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을 환영합니다.
최종편집
기획기사
조회 수 5442 추천 수 0 댓글 1



 

     이번 기획기사는 장로입니다. 직분명이 교회의 명칭이 된 유일한 경우가 바로 장로입니다. 승천하신 주님께서 지금도 교회를 직접 다스리시는 방편으로 주신 직분이 장로이지만 장로직에 대한 원성(?)이 높아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몇 편의 글이지만 장로직의 영광을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재합니다. - 편집장 주 -


 

목사와 장로의 바람직한 관계

 

 

황대우.jpg









황대우 교수

(고신대 개혁주의 학술원)

 

 

             목사와 장로의 바람직한 관계를 논해야 한다는 것이 목사로서 왠지 서글프다. 목사는 가르치는 장로. 그렇다면 목사도 장로라는 말이다. 그런데 목사와 장로 사이의 관계가 그렇게 썩 좋아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이런 제하의 글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소위 장로와 장로 사이의 불화가 오늘날 한국교회 대부분의 현실이다.

             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가르치는 장로다스리는 장로 사이의 불협화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 불협화음이 과연 목사와 장로 사이에만 존재하는가? 아니다. 다스리는 장로와 다스리는 장로 사이에도 존재하고, 장로 집단과 집사 집단 사이에도 존재한다. 불협화음은 사실상 교회의 거의 모든 기관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보편적 현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불화의 가장 심각한 진원지는 바로 목사와 장로 사이의 갈등이다. 이 갈등이 심화될 경우 그 파장과 결과의 위력은 교회를 분열시키고 파괴할 정도로 대단하다.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화와 갈등의 반목은 단순히 1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2세대와 3세대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문제는 훨씬 더 심각해지고 복잡해진다.

             목사와 장로 사이의 갈등과 불화는 사실상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인간 역사에서 이런 종류의 불화와 갈등은 대부분 누가 머리인가?의 문제와 직결된다.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이 교회의 머리라고 가르치고 배우지만, 대부분의 지상교회는 이것만으로 인간 역사의 보편적 문제, 우두머리 현상을 극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아마도 이것은 그 교회들의 교리적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시지만, 실제적인 머리는 힘 있는 인간이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교회 분쟁이 발생하면 양심 뿐만 아니라 신앙조차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가르치는 장로와 다스리는 장로 사이에도 이견과 갈등은 일어날 수 있다. 목사도 장로도 옛 사람의 성품을 완전히 벗어버리지 못한 죄인이기 때문에 아무리 건강한 교회의 목사와 장로라 할지라도 이견과 갈등이 없을 수는 없다. 문제는 이견과 갈등이 불화와 분쟁으로 발전하도록 방치하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불씨라 해도 인화물질이 많은 곳에서는 초기에 신속하게 진압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것처럼 작은 갈등의 불씨도 믿음으로 초기에 진압하는 것이 현명하다.

             이견과 갈등이 쉽게 불화와 분쟁으로 번지게 하는 기름 역할을 하는 것이 우리 입의 이다. 교회는 참으로 말이 많은 곳이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고 가르치는 성경의 경고와 명령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오늘날 교회 안에서 가장 실천되지 않는 가르침 가운데 하나다. 어쩌면 원수를 사랑하는 일보다 말을 줄이는 일이 더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 교회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수군대는 말보다 겸손한 기도가 훨씬 위력 있다고 가르치지만 실제로 교회의 불화와 분쟁을 위해서는 기도가 무력한데 반해 수군대는 말은 핵폭탄의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 현실이다.

             가르치는 장로와 다스리는 장로 사이에 불화와 분쟁이 발생하면 그 피해는 교회가 고스란히 입게 된다. 이견과 갈등이 불화와 분쟁으로 발전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함께 기도하면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불화와 분쟁을 겪더라도 끝까지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고집해야 한다면 하나님의 진리를 손상하거나 왜곡시킬 수 없는 상황과 내용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특히 방법의 문제라면 언제든지 얼마든지 타협하고 양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양보 없이 끝까지 고집하고 싸운다면 그것은 불신앙적인 자세일 수밖에 없다고 감히 단정한다.

