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을 환영합니다.
최종편집
기획기사
최재호.jpg



최재호
실로암교회
전 뉴스앤조이 기자

1. 들어가는 말

오늘날 한국교회에 과연 진정한 의미의 개혁교회(교단), 혹은 장로교회(교단)가[1] 존재할까. 개혁(장로)교회라는 간판은 내걸었지만, ‘교회성장’이라는 절대가치 앞에 모든 개혁(장로)교회의 원리와 신앙고백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 솔직한 한국 개혁(장로)교회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16~17세기 교회개혁자들이 목숨을 걸고 회복했던 성경의 원리, 선지자와 사도들의 가르침을 체계화한 신앙고백과 교리들을, 우리시대 개혁신앙을 천명(闡明)하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소중하게 상속받아 보존하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하나님 절대주권, 예정과 섭리, 언약 신앙을 고백한다는 개혁주의 교단들이 초신자에게 ‘4영리 영접기도’를 하게하고, 찰스 피니(Charles Finney)식 강단초청 방식의 결단기도를 도입하며, 수천 명의 장병들에게 베푸는 진중세례식을 교단 행사로 앞 다투어 정례화하고 있다. 계시의 종결을 고백한다는 임직서약을 하고도 방언과 예언기도를 권장하며, 교회성장을 위한 비법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또 어디서든 도입해 올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부끄럽고 안타까운 한국 개혁주의 교단들의 실상이다. 

고려신학대학원이나 총신대학원에서 개혁신학을 배우는 신학생들이 방학이면 여의도순복음교회(조용기 원로목사), 수원흰돌산수양원(윤석전 목사), 청교도영성훈련원(전광훈 목사) 등을 찾아가 ‘개혁주의에서 부족한 영빨(?)을 채우는’ 행태는, 언제부터인가 낯선 광경이 아니다. 개혁신앙과 신학을 내세우며 3일치 신조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및 <대소교리문답>을 고백한다면서, 교단의 신학적 스펙트럼은 너무도 다양하여 개인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오직 성경과 전체 성경’을 목숨처럼 신봉(信奉)한다는 개혁(장로)교회가 ‘계시신학과 오직 성경만을 전한다’는[2] 신천지 이단의 추수꾼들이 자신들의 교회로 들어올까 봐 벌벌 떨고 있는 현실은 또 어찌 해석해야 하는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 여러 가지 원인과 그에 따른 진단이 있을 수 있겠지만, 크게 ‘신학교와 기독언론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주지하는대로 원리적으로는 교회에서 내적·외적소명을 확인받은 이를 당회가 노회에 추천하고, 이를 확인한 노회의 요청에 의해 신학교에서 교육을 위탁받아 목사후보생들의 자질과 소양을 키우고 연마시켜 그들을 부른 교회로 돌려보낸다. 또 교회 현장에서 그때그때 신학적 해석이 필요하거나 해석을 요청받는 경우, 신학자들이 적절하게 연구하고 진단하여 교회를 세워간다.[3] 물론 이때 교회는 교단의 신학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교회의 신학과 신앙을 지켜가는 일에 힘써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에 있어서 혹시 잘못되거나, 지나치거나 부족한 부분 등 공교회가 알아야 할 기도 제목들이 나타나면, 기독언론은 즉각 이를 보도하는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덧붙여 언론의 감시와 대안제시 기능도 필수적이라고 본다. 교회가 교회로서의 길을 벗어나지 않는지 살피고, 바른 길로 되돌아오도록 신학과 언론이 함께 그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시대 한국교회의 위기 혹은 연약함은 바로 이들 기관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 이 자리에서는 두 기관 중 ‘진리수호와 개혁교회 건설을 지향하는’ 기독언론, 특히  <개혁정론>의 역할과 그 과제에 대해 집중하여 생각해보고자 한다.


2. 개혁교회의 언론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2.1 개혁신학의 수호 및 감시

모든 언론사는 사시(社是: 회사나 결사(結社)의 주된 경영 방침이나 주장)를 내세우고 있다.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교회의 언론들도 예외가 아니다. 예장 합동의 <기독신문>은 ‘개혁신앙의 보수, 교회의 단결, 성도의 교제’를 예장 고신의 <기독교보>는 ‘개혁신앙의 전통 수호, 교단 화합의 초석, 순수복음의 확산’, 예장 합신의 <기독교개혁신보>의 경우 ‘역사적 전통적 개혁신학 제시, 역동적 교회의 방향성 제시, 교회의 시대적 사명 제시’를 사시로 내걸었다. 이들 언론사들의 공통점을 추려보면, 개혁신학(앙) 수호, 교회의 연합,[4] 복음전파 등이라 할 수 있겠다. 

여기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개혁신앙(학)의 보수 혹은 수호’가 첫째라는 점이다. 이것은 교회언론의 존재 목적이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일인 신학(앙)적 정체성에 대한 감시와 협력에 있다는 말이 된다. (개혁)교회를 (개혁)교회답게 하는 일은 그런 의미에서 신학교와 교회언론에게 동일하게 부여된 역할이라 할 수 있다. 신학교가 교회의 신학인 개혁신학을 전달하고 수호하며 해석하고 진단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하면, 교회 언론은 그러한 과정에서 문제점들을 찾고 발굴하여 신학교에 의뢰하며, 해석된 내용을 교회에 전하고 살피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지난 2005년 6월 고신선교 50주년기념으로 열린 <세계선교대회>[5] 참석차 일시 귀국한 몇몇 선교사들은 이구동성으로 “개혁신학은 선교지에서 맞지 않다. 선교지에서는 오순절 신학이 잘 맞는다. 이제 우리 교단도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했다. 당시 필자는 자유토론 시간에 기자가 아닌, 고신인의 한사람으로서 현장 발언을 신청하고 “개혁신학이 가장 성경의 원리와 부합하고 조화되는 신학체계라고 서약한 고신의 목사선교사들이 어찌 이럴 수 있느냐. 상황논리에 따라 신학을 절충하고 변경해야 한다는 말인데, 성경대로 가르치고 믿는 개혁주의가 무엇이 잘못이냐”고 목소리 높였던 기억이 난다. 당시 이 행사는 여러 언론사의 기자들이 취재했으나 필자가 속했던 언론을 제외한 어떤 언론들도 이를 문제 삼거나 보도하지 않았다. 

