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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이번 기획기사는 신자의 장례입니다. 어느 문화나 마찬가지겠지만 동양문화는 생노병사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독특한 축하 및 애도의 문화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한국교회의 장례문화는 전통적인 장례문화와 구분이 안될 정도로 상호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천주교회는 이 장례와 기타 애도문화로 인해 큰 곤혹을 치르기도 했고요. 토착화도 필요하겠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장례에 관해, 그리고 장례에 관련된 제반 문제를 차분히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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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대우 목사
고신대학교 교수
개혁주의학술원 책임연구원



죽은 불신자나 자살한 사람을 위해서도 기독교 장례식이 가능한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대부분 부정적일 것이다. 아마도 기독교 장례란 신자를 위한 것이지 불신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이것은 간단한 문제도 아니고, 해결책도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어쩌면 모든 것은 경우마다 상이한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다.

가령 신실한 집사 부부나 장로 부부의 양가 부모님 가운데 한분이 불신 죽음을 맞이했을 경우에 죽은 당사자가 불신자이기 때문에 기독교 장례를 치를 수 없는가? 이 질문 앞에 목회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럴 경우에는 ‘당연히’ 기독교 장례를 치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지도 모른다. 사실 이런 경우에는 상주가 기독교 장례를 원한다면 대부분 기독교 장례로 장례식을 치르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경우에는 왜 ‘불가’가 아닌 ‘가’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장례식에 찾아오는 불신 인척과 친척에게 전도할 수 있는 호기라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상반되는 경우도 있다. 죽은 사람이 신실한 집사였으나 혼자만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나머지 모든 가족들이 기독교 장례를 강력히 반대할 경우 비록 신자의 죽음이지만 기독교 장례를 치를 도리가 없다. 이런 경우의 대부분은 불교식 혹은 유교식으로 장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교리적인 차원이나 신앙적인 측면을 고려한다면 이런 경우가 반대의 경우보다 훨씬 더 당황스럽고 황당하다. 왜냐하면 부정적으로는 죽음이 죄의 결과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영원히 이별하는 고통이지만, 긍정적으로는 모든 죄의 멍에로부터 벗어나는 기회요, 더 나은 환경으로 이동하는 최고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즉 아무런 방해 없이 그리스도와 온전히 연합하는 지복(至福),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죽은 신자의 장례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동료 신자들에 의해 치러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할 경우가 왕왕 발생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럴 경우 살아 있는 동료 신자들은 비록 그의 시신을 두고 장례를 치르진 못할지라도 ‘추모’ 형식의 장례식을 교회에서 따로 치르는 것도 유의미한 일이다.

불신자가 죽었을 경우 그의 장례를 기독교식으로 하는 것은 가능한 일인지, 가능하다면 어떤 의미에서 가능한 것인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인지, 불가능하다면 어떤 의미에서 불가능한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불교나 유교의 장례식은 오직 죽은 자만을 위한 것이다. 반면에 기독교의 장례식은 죽은 자를 위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사실상 오히려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것이다. 교리적으로 보면 신자의 장례식장은 분명 슬픔의 자리가 아닌, 기쁨의 자리다. 그러므로 신자들에 의한 신자의 장례식장에서는 인간적인 이별의 슬픔이 없을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냥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그리스도와의 영원한 연합에 들어간 것을 함께 기뻐하고 축하하며 위로하는 것이다. 위에서 예를 든 경우 둘 다 이와 같은 기쁨과 축하와 위로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불신자의 죽음을 통해서는 그리스도와의 영원한 연합을 함께 기뻐하고 축하하며 위로하고 소망하는 일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목회자들은 죽은 사람의 장례를 기독교식으로 해달라는 유가족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쉽게 응하지 못하고 망설이거나 단호하게 거절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자살한 사람의 장례를 기독교식으로 치르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구 역사에서는 죽은 사람의 장례를 그 지역의 사제나 교구 목사가 담당해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죽은 사람의 신분이 밝혀지지 않았거나 죽음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경우도 시신을 묻고 매우 짧은 기도문을 외우는 등 간소하게나마 장례를 치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로마가톨릭교회에서는 교리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교리에 따르면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당연지사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천주교는 제사도 수용하기 때문에 죽은 불신자나 자살자의 장례를 치르는 일이 아무런 문제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할 수 없다고 가르치는 개신교에서는 죽은 불신자나 자살자의 장례가 당연히 문제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할 수 없다는 원칙은 죽은 자가 단지 불신자인 경우에만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의 경우에도 해당한다. 그 원칙이 신자건 불신자건 두 경우 모두에 해당하는 것이라면 이 문제로 불신자의 장례를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불신자의 죽음에서 단 하나 문제가 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 죽음이 죽은 당사자에게 최고의 선물이 아니라는 사실이고, 또한 이 사실에 기인하는 축복과 위로와 소망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런 곤란한 문제들이 과연 개신교 목회자에게 불신자의 장례를 치르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는 있는가?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사실상 개신교 장례는 죽은 당사자보다는 오히려 남은 유가족이나 장례식에 참석한 하객들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불신자의 장례를 금지할 이유는 딱히 없는 것으로 보인다. 죽은 자가 신자였건 불신자였건 유족들이나 하객들이 모두 신자가 아니라면 ‘죽음을 통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의미가 장례식에서 순전하게 적용되기는 어렵다. 또한 현재 한국 개신교의 장례 문화가 기독교적인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어쩌면 더 큰 문제는 후자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상 유교적 장례 문화의 잔재인 부조 때문에 유족들이나 하객들이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모두 기독교인 장례식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우리의 장례 문화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함’이 강조되지는 않는다. 또한 장차 누리게 될 온전한 연합에 대한 소망이 가장 중요한 장례 요소로 자리 잡은 것도 아니다. 오늘날 기독교 장례식을 집례 하는 목회자가 고려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실상 참석한 유가족이나 하객들이다. 그래서 장례 설교와 메시지에는 신자에겐 소망을 품게 하고, 불신자에겐 복음을 들려주고자 하는 의도가 강하게 나타난다.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메시지는 유럽과 미국의 기독교 장례 문화와는 달리 한국의 기독교 장례식에서 뺄 수 없는 기본 요소가 되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한다면 교회 안에서 불신자의 주검을 기독교 장례식으로 치르지 못하도록 금지해야 할 당위성을 찾기는 힘들 것 같다. 불신 죽음을 기독교 장례식으로 치르도록 허용할 수 있다면 자살자의 죽음 역시 허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과연 성경이나 기독교 교리가 죽은 불신자의 장례를 기독교식으로 치르는 것을 금하는가? 이것을 직접적으로 금하는 성경 말씀과 기독교 교리가 있는가? 아무튼 죽은 자가 불신자든 신자든 기독교 장례식으로 치르지 못하거나 목사가 그 장례식을 집례하지 못할 근본적인 이유는 없다. 왜냐하면 누군가 죽은 자의 장례를 맡아서 처리하는 것은 그 자체로 선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 자체가 선한 일이요, 한국 상황에서 불신자의 장례를 맡아 처리하는 것은 전도할 수 있는 최상의 기회이기도 하다. 마음껏 복음을 선포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주는 격인데, 그런 장례 집례의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고 전도를 위해서라면 교회의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각 시대의 교회마다 진리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면, 먼저 그와 연관된 교회의 교리와 역사를 살핀 다음, 무엇이 교회 건설(aedificatio ecclesiae)을 위해 더 정당하고 유익한지 신중하게 고민하여 선한 것을 선택할 자유가 있고, 또한 새로운 관행을 만들 자유도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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