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기획기사는 '신자의 결혼'입니다. 결혼식은 인륜지대사라고 하지만 너무나 허례허식이 많고 문제가 많습니다. 로마교회에서는 성례로까지 승격시켰지만 우리 개혁교회에서는 이 결혼식을 개인이나 가정의 일이 아니라 '교회적인 일'이라는 이해하에 예배형식의 결혼식을 가지면서 온 교회가 축하합니다. 결혼과 관련된 제반 요소들을 성경적으로 조망하는 이번 기획에 청년들의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 편집위원장
손재익 목사
객원기자/ 한길교회
혼자 사는 시대
아빠, 엄마, 형(혹은 누나), 그리고 나.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가족의 모습이다. 그런데 어느덧 이러한 모습은 “있었던” 것이 되어 버렸다. 더 이상 쉽게 보기 어려워졌다. 왜냐하면 바야흐로 1인 가구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4명이 한 집에 사는 시대가 아닌, 혼자 사는 시대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찾아와 버렸다. 1인 가구? 상상도 못하던 이야기이지만, 이제는 일반적이다. 불과 35년 전인 1980년 4.8%였던 1인 가구는 2012년 25.3%를 기록한 뒤 2015년 현재 27.1%로 이제는 전체 가구유형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가장 보편적인 가구 구성이었던 4인 가구는 1인, 2인, 3인 가구보다 낮은 18.8%를 차지하고 있다. 혼자 사는 사람이 우리도 모르게 소리 소문 없이 늘어났다. “나 혼자 산다”라는 TV 프로그램이 인기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사람을 미혼(未婚)이라고 불렀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아직도 기혼의 반대말로 미혼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이렇게 부르면 큰일난다. ‘아직’(未)이 아니라 그냥 안한 것(非)을 의미하는 비혼(非婚)이라고 해야 한다. 아직 안 한게 아니라 앞으로도 안할 것이라는 말이다. ‘비혼’이라는 단어가 아직 국어사전에 등재되지 않았지만, 이미 통용되고 있다.
결혼하는 것보다 혼자 사는 것이 더 좋다고 가르치는 시대이다. 결혼해서 피곤하게 사느니 차라리 혼자 살라고 권면하는 시대이다. 수많은 부부들이 이혼을 하고, 결혼생활에 있어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경험들이 많아지다보니 그렇게 되어 버렸다.
지금까지 언급한 모든 내용이 보여주는 핵심은 무엇인가? ‘결혼’과 ‘가정’의 개념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혼자 살게 된 이유
왜 혼자 사는가? 왜 결혼하지 않는가? 왜 가정을 이루지 않는가? 왜 이미 이룬 가정이 해체되는가? 이것은 어느 하나로 이야기하기 어렵다. 사회, 경제, 문화적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장기적인 불황, 청년실업, 주택가격 상승과 같은 경제적 이유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결혼하고 싶어도 결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혼자 벌어서 4명이 살던 시대가 지나고 혼자 벌어서 혼자 살기도 힘든 시대가 되어 버렸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다보니 결혼을 ‘못’하는 것을 넘어 ‘안’ 하는 시대가 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단독으로 가구를 구성하는 경향은 젊은 세대에서만 제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오히려 전 연령대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혼자 사는 삶의 양식은 더 이상 결혼을 거부했거나 결혼하지 못한 젊은 세대의 특유한 세대 문화가 아니다. 이것은 생애 주기의 모든 단계에서 발생하는 전 생애적 현상이 되었다.
시대의 변화에도 흔들리지 말아야
1인 가구 시대의 증가는 쉽게 거스르기 힘든 사회현상이다.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문제가 사회 현상을 넘어 교회를 무너뜨릴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키기보다, 세상이 한국교회를 변화(?)시켜 온 것을 생각해 보면 잠자코 지켜볼 수 없다.
실제로 교회 안의 많은 미혼청년들이 이런 생각을 가진다.
“초라한 커플보다 화려한 싱글이 낫다”
“내 인생이 중요하지 결혼은 중요하지 않다.”
“서로 안 맞으면 싸우면서 사는 것보다 차라리 빨리 이혼하는 게 낫다.”
“미혼(未婚)이라는 말은 틀렸다. 비혼(非婚)이라고 해야 한다.”
“이혼은 흠이 아니다”
위에 열거한 내용들이 청년들의 머리에서 자생(自生)한 것이 아니다. 사회가 그들에게 심어주었고, 심지어 교회 안의 어른들이 그들에게 심어주었다.
그런데 앞으로 계속될 1인 가구의 증가는 ‘가정중심성’(domesticity)을 약화시킬 것이고, 이것이 교회에 끼칠 해악은 심각할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교회는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지 말고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이유없는 장기적 미혼(未婚)상태, 기러기 아빠, 이혼, (사별 외의 이유로 인한) 재혼, 그 밖에 부부의 한 몸됨을 허무는 모든 것들, 가정을 허무는 모든 것들로부터 돌아서야 할 것이다.