이같은 맥락에서 예장 합신 <기독교개혁신보> 편집국장 송영찬 목사는 교단언론의 가장 큰 덕목을 묻는 질문에 “교단의 신학적 정체성을 끊임없이 개진하고 정착시켜 나가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교회언론인이라면 교회가 추구하는 신학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자신의 정치적 식견이나 호불호에 따라 자의적이고 충동적인 기사를 작성하거나, 비판을 하게 된다. 이렇게 작성된 기사들은 교단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매우 위험한 요소”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교회언론은 자의적으로-그것이 비록 정의감이든, 관습에서든, 진영논리에 의해서든 간에-보도해서는 안되며 교회의 신학에 의해 건전한 감시와 살핌을 통해 언론의 역할을 해나가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언론이 교회의 신학적 정체성을 지키고 살피는 일에 적극 나선 경우는 매우 드물거나 미약한 수준이다. 예를 들어 회중교회 전통에서 비롯된 제도인 ‘가정교회’를 지교회들이 도입한 일에 있어서 장로교회의 교단언론과 신학교가 얼마나 적절한 역할을 하였는지 의문이다. 예장 고신의 경우도 가정교회 제도[6]가 ‘장로교회 원리와 조직에 맞지 않는다’는 신학자들의 지적이 간간이 있었지만, 신학자들과 교회 언론이 얼마나 시의적절(時宜適切)하게 이 문제를 발굴해 논의하고 지적하며, 그 문제점을  알리는 일에 충실하였는지 의문이다. 

예장합동 교단지 <기독신문>의 한 중견기자는 “교단언론 종사자들과 독자들은 신학적 해석과 건전한 문제제기보다 눈앞의 정치적 이슈에 관심이 더 크다”면서 “(교단언론인들이) 교권주의자들의 정치적 욕심을 충족시키는데 치중하거나 이용당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말로 언론이 교권에 이용당하고 휘둘리는 것이 현실인 셈”이라고 말했다. 교권에 의해 교회언론이 길들여지거나 재갈 물려져 마땅히 지적하고 외칠 수가 없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라 여겨진다. 사실 힘 있는 교회, 힘 있는 목사가 하면 신학적 해석이나 문제제기도 생략되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위기를 가져온 단초가 되었음을 <개혁정론>은 기억해야 한다.

동시에 기억해야 할 것은 ‘교회의 유익’이다. 사실 이 문제는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주변에서 종종 ‘교회를 위해, 하나님을 위해’라는 말을 듣곤 하는데, 이 말을 자의적으로 이해하거나 경험적 혹은 합리적 접근을 할 경우, 실제로는 교회를 위험하게 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문제가 있지만, 교회의 화평(?)을 위해 침묵하거나, 건덕을 위해 덮어두라는 경우가 그러한 예다. 좀 더 그럴 듯한 말로는 “지금은 덮어두라. 중병에 걸린 환자(교회)를 수술대에 올리기 보다는, 외상을 덮고 회복할 힘을 길러준 뒤 추후에 바로잡으면 된다”거나 “어머니의 치부(恥部)를 어찌 세상에 드러내고 지적할 수 있느냐”고도 한다.[7] 하지만 이는 명백한 잘못으로 참교회의 표지인 권징의 목적을 오해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8] 

지난 2005년 10월 경 그리스도의교회 교단[9]에 속한 대구의 어떤 교회를 취재한 경험이 있다. 경북대학교 인근에 소재해 100여명 남짓한 교세의 이 교회는 객관적 수치로 보아 매우 ‘건강한 교회’로, 한국NCD(자연적교회성장) 공인 ‘세계에서 가장 건강한 교회’로 선정되기도 했다. 여러 기독언론 매체를 통해 부산의 ㅍ교회와 함께 매우 이상적이고 좋은(?) 교회로 잘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몇몇 교인들로부터 제보가 있어 취재가 시작되면서 알게 된 ‘세계에서 가장 건강한’ 교회의 맨 얼굴은 경악스러웠다. 이 교회를 담임하는 이 아무개 목사는 젊은 여성교인들 여럿을 자신의 집에 숙식시키면서 밤마다 성(性) 노리개로 삼았고, 그녀들의 통장을 자신에게 맡기게 하고는 주식투자로 탕진하거나, 집과 자동차를 샀다고 한다. 

어처구니없게도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은, 목사가 설교와 성경공부시간에 자신의 말에 충성할 것을 가르쳤고, 소위 ‘모델화’혹은 ‘충성경쟁’을 시켜 교인들의 종교적 열심을 부추겼으며, 고분고분하지 않는 교인들에게는 표적설교를 하거나 교회에서 ‘왕따’시킨 때문이었다. 이러한 일이 잘못됐음을 깨달은 교인들 중 일부가 참다못해 교단(그리스도의교회교역자협의회)에 호소했지만, “목사가 그럴 리가 있느냐. 근거 없는 문제제기로 교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 계속 문제를 일으킬 경우 고소하겠다”는 으름장을 들어야만 했다. 

이 일이 기사를 통해 보도되자 많은 이들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기자와 신문사를 욕했다. ‘교회와 목사를 해치는 기자’, ‘황색 찌라시’, ‘동물의 사체를 찾아다니는 하이에나 같은 신문’이라고 나무랐다. 심지어 상당수의 기자들도 비난대열에 동참했다. 하지만 이 일이 3차례에 걸쳐 집중 보도되고 난 후의 변화는 달랐다. 2005년 10월 20일 게재된 기사를 그대로 인용한다.
 