             세상에서는 누구의 목소리가 더 크냐?하는 문제가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교회에서 그것은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문제가 되어서도 안 된다. 모두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 앞에 평등하다. 다만 교회도 질서가 있어야 하고 이 질서를 위해 직분을 세우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회 직분 가운데 목사와 장로, 특히 장로교에서 목사와 장로 위에 있는 직분은 없다. 그래서 교회의 대소사를 의논하고 결정하는 곳이 목사와 장로로 구성된 당회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교회 직분에는 역할 분담만 있을 뿐이지 선후나 상하가 없다고 하는 주장은 교정되어야 한다.

             장로교에서 목사와 장로는 교회의 질서를 세워야 하는 중차대한 책무를 맡고 있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 생기는 균열은 당장 교회의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항상 서로를 배려하고 조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의 다른 누구보다 먼저 깨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누구보다 기도에 힘써야 할 성도들이다. 사실 장로의 직분은 가르치면서 동시에 다스리는 직책을 의미한다. 그런데 성경이 가르치는 장로와 다스리는 장로로 구분한 것은 교회 안에서 장로의 두 직무가 너무 중차대하기 때문이다.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딤전 5:17) 이 본문을 통해 우리는 교회에서 장로 직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다스리는 직분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는 최고의 권력자가 다스리고 지배하지만, 교회에서는 가장 많이 섬기는 일에 수고하는 자가 다스리고 지배한다. 이 섬김의 일을 감당하는 것이 장로 직분이기 때문에 다스리는 장로를 배나 존경해야 한다고 권면하는 것이다.

             또한 성경은 다스리는 장로와 가르치는 장로를 구분하면서 가르치는 장로에게 가장 큰 존경심을 가지도록 교회에 권면한다. 왜일까? 이것은 세상의 통치 방식과 하나님 나라를 대변하는 교회의 통치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는 통치가르침에 앞선다. 그래서 누가 권력을 잡았느냐에 따라 가르침이 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교회에서는 가르침다스림을 앞서고 다스림가르침으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 나라와 이 나라의 원리는 영원할 뿐만 아니라, 죄악으로 물든 이 세상을 구원할 유일하고 불변하는 가르침이다.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신 가장 중요한 일이 바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가르침이었다. 그리스도의 왕국은, 그리스도의 다스리심은 그분의 가르침 없이는 알려질 수도 나타날 수도 없는데,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선행되는 복음 선포 없는 하나님 나라는 뜬구름과 같다. 올바른 가르침으로부터 올바른 통치와 다스림이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올바른 가르침 없이는 올바른 다스림이 있을 수 없다. 반대로 올바른 다스림 없는 올바른 가르침이란 울리는 꽹과리일 뿐이다.

             그러므로 가르치는 장로와 다스리는 장로는 자신들을 직분자로 세우신 그리스도, 즉 머리를 중심으로 그분의 몸인 교회를 바르게 세워가기 위해 누구보다 서로 협력해야 할 사람들이다. 목사와 장로의 바람직한 관계는 이미 다 잘 알고 있다.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교회 안에서 장로가 다수라고 장로끼리 힘을 모아 목사와 싸우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때론 하나님을 대적하는 불신앙적 행위일 수 있다. 목사 역시 자신을 따르는 성도들을 앞세우거나 후견으로 삼아 자신을 반대하는 장로들을 쳐내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은 교회를 세우기는커녕 오히려 허무는 행위일 뿐이다. 목사와 장로가 대립하는 교회치고 건강한 교회는 없다. 목사와 장로는 교회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자신을 최우선으로 희생할 각오로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할 수 있는 최고의 동역자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 저작권자 개혁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전광원 2016.02.16 11:04

    오늘날 교회공동체 안에서 목사와 장로의 직분은 계급화 된 것이 현실입니다.

