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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획기사는 '설교'입니다. '설교하지 마'라는 말처럼 설교가 희화화된 시대입니다. 목사들은 설교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설교에 목숨을 걸라'는 말마저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웃긴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현대 신자들도 목사의 설교에 그다지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설교여야 합니까? 지금도 여전히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일 수 있을까요? - 편집위원장


※ 아래 글은 필자 이세령 목사가 SFC 총동문회에서 발행하는 「개혁신앙」 7월호에 실린 글의 원고를 「개혁신앙」의 허락을 받아 편집 후 게재한 것입니다. -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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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령 목사
농생모교회 설교목사
코람데오닷컴 편집위원

설교 토론의 경험

필자가 남서울 노회의 한 교회에서 목회하던 시절, 당회에서 설교토론을 가졌었다. 목회가 어떤 것이며, 교회를 세워간다는 것이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 다 알지 못하지만, 현재 존재하는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면서, 그리고 성도들을 심방하고 조직을 관리하고 또한 더 부흥되기를 바라면서 지냈던 시절이었다. 또한 개혁파 교회의 전통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면 현재의 유불리를 떠나서 실천해 보려고 노력하였다.

당시 당회에서 설교토론을 하는 시간에는 격려도 있었고 적절한 교회의 필요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도 했고 또한 여러 방면에서 설교에 대한 교정 권면과 심지어는 책망도 있었다. 당시 나는 30대 중반을 넘긴 나이로 담임목사직을 수행하고 있었고, 50대 후반의 당회원 5명, 그보다 조금 젊은 당회원들과 함께 당회를 구성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주일 예배 때 철저한 주해로부터 현실의 역사 인식과 교회의 필요를 아우르는 설교를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인식하지 못하는 젊은 목회자의 설교는 청중을 만족시키기 힘들었다. 거기에 잘 준비되지 못한 설교에서 나오는 전형적인 특징들인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 아니면 성경 이야기에만 충실하는 것, 즉 삶의 조망이나 적용이 없는 설교가 전개되었다.

이런 가운데 때론 격려도 있었지만 많은 경우 비판과 지적, 혹은 한계에 대한 안타까움이 노정되었다. 여기에 논리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감정적인 말들이 오갈 때도 있었다. 개인의 의견을 인정받기 위한 과도한 의사 표시로서 설교에 대한 논의 참여는 정말 큰 문제였다. 교회를 위해서 재정적으로 기여하는 직분자에게 있어서 때론 자신의 섬김이 인정되는 관점인가 아닌가가 설교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결국 설교토론이 이런 방식으로 흘러가면서 제대로 된 의미를 살리지 못하게 되었다.

당시의 자신을 회상해보면 청년 시절부터 성경공부를 열심히 한 덕분에 어떤 사안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는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부분들을 설교할 때 청중들, 특별히 젊은 청중들은 많은 도움을 받는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설교가 교회에서 가지는 실제적인 위치, 또한 설교 토론에서 전제되어야 할 목회적 위치와 당회원들과의 관계 등이 제대로 고려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설교에 대해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으면서도 목사의 설교에 대한 당회의 논의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때 일부 장로들은 설교를 잘한다는 관점보다는 미숙하지만 남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한다는 다른 관점의 평가를 해주어서 격려가 되기도 하였다.

이제 이런 과거 필자의 경험은 그렇게 나쁘지도 좋지도 않다. 이후 유럽의 이민교회에서의 목회에서는 당회에서 설교 토론을 공적으로 하지는 않았다. 단지 심방을 통해서 설교에 대한 나눔을 가졌다. 당회원들, 교인들과 나눔을 가지면서 자신의 설교가 어떤 의미인지 파악하려고 노력을 했다. 당회에서 토론과 나눔을 가지지 않았던 것은 개별적 나눔으로 대체했기 때문인 것 같다. 혹 공적인 부정적인 평가를 두려워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설교 토론에서 전제되어야 할 몇 가지 요소들 