‘...(전략) 해당 교회는 진리에 대해 바른 이해를 가지게 됐고[10] 교단은 권징을 통해 (목사의) 죄 문제를 다룰 예정으로 있으며, 몇몇 교계언론을 통해 왜곡된 사실들이 바로 잡아질 것으로 보인다. 교회의 영광이 가리워진 것이 아니라 찬탈 당했던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됐고, 거짓으로 덮혔던 진리와 진실이 드러나게 된 것이라 보여진다. 우선 사건에 대해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ㄲ교회가 소속한 그리스도의교회교역자협의회 측이 정식으로 조사위원들을 내고 이 문제를 다루게 됐다. 또 ㄲ교회에게 ‘세계에서 가장 건강한 교회’란 타이틀을 제공해 주었던 한국NCD 측이 “ㄲ교회에게 이용당했다”며 “바른 사실 관계를 밝히고, 이 문제에 도의적 책임이 있음을 교계에 사과하며, 앞으로 교회에 대한 건강 점수를 매기는 일들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겠다”고 밝혀왔다. 잘못된 교회를 모범 사례로 소개하며 이 목사를 전면에 띄워주었던 교계언론들도 뒤늦게 진상을 파악하며 이 목사 건을 다시 다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하략)’ 

 교회언론이 교회의 유익을 위해, 혹은 교회를 세우는 일의 요체(要諦)는 성경이 말하는 원리를 따르고 정당한 해석을 통해 인간의 타락한 본성적 판단이 교회를 그릇 판단하지 못하도록 돕는데 있다. 이를테면 교회언론에 의한 권징사역인 셈이다. 겉으로 사랑과 평화를 외치며 신학적, 윤리적 잘못을 외면하거나 침묵할 경우 교회는 더욱 진리에서 멀어지고,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그분의 진노의 심판을 초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개혁정론>은 교회의 상황을 살펴 참된 교회의 유익, 진정으로 교회를 바로 세우는 일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2.2 교회의 하나 됨(연합) 증진

교회언론의 두 번째 역할은 교회의 하나 됨을 유지하고 증진함에 있다. 이 일은 지교회들이 서로간의 소식과 필요를 나누고 기도제목을 전하며, 함께 격려하고 살피며 힘을 모아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로 서가는 것을 통해 이뤄진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교단언론들이 각 기관과 단체들이 언제, 어디에서 얼마나 모여 어떤 행사를 가졌다는 식의 겉핥기식 보도는 그 본연의 존재 목적에 상당히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한 기독언론의 역할은 그저 몇몇 교계인사나 기관들의 모임을 홍보해주는 그런 수준의 것이 아니란 말이다. 참된 계시의 중심인 그리스도께 들어가 진정한 하나 됨을 지향하는 가운데 교회가 당면한 문제를 짚고 해석해내며, 어려움을 나누어 분담하게 하고 함께 지어져 가는 하나님의 교회로 서로를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것이다.  
 
일례로 어느 교단의 한 노회에서 한 목사가 제명 처분을 받은 일이 있었다.[11] 해당 목사가 상담한 내용을 모 기독언론이 고정 연재했었는데, 음주, 주일성수, 십일조 등과 관련된 내용들이 문제의 발단이 됐다. 당시 적지 않은 교단 안팎의 인사들이 노회의 결정의 부당함을 지적하였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해당 노회는 이러한 문제제기에 눈도 꿈쩍하지 않았고, 끝내 목사 제명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그 후에 해당 목사가 목회하던 교회도 교단에서 제적당했다. 백번 양보해 목사의 신학사상에 문제가 있어서 제명을 한다고 해도, 담임목사의 신학사상으로 인해 그가 말씀 사역하던 교회까지 제적(除籍)을 당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목사가 ‘이단사상’으로 노회로부터 제명 처분을 받게 되면, 일반적인 경우 노회는 수습전권위원을 선임하고 파견해 교회를 접수하는 일이 뒤따라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이 일의 부당함을 <뉴스앤조이>를 비롯한 몇몇 기독언론들이 보도했고, 해당 교회도 노회는 물론 신학대학원 교수회와 총회, 교단지에까지 호소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심지어 교단언론은 이런 상황에 대해 단 한 줄의 언급조차 없었다.[12] 그리고 최근까지 해당 교단에 속한 몇몇 학자, 목사들은 해당 노회의 결정에 문제가 있었고,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한다.[13] 

그런데 이 일은 결코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 이같은 결정은 교회의 하나됨을 찢은 셈이며, 해당 목사의 신학사상에 문제가 없다면, 원리상 그들을 몸에서 떼어낸 노회와 교단이 이단이 되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교단의 유력한 신학자, 목사들이 그리 간단히 유감을 표하고 안타까워하는 수준에서 끝내서는 안 될 문제이다. 노회의 결정이 곧 교단 전체의 결정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해당 목사의 신학에 문제가 없다던 많은 교단인들은 다 이단 신학사상에 동조한 이가 되어 버린다. 

이 일에 책임이 있는 주체들이 많이 있지만 ‘교회의 하나 됨을 사시로 한다’던 해당 교단 언론의 역할은 매우 부적절했고, 자신들의 직무를 유기(遺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여기에서 새롭게 출범하는 <개혁정론>은 값진 교훈을 얻어야 하고, 교회의 하나 됨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정치적 목적이나 개인의 호불호에 따른 근거없는 음해나 교권의 횡포, 편견과 오해에서 비롯된 잘못된 판단으로 하나 됨에서 떨어진 자가 없는지 끊임없이 살펴야 한다. 반대로 성경의 가르침과 다른 주장을 하거나 이단사상을 가진 자, 개혁교회의 원리와 다른 주장을 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의 잘못과 위험성을 제대로 드러내고, 그래서 필요한 교회의 조치가 뒤따르도록 하는 것이 교회를 하나 되게 하는 기독언론의 제대로 된 역할일 것이다. 

2.3 복음전파의 역할

교회언론들이 자신들의 존재목적 혹은 존재의의로 세 번째로 내세운 것은 복음전파이다. 교회의 표지이자 본질적 사명인 (바른)말씀의 전파가 교회언론을 통해서 이뤄져야 한다는 말이다. 불신자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과 동시에 공의로운 심판을 전하는 것은 물론 필요하다. 동시에 세상을 성경을 통해 재해석하고 알리는 작업도 필요하다. 

하지만 <개혁정론>의 역할과 연관해 더욱 무겁게 접근해야 할 대목은 한국교회의 이른바 값싼 복음, 왜곡된 복음, 가려진 진리를 바르게 드러내고 바로 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신학교 강단과 현장의 강대상과의 거리는 멀기만 하고, 강의실에서 전해지는 개혁신학과 현장의 ‘현실신학’, ‘그래도신학’은 너무도 다르다. 

