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기획기사의 주제는 "교회는 어떻게 세워지는가?"입니다. 우리는 현재 교회 위기의 시대를 넘어 생존을 걱정해야할 시기로 접어들었습니다. 저출산 문제와 고령화 사회, 그리고 복음전도의 위축은 교회의 생존마저 위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교회는 이 땅의 유일한 소망이자 구원의 방편이며,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참되게 예배하는 교회를 이 땅에 항상 있게 하실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믿음 가운데 개혁주의 장로교회를 세워가기를 소망하는 목회자들 또한 항상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건강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 목회 현장에서 분투하는 이들의 수고와 고민을 소개하고, 위기의 시대에 교회가 어떻게 생존해 갈 수 있는지에 대한 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 편집자 주
담임목사와 함께 교회 세우기
이훈희 목사
(새언약교회 부목사)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지상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 목회자를 선물로 주셨다(엡 4:7~12). 교회는 목사를 청빙하여 교회를 세우는 권한을 위임했다. 그러나 한 교회에 성도가 많아짐에 따라 담임목사를 도와줄 부교역자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교회는 담임목사와 함께 일할 부교역자를 세웠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담임목사와 부교역자가 함께 교회를 세우기는커녕, 서로를 험담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담임목사와 부교역자가 함께 교회를 세우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약 4년 6개월간 아무 문제 없이(?) 한 교회에서 한 담임목사와 함께 교회를 세우고 있는 필자는 복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부교역자로서 담임목사와 함께 교회를 세우는 데 고려해야 할 점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물론 이것이 모든 경우에 적용되는 법칙은 아니지만, 이러한 경험을 통해 담임목사와 부교역자가 함께 교회를 세우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1. 신학적 관점에서 함께 교회 세우기
대부분의 교회에서 교회를 세우는 방향성, 교회를 세우는 신학적 관점을 결정하는 사람은 담임목사다. 담임목사가 한 교회의 위임목사로서 어떤 교회를 세울 것인가를 고민하고 방향성을 결정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교회에서는 이러한 역할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소위 하달식으로 운영되는 실정이다. 담임목사가 교회를 어떻게 세울지에 대한 신학적 관점을 결정하면, 부교역자는 단순히 따라야 하는 경우가 많다. 또는 이와는 반대로, 장년부는 담임목사가 맡고, 나머지 교육부서는 부교역자에게 맡기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렇게 되면 담임목사와 부교역자의 신학적 관점이 다르더라도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 이와 같은 상황으로 한국교회에서는 부교역자가 담임목사에게 완전히 종속되거나, 또는 완전히 분리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실제로 담임목사와 부교역자의 위치는 이런 위치가 아니다. 담임목사와 부교역자는 교회를 함께 세우기 위해 협력해야 하는 동료다. 그래서 담임목사와 부교역자는 교회를 세우기 위한 신학적 관점을 일치시켜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교회가 통일된 방향으로 세워질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서로 의견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것이 중요하다. 담임목사가 단순히 명령하는 것도 아니고, 부교역자가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도 아니다. 담임목사와 부교역자는 교회를 세우기 위한 신학적 관점을 함께 고민하고 토론해야 한다. 어떤 교회를 세우는 것이 하나의 거룩하고 사도적인 공교회를 세우는 것인지, 장로교회로 세워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담임목사가 먼저 자신의 생각을 부교역자들과 공유해야 한다. 자신의 신학적 관점을 이야기하고, 교회를 어떻게 세우고자 하는지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더 나아가서 자신의 신학적 관점에 잘못된 부분은 없는지 점검을 받고, 조정해야 한다. 이러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은 교역자 회의나 교역자 수련회다. 이 시간을 단순히 업무를 위한 시간으로 삼지 말고, 담임목사와 부교역자가 함께 신학적 관점을 일치시키기 위한 장으로 활용하면 좋겠다.