우선, 목사의 설교 행위 자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설교는 성경의 특정 본문을 근거로 제시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를 교회와 성도들의 현실을 잘 조명하여 복음의 능력과 위로가 죄와 그 영향력을 제거하고 반대로 하나님 나라의 의를 증진시키는 행위이다. 여기서 설교는 본문에 대한 철저한 주해와 해석을 통한 명쾌한 핵심 개념이 등장해야 하고, 또한 현실을 분석 통합하는 작업이 필요하고 본문의 명확한 개념과 현실이 만나서 변화를 요구하고 일으키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둘째는 목사의 설교 행위의 권위가 어디서부터 오는가의 문제이다. 장로교회는 목사가 노회에 속했고, 회중의 청빙 절차를 받아서 노회가 위임을 한다. 노회의 위임을 받아서 한 온전한 지역교회를 치리함에 있어서 당회에서 치리를 시행한다. 노회의 위임이 당회를 통해서 실현된다. 그렇기 때문에 목사의 목회 행위는 항상 당회와 노회의 영역에 속한다. 이런 관계를 초월한 목사의 독립된 목회 행위는 한 구석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어떤 목회 행위도 당회의 관찰에 속하지 않는 영역이 존재할 수 있는가? 따라서 평생 위임의 형식을 가진 장로교회의 경우라 할지라도 당회를 통해서 설교를 포함한 모든 목사의 목회 행위가 진행된다. 따라서 당회는 목사에게 위임된 대로 목회 행위와 설교를 하고 있는지 감독해야 하는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있다. 장로교회에 있어 목사가 당회를 배제한 채로 주어진 독립된 권위가 하나도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설교 행위도 마찬가지이다. 당회는 교회를 세우고 건덕에 유익한 설교 행위가 되도록 목사의 설교를 격려하고 방향을 나누고 제시하고 먼저 실천하는 구성원들이 되고, 또한 설교가 성도들의 삶에서 어떤 결과로 나타나고 있는지를 반영해 줌으로 목사에게 평가의 기회를 주도록 해야 한다. 

셋째는 당회에 대한 이해이다. 장로교회의 당회는 치리회이다. 감독하고 다스리는 기관이다. 물론 섬김에서 나오는 다스림이다. 여기서 당회원들의 섬김에서 나오는 다스림의 구체적인 표현은 성도들의 영적인 삶에 대한 살핌에서 온다. 즉 심방이다. 문제는 심방을 통해서 구현된 내용이다. 심방이 단순한 만남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당회를 통해서 위임된 목사가 선포하는 그 말씀이 교회가 가진 교리적인 표준을 따라서 균형 있게 전파되는지를 살피고, 선포된 말씀이 성도들에게 잘 이해되는지, 또한 개인과 가정과 직장 그리고 사회 속에서 실천되는지를 살피는 역할을 당회가 하기 위해서 심방을 한다. 심방은 목사만이 하는 목회 행위가 아니다. 모든 당회원들이 해야 하는 본질적 행위이다. 많이 하느냐 풀타임 사역자처럼 언제든지 하느냐의 문제는 빈도수의 경우에서 차이점이 있을 수가 있으나 심방을 하는 당회원이어야 한다. 목회적 돌봄으로서 심방을 하지 않는 장로들이 설교 토론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결국 영적인 돌봄의 차원보다는 개인적 선호도에 대한 평가와 비평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는 장로에 대한 이해가 있다. 일반적으로 칼빈이 『기독교 강요』에서 장로를 두 종류로 구별한 것이 많이 통용된다. 가르치는 장로와 다스리는 장로이다. 딤전 5:17을 근거로 한 것이다. “다스리는 장로를 배나 존경하라”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를 더욱 존경하라”고 해석하는 것은 번역의 잘못으로 나온 것이다. 다스리는 장로를 배나 존경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말씀과 교리적 가르침을 가지고 수고하기 때문이라고 번역된다. 주변에 종이 주인을 존경해야 함을 말한다(딤전6:1). 따라서 배나 존경해야 함은 장로들의 수고에 주어지는데, 근거는 복음의 가르침과 교리에 근거해서 다스리기 때문이다. 이것을 근거로 살필 때 다스리는 장로와 가르치는 장로라는 구별의 성경적 근거는 설 자리가 없게 된다. 단지 목사는 장로들 중에 하나로서 장로의 회인 당회가 선택해서 그 교회를 목양하도록 소양이 되는 자를 선택한 것이다. 물론 노회를 통해서 자격이 주어지고 노회적인 차원에서 선택된 것이다. 여기서 목사와 장로의 구별은 의미가 없다. 목사만이 목회자가 아니라, 장로들도 복음의 말씀과 교리로 무장하여 성도들의 삶을 다스리는 목회자라는 말이다. 말씀과 교리는 바로 강단에서 선포되는 설교와 교리를 말한다. 이것을 가지고 삶을 구체적으로 조명하는 역할을 하는 장로 목회자가 하는 행위가 심방이고 감독이다. 따라서 설교를 판단하고 설교에 대한 반응을 모니터하고 실제적인 교회의 삶과 성도들의 삶에 미치는 결과를 살피는 최종적인 책임을 당회가 가지고 있다. 이것이 설교 토론의 원칙적인 근거가 된다.