<개혁정론>은 그래서 교회에 바른 복음, 참 진리를 전하고 들려주어야 한다. 바른 신학이 교회들 가운데 더 크고 분명하게 알려지고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리고 전파하는 소리는 설립위원들이 소속한 고신교단 만이 아니라 개혁신학을 천명하는 전체 한국교회에까지 들려야 한다. 또 지면이 다루는 주제는 고신의 그것만을 넘어서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고신 밖 개혁진영에서도 많은 동역자들을 얻고 그들을 세워가야 한다. 


3. 주어진 역할 수행을 위한 과제

3.1 구성원들의 신학적 정립

교회언론은 마땅히 교회의 신학, 교회가 고백하는 신앙에 대해 분명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러한 고백이 있는 구성원을 선발하고, 지속적인 확인을 통해 교회의 신학과 신앙에 대한 분명한 정리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일백 명의 목사가 있으면 일백 개의 신학이 있다’는 말처럼, 현실적으로 서로 다른 신학적 입장을 어떻게 아우르며 정리해 낼 것인지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몇몇 기독언론의 경우 여러 신학적 배경을 가진 글들이 분별없이 다뤄지곤 한다. 언론의 신학적 정체성이 없으니 일관된 입장이 정리되어지지 않는 것이다.[14] 이같은 상황은 교단을 배경으로 하지 않는 초교파지의 경우가 더욱 심각한데, 교회의 살핌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멀기 때문이다. 

현재의 <개혁정론>의 내부구성원은 신학적으로 매우 분명한 고신교단의 목사, 교수들로 구성되어 있다. 신학적 통일성은 담보된 상태라 볼 수 있다. 하지만 매체의 특성상 향후 다양한 집필진과 후원세력이 합류하고, 이런저런 교회 현장의 소식과 목소리를 다루기 시작한다면, 이같은 상황은 급속도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교회의 현실을 보면 이같은 우려가 결코 지나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개혁정론>은 핵심구성원에서 시작해 필진과 후원세력들로 저변을 확대해 갈 때, 신학적 정체성의 조화를 유지해갈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개혁정론>의 핵심가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3.2 여러 가지 힘으로부터의 독립

한국교회언론 상당수는 열악한 환경, 취약한 여건 속에 놓여있기 때문에 존재목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힘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언론은 즉각 그 힘의 지배 아래 놓여 존재목적을 상실해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3.2.1 돈으로부터의 독립 

교단(회)을 배경으로 한 언론사의 경우는-상대적 차이는 있겠지만- 대개 회사 운영에 여유가 있다. 반면, 교단을 배경으로 하지 않는 대부분의 언론사는 매우 영세하며 운영자금은 늘 모자라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 이유로 상당수 언론사는 직원들에게 광고수주나 구독부수를 늘리도록 압박하거나, 성과급으로 지급하는 유인책을 적용하고 있다. 당연히 이단이나 사이비, 문제 있는 교회들의 광고나 성명서, 호의적 기사를 실어주는 방법으로 운영해가려는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15]  

<개혁정론>은 자금에 휘둘리지 않는 언론사로서 서기위해 빠른 시일 안에 독자적 수익구조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도 더 바람직하기는 몇몇 핵심인원들의 찬조나 후원이 아닌, 많은 교회와 구독자들의 지원과 다양한 후원 경로를 찾아야 한다. 돈에 휘둘리지 않는 것은 시장경제 체제 속의 언론사로서는 매우 중요한 조건이다.  
 
3.2.2 외부의 힘으로부터 독립 

자신들을 향해 지적하고, 쓴 소리를 하는 교회언론을 교권을 잡은 이들은 곱게 보지 않으며, 가능하다면 그냥 두지 않는다. 적어도 유무형의 압력을 가해 고분고분하게 만들고자 할 것이다. 그래서 자신들의 입장을 두둔하거나, 적어도 침묵하거나 외면하도록 해 대놓고 비판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상당수 교단언론들은 기자들 스스로, 혹은 데스크에 의해 심지어 언론사 경영진에 의해 교권핵심부의 심기를 건들어서는 안된다는 유무형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예장합동 교단지 <기독신문>의 경우 지난 2012년 10월 총회장 불신임과 교단총무 해임안 관련 보도를 했다가 총회임원회와 모든 교단 상비부 출입과 취재활동을 거부당한 바 있었다.[16] 또 몇몇 기자들은 폭언과 함께 “조만간 해고해 버리겠다”는 협박을 당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같은 한국교회의 현실을 고려해 보면, 기사작성과 편집을 책임지는 데스크는 엄청난 무게의 압박을 감당해야 한다는 각오를 항상 다져야 한다. 새롭게 시작하는 <개혁정론>이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외부의 힘을 이겨내겠다’는 각오를 다졌다고 하니, 참 다행스럽고도 안쓰러운 일이다.

물론 특정 교단 배경이 없는 초교파지도 외부의 압력이 가해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지난 2005년 1월 <ㅊ영성훈련원> 전 모 목사의 경악스러운 목회자 대상 집회를 보도한 필자는 불과 2~3일 동안 수십 통의 항의전화와 100통이 훌쩍 넘는 이메일, 2천여 개에 육박하는 댓글과 직면해야만 했다. 훈련원 홈페이지에는 기자의 이름과 전화번호, 메일 주소가 올랐고, “가룟 유다 같은 ×, 사탄의 앞잡이, 교회의 대적 등의 용어가 섞인 욕설을 써서 항의하라”는 운영진의 권고(명령) 공지글이 올랐다.[17] 당시 필자가 속했던 교회의 담임목사는 몇몇 목사로부터 교인 교육을 똑바로 하라는 항의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수년 뒤 필자는 당시의 기사를 작성한 이유로 서울소재 모 경찰서 조사계에 출두해 조사를 받아야만 했다. 
그야말로 적반하장이었다. 목회자 부부 수천 명이 운집한 집회에서 정상인이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거칠고 저속한 용어로, 신학적으로도 어처구니없는 강의를 하고도 부끄러워하거나 반성하기는커녕, 기자에게 “그냥 두지 않겠다. 밤길 조심해라”고 협박했다. 이 일에도 수많은 목회자들과 언론인들이 동조했다. 