    따라서 직급이 아닌 직분이라는 말을 강조하기 보다,

    차라리 직급으로 인정해 주고 교회 공동체를 건강하게 이끌어 갈 수 있도록

    [교단과 개혁정론]에서

    [교회정치와 리더십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매년  [보수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


  1. notice

    [교회는 어떻게 세워지는가 3] 우리는 ‘4무’ 교회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번 기획기사의 주제는 "교회는 어떻게 세워지는가?"입니다. 우리는 현재 교회 위기의 시대를 넘어 생존을 걱정해야할 시기로 접어들었습니다. 저출산 문제와 고령화 사회, 그리고 복음전도의 위축은 교회의 생존마저 위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교...
    Date2024.07.09 By개혁정론 Views73
    read more
  2. notice

    [교회는 어떻게 세워지는가 2] 건물과 장소에 관하여

    이번 기획기사의 주제는 "교회는 어떻게 세워지는가?"입니다. 우리는 현재 교회 위기의 시대를 넘어 생존을 걱정해야할 시기로 접어들었습니다. 저출산 문제와 고령화 사회, 그리고 복음전도의 위축은 교회의 생존마저 위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교...
    Date2024.07.02 By개혁정론 Views114
    read more
  3. notice

    [교회는 어떻게 세워지는가 1] 교회의 잉태와 출생

    이번 기획기사의 주제는 "교회는 어떻게 세워지는가?"입니다. 우리는 현재 교회 위기의 시대를 넘어 생존을 걱정해야할 시기로 접어들었습니다. 저출산 문제와 고령화 사회, 그리고 복음전도의 위축은 교회의 생존마저 위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교...
    Date2024.06.25 By개혁정론 Views146
    read more
  4. [선교] 선교 현장에서 만나는 일들

    이번 기획기사는 선교입니다. 한국교회는 선교적인 열심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작금에 선교의 폐해가 심하기도 합니다. 교회와 선교단체와의 관계도 문제입니다. 선교의 주체가 누구인지, 선교의 목표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확인해야 하겠습니다. 한국교...
    Date2016.07.25 By개혁정론 Views770
    Read More
  5. [선교] 고신총회 세계선교회의 선교정책과 과제

    고신총회 세계선교회의 선교정책과 과제 (지역선교부 개편과 선택과 집중 정책을 중심으로) 고신총회 세계선교회(Kosin Presbyterian Mission, KPM)는 교단의 선교업무를 주관하고 실행하는 총회적 기구다. 따라서 교단선교의 전략과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할 ...
    Date2016.07.22 By개혁정론 Views1467
    Read More
  6. [선교] 선교지의 신학 교육에 대한 평가와 과제

    이번 기획기사는 선교입니다. 한국교회는 선교적인 열심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작금에 선교의 폐해가 심하기도 합니다. 교회와 선교단체와의 관계도 문제입니다. 선교의 주체가 누구인지, 선교의 목표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확인해야 하겠습니다. 한국교...
    Date2016.07.20 By개혁정론 Views1062
    Read More
  7. [선교] 종교개혁자들에겐 선교개념이 없었는가?

    이번 기획기사는 선교입니다. 한국교회는 선교적인 열심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작금에 선교의 폐해가 심하기도 합니다. 교회와 선교단체와의 관계도 문제입니다. 선교의 주체가 누구인지, 선교의 목표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확인해야 하겠습니다. 한국교...
    Date2016.07.18 By개혁정론 Views1552
    Read More
  8. [선교] 선교사는 누구인가?

    이번 기획기사는 선교입니다. 한국교회는 선교적인 열심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작금에 선교의 폐해가 심하기도 합니다. 교회와 선교단체와의 관계도 문제입니다. 선교의 주체가 누구인지, 선교의 목표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확인해야 하겠습니다. 한국교...
    Date2016.07.15 By개혁정론 Views3143
    Read More
  9. [찬송에 대하여] 21세기 찬송가의 문제점

    이번 기획기사는 ‘찬송에 대하여’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누구보다 노래를 잘 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찬송을 많이 불렀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흥얼거리는(?) 찬송이 우리의 고백을 제대로 담고 있을까요? 찬송도 고백이라는 관점...
    Date2016.07.06 By개혁정론 Views3294
    Read More
  10. [찬송에 대하여] 성가대가 꼭 필요한가?