혼자 사는 것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왜 그런가? 성경이 우리에게 그렇게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결혼과 가정에 관하여 매우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다음의 본문들은 직간접적으로 결혼과 가정에 대해서 다루는 본문들이다. “창세기 1장 27절; 2장 18-24절; 출애굽기 20장 14절; 레위기 18장; 신명기 7장 3-4절; 22장 9, 13-30절; 24장 1-4, 5절; 잠언 11장 16절; 12장 4절; 18장 22절; 19장 14절; 31장 10-31절; 전도서 4장 9절; 이사야 50장 1절; 54장 4-8절; 57장 1-10절; 62장 1-5절; 예레미야 2장 1-37절; 3장 1-10절; 31장 31-34절; 에스겔 16장 1-63절; 23장 1-49절; 호세아서 전체; 말라기 2장 15-16절; 마태복음 5장 27-28, 31-32절; 19장 3-12절; 마가복음 10장 2-12절; 누가복음 16장 18절; 로마서 7장 1-3절; 고린도전서 7장 1-17, 39절; 11장 3, 7-12절; 고린도후서 6장 14-18절; 11장 2-3절; 에베소서 5장 1-21절; 5장 22절-6장 4절; 골로새서 3장 18절-4장 1절; 데살로니가전서 4장 3-4절; 디모데전서 2장 15절; 4장 1-5절; 5장 14절; 디도서 2장 4-5절; 베드로전서 3장 1-6, 7절; 히브리서 13장 4절” 이 외에도 십계명 중 제5계명과 제7계명은 결혼과 가정에 대한 직접적인 가르침을 주고 있다. 이렇게 결혼과 가정에 대해 성경이 가르치고 있다는 것은 1인 가구가 성경적인 모습이 아님을 시사한다.
하나님은 혼자 사는 것, 즉 독처(獨處) 하는 것의 좋지 못함에 대해서 창세기 2장 18절에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짝을 이루어야 하고, 그리고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제도이다. 하나님은 태초에 남자와 여자를 만드신 뒤에 그들을 그냥 각자 살도록 두지 않으셨고 친히 짝지어주셨다. 부모가 없던 아담과 하와의 결혼을 설명하는 창세기 2장 24절에서 “부모를 떠나”라는 표현을 기록하게 하심으로 이 제도가 오고 오는 모든 인류에게 이어져야 함을 암시해 주셨다.
뿐만 아니라 결혼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허락하신 창조의 원리(창 1:28; 2:16-17)을 이루게 하시기 위해 제정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지키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해야 할 명령을 수행하는 일을 아담에게만 맡기지 않으시고 남자와 여자를 통해 세워진 결혼 제도 속에서 이루기를 원하셨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하여 성취하고자 하시는 구원의 계획을 가장 유효하게 완수하는 제도이다.
독신(獨身)이라는 특별한 은사를 소유한 사람이라면 결혼하지 않는 것이 맞지만, 사실상 독신의 은사를 가진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에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결혼을 해야 한다. 이유없이 결혼을 지체하거나 아예 결혼하지 않고 살려고 작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다.
가정, 교회의 기초
무엇보다도 혼자 사는 시대는 교회의 기초를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교회의 최소단위는 가정이다. 가정은 보이는 교회의 기초적인 단위이다. 우리(고신 총회) 헌법은 교회정치 제12조에서 개체교회를 설명하면서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자들과 그 언약의 자녀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가정이 교회의 최소단위인 것이다. 그리고 이 가정은 결혼을 통해서 세워진다.
특히 우리교회의 신앙고백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4장 2항은 “결혼은 남편과 아내가 서로 돕기 위해서, 합법적인 방식을 통한 인류의 번성과 거룩한 자손들을 통한 교회의 확장을 위해서, 그리고 부정(不貞)을 막기 위해서 제정되었다”라고 설명한다. 이 중에서 우리가 특히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교회의 확장을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결혼을 통해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확장시키신다. 전도보다 더 선행되어야 할 것이 결혼이다.
이런 점에서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그래서 가정을 이루지 않으려는 세태가 확산되어서 그것이 마침내 교회 안에까지 침투해 버린다면 교회는 영속하지 못할 수 있다.
개개인에게, 특히 미혼 청년 그리스도인에게
1인 가구의 등장과 확산이 ‘사회적’인 면에서 있어서는 거스르기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지만, 사회적인 현상이 성경적인 현상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결혼은 우리의 필요에 의해서 하고 말고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취업이 안된다고, 먹고 살기 힘들다고 거절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 특히 미혼 청년 그리스도인은 사회현상의 영향이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아야 한다. 독신의 은사가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합당한 이유없이 결혼을 지체하는 것, 자발적 독신(celibacy), 사회현상과 더불어 결혼에 대해 아예 포기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139)
교회에게
교회는 미혼청년의 결혼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결혼은 개인의 일이 아니라 교회의 일이다. 이것은 우리 장로교의 신앙고백에서 가르치는 바이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사유로 결혼하지 못한 청년들을 무능함의 눈초리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들이 결혼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도움을 베풀어야 한다. 그리고 오늘날 1인 가구의 등장과 확산이 성경적인 가르침에서 벗어난 것임을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이미 결혼한 장년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결혼의 단점들을 부각시키려고 하기보다는 결혼의 아름다움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특히 교회의 지도자인 목사와 장로, 그리고 집사들은 부부생활의 모범을 보여야 하고, 미혼자로 하여금 그 모범을 보고 배울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결어
세상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교회의 존립을 위협한다. 오늘날에는 1인 가구의 등장으로 대표되는 ‘가족’개념의 변질이라는 방식이 아닐까 생각된다. 세상은 ‘1인 가구’라는 말보다 ‘싱글리즘’(Singlism)이라는 좀 더 고상한 표현으로 그 현상을 미화(美化)시키려고 한다. 1인 가구의 증가가 가족의 해체나 공동체를 붕괴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족에서 개인으로 단위가 이동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더 이상 가족이 범주가 아니라 개인이 범주라고 말한다. 이러한 위협 앞에 교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더욱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