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기획기사는 신자의 장례입니다. 어느 문화나 마찬가지겠지만 동양문화는 생노병사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독특한 축하 및 애도의 문화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한국교회의 장례문화는 전통적인 장례문화와 구분이 안될 정도로 상호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천주교회는 이 장례와 기타 애도문화로 인해 큰 곤혹을 치르기도 했고요. 토착화도 필요하겠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장례에 관해, 그리고 장례에 관련된 제반 문제를 차분히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 편집위원장
황원하 목사
산성교회 담임목사
고신총회 인재풀운영위원회 전문위원 (서기)
<한국 기독교인들의 장례 문화>
언젠가 연세 많으신 목사님이 돌아가셔서 문상을 간 적이 있다. 그런데 상주(아들) 중 한분의 하소연을 듣게 되었다. 그것은 조화가 120개나 들어왔다는 것이다. 둘러보니 조화가 정말 많아서 이중 삼중으로 빈소를 빼곡히 둘러싸고 있었다. 그분은 조화 한 개에 10만원만 잡아도 1,200만원이나 되는 거금인데, 차라리 돈으로 받았더라면 어려운 가정 형편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요즘 사업이 어려워서 힘든데 이럴 때 돈을 받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런 모습은 너무나 안타깝다. 우리나라 사람들 특유의 체면 문화 때문에 결혼이건 장례이건 간에 옆으로 새는 돈이 많다. 겉 치례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다 보니 불필요하거나 일회소비적인 돈이 많이 들어간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들의 한 번의 평균 장례비용이 2,000만원 전후라고 한다. 이것이 약 3일 만에 소모되는 비용이다. 그러다보니 장례관련 사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일부 부실한 업체는 어느 순간에 폐업해 버려서 회원으로 가입한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준다.
비단 돈 뿐만이 아니다. 시간과 여력도 문제다. 요즘은 보통 3일장을 치루는 데, 과거에는 5일장을 치렀고, 더 오래전에는 30일장을 치렀다는 글을 읽어보았다. 고인의 가족들은 며칠간 일을 하지 못하고 잠을 자지 못한 채 장례식장에 모여서 손님들을 맞이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화목하게 장례를 치루는 경우가 많지만 때로는 가족들 간에 심하게 다투기도 한다. 그리고 여러 지인들이 문상을 하기 위하여 먼 거리를 오고가야 한다. 문상객들은 이런 자리에 오지 않으면 안 되고, 유족들은 그들에게 온갖 정성을 다해서 음식을 제공하면서 고마움을 표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장례 문화가 과연 좋은가? 그것을 그냥 놔둬도 되는가? 우리 기독교인들도 이러한 문화를 그대로 따라가야 하는가? 다행히 최근 들어 사회적으로 매장문화가 널리 받아들여지면서 장례비용이 적게 들어가고 절차도 간소화되었지만 여전히 우리에게는 풀어야 할 과제들이 많이 남아 있다.
필자는 기독교인들의 장례 문화에 대해서 이렇게 제안해 본다. 비록 우리의 문화와 정서상 당장 적용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의식을 바꾸다보면 서서히 적용해 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1. 무엇보다도 장례일정을 줄일 필요가 있다. 과거에 우리나라에서는 지극히 가난한 집을 제외하고 30일간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이후 장례기간이 점점 짧아져서 오늘날은 보통 3일장을 하거나 특별한 경우에 5일장을 한다. 그러나 3일 동안 장례를 치루는 일도 쉽지 않다. 필자는 가족들이 모두 모일 수 있는 시간에 장례(발인)를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가족들이 모이는 시간에 맞추어서 장례를 치르면 좋겠고 꼭 연락할 사람들에게만 연락을 하면 좋겠다.
2. 장례비용을 낮추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불신자들은 주로 굴건제복(屈巾祭服)을 입는데, 우리 기독교인들은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검은 정장에 상주임을 알리는 완장을 착용하면 된다. 그리고 필자는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화장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매장할 땅이 부족하며, 실제로 화장하는 비율이 이미 80%에 이른다. 그러니 비용이 저렴하고 간편한 화장을 하는 것이 좋겠다. 관은 어차피 불태울 것이니 가장 저렴한 것으로 하고, 고인에게 수의를 입히기보다는 고인이 평소에 즐겨 입던 옷을 입히면 된다. 이때 관 안에 어떤 부장품(성경, 찬송을 포함해서)을 넣는 일은 삼가야 한다.
3. 문상객들로부터 부조금(조의금)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일전에 필자가 기독교인들의 결혼문화에 대한 글에서도 제안하였지만 부조금 문화는 하루 속히 없어져야 한다. 적어도 기독교인이라면 돌려받지 않을 각오로 어려운 가정에 장례비용을 보태주려 해야지, 언젠가 돌려받을 요량으로 그것을 주면 안 된다.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며 딱히 예의도 아니다. 부조금은 정중히 사양하는 것이 좋겠고 조화도 교회에서 보낸 것 하나정도 비치하면 좋겠다.
4. 기독교 장례 절차에 대해서는 교회와 가정의 형편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시행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입관예배, 발인예배, 하관(화장)예배를 드리지만, 입관예배와 발인예배만 드릴 수 있으며, 요즘 화장을 많이 하니 화장터에서는 가족들이 조촐히 절차를 밟아서 화장에 임할 수 있다. 목사와 교인들은 ‘명복을 빈다’는 표현을 삼가야 하고, 불신으로 죽은 자의 소망에 대한 발언도 삼가야 한다. 장례를 치르면서도 오로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5. 보통 교인 가운데 장례가 나면 전교인에게 광고를 한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 교인 전체에게 부담을 주는 일이다. 그래서 장례가 나면 유족들이 원하는 분들에게 개별적으로 연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반드시 문상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는 사람에게만 연락하는 것이다. 결혼은 교회의 공적인 일이지만 장례는 그렇지 않다. 장례로 인하여 교회의 공적인 일정과 교인들 전체의 생활에 지장을 주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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