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정론은 매년 9월 총회를 앞두고 총회에 상정된 헌의안을 분석합니다. 71회 총회가 며칠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 예년과 마찬가지로 분석 기사를 올립니다. 이 기사를 통해 71회 총회를 조망해 보고, 기도하는 독자들이 되시길 기대합니다. - 편집자 주
총회 상정안건도 총회의 얼굴이다.
손재익 목사
(한길교회 담임)
총회 상정안건은 총회의 수준을 드러낸다
교회는 종종 이런 말을 한다. ‘세상의 시선은 항상 교회를 향하고 있다’. ‘교회가 여전히 세상의 희망이다.’ 마침 이번 제71회 총회의 주제도 "교회, 다시 세상의 빛으로"(사 60:1)다.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총회가 어떤 결정을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떤 안건을 다루느냐도 중요하다. 세상은 교회가 어떤 문제 의식을 갖고 있는지 주목한다. 그러면서 교회를 향해 일말의 희망을 가진다. 교회가 갈수록 세상의 조롱을 당하는 시대, 더이상 조롱받지 않고 칭송을 받으려면 좋은 결정은 물론이고, 좋은 의견을 내놓아야 한다.
그렇기에 총회에 상정되는 안건은 신중하게 제출해야 한다. 그냥 이것저것 다 상정해서는 안 된다. 정말로 중요한 것, 정말로 시급한 것을 상정해야 한다. 총회적으로 다룰 만한 일을 상정해야 한다. 교회의 고민과 문제의식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과연 우리 총회에 올라오는 안건들은 세상 앞에 교회가 여전히 희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교회가 앞으로도 얼마나 더 실망을 안겨줄지 예상하도록 만드는 안건들은 아닐까?
보편적 고통을 외면한 상정안건
제71회(2021년) 총회는 코로나 19라는 전염병이 한창 진행 중인 가운데 개최된다. 2020년 2월 이후 온 세상이 보편적 고통을 경험하는 때, 71회 총회에 상정된 안건들은 세상의 고통에 침묵하고 외면하는 듯한 인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총회에 상정된 안건 중에 ‘총회 상회비 삭감 청원’을 제외하고는 코로나 19로 인한 고통을 의식하는 안건은 전무하다. 그마저도 교회 내적인 고통만 보듬으려 하지, 교회 바깥의 고통을 의식하고 보듬고자 하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각 노회와 개체교회가 이웃교회를 돕고 세상의 어려운 이웃들을 돕고 있다. 하지만, 총회적으로는 세상의 고통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가 보이지 않는다. 상정 안건 대부분은 총회 운영과 행정을 위한 안건으로, 보편적 고통에 대한 교회의 문제의식이 보이지 않는다.
고통을 외면하는 것을 넘어
심지어 고통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목사의 잇속을 채우려는 안건이 상정된 것은 너무나 부끄럽다. 대표적으로 ‘목사와 장로의 정년 연장 건’이다. 장로 및 집사의 정년까지 포함시켰지만, 사실상 목사의 정년을 연장하기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
이 안건은 경기북부노회와 부산서부노회가 상정했다. 경기북부노회의 제안설명은 이렇게 시작한다. “성경적으로나 시대적 흐름으로 보아 정년 연장 및 폐지를 검토할 충분한 시기와 조건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그럴까? 현재 담임 목회지를 구하지 못한 4~50대 부교역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들은 고통 가운데 인내하며 참고 기다리고 있다. 짧게는 15년, 길게는 30년 가까이 계속되는 부교역자 생활로 인해 지칠 대로 지친 이들이 담임 목회지를 찾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그런데 목사 정년이 연장된다면 그들의 고통은 어떻게 할 것인가? 연장을 원하는 목회자의 대부분은 한국교회의 부흥과 성장기에 30대에 담임이 되어 황금기를 누린 세대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후배들의 고통마저 외면하려는 이 안건은 세상 앞에 부끄럽다. 게다가 시대적 흐름이 과연 목사 정년 연장을 원할까? 심지어 제안설명에는 “성경에는 정년이 없습니다.”라는 근거를 제일 먼저 들고 있다. 만약 그것이 정말 이유라면 지금껏 왜 가만 있다가 이제 와서 이런 안건을 올리는지에 대해서 해명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성경대로 하지 않았다는 반성과 함께 말이다.
