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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획기사는 '교황방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시아 국가로는 최초로 한국을 방문(8월 14-18일)합니다. 교황의 방문으로 인해 천주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교황의 방문이 새로운 복음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교황방문을 계기로 천주교의 교리와 생활에 대해 알아보는 계기로 삼고자 합니다. - 편집위원장


※ 본 내용은 필자 황대우 목사가 「생명나무」에 기고한 글의 원고를 「생명나무」의 허락을 받아 편집 후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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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대우 목사
고신대학교 교수
개혁주의학술원 책임연구원

‘개신교’ 즉 ‘프로테스탄트 처치’(Protestant Church) 혹은 ‘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tism)의 시작은 종교개혁의 시대인 16세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개신교의 탄생을 16세기라고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개신교 탄생은 기독교 탄생 시대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리스도께서 친히 세우신 그리스도의 교회를 의미하며 그리스도의 교회는 1세기에,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과 더불어 탄생했다.

요즘은 ‘개신교’가 교회 역사를 논할 때 ‘개신교’라는 용어보다는 ‘기독교’ 즉 ‘크리스텐돔’(Christendom) 혹은 ‘크리스처니티’(Christianity)라는 용어를 선호하는 반면에 천주교는 자신들을 ‘[로마] 가톨릭교회’([Roman] Catholic Church)라 부르기를 선호한다. 따라서 오늘날 천주교는 ‘가톨릭’으로, 개신교는 ‘기독교’로 호칭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현상은 누가 조작하거나 의도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것은 역사적으로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요, 아이러니가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16세기에는 개신교를 기독교의 한 분파, 그것도 이단적인 분파로 규정하고 정죄했던 천주교가 오늘날에는 자신의 명칭을 스스로 ‘가톨릭교회’와 ‘카톨릭주의’(Catholicism)로 한정함으로써 기독교 분파임을 자인하는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과연 개신교는 천주교에서 분리된 교회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16세기에 종교개혁이라는 것이 왜 일어나게 되었고 그 시대 상황이 어떠했으며 또한 종교개혁이 어떻게 정의되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교회 분리’라는 용어가 어떻게 정의되고 적용되는 것이 정당한지도 알아야 한다.

종교개혁은 천주교의 교리적 부패와 제도적 윤리적 타락을 타파하기 위해 성경의 원리로 돌아가는 운동이었다. 종교개혁의 발생을 크게 두 근원으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하나는 독일 비텐베르크의 루터이고 다른 하나는 스위스 취리히의 츠빙글리이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천주교의 비성경적인 기독교 교리를 개혁하는 일에 주력했다면 츠빙글리의 종교개혁은 천주교의 비성경적인 기독교 관습과 제도를 개혁하는 일에 주력했다. 그리고 이 둘은 동전의 양면처럼 종교개혁의 가장 중요한 핵심 내용이 되었다.

루터의 교리적 개혁이든 츠빙글리의 제도적 개혁이든 당시 천주교 입장에서는 그 개혁의 화살이 자신들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불쾌할 수밖에 없었다. 이 불쾌한 개혁의 불씨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교황청은 자신이 가진 막강한 권력의 칼을 사용하여 루터를 출교, 즉 파문하는 특단의 조처를 취했다. 루터는 교황으로부터만 파문을 당한 것이 아니라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부터도 파문을 당했던 것이다. 이러한 파문이 의미하는 것은 루터뿐만 아니라 그의 사상에 동조하는 모든 사람들도 루터와 동일한 운명에 처해질 것이라는 경고이기도 했다.

이런 경고에도 불구하고 루터를 따르는 사람들은 헤아릴 수 없이 급속도록 증가했다. 루터가 개혁을 단행한 독일 작센 지역은 그 땅 주인인 1인 통치자에 의해 통치되었던 반면에 츠빙글리의 도시 취리히는 1인의 주인에게 귀속되지 않는 자유제국도시로 분류되어 도시민들이 매년 투표로 뽑은 시장과 시의회 의원들에 의해 통치되었다. 작센처럼 1인의 주인이 다스리는 독재적 통치 지역은 그 통치자 1인의 종교가 그 지역 전체의 종교였던 반면에, 자유제국도시와 같은 곳은 시민들이 뽑은 시의원들로 구성된 시의회가 그 도시의 종교를 결정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비텐베르크의 루터가 자신이 속한 지역인 작센의 통치자 선제후 프리드리히의 지지를 받지 않고서는 그 지역의 종교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어렵고, 취리히의 츠빙글리가 시의회의 지지를 받지 않고서는 결코 그 도시를 개혁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당시 사회와 국가 및 정부가 교회와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지를 모른다면 종교개혁에 대해, 그리고 그 시대에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기 보다는 오해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이런 오해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제네바에서 반삼위일체론자 세르베투스가 처형된 사건이다. 흔히 이 사건은 칼빈이 세르베투스를 죽였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16세기가 ‘정교일치’(政敎一致)의 시대였다는 점을 알기만 해도 ‘칼빈이 세르베투스를 죽였다’는 말이 오해를 넘어서 얼마나 심각한 역사적 왜곡인지를 쉽게 분별할 수 있다. ‘정교일치’란 모든 교회문제가 곧 사회국가적인 문제로 다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예를 들면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반삼위일체론자를 국가의 반역죄와 동등한 최고 형벌로 처벌했다.

