사는 '청년멘토'입니다. 멘토라는 말이 유행한지 제법 되었습니다. 기성세대는 너도 나도 청년들의 멘토가 되려고 합니다. 스스로 멘토노릇하려는 이들은 꼰대가 되기 쉽다는 것도 모르고 말입니다. 청년들의 미래가 불투명하기에 맨토들...
    Date2020.05.18 By개혁정론 Views776
    Read More
  11. [기획-청년멘토] 불굴의 용사 아타나시우스

    이번 기획기사는 '청년멘토'입니다. 멘토라는 말이 유행한지 제법 되었습니다. 기성세대는 너도 나도 청년들의 멘토가 되려고 합니다. 스스로 멘토노릇하려는 이들은 꼰대가 되기 쉽다는 것도 모르고 말입니다. 청년들의 미래가 불투명하기에 맨토들...
    Date2020.05.13 By개혁정론 Views474
    Read More
  12. [기획-청년 멘토] 청년 아우구스티누스

    이번 기획기사는 '청년멘토'입니다. 멘토라는 말이 유행한지 제법 되었습니다. 기성세대는 너도 나도 청년들의 멘토가 되려고 합니다. 스스로 멘토노릇하려는 이들은 꼰대가 되기 쉽다는 것도 모르고 말입니다. 청년들의 미래가 불투명하기에 맨토들...
    Date2020.05.11 By개혁정론 Views584
    Read More
  13. [기획-코로나, 와중에서] 토인비, 창조성 그리고 코로나

    이번 기획기사는 다시 코로나다. 코로나 19는 우리 사회 전체를 뒤흔들고 있고, 지금까지 견지해왔던 우리의 모든 경제생활과 사회생활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하라는 사인이다. 신앙생활도 예외가 아니다. 작금에 국가와 교회의 관계, 예배 자체에 대한 논쟁이...
    Date2020.05.08 By개혁정론 Views538
    Read More
  14. [기획-코로나, 와중에서] 당회의 역할과 권위를 생각하다

    이번 기획기사는 다시 코로나다. 코로나 19는 우리 사회 전체를 뒤흔들고 있고, 지금까지 견지해왔던 우리의 모든 경제생활과 사회생활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하라는 사인이다. 신앙생활도 예외가 아니다. 작금에 국가와 교회의 관계, 예배 자체에 대한 논쟁이...
    Date2020.05.02 By개혁정론 Views918
    Read More
  15. [기획-코로나,  와중에서] 전염병은 차별과 혐오를 낳지만...

    이번 기획기사는 다시 코로나다. 코로나 19는 우리 사회 전체를 뒤흔들고 있고, 지금까지 견지해왔던 우리의 모든 경제생활과 사회생활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하라는 사인이다. 신앙생활도 예외가 아니다. 작금에 국가와 교회의 관계, 예배 자체에 대한 논쟁이...
    Date2020.04.28 By개혁정론 Views373
    Read More
  16. [기획-코로나, 와중에서] 교회는 가현설(假現說)을 경계해야 한다

    이번 기획기사는 다시 코로나다. 코로나 19는 우리 사회 전체를 뒤흔들고 있고, 지금까지 견지해왔던 우리의 모든 경제생활과 사회생활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하라는 사인이다. 신앙생활도 예외가 아니다. 작금에 국가와 교회의 관계, 예배 자체에 대한 논쟁이...
    Date2020.04.23 By개혁정론 Views636
    Read More
  17. [기획-코로나, 와중에서] 코로나와 두려움: 개방성과 투명성

    이번 기획기사는 다시 코로나다. 코로나 19는 우리 사회 전체를 뒤흔들고 있고, 지금까지 견지해왔던 우리의 모든 경제생활과 사회생활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하라는 사인이다. 신앙생활도 예외가 아니다. 작금에 국가와 교회의 관계, 예배 자체에 대한 논쟁이...
    Date2020.04.20 By개혁정론 Views347
    Read More
  18. [기획-총선]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아래 글은 월간고신 생명나무 5월호에 실린 글로서, 이번 주제인 '총선'과 맞아 저자와 잡지사의 허락을 받아 싣습니다.. - 편집장 주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권수경 목사 (고려신학대학원 초빙교수) 국회의원 선거의 의미 제21대 국회의원을 선출하...
    Date2020.04.14 By개혁정론 Views584
    Read More
  19. [기획-총선]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상상과 정치 참여

    코로나 19사태에 파묻혀 있지만 4월 15일은 지역의 국회의원과 정당투표를 하는 총선일이다. 국회의원은 개개인이 입법기관이라고 말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맡고있다. 우리 사회는 어떤 법을 만들고 그 법을 어떻게 집행하느냐가 결정한다. 국회의원 선거는...
    Date2020.04.14 By개혁정론 Views581
    Read More
  20. [기획-총선] 그리스도인은 어떤 후보에게 투표해야 하는가?

    코로나 19사태에 파묻혀 있지만 4월 15일은 지역의 국회의원과 정당투표를 하는 총선일이다. 국회의원은 개개인이 입법기관이라고 말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맡고있다. 우리 사회는 어떤 법을 만들고 그 법을 어떻게 집행하느냐가 결정한다. 국회의원 선거는...
    Date2020.04.09 By개혁정론 Views431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4 Next
/ 24

기획기사

사설
[사설] 성찬상을 모독하지 마라
[사설] 제7차 개정헌법 헌의안, 총...
[사설] 총회장은 교단의 수장이 아...
[사설] 명예집사와 명예권사, 허용...
[사설] 총회가 계파정치에 함몰되지...
[사설] 최근에 일어난 고려신학대학...
세계로교회 예배당 폐쇄 조치를 접하며 3
[사설] 총회(노회)가 모일 때 온라...
총회가 졸속으로 진행되지 않으려면
[사설] 누가 고신교회의 질서와 성...
칼럼
왕처럼 살고 싶습니까? 왕처럼 나누...
푸틴의 머릿속에 있는 그림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3부)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2부); 교회...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1부)
우리 악수할까요?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 (Peter Holt...
관심을 가지고 보십시오.
동성애 문제에 대한 두 교단의 서로...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잘못을 통해서...
기고
직분자 임직식에서 성도의 역할
죽음을 어떻게 맞을까를 잠시 생각하며
제73회 총회가 남긴 몇 가지 과제
전임목사는 시찰위원으로 선정될 수...
고신교회와 고재수 교수; 우리가 왜...
왜 고재수는 네덜란드에서 고려신학...
제73회 총회를 스케치하다
신학생 보내기 운동에 대한 진지한 ...
명예 직분 허용이 가져다 줄 위험한...
[고신 70주년에 즈음하여 9] 고신교...
논문
송상석 목사에 대한 교회사적 평가 ...
송상석 목사와 고신 교단 (나삼진 ...
송상석 목사의 목회와 설교 (신재철...
네덜란드 개혁교회 예식서에 있어서...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 예배지침 부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SFC 강령의 “전통적 웨스트민스터 ...
지역교회의 적정 규모(規模 size)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