아마도 위의 두 노회는 그 안건이 통과되리라 생각하고 올린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부터 매년 이 안건을 올리면 언젠가는 분위기가 바뀔 것을 예상하고, 지금부터 올리기 시작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안건 내용의 수준과 질은 일단 차치(且置)하고서라도, 시기적으로 너무나 적절치 않다. 세상은 고통받고 있는데, 목사는 정년 연장을 꿈꾼다고 할 때 세상이 교회를 향해 뭐라고 할 것인가? 아니 교인들조차 목사를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또한 총회 상정 안건은 여론을 형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몇 차례 올려서 여론을 보겠다는 것이라면 너무나 바람직하지 않다.
충청서부노회가 발의한 ‘미자립교회’를 ‘미래자립교회’로 명칭 변경 건 역시 부끄럽게 한다. 이 안건은 총회 상정 안건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안건이다. 미자립교회를 미래자립교회라고 하자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한 것으로, 합동총회의 사랑의 교회 오정현 목사가 언론의 주목을 받기 위해서 꺼낸 말일뿐이다.
사실 ‘미자립교회’라는 말은 헌법에 없는 용어다. 임의적으로 사용하는 표현일 뿐이다. 교회는 당회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조직교회와 미조직교회로 분류할 뿐, 재정으로 교회를 분류하지 않는다(헌법 교회정치 제13조). 미자립교회라는 표현은 재정에 있어서 자립하지 못하여 다른 교회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것일뿐, 그것이 교회의 부족함을 의미하지 않고, 전혀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굳이 ‘미래자립교회’라고 명명(命名)할 필요가 없다.
총회 상정 안건이 부끄럽다
본보는 매년 총회 상정 안건을 분석해 왔다. 이에 예년과 마찬가지로 71회 총회 상정 안건을 분석하기 위해 편집회의를 가졌다. 그러나 대체로 다룰 만한 내용이 없다는 의견이었다. 상정 안건의 숫자가 많지 않고, 중요한 이슈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결같이 가진 한탄은 안건의 수준이었다. 너무 부끄럽다는 것이었다. 차라리 올라오지 않았어야 할 안건들이 너무 많고, 부끄러운 안건이 많아 안타깝다는 것이었다.
총회 상정안건도 총회의 얼굴이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어떻게든 하나 이상의 안건이라도 올려야겠다는 강박관념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본다. 하지만, 굳이 없다면 올리지 않아도 좋다. 하나라도 안건을 올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외국의 개혁교회는 매년 총회를 하지 않는다. 매년 안건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억지로 안건을 올림으로 인해 세상 앞에 총회의 부끄러움을 내놓을 필요가 없다.
각 헌의안은 노회장 이름으로 올라온다. 발의자 이름이 명시된다. 예컨대, 경남노회장 OOO목사가 청원한 OOOO 청원 건. 이런 식이다. 그렇기에 각 안건을 발의하는 노회와 그에 책임을 지는 노회장은 안건을 신중하게 올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총회가 어떤 결의를 했느냐도 역사에 남지만, 어떤 안건을 상정하여 다뤘느냐도 역사에 남는다. 총회 상정안건도 총회의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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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조직, 미자립 용어가 성공주의 세태 속에서 은근히 뿌리는 실패감은 무시 못합니다. 기자처럼 지성과 신학을 겸비해 자신감이 있는 분들이야 문제가 없지만, '재정이 부족하여 도움을 필요로 하는 교회'임을 명칭에서부터 드러내며 살아가는 연약한 목사님들은 주눅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별것 아닌 이름에서부터 힘을 실어드릴 필요가 있다고 노회가 판단한 것이니 살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