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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획기사는 '성탄절'입니다. 교회는 세상달력과 다른 교회달력을 만들어 삼위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속사역을 축하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시간의 흐름을 만든 것입니다. 성탄절이 가까이 다가온 이 시기에 성탄절기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성탄절기를 어떻게 지키는 것이 좋을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주님의 성육신이 고난과 죄로 가득찬 이 땅에 얼마나 큰 소망을 가져다주었는지 묵상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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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호 목사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본문: 마 2:1-12

서론

오늘날 성탄절은 너무나 문제가 많습니다. 요즘 한국의 경우 성탄절 이브에는 호텔이나 모텔에서 방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성탄절이 성적 쾌락을 추구하는 날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탄절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날이 아니라 산타가 선물을 주는 날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은 교회가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서 분명한 지식과 인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는 어린이들의 연극을 통해서 성탄 때마다 공연이 되지만, 이것들은 성탄에 대한 이해를 돕기보다는 오히려 방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탄생은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동화처럼 이해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말구유는 냄새나고 더러운 처절한 현실이 아니라 아름다운 은은한 시골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이런 식으로만 이해하다 보니 예수님의 탄생의 어둡고 누추한 모습보다는 좋은 모습만 보려고 합니다. 성탄절은 물론 기쁜 날입니다. 그러나 성탄이 전적으로 기쁜 날은 아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동방박사 이야기는 신자라면 다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경배로 인하여 두 살 이하의 수많은 아기들이 살해되었다는 사실은 성탄절에서 잊혀지거나 무시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탄절과 같이 기쁜 날에 그와 같은 이야기는 별로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언급을 회피하려고 합니다. 그 결과 우리는 주님의 탄생을 부분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데, 이 말은 우리가 복음이 핵심을 부분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을 부분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성탄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의 주인공이 구속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동방박사들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들은 동방박사들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 교회에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준비하시고, 무엇을 행하시는 것에 주의할 때, 우리는 주님의 탄생이 주는 메시지의 핵심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 배경: 출애굽 모티브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그리스도의 탄생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배경을 잘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할 때 이곳을 다스린 사람은 헤롯왕이었습니다. 헤롯은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귀환하고 나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나라를 세우지 못하고 로마의 식민지로 살아야 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은 더 이상 자신의 선지자들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선지자들을 보낼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거나 오히려 배척하였기 때문입니다. 무려 400년 가까이 이스라엘은 영적 암흑의 시대를 살아야 했습니다. 물론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완전히 무지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구약이 오실 메시야에 대해서 증언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하지만 메시야를 정말로 소망한 사람들은 시므온이나 안나 같은 극히 소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마태가 예수님의 탄생을 출애굽의 관점에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출애굽과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는 유사점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400년 동안 애굽에서 아무런 주의 계시 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살이했듯이 이스라엘 백성도 세례 요한이 나타나기까지 400년 가까이 그렇게 지냈습니다. 출애굽 시대에 바로가 있었다면 예수님 당시에는 헤롯이 있었습니다. 바로가 엄청난 토목 공사를 했듯이, 헤롯도 그러했습니다. 헤롯 성전이라고 불리는 제2성전을 재건하였고 로마 황제를 기쁘게 하기 위해 가이사랴라는 신도시를 건설하였습니다. 이 모든 일을 완성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고생을 하였겠습니까?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죽이기 위해서 간난 아이를 죽였던 것처럼, 헤롯도 어린 아이를 죽였습니다. 

헤롯은 에돔 사람이었는데 유대인으로 형식적으로 개종을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그는 스스로 유대인의 왕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실제로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성전을 재건축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왕위를 지키기 위해서 반대파들을 숙청시킨 잔인한 왕이었고, 이것은 예수님 탄생 당시에도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그는 무려 37년 동안이나 다스렸으니 예수님이 태어날 때에는 70살 가까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왕위가 아들 헤롯을 통하여 든든하게 보장되기를 원하였고 이를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지 불사하는 왕이었습니다.

왕을 준비시키는 하나님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새 왕을 준비시켰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왕을 준비하는 과정을 보면 이 왕이 앞으로 무슨 일을 할 것인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야를 오래 전부터 준비하였습니다. 물론 이것은 구약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오늘 본문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별입니다. 우리는 이 별이 어떤 별인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옛날과 달리 오늘날에는 별이 새로 출현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잘 압니다. 별은 기본적으로 수백 광년 떨어져 있기 때문에 새로운 별이 생겼다 하더라도 그 빛이 지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수백 년이 걸립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떻게 별을 준비시켰는지는 모르지만 자연법칙을 사용하셨다고 가정한다면 하나님은 수십 혹은 수백 년 전에 별을 준비하셨다가 때가 되어서 이 땅에 비추게 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작은 광명들을 만드시고 땅에 비추게 하셨다는 기사를 볼 수 있는데, 그 창조의 하나님께서 이제 별을 사용하셔서 구속의 사역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별을 이용하여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하나님을 별을 통하여 왕의 출생을 온 세상에 알리셨습니다. 별은 어떤 사람에게는 보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 당시에 망원경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특별히 별을 더 잘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동방에서 온 박사들만이 이 별의 존재를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들이 유대인들보다 별을 더 많이 연구하였다고 볼 수 있지만 유대에서도 별을 연구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별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

