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기획기사는 다시 코로나다. 코로나 19는 우리 사회 전체를 뒤흔들고 있고, 지금까지 견지해왔던 우리의 모든 경제생활과 사회생활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하라는 사인이다. 신앙생활도 예외가 아니다. 작금에 국가와 교회의 관계, 예배 자체에 대한 논쟁이 점입가경이다. 교회의 부실함과 신앙인의 어리석음도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차제에 이 사태가 드러내고 있는 우리의 속살을 하나씩 꺼내놓고 문제제기를 해 보면서 향후 교회가 나아갈 길을 모색해 보려고 한다. 코로나 사태는 이번으로 끝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 편집자 주 |
토인비, 창조성 그리고 코로나
김중락 교수
(경북대학교 역사교육과)
Covid-19에 대한 한국의 대처는 전 세계의 모범이 되었다. 한국은 무상 검진과 치료를 통해 감염자를 신속하게 찾아내었고, 조기에 그들을 발견함으로써 사망률을 최소화하였다. 뛰어난 성능의 검사장비를 만들었을 뿐 선별진료소, 드라이버 스루, 마스크의 전 국민 분배, 확진자 동선 추적 등의 어느 국가도 생각하지 못한 방법을 통해 모범 방역국이 되었다. 의료진은 생명을 걸고 자원봉사를 하였고, 국민은 일사분란하게 사회적 격리에 동참하였다. 그 결과 Covid-19도 거의 정복하기 직전에 이르렀다.
한국은 이제 Covid-19 방역에 대해서는 전 세계의 모델이다. 많은 국가들이 한국의 방법을 배우기 원하고, 도움을 청하고 있다. 일부 국가는 한국의 방역을 모방하여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소식이다. 더 많은 국가들이, 아니 지구상의 모든 국가들이 한국을 모방하리라고 믿는다.
나는 이러한 상황에서 <<역사의 연구>>를 집필한 토인비로부터 더 진일보한 가르침을 얻고자 한다. 토인비는 한 사회의 성장은 도전에 대한 성공적인 응전으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도전에 대한 응전이 성공하면 사회는 성장하고, 실패하면 쇠퇴기로 접어든다는 것이다.
성장의 메커니즘은 이러하다. 예기치 못한 도전으로 사회가 어려움에 직면할 때 ‘창조성’(creativity)을 지닌 소수, 즉 ‘창조적 소수’(creative minority)가 성공적으로 응전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면 창조성을 지니지 못한 다수는 창조적 소수의 응전방법을 모방(mimesis)한다. 그리하여 그 사회 전체가 도전에 성공하고 성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토인비의 이론에 따르면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Covid-19라는 도전을 창조성을 발휘하여 성공적으로 응전한 창조적 소수이고, 국제사회는 모방하는 다수인 셈이다. 어느 민족이나 세계사에 공헌할 기회가 주어진다고 한 헤겔의 말을 따른다면 한국이 이제야 국제사회에 기여할 기회를 얻은 것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토인비는 창조성에는 ‘업보’(nemesis)가 동반된다는 것을 지적한다. 창조적 소수자들이 자신들의 창조성을 우상화한다는 것이다. 한 사회에 찾아오는 도전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다. 도전은 바닷가에 파도처럼 오고 또 오는 것이다. 그런데 토인비는 이 도전이 갈수록 어려워진다고 말한다. 도전이 기화(에스테르화)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도전은 외적이고 물질적인 것에서 내적이고 정신적인 것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성공했다고 자만하거나 이전의 응전방법을 우상화하면 새로운 도전에 대한 응전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새로운 도전은 완전이 다른 성격의 도전이고, 더 어려운 도전인데 옛 방법으로 응전하니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때 창조성을 발휘했던 창조적 소수자들이었지만 우상화로 실패한 이들은 역사에 수두룩하다. 유대인들은 고대세계에서 주위민족과는 달리 유일신과 인격적인 신을 섬겼지만 유대인만을 위한 신으로 가두면서 실패했다. 자아의 우상화이다. 고대 아테네인들은 민주정을 실시했으나 여성, 외국인, 노예를 제외한 한계가 있는 것이었다. 제도의 우상화이다. 18-19세기 영국인들은 세계최초로 산업혁명을 일으켰으나 그들의 기술을 우상화하면서 다른 나라에 뒤처지게 되었다. 기술의 우상화이다.
이처럼 창조성에는 우상화라는 업보가 따르는 것이다. 벌써부터 우리의 작은 성취를 우상화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지나친 자부심이나, 우리를 따르지 않는 국가에 대한 비판적 태도도 일종의 우상화이다. 우리의 창조성도 한계가 있는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모두가 말한다. 올 가을에나 내년에는 더 강력한 코로나 변종이 유행할 수 있다고. 의학에는 정말 아는게 없지만 이 정도는 말해도 용서될 것으로 믿는다. 새로 찾아오는 변종 바이러스는 더 강한 내성을 가지고, 더 강한 공격력을 가진 존재일 것이다. 도전은 더 강해지고, 더 어려워진다는 토인비의 주장과도 일치한다.
다가올 새로운 도전에 대해서는 새로운 창조성이 필요하다. 우리가 새로운 창조성을 발휘하지 못하면 창조적 소수자의 역할은 일회성으로 시효만료가 될 것이 분명하다. 세계는 모방을 멈추게 될 것이다. 절대로 이번에 우리가 자랑하는 것들이 우상화되어서는 안된다. 어렵게 얻은 창조적 소수의 자리를 유지하려면 우상화에 빠지지 않는 창조성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 우리가 보인 여러 가지 방역법은 새로운 바이러스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보관해야 한다.
< 저작권자 ⓒ 개혁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