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정론이 새롭게 시작하는 기획기사 ‘김 집사가 알아야 할 교회법’은 교회법의 전반적 내용을 쉽게 해설하는 시리즈입니다. 기독교보와 함께 진행하는 시리즈로서 여기에 싣는 것은 기독교보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글 내용은 기독교보에 실린 그대로인 경우도 있으며, 오프라인 신문 지면의 한계상 다 싣지 못한 내용을 여기에는 그대로 싣습니다. - 편집자 주
교회에서 제일 높은 기관은 공동의회가 아닌가요?

정찬도 목사
(주나움교회)
장로교 정치제도는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을 전제로 합니다. 이에 기초한 개체교회는 당회를 통한 직분적 질서와 공동의회를 통한 회중의 참여가 조화를 이루는 구조입니다. 이 두 요소가 균형을 이루어야 교회가 성경적 질서 안에서 건강하게 세워집니다.
교회의 궁극적 권위는 몸 된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교회의 최종 권위는 사람이나 회의에 있지 않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에 있습니다. 교회 정치의 모든 제도와 절차는 이 진리를 보존하기 위한 수단일 뿐, 그 자체가 권위의 근원이 될 수는 없습니다. 비성경적 결정을 거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 안의 어떤 회의도, 심지어 공동의회도, 그리스도의 말씀을 넘어서는 최고 권력이 될 수 없습니다. 교회가 오직 말씀 앞에 겸손히 서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권위가 드러납니다. 교회의 권위는 명령하는 힘이 아니라, 진리를 드러내어 세우는 능력에서 나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장로교회인데, 공동의회를 통한 회중의 참여는 성경적일까요? 그렇습니다. 공동의회는 무흠 세례교인들이 교회의 공동적 사안인 재정, 인사, 재산 등에 참여하여 결정하는 장으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의 교제와 책임을 실천하는 통로입니다. 이 참여는 단순히 행정적 절차가 아닙니다. 이 참여는 모든 성도가 교회의 지체로서 사역에 동참한다는 성경적 원리를 반영합니다. 따라서 회중의 참여는 반드시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 관점에서 공동의회는 합법적 의결권을 가집니다. 또한 공동의회가 정기·임시 소집 규정을 두어 교회 생활의 투명성과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도 바람직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공동의회가 최고의 회의로 비쳐질까요? 그것은 바로 결정하는 사안의 중대성 때문입니다. 오직 공동의회를 통해서 담임목사 청빙, 직분자 선출, 그리고 교회 재산 관리 등과 같은 교회의 핵심 사역을 의결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골격을 이루는 중요한 결정은 반드시 공동의회를 통해서 이루어지니, 제일 높은 기관으로 인식되는 것입니다.
공동의회가 최고 결정 기관이 아니라면, 이를 위해 교회가 인지해야 할 내용은 무엇일까요?
첫째, 회중(무흠 세례교인)은 교회의 유기체적 지체로서, 공동의회나 제직회를 통해 교회의 공적 결정에 참여할 권리와 책임이 있습니다. 이는 교회가 특정 직분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전체가 함께 세워가는 공동체임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회중의 참여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교회의 교제와 상호책임의 표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공동적 사안을 특정 직분자들이 결정하거나, 성도들의 참여를 제한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단, 교회의 최고 권위는 인간 회중의 결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에 있다는 개혁신학의 원리를 약화할 위험은 항상 주의해야 합니다.
둘째, 공동의회를 통한 회중의 다수결이 항상 교회의 ‘최고 권위’가 될 수는 없습니다. 회중이 아무리 한마음으로 결의하더라도, 그 결정이 성경의 원리나 교회의 교리, 또는 상회의 법과 질서에 어긋난다면 그것은 정당하지 않습니다. 다수결만으로 신학적·영적 사안을 결정하면 직분자의 목양 책임과 성경적 권징권이 침해될 수 있습니다. 또한 회중이 감정·유행·세속적 이해관계에 따라 흔들릴 때 교회의 신앙적 일관성이 훼손될 수도 있고, 반개혁적이고 반성경적 결정이 내려질 위험 역시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직분자 선출 시 직분 이행에 대한 적합성보다는 인기투표로 전락하거나, 교회 중요 안건에 대해서도 반대에 의한 반대로 표대결을 하는 일은 교회 내 더 큰 갈등을 야기하곤 합니다. 다수결은 행정적 수단이지, 진리의 기준이 아닙니다.
셋째, 직분적 질서와 회중의 참여는 서로를 견제하고 보완합니다. 당회(목사와 장로)는 말씀, 성례, 권징, 교리의 영역에서 교회를 감독하고, 공동의회는 교회의 재정, 인사, 기본재산, 공적 사안에서 참여합니다. 또한 이를 위해 노회와 총회는 개체교회가 독자적으로 잘못된 결정을 내리거나, 당회나 공동의회가 본래 권한을 넘어설 때 교회의 질서를 바로잡는 상위 치리회로 존재합니다. 이 세 축이 함께 작동할 때,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질서 있는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이 제도는 인간의 불완전함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오류와 남용을 견제하여, 교회가 그리스도의 통치 질서 안에 머물도록 돕는 장치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견제와 균형’의 최종 목적은 ‘권력의 분산’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통치’에 있습니다. 즉, 모든 제도와 절차는 결국 “누가 진정으로 교회를 다스리는가?”라는 신학적 질문으로 귀결됩니다. 그 대답은 언제나 “그리스도께서 말씀과 성령으로 다스리신다”의 원리에 대한 대답이어야 합니다.
성경적 장로교 정치제도는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에서 회중의 참여와 치리회의 치리권이 함께 작동하는 구조입니다. 회중은 교회의 지체로서 신앙적 책임을 지고, 치리회는 말씀과 질서를 따라 교회를 지도합니다. 이 균형이 무너지면, 성직 중심의 권위 집중 구조로 치닫거나, 반대로 회중 중심의 민주주의적 교회 혹은 회중교회로 흐르게 됩니다. 개혁주의 장로교회는 이 두 극단을 경계하며, 직분적 질서와 회중의 교제적 참여가 조화를 이루는 질서 있는 공동체를 지향합니다.
정리해 보겠습니다. 공동의회는 교회의 중요한 의결기관이지만 ‘최고 회의’는 아닙니다. 최종적 권위는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에 있으며, 직분자의 목양·권징 책임과 치리회적 구조를 통해 교회의 신앙과 질서가 보전되어야 합니다. 공동의회는 그 틀 안에서 회중의 정당한 참여를 보장하는 귀한 제도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당회와 노회와 총회는 교리를 수호하고 목양 질서를 유지하는 치리기관으로 존재하며, 회중의 참여는 교회의 교제와 책임성을 실천하는 통로입니다. 서로를 견제하고 보완할 때, 교회는 민주주의적 회중정치나 권위주의적 성직제도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의 통치 질서 안에서 말씀 중심의 교회로 세워지게 됩니다. 교회는 사람이 만들고 움직이는 조직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살아 있는 공동체임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