<개혁정론>은 ‘진리와 교회를 위해서라면 어떤 권위와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맞서 싸우겠다’는 각오를 천명했다. 아마도 전 아무개처럼 타 교단 소속 목사가 아니라, 소속 노회나 교단의 실력자(?)로부터 협박과 회유 등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실력행사가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원칙을 지켜가면서 당당하게 정도를 걷는 것이 최선책이다.  

3.2.3 내부의 힘으로부터의 독립

<개혁정론>이 시간이 흐른 뒤 하나의 세력집단화[18] 되었을 때, 내부구성원들의 정치적 요구로부터도 자유할 수 있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순수한 의도와 목적으로 시작한 일이 종종 그릇된 방향으로 변질되는 것을 보곤 한다. <개혁정론>이 긴 안목을 가지고, 개혁신학에 입각해 교회와 세상을 해석해가는 작업을 해나갈 때 항상 주의해야 할 것은 특정한 집단적 성향을 대변하거나 정치적 목적을 대변하는 언론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편집권의 독립이 보장되어야 한다. 처음에는 조직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 경영과 편집의 역할이 명확히 구분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그때에도 언론으로서의 존재의미와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분명한 의지와 의식이 있는 이를 데스크로 세워 독립적인 편집권을 부여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거나, 대변하고자 하는 내부의 의도로부터 <개혁정론>을 지켜주어야 한다. 


4. 나가는 말 

<개혁정론>의 출범을 두고 많은 이들이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하고 있다.  서두에서 말한 대로 우리 시대 교회-개혁주의를 표방하는 교회들도-를 생각해보면 암담하고 절망적이다. 더 이상 소망이 있을까 싶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근자에는 우리 시대에 제2의 교회개혁이[19] 필요하다고까지 말한다. 성경을 펼쳐두었지만 세속화되었고, 세상의 가치에 깊이 매몰된 강단. 개혁신학을 내세웠지만 결코 개혁신앙인답지 않은 교회지도자들. 심리학과 경영학, 값싼 복음에 자리를 내준 개혁주의 신앙고백과 교리문답서들. 신사도운동과 알파코스에 잠식당한 개혁교회의 질서. 이같이 어둡고 혼란한 시대 가운데 역사적 개혁신학을 견지하며 교회를 세워나가겠다는 언론, 진리와 교회를 위해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싸우겠다는 교회언론이 조만간 창간된다는 소식이 들렸다. 고맙고 든든하며, 벅찬 기대로 가슴이 뛴다. 

하지만 냉정히 평가해볼 때 <개혁정론>이 걸어갈 길에는 수많은 걸림돌과 장애물이 산재해있다. 역사적 개혁신학과 성경의 정신으로 교회와 세상을 직시하고 바르게 해석하며, 알리고 전하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의를 위해 힘겹고 어려운 걸음을 시작했으니, 한발한발 걸어가노라면 <개혁정론>이 하고자 하는 일의 의미와 필요성을 공감하는 이들이 많아질 것이고, 그들로 인해 외롭지 않은 길동무들이 함께 걸어갈 것으로 기대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살피며 그 소임을 다해 간다면 어둡고 혼란스러운 이 땅의 교회에도 참된 진리에 의한 분별과 균형이 조금씩이나마 정리되어 갈 것이라고 믿는다.  
이 땅에 건강한 개혁교회를 세워가는 일에 <개혁정론>이 긴 호흡으로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매진(邁進)해 줄 것을 기대한다.