설교 토론에 전제되어야 할 요소들을 고려하면서 설교 토론의 핵심이 무엇인지 정리해보면 이렇다. 먼저 “설교가 복음의 교리적 순수함을 유지하는가?” 두 번째는 “청중의 진정한 필요에 적합한 설교인가?” 세 번째는 “설교가 성도들이 삶에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피드백의 확인이다. 네 번째는 “설교자가 당회와 어떤 관계를 맺어가는가?” 하는 목회적 참조점이다. 

설교 토론을 할 때 한국적인 상황에서 고려되어야 할 실제적인 요소들 

앞서 언급한 설교 토론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적 전제 요소들을 고려하면 한국적인 상황과 괴리현상이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설교자가 설교를 이해하는 태도, 목회적 행위로써 설교가 가진 의미 이해, 당회의 위임으로써 목회 이해 등 설교자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나아가 당회와 당회원들의 인식 변화와 실천도 중요하다. 정말 “말씀과 가르침으로 성도들을 돌아보는 당회원들인가” 라는 스스로의 질문이 있어야 하겠다. 당회의 설교 토론이 당회원들의 심방과 함께 행해져야 하는 이유는 당회의 다스림을 완성하기 위해서이다. 즉 치리가 성립하기 위해서이다.

교회가 영적인 기관으로서 감당해야 할 것은 복음을 선포함으로 사죄의 은혜를 나타내고 삶의 현장인 다양한 영역에서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도록 요청하는 일이다. 여기서 부정과 긍정의 두 요소가 있다. 부정은 죄를 드러내는 일이다. 긍정은 의를 증진한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죄를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방식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죄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루는 것을 권징이라고 한다. 성도들이 은혜의 복음에 합당하지 못한 행동들을 했을 때 유효하게 복음이 적용되도록 권징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성도들의 삶과 행위를 어떻게 아는가? 바로 장로들의 심방을 통해서 안다. 주일예배에 왜 빠졌는지, 아니면 가정에서 부부의 삶이 원만하지, 자녀 양육을 말씀에 기초해서 시행하는지를 어떻게 아는가? 심방을 통해서 안다.

심방이 없으면 권징도 없다. 죄를 드러내는 일에 한국교회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왜 죄를 드러내야 하는가? 죄로부터 사함을 받았기 때문이다. 구원파와 같이 한번 구원받았기에 죄는 안 건드려도 된다고, 개인이 해결할 문제라고 치부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 당회원들의 심방이라는 목회적 행위는 성도들의 삶이 은혜로 살도록 확인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죄를 잘라내고 의를 위한 헌신된 삶으로 인도하는 것이 심방이고 그리고 목사의 설교가 이런 일에 기여하도록 확인하는 작업이 설교의 토론이다.