당시 칼빈은 제네바 시민권자도 아니었기 때문에 심지어 투표권조차도 없었고, 혹여 시민이었다 해도 그가 시의회 의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떤 실제적인 권력도 행사할 수 없었다. 자유정부도시였던 제네바 시의 처형권은 칼빈의 지위와 어떤 연관도 없는 시의회와 4명의 시장의 손에 있었다. 그리고 시의회와 4명의 시장은 당시 정교일치의 관행에 따라 세르베투스에게 최고 형벌인 화형을 선고했을 뿐이다. 오히려 제네바 시는 그를 처형하기 전에 주변 종교개혁도시들에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을지 자문을 구할 정도로 종교적 독단이 아닌 아량(雅量)을 보였다.

16세기에는 종교개혁자 루터가 천주교에 의해 이단자로 정죄되고 파문됨으로써 천주교 입장에서 보면 종교개혁은 종교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이단사상이었던 것이다. 사실 정치적으로 루터는 1521년에 로마제국의 황제 칼 5세로부터 파문되었다. 이런 파문에도 불구하고 루터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루터의 도시 비텐베르크가 독일의 작센 지역에 속했고 그 지역의 실제적인 주인 프리드리히가 자신의 선제후 권력으로 루터를 보호했기 때문이다.

황제 칼 5세는 종이호랑이에 불과했던 황제의 자리를 강력한 중앙통제권을 가진 명실상부한 자리로 회복하기 위해 교황과 공조하여 고군분투했으나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제국 내적으로는 독일의 여러 지역 통치자들이 종교개혁을 지지하고 저항하였으며, 외적으로는 터키의 공격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교황주의적인 칼 5세 황제에게 저항한 사람들에게 붙여진 이름이 바로 ‘저항자들’을 의미하는 ‘프로테스탄테스’(protestantes)이고 이 이름에서 개신교라는 명칭이 유래했다.

교황은 루터를 파문하고 종교개혁자들의 모든 저술들을 금서목록에 올린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결국 자신의 권위로 이탈리아 트렌트(Trento)에 교회회의(1545-1563)를 소집하여 종교개혁의 모든 사상을 이단으로 정죄했다. 1530년대 말과 1540년대 초만 해도 천주교와 개신교 양측은 모두 연합의 가능성을 추구했으나 트렌트 회의가 끝난 1563년에는 그 연합의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져버렸고 개신교와 천주교는 확실하게 분리되었다.

천주교와 개신교, 개신교와 천주교 사이의 이 분리는 과연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 만일 개신교가 반성경적 이단이라면 그 분리의 책임은 당연히 개신교가 져야할 것이다. 하지만 개신교에 대한 천주교의 이단 규정은 성경적 교리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자신들의 전통과 관습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원인무효다. 그렇다면 이단이 아닌 개인과 집단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처벌한 개인과 집단이 분리의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런 점에서 교회 분리와 분열에 관한 칼빈의 판단은 정당하다. 칼빈은 교회 분열을 가장 심각한 죄악으로 인식했다. 왜냐하면 그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정의했기 때문이다. 칼빈에 따르면 교회에 분리와 분열을 조장하는 행위는 곧 그리스도의 몸을 찢는 행위이다. 따라서 그는 교회의 분리와 분열을 일삼는 죄를 신성모독 죄와 같은 것으로 보았다.

칼빈은 교회분리주의자들을 두 종류로 구분했는데, 하나는 교황주의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재세례파이다. 칼빈이 보기에 후자인 재세례파는 기존 교회를 거룩한 집단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거룩한 교회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스스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떠났기 때문에 분리주의자들이 되었다. 반면에 교황주의자들은 자신의 손에 쥐어진 권력의 칼을 남용하여 성경적인 교리를 가르치는 종교개혁가들과 이들의 추종자들을 그리스도의 몸인 기존 교회로부터 잘라내었기 때문에 분리주의자들이 되었다.

그렇다면 진정 개신교와 천주교, 천주교와 개신교라는 두 집단을 분리시킨 주체는 누구인가? 개신교인가, 천주교인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분리시킨 장본인은 개신교가 아니라 천주교이다. 굳이 칼빈의 견해를 들먹이지 않아도 16세기 교회 분리와 분열을 책임져야 할 범인은 개신교가 아니라 바로 천주교라는 사실이 분명하고 확실하다. 천주교가 전적으로 교회 분리의 책임을 져야한다면 교회의 교리적 정통성은 천주교가 아닌 개신교에게 있는 것이다.

종교개혁을 통해 교회의 정통성, 즉 장자의 명분은 개신교의 손에 넘어온 것이며 더 이상 천주교의 것이라 볼 수 없다. 마치 에서와 야곱의 관계처럼!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결코 분리주의자들이 아니다. 오히려 권력을 남용한 당시 로마가톨릭교도들이 교회 분열의 주범이다. 교회의 정통성에서 많이 벗어난 로마가톨릭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돌아가자!’ 라고 외쳤던 종교개혁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오히려 황제의 힘까지 빌려 그들을 이단으로 정죄한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고 반성하면서 개신교에 용서를 구해야 할 입장이다. 종교개혁이란 그리스도의 교회에는 교황과 같은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가 존재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교회의 머리이심을 성경으로 증명한 사건이다.

만일 교황이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라는 교황주의를 천주교가 포기함으로써 백기를 들고 개신교에 투항하여 교리적 항복을 선언한다면 ‘기독교’라는 장자의 명분을 가진 개신교는 기꺼이 그들을 형제로 받고 환영할 것이다. 교회 분열이라는 점에서 볼 때 종교개혁자들은 분리주의 우파인 천주교와 분리주의 좌파인 재세례파 사이에서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 역사의 정통성이라는 중도(via media)를 걸어갔고, 그들의 후손인 우리는 지금도 그 순례의 길을 기쁘고도 자랑스럽게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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