    이번 기획기사는 ‘찬송에 대하여’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누구보다 노래를 잘 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찬송을 많이 불렀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흥얼거리는(?) 찬송이 우리의 고백을 제대로 담고 있을까요? 찬송도 고백이라는 관점...
    Date2016.07.01 By개혁정론 Views4789
    Read More
  11. [찬송에 대하여] 하나님은 어떻게 찬송하는 것을 좋아하실까?

    이번 기획기사는 ‘찬송에 대하여’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누구보다 노래를 잘 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찬송을 많이 불렀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흥얼거리는(?) 찬송이 우리의 고백을 제대로 담고 있을까요? 찬송도 고백이라는 관점...
    Date2016.06.07 By개혁정론 Views1946
    Read More
  12. [찬송에 대하여] 하나님은 어떤 찬송을 좋아하실까?

    이번 기획기사는 ‘찬송에 대하여’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누구보다 노래를 잘 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찬송을 많이 불렀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흥얼거리는(?) 찬송이 우리의 고백을 제대로 담고 있을까요? 찬송도 고백이라는 관점...
    Date2016.06.03 By개혁정론 Views6124
    Read More
  13. [찬송에 대하여] 예배에서 찬송의 위치

    이번 기획기사는 ‘찬송에 대하여’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누구보다 노래를 잘 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찬송을 많이 불렀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흥얼거리는(?) 찬송이 우리의 고백을 제대로 담고 있을까요? 찬송도 고백이라는 관점...
    Date2016.06.01 By개혁정론 Views2582
    Read More
  14. [찬송에 대하여] 공예배에서 악기 사용, 어떻게 해야 하나?

    이번 기획기사는 ‘찬송에 대하여’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누구보다 노래를 잘 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찬송을 많이 불렀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흥얼거리는(?) 찬송이 우리의 고백을 제대로 담고 있을까요? 찬송도 고백이라는 관점...
    Date2016.05.30 By개혁정론 Views3689
    Read More
  15. [찬송에 대하여] 시편찬송으로 하나님을 찬송합시다

    이번 기획기사는 ‘찬송에 대하여’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누구보다 노래를 잘 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찬송을 많이 불렀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흥얼거리는(?) 찬송이 우리의 고백을 제대로 담고 있을까요? 찬송도 고백이라는 관점...
    Date2016.05.27 By개혁정론 Views2101
    Read More
  16. [찬송에 대하여] 시편찬송을 불러야 개혁교회인가?

    이번 기획기사는 ‘찬송에 대하여’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누구보다 노래를 잘 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찬송을 많이 불렀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흥얼거리는(?) 찬송이 우리의 고백을 제대로 담고 있을까요? 찬송도 고백이라는 관점...
    Date2016.05.23 By개혁정론 Views2834
    Read More
  17. [찬송에 대하여] 목사의 직무 중 '찬송을 지도하는 일'에 관하여

    이번 기획기사는 ‘찬송에 대하여’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누구보다 노래를 잘 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찬송을 많이 불렀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흥얼거리는(?) 찬송이 우리의 고백을 제대로 담고 있을까요? 찬송도 고백이라는 관점...
    Date2016.05.20 By개혁정론 Views2654
    Read More
  18. [찬송에 대하여] 찬송의 의미

    이번 기획기사는 ‘찬송에 대하여’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누구보다 노래를 잘 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찬송을 많이 불렀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흥얼거리는(?) 찬송이 우리의 고백을 제대로 담고 있을까요? 찬송도 고백이라는 관점...
    Date2016.05.18 By개혁정론 Views2120
    Read More
  19. [구원론] 구원,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뿐인가?