1) 본고는 <벨직신앙고백>, <하이델베르크신앙고백>, <도르트신조> 등 3일치신조를 고백하는 개혁교회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을 신조(信條)로 받아들이는 장로교회가 신학이나 신앙고백에서 서로 다른 것이 아니고, 교회정치나 질서도 상이하지 않으므로 양자 간 구분없이 혼용해서 사용한다.
2) 이단인 <신천지 예수교증거장막성전>은 인터넷을 통해 자신들을, ‘성경대로, 성경만을 가르친다’고 선전하고 있다. 이러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말씀 이외의 다른 것들을 혼합하거나 왜곡하여 전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비꼼 혹은 비판으로, 이단의 눈에 비친 한국교회의 현실이라고 보여진다.  
3)  J.I.Packer는 ‘신학자는 작업 중’이란 표현을 사용했는데 오늘날 상황에서 매우 적절한 것 같다. 교회의 신학적 이슈에 대한 질의에 대해 교단의 신학자들은 종종 “각각의 문제에 대해 그때그때 답변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고 답하곤 한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라 힘들 수 있겠지만 신학자는 교회가 직면하는 문제들에 대해 즉각적으로 해석하고 답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4)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교회연합은 WCC(세계교회협의회)를 중심으로 한 에큐메니컬 진영에서 말하는 것과는 다른, 동일한 신앙고백 위의 교회들의 연합을 말한다. 그런데 종종 개혁주의 교단의 교단신문들은 이러한 교회연합의 용어를 잘못 해석한 것이 아닌지 그 보도 행태와 내용에서 우려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5) ‘변화와 성숙’이라는 주제로 지난 2005년 6월 20일부터 23일까지 경주 현대호텔에서 열린 선교대회에는 44개국에서 273명의 선교사와 후원교회들이 참석한 대규모 행사였고 <21세기 교단 선교정책 종합발표>시간에 많은 선교사들이 선교현장에서 ‘개혁신학의 한계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식의 발언을 쏟아냈다. 고신교단의 선교사 선발과 지원에 깊은 고민이 필요한 대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6) 2013년 11월 14일자 <코람데오닷컴>은 제12회 개혁주의생명신학 학술대회에서 정주채 목사가 “목회 초기에 교회 분열로 목회와 교회에 큰 회의를 느끼기도 하면서 교회론을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소그룹이 교회의 원형이라는 것을 발견했다”고 발표한 것으로 보도했는데, 비록 잘 해보고자 하는 선한 의도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정 목사가 개혁주의 신학을 배경으로 한 장로교회인 고신 신학이 지향하는 방향과 무관하게 자신의 경험에서 추론된 신학적 결론에 따라 회중교회 전통이 짙은 가정교회를 도입하게 되었음을 보게 된다. 이미 적지 않은 고신교회가 가정교회 조직인 ‘목장’을 운영 중이다. 
7) John. Calvin, <기독교강요>, Ⅳ, 1.1. ‘어머니로서의 교회’. 교회 직분자의 범죄에 대해 칼빈 선생의 가르침을 예로 들면서, ‘병든 어머니를 어찌 버리거나 욕되게 할 수 있느냐’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교회의 드러난 문제를 금기시하거나 숨기는 경우는 오히려 교회의 주인인 하나님의 영광을 더럽히는 일이 됨과 연결해 생각해볼 문제이다. 
8) Ibid. Ⅳ,12.5에서 칼빈은 교정과 출교(권징)의 3가지 목적을 말하고 있다. 1.더럽고 수치스러운 삶을 사는 자를 그리스도인으로 불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없도록 2.악인의 죄가 타인들에게 영향을 주지 못하도록 3.자기들의 부패한 모습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고 거기서 회개하도록 하기 위해. 
   Zacharias Ursinus(1534~1583)도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해설> 제83문~제85문에서 권징의 목적을 1.성례를 더럽히지 않도록 2.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3.교리와 예배의 순결이 보존되도록 4.하나님의 징벌로부터 교회의 안전을 위해 5.죄인들이 회개에 이르도록 6.연약한 자들이 악한 모범에 물들지 않도록 7.불신자와 회원이 되지 않은 이들의 구원을 위해 8.악인의 형벌을 면하도록 하기위해 라고 설명하고 있다. 
9) 회중교회 전통의 그리스도의교회 교단은 스스로에 대해 성서와 초대교회로 돌아가 주님이 세우신 교회의 원형을 회복하자는 ‘환원운동(Restoration Movement)'을 지향하며 motto는 '책은 성경만, 신조는 그리스도만, 명칭은 하나님의 것으로만, 주장은 복음만, 일치의 근거는 성경적인 것으로만, 기본교리(구원에 관한)에는 통일, 의견에는 자유를(성경이 명시하지 않는 부분), 매사에는 사랑으로 한다’고 스스로를 소개하고 있다. 
10) 당시 교회에서 나온 교인들 14명은 필자와 함께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2년 반 정도 함께 강독하는 시간을 가졌다. 말씀과 교회에 대한 이해가 없어 잘못된 목사의 가르침에 빠졌다는 생각이 들어 그들이 안타까웠고, 잘못된 충성을 다했던 교회지만 속했던 교회를 잃은 것으로 실의에 빠진 그들에게 책임을 느껴 매주 1회 3시간씩 개혁신앙을 공부했던 것인데, 절반 정도는 마지막까지 완독할 수 있었고, 이들에게는 건전한 교회들을 소개해주었다.  
11) 2003년 10월 14일 어느 교단의 한 노회는 '교단헌법에 명시된 예배지침과 총회결정을 위반한 글을 썼다'는 죄목으로 한 목사를 제명키로 결정한 전권위원회의 결의안을 무기명투표에 붙여 37대 16으로 가결했다. 전권위원회 결의안은 ‘교단헌법이 규정한 주일성수, 십일조, 음주, 불신결혼 등에 어긋나는 저술활동을 했고, 이를 반성하는 기미도 없어 이 목사를 목사제명 처분한다’는 요지를 담고 있었다. 이에 해당 교회는 그간의 상황들을 기록한 두 권의 책자를 제작해 노회, 신학대학원, 총회, 언론사 등으로 보내 이 일의 부당함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다. 당시 책자에는 교단 내 여러 목사들이 이 일의 부당함을 여러 경로를 통해 지적한 내용들이 포함되어 게재되었다. 하지만 해당 노회도, 총회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12) 이 일은 당시 필자가 활동하던 인터넷언론 <뉴스앤조이>에서 집중 조명을 했을 뿐, 교단지는 아무런 보도도 하지 않았다. 보도를 통해 사실을 접하게 된 <크리스천투데이>, <한국기독신문>, <기독교신문>, <CBS>, <복음과 상황> 등에서 앞다투어 보도할 때에도 정작 교단언론은 침묵했으며, 11월 15일이 되어서야 노회찰요 란에 해당 목사의 제명소식만 전했을 뿐이었다.
13) 교단 신학대학원에서 교의학을 가르치는 모 교수는 필자에게 “해당 목사의 제명 결정은 노회 관계자의 질의에 대한 자신의 부주의한 답변이 단초가 되었을 수 있다”며 “해당 목사에게 사과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이 일이 교회의 하나됨을 깬 결정이었다는 의미에서의 바로잡음이 아닌 만시지탄(晩時之歎)이었다.
14) 개혁신학을 천명하는 예장 고신의 교단지 <기독교보 2010.2.3. 게시, 기자수첩>에는 당황스러운 기사가 게재되었다.  ‘(전략) 교회가 수평 이동한 교인으로 성장하는 것을 자랑하고만 있다면 한국 교회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중략) 교회가 단순히 전도만을 강조함으로써 큰 교회 교인이 작은 교회 교인을 데려가는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개인과 구역, 셀 등이 세례 목표를 세우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15) 예장합동, 예장통합, 예장합신은 2005년 이후 <크리스챤신문>, <교회연합신문>, <복음신문>, <크리스천투데이>, <기독교신문> 등을 이단옹호 언론으로 규정했거나 규정한 바 있어, 교단을 배경으로 하지 않은 교계언론(초교파신문)들 상당수가 경영상의 이유 등으로 이단을 옹호하는 광고나 성명서, 기사를 게재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또 2014.1.14.자 <크리스천노컷뉴스>는 <국민일보>가 평강제일교회 박윤식, 다락방 류광수 등 이단 관련 광고를 게재한 것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기독언론들이 수익성 창출을 위해 이단 자본까지 끌어들이고 있는데, 이 고리를 끊는 것이 기독언론과 한국교회를 살리는 길”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16) 2012.10월16일자 <기독신문>은 ‘총회총무 취재방해 여전’이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황규철 총무가 상비부 회의 취재를 금하고 재판국회의를 취재하던 기자를 퇴장시켰다고 보도했다. 또 총회임원회회의에 기자의 출입을 원천봉쇄했으며 총회직원들을 동원해 기자들을 내쫓았다고 보도하고 있다. 심지어 황 총무는 언론 통제에 대한 지시를 총회본부 직원들에게 내리는 한편, 보도지침까지 내리고 압력을 넣었던 것으로도 전해졌다. 
17) 이러한 내용은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올려져 있었음은 물론, 관리자의 잘못인지 필자에게도 문자메시지로 보내져 상세한 전말을 알 수 있었다.
18) 종종 언론은 언필칭 제4의 권력기관으로 분류된다. 언론은 수용자가 증가하고 영향력이 커지게 되면 일정한 세력이 형성되기 마련이다. 인터넷언론 <코람데오닷컴>의 소개코너에는 자신들을 ‘정보를 숨기거나 왜곡시키는 것은 바른 판단을 불가능하게 하고 토론을 통한 합의를 막는 행위입니다. <코닷>은 막힌 언로를 열기 위해 정확한 정보를 나누는데 앞장서겠습니다(2006.12.07.).‘고 천명하였지만, 2013년 하반기 연구위원들이 일괄 사퇴한 배경에는 <코닷>이 자신들의 말과 달리, 정치세력화 내지 정치지향적인 보도행태와 주관적인 보도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19)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종교개혁이란 용어보다 교회개혁이란 용어가 더 적절하다.