토론은 논쟁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논쟁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 모니터링과 격려, 그리고 방향의 나눔, 또한 당회원 자신들 스스로 말씀 안에서의 나눔의 교제의 장이다. 당회가 다루는 안건들이 설교에서 전해진 복음의 가치를 담고 있는지의 평가도 된다. 한국 사회는 토론 문화에 성숙하지 못하다. 남의 입장을 듣는 것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반대로 자기의 입장을 과도하게 주장하기도 한다. 한국교회의 당회원들에게 이런 성숙함이 결여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에 어떻게 설교 토론을 할 수 있을까? 어려운 문제이다. 설교 토론이 일방적인 설교에 대한 비난이 되고, 이것이 목사의 말씀의 권위를 짓밟는 수단이 될 가능성이 많다.

또한 당회의 나눔이 비밀로서 유지가 잘 되는가의 문제도 있다. 당회에서 나눈 이야기가 부인들을 통해서 온 교회에 소문으로 급속히 확산되는 경우가 많다. 당회에서 논의되는 이야기가 결정 공포도 되기 전에 진행된 일련의 과정으로 교회가 소용돌이에 휩싸이는 안건들도 많다. 목사의 설교문제는 교회를 고통스럽게 만들 수도 있다. 목사도 성숙해 가는 과정에 놓여 있을 수 있다. 부족한 부분들이 있다는 의미이다. 그럴 때 당회원들 내부에서 조심스럽게 지적되고 발전되어야 할 요소들이 건덕을 위한 비밀이 유지되지 않은 채 노출되는 것은 설교의 토론을 막는 중요한 요인들이다.

나가면서

설교 토론을 고려하면서 한국적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사가 권위주의적 자세를 버리는 것과 장로들이 성도들을 돌보는 영적인 다스림에 충실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설교토론이 교회를 영적으로 복음 위에 세우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다르게 표현하면 설교토론이 치리적 행위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 당회가 집사회나 제직회에 맡겨도 되는 재정 건에(재산권이 아니라 경상비에 해당하는) 관한 사항을 결정하는 일에 온 힘을 쏟고, 단순한 행정과 조직관리에 시간을 소모한다면 이는 영적인 감독의 의미가 상실하는 기초가 된다. 가능하면 사람에 집중하고, 그 결과로 오는 영적인 감독에 집중하는 당회가 되어야 한다. 설교 토론이 가져야 할 본질적인 요소와 현실적인 괴리 현상을 잘 고려하면서 시도될 때 건강한 교회, 바른 교회를 세워가는 일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이세령 목사 / 고려대학교 SFC 79학번으로 82년 전국 SFC 위원장으로 섬겼다. 고려신학대학원 졸업 후 SFC 간사로 섬겼으며, 이후 일원동교회와 네덜란드 로테르담 사랑의교회 담임목사로 섬겼다. 현재 코람데오닷컴 편집위원으로 있으면서 농생모교회 설교목사로 봉사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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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을 떠날 때인가?
성찬은 오히려 우리의 육체성 때문...
더 나은 가정 심방을 위한 제안
가정 예배: 청교도로부터 배우기(2)
가정 예배: 청교도로부터 배우기 (1)
우리는 실천적 아르미니우스주의자...
기고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읽기 3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읽기 2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읽기 1 (이...
믿음이 싹트고 자라며 열매 맺는 은...
케임브리지와 바젤에서 바라본 로테...
고신은 개혁할 것들이 보이지 않는가?
[고신교회 70주년에 즈음하여 7] 고...
[고신교회 70주년에 즈음하여 6] 고...
[고신교회 70주년에 즈음하여 5]  ...
[고신교회 70주년에 즈음하여 4] 고...
논문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교회 위협세...
바른 교리와 이단 개론: 이단의 뿌...
고신교회 제7차 헌법개정의 방향과 ...
뇌과학이 본 인간 이해 (박해정 교수)
인공지능기술의 현황과 전망 (김상...
현대생물학과 하나님의 창조 (박치...
빅뱅 천문학과 하나님의 창조 (성영...
고통의 신약적 이해
고통의 신학적 의미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미래목회 (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