마태복음은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하여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였는지를 선명하게 대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멀리에서 와서 경배하는 이방인들이고, 다른 한 그룹은 가까이에서도 왕의 탄생에 대해서 무지했던 헤롯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동방에서 왔다고 하는 표현은 단지 이스라엘의 동쪽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페르시아 지역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엄청나게 먼 길을 온 것입니다. 이들은 유대인의 왕의 탄생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미리 확인하고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들은 예루살렘에 와서 “새 왕자가 태어났습니까?”라고 묻지 않고,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에 있는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당연히 예루살렘 왕궁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서 보호를 받으며 자라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는데 이들이 그 먼데서 올 이유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태국의 왕이 아들을 낳았다고 가정합시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 누가 그곳까지 가서 경배하러 갈까요? 물론 태국 대사는 가야 하겠지요. 그렇지만 그것은 외교적 관례 상 형식적으로 가는 것이지 정말로 왕의 탄생을 축하하고 경배하기 위해서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박사들은 진심으로 경배하기 위해서 그 먼 길을 왔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유대인의 왕이 예루살렘에 없고 베들레헴에 있을지 모른다는 말을 듣고 그들은 즉시 베들레헴으로 출발하였습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얼마 되지 않는 거리입니다. 아마 늦은 저녁 때 쯤 출발하였을 것입니다. 날이 늦었으니까 하루 밤 묵고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가다 보니 밤이 되었습니다. 그때 그들이 2년 전 쯤에 보았던 별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 별이 움직이기 시작하였고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었습니다. 그들이 별을 보았을 때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였습니다. 히브리어 어법에 따르면, 본문은 이 박사들이 기뻐함을 최상급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아이와 함께 있었던 마리아를 만났을 때 그들은 엎드려서 절을 했을 뿐 아니라 보배합을 열어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습니다. 이 예물들은 그냥 보통 선물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왕을 위한, 왕에게 적합한 선물이었습니다. 더구나 이 예물은 예수님이 애굽에서 피난살이를 할 때 소중하게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이방인의 예물을 통해서 유대인의 왕이 타국에서 편안히 거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더 많은 선물을 준비해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의 출생에 대해서 철저하게 무관심하였습니다. 이 예물을 통해 유추해 보았을 때, 우리는 그들이 유대인의 왕이 정말로 나셨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는 것, 그들이 정말로 이 왕을 경배하기를 원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만약 미국에 새 대통령이 선출되었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조금 기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가 차원에서는 선물도 준비해야 하겠지요. 그러나 티벳의 달라이 라마가 아들을 출생하였다고 해서 그렇게 준비하지는 않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티벳과 같이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유대의 왕이 태어난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 될 수 있을까요?

헤롯왕과 대제사장 그리고 서기관

이와 같이 먼 이방에서 온 박사들은 왕의 출생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는데, 정작 왕의 출생을 알고 있었어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사실에 대해서 전혀 무지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동방에서 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이 어디 계시냐?”라고 물었을 때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소동하였습니다. 완전히 충격에 빠진 것이지요. 그래서 모든 대제사장과 율법사를 다 불렀습니다. 그들에게 “그리스도가 어디에서 나겠는가?”라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베들레헴이라고 답을 하였습니다. 적어도 이 점에 있어서 그들은 구약 성경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왕이 자신들을 왜 불렀는지 잘 알았습니다. 동방에서 큰 사절이 왔고, 그들로 인해서 왕과 온 예루살렘에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이 그토록 소망하던 왕이 태어났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왕이 태어날 시점은 정확하게 몰랐지만 장소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한두 명은 그들보다 먼저 왕을 경배하러 갔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헤롯왕을 두려워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잘못하다가는 반역죄로 처단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 한 명도 경배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새 왕의 탄생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헤롯 왕 밑에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면서 잘 먹고 잘 살기를 원하였던 것입니다. 새 왕이 왕으로 등극하면 자신들의 위치가 어떻게 될 지도 모르고, 자신들의 잘못이 드러날 수도 있습니다.

