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정론이 새롭게 시작하는 기획기사 ‘김 집사가 알아야 할 교회법’은 교회법의 전반적 내용을 쉽게 해설하는 시리즈입니다. 기독교보와 함께 진행하는 시리즈로서 여기에 싣는 것은 기독교보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글 내용은 기독교보에 실린 그대로인 경우도 있으며, 오프라인 신문 지면의 한계상 다 싣지 못한 내용을 여기에는 그대로 싣습니다. - 편집자 주
시벌과 해벌은 정치의 영역 같은데 왜 예배에 포함되나요?
손재익 목사
(한길교회 담임)
김 집사: 목사님~ 제가 교회 헌법을 보다 보니 예배 부분 제5장에 ‘시벌과 해벌의 공포’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게 대체 뭡니까? 내용을 보니 벌을 내리고, 벌을 풀어주는 것 같은데, 예배와 무슨 상관이 있나요?
손 목사: 김 집사님께서 헌법 책을 아주 자세히 읽으셨네요. 시벌과 해벌은 예전 헌법에도 있던 것으로 제일 마지막 10장에 있던 것이 개정 헌법에는 5장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니 원래부터 예배 안에 있던 것입니다.
질문하신 대로, 시벌(施罰)이란 벌을 내리는 것이고, 해벌(解罰)이란 벌에서 풀어주는 것입니다. 초등학생인 저의 아들은 시벌이라고 하니까 이상하게 생각하더군요.
김 집사: 그렇군요. 그러면 벌을 내린다는 건 무엇이고, 그 내용은 왜 예배 안에 있습니까?
손 목사: 시벌은 권징(勸懲) 절차 중 하나입니다. 집사님도 들어보셨겠지만, 개혁주의 교회의 표지는 말씀, 성례, 권징입니다. 이 세 가지는 교회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예배를 통해 이 세 가지가 드러나야 합니다. 교회헌법 예배 제1조에서 그 내용을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교회는 성도가 말씀에서 벗어날 때 권고(勸告) 또는 징계(懲戒)를 하는데, 그 가운데 징계에 이르는 죄가 있을 때, 교회재판을 거쳐서 권징을 시행합니다. 이때 어떤 내용은 은밀하게 그 사람에게만 해야 하는 것이 있는 반면, 어떤 내용은 모든 교인이 알게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고전 5:6; 딤전 5:20). 그래서 공예배 중에 모든 회중이 있는 자리에서 공포합니다(예배 제22조 2항). 이렇게 함으로써 범죄 한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죄를 깨닫고, 부끄러워하여, 회개하며 신자 본연의 위치로 돌아가게 해 줍니다(고전 5:5; 살후 3:14; 예배 제22조 1항). 또한 예배에 참석한 회중으로 하여금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위로하며 속히 회개할 수 있도록 도우며, 자신도 그러한 범죄에 빠지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경계하게 만듭니다. 참고로, 디모데전서 5:20은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 나머지 사람들로 두려워하게 하라”고 말씀하는데, 이것이 근거 구절입니다.
교회헌법 예배의 제3장 제8조 제2항에 보면 ‘예배의 순서’가 나오는데, 거기에 보면 권징이 나옵니다. 바로 여기에 근거해서 제5장에 ‘시벌과 해벌의 공포’가 있는 겁니다.
김 집사: 그렇군요. 저는 시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만, 예배 순서 중 언제 하는 건가요?
손 목사: 권징은 설교 이후 성례 이전에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왜냐하면 선포된 말씀에 어긋난 신앙과 생활이 있을 경우 권징을 합니다. 그리고 권징에 따라 성찬 참여 여부가 결정됩니다. 심각한 죄악이 있을 경우 시벌의 종류 중 하나로 ‘수찬정지’라는 벌을 받게 되고, 그럴 경우 성찬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권징 제10조 제1항). 그렇기에 설교 후 성례 전에 권징을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개정 헌법은 이에 따라 설교(제4장), 시벌과 해벌(제5장), 성례(제6장)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김 집사: 해벌은 뭡니까?
손 목사: 하나님은 우리를 벌하기도 하시지만, 우리를 용서해 주시기도 하지요? 해벌은 용서의 복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순서입니다. 시벌 받은 사람이 일정한 기간을 지나면서 회개의 합당한 열매가 있다면 그의 죄가 무엇이든 간에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예배 제23조 1항).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신 것처럼 말이죠.
권징은 벌을 주는 것보다 진리를 보호하며 그리스도의 권위와 영광을 옹호하며 악행을 제거하고 교회의 정결과 덕을 세우며 범죄자의 영적 유익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권징 제2조). 그래서 시벌 받은 자가 그 시벌의 기한을 경과하였거나 회개의 증거가 나타난다고 판단될 때 치리회는 그의 해벌을 결의하고 이를 교회 앞에서 공포해야 합니다(예배 제23조 2항). 그래서 예배 중에 시벌 순서와 마찬가지로 해벌 순서가 있는 것입니다.
시벌 때에 모든 회중이 죄에 대해 두려워했다면, 해벌 때에 모든 회중은 용서의 하나님을 찬송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예배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지요.
손 목사: 교회 헌법 안에 시벌과 해벌이 있는 것은 오랜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준 미국 장로교회는 초창기부터 시벌을 예배지침에서 다루었습니다(1788년 예배지침 10장). 우리 고신 교단만 아니라 합동, 합신 예배모범도 시벌과 해벌을 다룹니다. 심지어 두 교단의 헌법에는 보다 더 상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배의 한 부분으로 다룬 것은 권징이 영적인 성질의 것임을 가르쳐 줍니다.
손 목사: 안타깝게도 오늘날 예배에서 시벌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신앙생활을 오래 하신 집사님께도 이 내용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권징이 사라진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과연 오늘날 교회 안에 죄가 사라져서 그럴까요? 과연 시벌할 일이 없을 정도로 순결해서일까요? 그럴 리는 없다고 봅니다. 오히려 오늘날 예배에서 시벌이나 해벌이 없음은 죄와 용서의 복음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은 아닌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벌과 해벌이 예배 중에 바르게 시행된다면, 복음의 참된 의미, 죄에 대한 두려움, 용서와 화평의 복음의 의미, 교회의 거룩성이 모두에게 잘 드러날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