< 저작권자 ⓒ 개혁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1. notice

    [기독교인과 선거 5] 네덜란드 교회 교인은 어떻게 정치에 참여할까?

    제22대 총선이 다가왔습니다. 국회(의원)는 민의를 대변하는 입법부 역할을 하기에 참으로 중요합니다. 기독교 정당을 표방하는 곳도 선거에 나섭니다.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선거승리를 위해 불법에 가담해서는 안되겠고, 교회도 선거법을 제대로 지켜야 하...
    Date2024.03.20 By개혁정론 Views78
    read more
  2. notice

    [기독교인과 선거 4] 설교학적 관점에서 생각해 보는 정치 설교하기

    제22대 총선이 다가왔습니다. 국회(의원)는 민의를 대변하는 입법부 역할을 하기에 참으로 중요합니다. 기독교 정당을 표방하는 곳도 선거에 나섭니다.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선거승리를 위해 불법에 가담해서는 안되겠고, 교회도 선거법을 제대로 지켜야 하...
    Date2024.03.18 By개혁정론 Views101
    read more
  3. [신자의 결혼] 결혼식 예식문

    이번 기획기사는 '신자의 결혼'입니다. 결혼식은 인륜지대사라고 하지만 너무나 허례허식이 많고 문제가 많습니다. 로마교회에서는 성례로까지 승격시켰지만 우리 개혁교회에서는 이 결혼식을 개인이나 가정의 일이 아니라 '교회적인 일'이라는 이해하에 예배...
    Date2015.01.19 By개혁정론 Views6641
    Read More
  4. [신자의 결혼] 합법적인 결혼을 위해

    이번 기획기사는 '신자의 결혼'입니다. 결혼식은 인륜지대사라고 하지만 너무나 허례허식이 많고 문제가 많습니다. 로마교회에서는 성례로까지 승격시켰지만 우리 개혁교회에서는 이 결혼식을 개인이나 가정의 일이 아니라 '교회적인 일'이라는 이해하에 예배...
    Date2015.01.17 By개혁정론 Views5202
    Read More
  5. [신자의 결혼] 기독교 전통의 결혼역사

    이번 기획기사는 '신자의 결혼'입니다. 결혼식은 인륜지대사라고 하지만 너무나 허례허식이 많고 문제가 많습니다. 로마교회에서는 성례로까지 승격시켰지만 우리 개혁교회에서는 이 결혼식을 개인이나 가정의 일이 아니라 '교회적인 일'이라는 이해하에 예배...
    Date2015.01.16 By개혁정론 Views5178
    Read More
  6. [신자의 결혼] 결혼 예식에 대해

    이번 기획기사는 '신자의 결혼'입니다. 결혼식은 인륜지대사라고 하지만 너무나 허례허식이 많고 문제가 많습니다. 로마교회에서는 성례로까지 승격시켰지만 우리 개혁교회에서는 이 결혼식을 개인이나 가정의 일이 아니라 '교회적인 일'이라는 이해하에 예배...
    Date2015.01.14 By개혁정론 Views8167
    Read More
  7. [한 해를 정리하며] 세계 5대 이슈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지났습니다. 2014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돌아보고자 합니다. 지나간 시간들을 애써 잊으려고 하기보다는 제대로 상기하는 법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 편집위원장 2014년도 역시 세계적으로 다사다난 했던 한 해였다. 그 중에서 가장...
    Date2015.01.13 By개혁정론 Views4626
    Read More
  8. [한 해를 정리하며] 한국기독교계 5대 핫이슈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지났습니다. 2014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돌아보고자 합니다. 지나간 시간들을 애써 잊으려고 하기보다는 제대로 상기하는 법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 편집위원장 1. 세월호사건과 구원파 교주 유병언 세월호사건은 2013년 1월 15일...
    Date2015.01.12 By개혁정론 Views4611
    Read More
  9. [한 해를 정리하며] 고신교단 5대 이슈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지났습니다. 2014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돌아보고자 합니다. 지나간 시간들을 애써 잊으려고 하기보다는 제대로 상기하는 법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 편집위원장 1. 고려신학대학원 이전 논란 및 고신대학교 미래 대책위원회를 새롭...
    Date2015.01.10 By개혁정론 Views5361
    Read More
  10. [한 해를 정리하며] 세계교회 5대뉴스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지났습니다. 2014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돌아보고자 합니다. 지나간 시간들을 애써 잊으려고 하기보다는 제대로 상기하는 법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 편집위원장 1. 영국성공회: 여성주교허용과 오리엔트 정교회와의 성육신 이해 합...
    Date2015.01.08 By개혁정론 Views4888
    Read More
  11. [한 해를 정리하며] 한국사회 5대 이슈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지났습니다. 2014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돌아보고자 합니다. 지나간 시간들을 애써 잊으려고 하기보다는 제대로 상기하는 법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 편집위원장 1. 세월호 사건 2014년도 한국사회를 가장 크게 흔들었던 일은 세월호...
    Date2015.01.04 By개혁정론 Views4886
    Read More
  12. [한 해를 정리하며] 개혁정론의 발자취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지났습니다. 2014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돌아보고자 합니다. 지나간 시간들을 애써 잊으려고 하기보다는 제대로 상기하는 법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 편집위원장 설요한 기자 개혁정론은 “진리수호와 교회 건설”이라는 모토를 가지고...
    Date2014.12.31 By개혁정론 Views4953
    Read More
  13. [성탄절에 대하여] 이방을 비추는 빛으로 오신 예수님

