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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이번 기획기사는 '헌금'입니다. 한국교회는 헌금에 대한 강조로 유명한데, 너무나 왜곡된 이해와 일방적인 가르침이 많습니다. 이에 성경과 교회사를 통해 물질관과 헌금에 대한 가르침을 확인해 보려고 합니다. 헌금을 예배와 직분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도 강조하려고 합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다”(마 6:21)는 주님의 말씀은 신자 개인 뿐만 아니라 교회에게도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 편집위원장


※ 다음 글은 고려신학대학원의 2002년 9월 있었던 예장 고신 제52회 총회에서 동대구노회와 경남노회가 “주일 성수와 십일조”에 관해 질의했던 내용에 대한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의 연구보고서를 요약한 것이다. 연구보고서는 고려신학대학원 홈페이지 커뮤니티 자료실의 “십일조 연구 보고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오늘날 십일조에 대해 크게 3가지 주장이 있다.

1) 십일조는 구약에 율법에 속한 것이므로 신약 시대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더 이상 불필요하다.
2) 신약에는 십일조를 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드물게 보이지만 십일조를 하지 말라는 주장은 없는만큼 구약의 가르침을 따라 온전히 해야 한다.
3) 구약과 신약의 원리에 따라 십일조를 하는 것이 합당하나 십일조라는 문자에 구속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구약과 신약을 통해 십일조의 유례와 실례를 살피고 이를 기초로 십일조의 원리와 실제를 밝히고 신약에서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를 율법의 유효성 문제와 함께 다루어볼 것이다. 그리고 한국 교회가 취해야 할 성경적 헌금관을 제시할 것이다.

1. 성경에 나타난 십일조의 유례
 
(1) 구약에 나타난 십일조

1) 족장들의 십일조

구약에서 십일조가 처음 나오는 곳은 창세기 14:18-20, 아브라함이 전쟁 승리 후 살렘 왕 멜기세덱에게 얻은 것의 십분의 일을 드린 내용이다. 아브라함이 드린 십일조는 ①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원한 것 ② 소수의 군사로 다수의 적을 이기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 ③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는 신앙고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십일조는 이후 창세기 28장에 기록된 야곱의 서원에서 다시 등장한다. 야곱의 십일조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인정, 자발적인 것,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었다는 점에서 아브라함의 십일조와 일맥상통한다. 여기서 볼 수 있는 십일조의 중요한 원리는 “자신의 모든 소유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이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하나님께 십일조를 바친다”는 것이다.

2) 모세의 율법에 나오는 십일조

모세의 율법에 나오는 십일조는 3가지 종류다. 첫째, 레위기 27:30-33이다. 땅의 소산과 소나 양의 십분 일을 여호와께 속한 거룩한 것으로 엄격하게 규정한다. 둘째, 민수기 18:20-32이다. 하나님께서는 레위지파 사람에게는 기업을 주지 않으셨다. 백성들은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렸고 하나님은 그것을 레위 자손에게 주어 그들의 생활을 도우셨다. 그리고 레위인은 이스라엘 자손으로부터 얻은 것 중 다시 십일조를 거제로 드려서 제사장 가족들을 공궤했다. 셋째, 신명기 14:22-29이다. 여기에는 매 삼년(안식년 후 제3년과 제6년) 끝에는 그 해 소산의 십분의 일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를 배부르게 하는 데 사용하라는 내용이 있다. 모세의 율법에는 십일조가 하나님과 사람 간의 수직적 원리, 레위 지파를 위해 사용되는 수평적 원리로 나타나 있다. 이는 두 가지로 다시 말할 수 있다. ①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께 드림이 마땅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그의 은혜에 대한 감사를 드리는 것이다. ② 십일조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필요한 경비, 즉 예배와 구제를 위해 드린 것이었다.

3) 사사시대와 왕정시대의 십일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멀리하면서 십일조 생활도 소홀하게 되었다. 사사시대 레위인들은 생계를 위해 배회하거나 우상을 섬기거나 한 가정의 제사장이 되기도 했다(삿 17:7-10, 18:18-20). 이것은 그들의 사명의식이 흐려진 것도 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일조를 드리지 않은 데에도 그 이유가 있다. 사무엘상 8:15 이하의 십일조는 헌금이라기보다는 세금의 성격을 말한다. 다윗이 십일조를 드렸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역대상 29:14에는 그의 헌금의 원칙이 나온다.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고 그중에서 일부를 주께 드리는 것뿐임을 알고 있었다. 아모스 선지자는 하나님을 향한 참 사랑을 상실한 이스라엘을 향해 경고하면서 겉모양만 남은 십일조를 지적한다(암 4:4). 히스기야가 율법을 따라 제사를 회복하면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을 위한 십일조를 시행하게 한 사실이 역대하 31장에 나타나 있다.

4) 포로시대와 예루살렘 귀환 후의 십일조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 시기에는 십일조에 대한 언급이 없다. 다시 중요하게 등장할 때는 느헤미야와 말라기가 활동하던 시기였다.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을 주도하고 이후 예배의식을 회복한다. 그리고 십일조 제도를 통해서 제사장과 레위인의 생활을 보장하도록 한다(느 10:38, 12:44). 하지만 주전 430년경,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십일조를 드리지 않거나 형식적으로 마지못해 드리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와 전적 헌신의 표시로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나타나는 원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유지하기 위해 십일조는 필수적이며 십일조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았을 때 종교는 타락한다는 것이다.

