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기획기사는 제목이 깁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와 우리 시대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입니다. 교회는 시대속에서 존재하고, 그 시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기독교가 나라를 세우는 데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교회와 국가의 관계도 심대한 문제입니다. 미국 복음주의자들의 모습도 잘 살펴보아야 할 부분입니다. 우리는 삼위 하나님을 잘 드러내어야 하겠습니다. 이 기획기사를 통해 교회가 서 있어야 할 자리를 확인하고, 교회의 나아갈 길을 찾는데 작은 모티브가 되기를 바랍니다. - 편집장 주
[오늘날 한국 교회와 우리 시대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2021년, 이승만과 한경직의 ‘기독교적 건국론’을 다시 생각하다
유승혁 강도사
(용산중앙교회)
기독교 건국론의 역사
2020년 10월 29일, 대법원은 횡령 및 뇌물수수로 기소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원심판결(징역 17년, 벌금 130억 원, 추징금 57억 원)을 확정했다. 2007년 대선 당시 그를 당선시키기 위해 ‘장로 대통령을 세워야 한다.’는 구호가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공공연하게 설교 되었고 이에 교인들은 ‘아멘’으로 화답했다.
지난 8월 15일, 전광훈 목사와 지지자들은 원색적 색깔론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하는 대규모 광장집회를 강행하였다. 이로 인해 우리의 이웃과 방역당국은 감염의 위협에 노출되었고, 그동안 방역수칙을 잘 지켜오던 작은 교회들은 기독교를 비판하는 누리꾼들의 따가운 시선을 함께 받아야만 했다.
때로는 기독교에 우호적인 말들을 하며 교인들에게 환상을 심어주고, 때로는 위기감을 조성해 정치세력으로 결집하는 이러한 역학관계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역사는 1945년 5월 18일 해방공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해방 이후 한반도의 상황은 그야말로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의 상황이었다. 일본 제국주의가 물러가고, 친일파들은 관공서에 출근하지 않았다. 이렇게 갑작스러운 해방을 맞이한 우리 민족에게 ‘독립’을 위한 다양한 논의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 김구의 민족주의, 박헌영의 공산주의, 이승만의 독립촉성중앙협의회, 여운형과 김규식의 좌우합작운동 등 다양한 입장이 존재했다. 여운형, 김구, 김규식, 이승만 모두 개신교인이었지만, 시대와 정치에 대한 이해는 각각 다양했다.
미국과 소련, 친일파와 기회주의자들이 얽혀있는 복잡한 상황 가운데, 이 경쟁에서 최종적으로 남한단독정부수립을 줄기차게(가장 먼저) 주장했던 이승만이 주도권을 잡는다. 동시에 교계에서는 공산당에게 정치투쟁에 패배해 북에서 남으로 내려온 장로교 지도자들이 주도권을 잡는다. 미군정이 배분한 적산가옥(총독부와 일본인들이 소유했던 재산)과 미국 북장로교 선교회의 대규모 지원이 이것을 가능하게 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과 한경직 목사가 내세웠던 구상이 바로 ‘기독교적 건국론’이다.
▲ 좌측 - 1948년 7월 24일 이승만 초대 대통령 취임식 연설 장면(출처: 국가기록원), 우측 - 1949년 8월 15일 영락교회(베다니교회)의 정초석 기념촬영 장면(출처: 한경직기념사업회)
기독교 건국론과 암울했던 근현대사
한경직 목사는 일제강점기 식민지배를 받으며 살아야 하는 설움을 겪었다. 한편으로는 남강 이승훈 선생, 고당 조만식 선생과 같은 민족주의자들에게서 민족주의적 기독교 교육을 받았다. 또 한편으로는 사무엘 마펫과 같은 미국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에서 기독교 신앙의 우선성을 배웠다. 이후 미국 유학을 마치고 조국으로 돌아와 목사로 사역하면서 설교를 통해 기독교적 건국론의 사상을 회중에게 전달했다. 1946~1949년 사이의 설교가 수록된 설교집 제목이 『건국과 기독교』다. 건국에 대한 그의 관심이 지대했음을 알 수 있다.