    이번 기획기사는 '성탄절'입니다. 교회는 세상달력과 다른 교회달력을 만들어 삼위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속사역을 축하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시간의 흐름을 만든 것입니다. 성탄절이 가까이 다가온 이 시기에 성탄절기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성탄절기를 어떻...
    Date2014.12.23 By개혁정론 Views5820
    Read More
  14. [성탄절에 대하여]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이번 기획기사는 '성탄절'입니다. 교회는 세상달력과 다른 교회달력을 만들어 삼위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속사역을 축하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시간의 흐름을 만든 것입니다. 성탄절이 가까이 다가온 이 시기에 성탄절기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성탄절기를 어떻...
    Date2014.12.18 By개혁정론 Views6090
    Read More
  15. [성탄절에 대하여] 성탄절 바람!

    이번 기획기사는 '성탄절'입니다. 교회는 세상달력과 다른 교회달력을 만들어 삼위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속사역을 축하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시간의 흐름을 만든 것입니다. 성탄절이 가까이 다가온 이 시기에 성탄절기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성탄절기를 어떻...
    Date2014.12.15 By개혁정론 Views6632
    Read More
  16. [성탄절에 대하여] 성탄절이 12월 25일이 된 이유는?

    이번 기획기사는 '성탄절'입니다. 교회는 세상달력과 다른 교회달력을 만들어 삼위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속사역을 축하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시간의 흐름을 만든 것입니다. 성탄절이 가까이 다가온 이 시기에 성탄절기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성탄절기를 어떻...
    Date2014.12.11 By개혁정론 Views6550
    Read More
  17. [성탄절에 대하여] 성탄절의 기원과 역사!

    이번 기획기사는 '성탄절'입니다. 교회는 세상달력과 다른 교회달력을 만들어 삼위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속사역을 축하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시간의 흐름을 만든 것입니다. 성탄절이 가까이 다가온 이 시기에 성탄절기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성탄절기를 어떻...
    Date2014.12.08 By개혁정론 Views12885
    Read More
  18. [성탄절에 대하여] 교회력과 성도의 삶

    이번 기획기사는 '성탄절'입니다. 교회는 세상달력과 다른 교회달력을 만들어 삼위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속사역을 축하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시간의 흐름을 만든 것입니다. 성탄절이 가까이 다가온 이 시기에 성탄절기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성탄절기를 어떻...
    Date2014.12.06 By개혁정론 Views5720
    Read More
  19. [성례에 대하여] 언약 안에 사는 생활: 유아세례에서 성찬까지

    이번 기획기사는 '성례'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은혜를 베푸시는 방편은 오직 '말씀과 성례'입니다. 종교개혁은 중세교회를 비판하면서 말씀 중심의 예배를 회복했지만 성례에 있어서는 지나치게 반동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이것을 이어받은 것인지 현대...
    Date2014.11.10 By개혁정론 Views6858
    Read More
  20. [성례에 대하여] 어떤 떡과 포도주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이번 기획기사는 '성례'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은혜를 베푸시는 방편은 오직 '말씀과 성례'입니다. 종교개혁은 중세교회를 비판하면서 말씀 중심의 예배를 회복했지만 성례에 있어서는 지나치게 반동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이것을 이어받은 것인지 현대...
    Date2014.11.06 By개혁정론 Views9352
    Read More
  21. [성례에 대하여] ‘울타리가 없는 성찬’과 ‘울타리가 있는 성찬’

    이번 기획기사는 '성례'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은혜를 베푸시는 방편은 오직 '말씀과 성례'입니다. 종교개혁은 중세교회를 비판하면서 말씀 중심의 예배를 회복했지만 성례에 있어서는 지나치게 반동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이것을 이어받은 것인지 현대...
    Date2014.11.04 By개혁정론 Views7303
    Read More
  22. [성례에 대하여] 세례 교육의 필요성

    이번 기획기사는 '성례'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은혜를 베푸시는 방편은 오직 '말씀과 성례'입니다. 종교개혁은 중세교회를 비판하면서 말씀 중심의 예배를 회복했지만 성례에 있어서는 지나치게 반동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이것을 이어받은 것인지 현대...
    Date2014.10.30 By개혁정론 Views6319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Next
/ 24

기획기사

사설
[사설] 제7차 개정헌법 헌의안, 총...
[사설] 총회장은 교단의 수장이 아...
[사설] 명예집사와 명예권사, 허용...
[사설] 총회가 계파정치에 함몰되지...
[사설] 최근에 일어난 고려신학대학...
세계로교회 예배당 폐쇄 조치를 접하며 3
[사설] 총회(노회)가 모일 때 온라...
총회가 졸속으로 진행되지 않으려면
[사설] 누가 고신교회의 질서와 성...
공적 금식과 공적 기도를 선포하자
칼럼
왕처럼 살고 싶습니까? 왕처럼 나누...
푸틴의 머릿속에 있는 그림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3부)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2부); 교회...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1부)
우리 악수할까요?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 (Peter Holt...
관심을 가지고 보십시오.
동성애 문제에 대한 두 교단의 서로...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잘못을 통해서...
기고
직분자 임직식에서 성도의 역할
죽음을 어떻게 맞을까를 잠시 생각하며
제73회 총회가 남긴 몇 가지 과제
전임목사는 시찰위원으로 선정될 수...
고신교회와 고재수 교수; 우리가 왜...
왜 고재수는 네덜란드에서 고려신학...
제73회 총회를 스케치하다
신학생 보내기 운동에 대한 진지한 ...
명예 직분 허용이 가져다 줄 위험한...
[고신 70주년에 즈음하여 9] 고신교...
논문
송상석 목사에 대한 교회사적 평가 ...
송상석 목사와 고신 교단 (나삼진 ...
송상석 목사의 목회와 설교 (신재철...
네덜란드 개혁교회 예식서에 있어서...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 예배지침 부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SFC 강령의 “전통적 웨스트민스터 ...
지역교회의 적정 규모(規模 size)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