(2) 신약에서 본 십일조의 원리와 실제
   
1) 예수님의 십일조에 대한 언급

예수님은 십일조에 대해 직접적으로 가르쳐 주신 바가 없다. 다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책망하면서 간접적으로 언급하셨다(마 23:23, 눅 14:42). 여기서 나타나는 원리는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의와 인과 신, 곧 사람에 대한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들이 복음에 호의적인 사람에 의해 도움을 받는 것을 합당하게 보신다(마 10:9-15). 또한 헌금의 원리에 대해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을 통해 말씀하신다(눅 21:1-4). 주님은 액수보다는 최선을 다해 드리는 마음을 기뻐하신다는 것이다.

2) 초대교회의 헌금 행태

성경에 나타난 초대교회 생활에서 십일조에 대한 언급은 없다. 하지만 그들은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신의 제물을 자신의 것이라 하지 않았다(행 4:32). 바울은 연보는 미리 작정하고 준비하고, 억지로 할 것이 아니라 자원하여 하라고 한다.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신다는 것이다(고후 9:7). 여기서 나타나는 원리는 구약의 십일조의 원리와 동일하다. ① 우리의 수입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마땅하다. ② 연보는 규칙적으로 준비해서 하는 것이 유익하다. ③ 연보는 자원해서 하는 것이고 힘에 지나도록 하는 연보는 인정받을 일이다. ④ 하나님은 기쁨으로 헌금하는 자를 기뻐하시고 바치는 자에게 축복해 주신다.

2. 십일조의 원리와 적용

땅의 전체, 모든 소득이 하나님의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십분의 일을 바치라고 하신다. 대표의 원리를 적용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십일조와 더불어 첫 열매를 바치라고 하신 것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자신이 필요할 때에는 언제든지 자신의 것을 요구하셨다. 헌금의 원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언제든지 필요할 때면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는 것이다. 십일조라는 명목으로 거두신 것은(어떤 해에는 십분의 삼 가까이 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식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십일조’라는 문자에 얽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스라엘 종교체제를 위해 헌금이 필요했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것인 십일조를 요구한 것이다. 필요가 없는데도 십일조라는 규정에 매여 무조건 내도록 법제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필요가 있으면 십일조 이상도 요구하신다.

구약의 원리는 신약에 어떻게 적용하는가? 근본적으로는 구약의 원리와 신약의 원리가 다르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율법의 실제 적용이 너무 경직되어서는 안 된다.

보론: 새언약 시대의 율법 문제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는 율법이 폐하여진 것처럼 말한다(롬 3:19; 갈 1:6-12; 2:16-21; 3:1-14 등). 그러나 예수님은 율법을 이루러(완성하러) 오셨지 율법을 폐하러 오셨다고 하지 않았다. 사도 바울 역시 율법을 폐한 사람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예. 엡 6:1-3). 바울이 율법에 반하는 말을 한 것은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받는다는 바리새인의 사상을 꾸짖기 위한 것이다. 오히려 바울은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고 말한다(롬 3:31). 결국 구원 받은 자는 율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고 바울은 성령이 율법의 요구를 이루게 한다고 한다(롬 8:4). 고린도후서 8:4에서도 법이 성령에 의해 마음판에 새겨졌다고 말한다. 율법의 내면화인 것이다. 성령의 역할과 율법의 내면화는 이미 구약의 새언약에서 밝히고 있는 것이다(렘 31:33, 겔 11:19-20; 36:26-27).

결국 율법의 원리는 구약과 신약이 다르지 않다. 구약에서 율법은 구원을 위한 조건으로 주어지지 않았다. 구원받은 백성이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으로 제시된 것이다. 신약에서도 율법은 결코 구원을 얻는 방편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순종해야 할 지침이 된다. 신약에서의 율법은 영적이며 내면적이다. 외형적인 그 문구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원리가 중요하며, 외형적으로 좇아가는 행위가 아니라 성령의 이끌림으로 그것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성화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율법의 완성이다. 

3. 신약시대의 십일조 원리와 적용

신약은 구약의 성취이며 완성이다. 구약의 원리와 명령은 신약에도 그대로 살아있어야 하고 그 의미가 내면화되고 더 완성적이어야 한다. 구약의 헌금의 원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부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바쳐야 한다. 그 원리가 바로 십일조였다. 하나님 나라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신약 시대의 성도들은 불가피하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경우 외에는 최소한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 또한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있다면 십의 삼조까지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주의해야 할 것은 성도들의 헌금을 관리하고 사용하는 교회 지도자들의 책임이다. 십일조를 구약의 조건으로 강조해서는 안 된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며, 이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일에 필요할 때에 내도록 하신 것이다. 교회는 복음의 사역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만 헌금을 사용할 책임이 있다. 교회 안의 잡다한 행사를 위해 부당하게 사용하거나 특별한 명분 없이 저축하거나 땅이나 주식에 투자해서도 안 된다.

결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구약에서 가르치는 바와 같이 모든 것이 주의 것이요,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모든 것을 주님의 뜻대로 사용하고, 주님이 원하시면 기꺼이 모든 것을 주님께 드려야 한다. 그러나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십분의 일을 특별히 요구하셨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최소한 소득의 십일조, 나아가 그 이상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옳다. 이것은 율법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주관자이시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신앙생활의 증진과 건덕 그리고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에 큰 유익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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