▲ 이혜정 박사의 저서 『기독교적 건국론』에서 도식화한 내용을 필자가 각색한 표이다.
그의 건국론에서 핵심적인 요소는 1) 기독교 2) 애국 2) 신문명이다. 기독교 신앙은 새로운 국가의 정신으로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고 생각했다. 이 기반 위에서 신문명과 애국이 성취된다. 과학기술, 신학문, 민주주의와 같은 서구식 근대화를 통해 부강한 국가가 되는 것은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새로운 땅 가나안에 입성하는 것으로 비유되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전범典範이 바로 미국이었다. 이렇게 종교와 민족이 결합된 이상적인 모습이 그의 설교에서 드러난다. 이러한 인식은 일본 제국주의의 폭력에 저항하는 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새롭게 권력을 구성해야 하는 해방공간에서는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위기감 때문에 반공 이데올로기를 회중에게 설교하였고, 이후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는 비판능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기독교 이해에 문제점은 없는지 비판적으로 돌이켜보아야 한다. 우리는 당면한 시대를 살아가는 주체로서 선배들의 귀중한 전통은 계승하고 역사적 오점은 쇄신해야 하는 책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정신이라는 말이 얼마나 합당할까? 국가의 여러 제도를 기독교 우호적으로 세우면 자연스럽게 구성원들에게 기독교 신앙이 형성될까? 너무나 단순한 기대이다. 오히려 과정이 더 중요하다. 기독교를 우위에 두기 위해 주류 기독교 지도자들은 정치 지도자들의 비도덕적 행태를 비판하지 못하고 묵인하거나 지지했다. 국가 권력에 의해 희생된 연약한 이웃의 편에 서지 못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반공과 친미를 기치로 정치적 정적들을 제거하고 민간인 학살(여순 사건, 제주 4.3 사건, 보도연맹 학살 사건 등)을 자행했다.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사사오입 개헌四捨五入 改憲(초대 대통령은 중임 제한을 없애는)이라는 위헌을 저질렀고, 3.15 부정선거(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개표조작)로 인해 촉발된 국민의 반발(4.19 혁명)로 불명예스럽게 하야했다. 기독교 지도자들은 군부 쿠데타로 권력을 쥐고 독재와 억압을 일삼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기독교적인 용어로 지지를 선언하는 오점을 남겼다.
▲ 1980년 8월 13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조찬기도회 (출처: e영상역사관, 대한뉴스 제 1294호)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가들과 민족주의자들이 말한 ‘애국’은 불의한 권력을 향한 저항과 자유를 위한 호소였지만, 한국 현대사에서 독재자들이 말한 ‘애국’은 소위 반공이라는 레드 콤플렉스red complex를 활용해 국민에게 공포감을 조성하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세력을 억압하는 정치적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서양식 문명화로 인해 우리에게 주어진 부와 편리함의 이점은 두말할 필요 없이 값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근대화, 산업화 과정에서 우리에게 힘없는 이들의 희생과 방치되는 사각지대가 함께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근대화 혹은 산업화 자체를 ‘기독교’와 동일시할 수는 없다.
오늘 이 시대 우리
우리에게 남아있는 ‘기독교적 건국론’의 모습은 과연 그리스도적인가? 우리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는가? 혹은 장로교의 교리와 헌법과 맥락을 같이 하는가?
이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질 차례이다. 한 세기가 지나고 사회와 종교의 패러다임이 변한다. 이전에 규범적으로 여겨지던 것들이 의미를 상실한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사회 저변에 자리 잡은 정신이, 권력을 힘입은 이데올로기가, 혹은 문명화된 기술이 교회와 신자들의 믿음을 형성하지 않는다. 교회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에 대한 고백 위에 세워진다. 기독교와 그리스도인이 오늘날 세상에 여전히 의미가 있는가? 지난 2천년을 넘어 진입한 제3천년기에도 여전히 그러한가? ‘기독교적’이라고 이름 붙은 수많은 낡은 관행들을 벗겨내고 오직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어 모든 개혁의 동력을 쏟을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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