    이번 기획기사는 구원론입니다. 구원에 관해 관심이 없는 종교가 있겠습니까? 종교인 중에 구원받기를 바리지 않는 이들이 있겠습니까? 신을 믿는 것은 구원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기독교의 구원은 다른 어떤 종교의 구원개념과 다릅니다. 우리는 자...
    Date2016.05.16 By개혁정론 Views1531
    Read More
  20. [구원론] 기독교의 구원과 불교의 구원

    이번 기획기사는 구원론입니다. 구원에 관해 관심이 없는 종교가 있겠습니까? 종교인 중에 구원받기를 바리지 않는 이들이 있겠습니까? 신을 믿는 것은 구원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기독교의 구원은 다른 어떤 종교의 구원개념과 다릅니다. 우리는 자...
    Date2016.05.02 By개혁정론 Views5013
    Read More
  21. [구원론] 유대교는 구원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는가?

    이번 기획기사는 구원론입니다. 구원에 관해 관심이 없는 종교가 있겠습니까? 종교인 중에 구원받기를 바리지 않는 이들이 있겠습니까? 신을 믿는 것은 구원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기독교의 구원은 다른 어떤 종교의 구원개념과 다릅니다. 우리는 자...
    Date2016.04.25 By개혁정론 Views8044
    Read More
  22. [구원론] 구원을 틀림없이 확신할 수 있는가?

    이번 기획기사는 구원론입니다. 구원에 관해 관심이 없는 종교가 있겠습니까? 종교인 중에 구원받기를 바리지 않는 이들이 있겠습니까? 신을 믿는 것은 구원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기독교의 구원은 다른 어떤 종교의 구원개념과 다릅니다. 우리는 자...
    Date2016.04.20 By개혁정론 Views2414
    Read More
  23. [구원론]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인가?

    이번 기획기사는 구원론입니다. 구원에 관해 관심이 없는 종교가 있겠습니까? 종교인 중에 구원받기를 바리지 않는 이들이 있겠습니까? 신을 믿는 것은 구원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기독교의 구원은 다른 어떤 종교의 구원개념과 다릅니다. 우리는 자...
    Date2016.04.15 By개혁정론 Views7298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 25 Next
/ 25

기획기사

사설
[사설] 성찬상을 모독하지 마라
[사설] 제7차 개정헌법 헌의안, 총...
[사설] 총회장은 교단의 수장이 아...
[사설] 명예집사와 명예권사, 허용...
[사설] 총회가 계파정치에 함몰되지...
[사설] 최근에 일어난 고려신학대학...
세계로교회 예배당 폐쇄 조치를 접하며 3
[사설] 총회(노회)가 모일 때 온라...
총회가 졸속으로 진행되지 않으려면
[사설] 누가 고신교회의 질서와 성...
칼럼
왕처럼 살고 싶습니까? 왕처럼 나누...
푸틴의 머릿속에 있는 그림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3부)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2부); 교회...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1부)
우리 악수할까요?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 (Peter Holt...
관심을 가지고 보십시오.
동성애 문제에 대한 두 교단의 서로...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잘못을 통해서...
기고
직분자 임직식에서 성도의 역할
죽음을 어떻게 맞을까를 잠시 생각하며
제73회 총회가 남긴 몇 가지 과제
전임목사는 시찰위원으로 선정될 수...
고신교회와 고재수 교수; 우리가 왜...
왜 고재수는 네덜란드에서 고려신학...
제73회 총회를 스케치하다
신학생 보내기 운동에 대한 진지한 ...
명예 직분 허용이 가져다 줄 위험한...
[고신 70주년에 즈음하여 9] 고신교...
논문
송상석 목사에 대한 교회사적 평가 ...
송상석 목사와 고신 교단 (나삼진 ...
송상석 목사의 목회와 설교 (신재철...
네덜란드 개혁교회 예식서에 있어서...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 예배지침 부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SFC 강령의 “전통적 웨스트민스터 ...
지역교회의 적정 규모(規模 size)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