2. 목회적 관점에서 함께 교회 세우기
위에 살펴본 바와 같이 담임목사와 부교역자가 신학적 관점에서 함께 교회를 세워가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 과정은 목회적 관점에서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의 현재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않고는 신학적인 토론은 단지 이론적인 것으로 머물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교역자는 교회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성도들과의 교제에 노력을 기울이고, 여러 상황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모든 성도와의 관계를 맺을 수는 없겠지만, 교육부서 내에서는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부교역자는 한계가 많다. 교회의 모든 목회적 상황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담임목사는 교회의 상황을 부교역자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함께 목회적인 고민을 나누어야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담임목사와 부교역자는 교회를 함께 세워가는 동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더라도 담임목사는 일반적으로 부교역자에게 성도들의 상황을 잘 알려주지 않는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부교역자를 믿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담임목사의 고충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성도들의 민감한 부분들이 여러 사람에게 알려지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임목사는 부교역자에게 교회 내 목회적 돌봄이 필요한 성도들의 상황과 형편을 알려줘야 한다. 모든 것을 공유할 필요는 없지만, 어느 정도의 정보 공유는 필요하다. 또한 교회의 역사를 설명하고, 현재 교회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에 대한 목회적인 고민을 함께 나눠야 한다.
부교역자는 담임목사와 함께 목회를 하기 위해 교회를 섬기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의 목회적 상황을 알게 된다면, 더욱 기도하고 노력할 것이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게 될 것이다. 또한 교회에 관한 목회적 고민을 함께 나누어, 담임목사가 고려하지 못한 측면을 제시할 수 있다. 오늘날 담임목사는 부교역자가 책임감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이는 부끄러운 일이지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임목사가 교회에 관한 목회적 고민을 함께 나눌 때, 부교역자는 목회적인 책임이 담임목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3. 인격적 관점에서 함께 교회 세우기
사실, 앞의 두 이야기의 가장 큰 전제가 있다. 그것은 신뢰다. 인격적인 관계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학적 관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도, 목회적 관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다. 그래서 인격적인 관계를 먼저 형상하기 위해 담임목사와 부교역자는 노력해야 한다. 이런 관계는 함께 커피를 마시고, 식사를 하고, 운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그래서 담임목사와 부교역자는 의도적으로 이런 시간을 갖고 서로 신뢰를 쌓아야 한다. 필자의 교회는 이를 위해 매주 한 번은 함께 식사하고 커피를 마신다. 또한 함께 운동할 수 있는 기회를 찾는다.
담임목사와 부교역자는 한 팀이 되어야 한다. 한 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축구에서도 라커룸에서의 분위기가 좋아야 필드에서의 경기가 원활하게 진행된다고 한다. 서로 인격적인 관계가 형성되고 서로 신뢰하는 상황에서 더 나은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인격적인 관계는 단순히 담임목사와 부교역자 사이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사역 현장에서도 드러난다. 함께 교회를 세우는 데에 있어서 큰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의 부교역자 공고를 보면 “가족 같은 분위기”를 자랑한다. 이는 인격적 관계를 맺고 함께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의지를 나타낸다. 하지만 실제로 서로를 이해하기보다 비난하는 경우가 많다.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는 없고 인격적인 관계는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담임목사와 부교역자는 어쩔 수 없이 세대 차이가 난다. 그뿐만 아니라 각자 경험해왔던 것들이 다르다. 담임목사와 부교역자는 이것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인격적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오늘날 교회는 기업과 유사한 면이 있다. 사장이 직원을 대하는 방식과 담임목사가 부교역자를 대하는 방식이 비슷할 때가 있다. 부교역자 역시 자기를 직원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저 직원으로 대우를 잘 받기만 바란다. 하지만 교회는 기업과 다르다. 교회는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무례히 행하지 않으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성내지 않는다. 이것은 담임목사와 부교역자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명심하여 담임목사와 부교역자 간의 인격적 관계를 잘 형성할 수 있도록 서로 노력해야 한다. 교역자 사이에서도 이런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데 어찌 성도들에게 이것을 가르칠 수 있으며, 교회를 세울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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