제사장들과 선지자에게서 답변을 들은 헤롯은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서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물었습니다. 그리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그 아이를 찾으면 내게 고하여 나도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헤롯은 아주 비밀리에 새 왕을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공개적으로 일을 처리했다가는 민란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헤롯은 새 왕을 죽이려고 하였고, 제사장과 서기관은 왕의 출생에 대해서 무관심하였습니다. 그들의 왕은 불과 몇 킬로미터 밖에 떨어져 있었을 뿐입니다. 이 얼마나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까? 수천 킬로미터에서 왕의 출생을 확신하고 경배하러 온 이방인들; 불과 몇 킬로미터에서 왕의 출생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던 이스라엘의 지도자들. 요한복음 1장 11절에는 이 모든 이야기를 한 절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니.” 어떻게 보면 수많은 아기들의 죽음은 이스라엘의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론: 박사들이 경배한 이유

그렇다면 박사들이 왜 식민지 나라의 왕을 경배하러 왔을까요? 그들은 이 일을 왜 그토록 하고 싶었을까요? 제사장들이나 서기관들처럼 박사들도 구약성경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제사장들과 서기관처럼 예수님의 탄생의 장소에 대한 예언까지는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비록 메시야에 대한 사소한 내용은 알지 못했으나 그들은 나신 왕이 어떤 분인지는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의 왕이 단지 유대인을 위한 왕이 아니라 온 세상을 구원하는 세상의 구주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통해서 알았을 뿐 아니라 별을 통해서도 알았습니다. 만약 유대인의 왕이 단지 유대인만을 위한 왕이었다면 그들에게 별이 나타났을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아기를 자신들의 구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선물로 표시하였고, 그 먼 길을 찾아 왔고, 별을 다시 보았을 때 크게 기뻐하고 기뻐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크리스마스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으로 나신 왕은 단지 유대인의 왕이 아니라 온 세상의 구주입니다. 이 구주를 영접하는 자들에게는 죄 사함의 은혜가 베풀어지고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됩니다. 2000년 전과 달리 우리 주님은 더 이상 마구간에 계시지 않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 때보다 그리스도의 왕 되심이 보다 분명하게 복음을 통해서 선포되었습니다. 별을 통해서 이방인을 비추신 주님께서 이제는 복음의 선포를 통하여 암흑에 빠졌던 우리 하나 하나를 비추시고 구원에 이르게 하십니다. 

그리스도는 이방을 구원하는 빛으로 오셨습니다. 이 주님을 어떻게 경배하여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더 이상 이 왕을 황금이나 유향으로 경배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때 아기 예수는 그것이 필요했지만 이제 승천하신 왕은 더 이상 그런 수준 낮은 예물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방박사들과 같이 우리는 그리스도를 왕으로 경배하여야 합니다. 그 방법은 그리스도께서 단지 유대인의 왕이 아니라 온 세상을 구원하는 구원자라는 것을 세상에 전파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온 세상과 더불어 함께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게 하는 것입니다. 성탄절 날 복된 소식을 주위 사람에게 증거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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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2014.10.06 By개혁정론 Views1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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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사설
[사설] 총회가 계파정치에 함몰되지...
[사설] 최근에 일어난 고려신학대학...
세계로교회 예배당 폐쇄 조치를 접하며 3
[사설] 총회(노회)가 모일 때 온라...
총회가 졸속으로 진행되지 않으려면
[사설] 누가 고신교회의 질서와 성...
공적 금식과 공적 기도를 선포하자
[사설] 어느 교회의 교단 탈퇴를 보며
[사설] 고신언론사 순환보직시행, ...
[사설] ‘표현’ 못지않게 중요한 것... 2
칼럼
관심을 가지고 보십시오.
동성애 문제에 대한 두 교단의 서로...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잘못을 통해서...
페이스북을 떠날 때인가?
성찬은 오히려 우리의 육체성 때문...
더 나은 가정 심방을 위한 제안
가정 예배: 청교도로부터 배우기(2)
가정 예배: 청교도로부터 배우기 (1)
우리는 실천적 아르미니우스주의자...
[해외칼럼] 편향된 선지자, 제사장, 왕
기고
케임브리지와 바젤에서 바라본 로테...
고신은 개혁할 것들이 보이지 않는가?
[고신교회 70주년에 즈음하여 7] 고...
[고신교회 70주년에 즈음하여 6] 고...
[고신교회 70주년에 즈음하여 5]  ...
[고신교회 70주년에 즈음하여 4] 고...
청년 사역자의 눈으로 본 교회 청년
[고신교회 70주년에 즈음하여 3] 고...
[고신교회 70주년에 즈음하여 2] 총...
예수님께서 바닥에 쓰신 글 2
논문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교회 위협세...
바른 교리와 이단 개론: 이단의 뿌...
고신교회 제7차 헌법개정의 방향과 ...
뇌과학이 본 인간 이해 (박해정 교수)
인공지능기술의 현황과 전망 (김상...
현대생물학과 하나님의 창조 (박치...
빅뱅 천문학과 하나님의 창조 (성영...
고통의 신약적 이해
고통의 신학적 의미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미래목회 (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