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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획기사는 '세월호, 그 이후'로 꾸며 보았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대한민국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생중계한 거대한 사건이었습니다. 이제 한국 현대사는 세월호 참사를 비껴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분노와 흥분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세월호와 같은 참사가 다시 일어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게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요? -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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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대우 목사
고신대학교 교수
개혁주의학술원 책임연구원


세월호 사건으로 더욱 드러난 이단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을 온통 슬픔과 분노와 분열로 가득한 나라로 만들었다. 이 사건은 단순히 드러난 가해자와 피해자만의 문제가 아닌 국가 전체의 문제가 되었다. 이 사건에 보인 전 국민적 관심이 우리의 냄비 근성으로 끝나버리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모든 문제의 진단에 앞서 무엇보다도 먼저 피해자 가족들의 고통과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선객들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본 대한민국은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어 보인다. 청해진해운이라는 회사와 공무원의 유착관계와 심각한 관피아 문제, 철밥통 공무원의 무사안일주의, 정부의 긴급재난대책 부재와 일관성 없는 대처, 인기만을 추구하는 게으른 언론의 성급하고 무책임한 보도로 인한 국민적 혼란과 분열, 약간의 이견조차 불허하는 마녀사냥과도 같은 군중심리의 비민주적 의식과 태도, 부조리와 부정부패가 풀뿌리처럼 만연한 사회적 현실, 특정 기독교 사이비 종파 교주의 패륜적 반사회적 작태 등등.

이 가운데 사이비 종파 문제는 이번 세월호 사건의 핵심 가운데 하나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번 사건에 연루된 특정 기독교 사이비 종파는 기독교 내부에서 ‘구원파 이단’으로 분류되는 “기독교복음침례회”이다. 설립자는 권신찬과 그의 사위 유병언이다. 한국형 이단들은 대부분 족벌체제이고, 이단 교주들도 재력가요 사업가이면서 대부분 학력이나 목사 안수와 같은 과거가 명확하지 않고 안개정국처럼 묘연하다. 이런 교주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사기꾼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모범과 가르침을 따라 살기보다는 그리스도와 교회와 신앙을 이용하여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때문이다.

교회 내에서의 교주

그러고 보면 기존 교회들 가운데 대형교회 목사나 유명세를 탄 목사도 상당수는 사이비 종파의 교주와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아 심히 우려스럽다. 그들도 처음에는 아마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르고 그들이 그의 열혈 팬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그가 입으로 부르짖는 ‘주여, 주여’는 ‘나여, 나여’로 바뀌어 있다. 그래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교회와 성도는 비록 입술에는 있을지라도 마음에서는 흔적만 남긴 채 쉽게 지워지고 사라져버린다. 그래서 교주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사생팬들이 인기 연예인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듯이, 추종 세력은 능력 있는 종교인을 기꺼이 자신들의 교주로 받들고자 한다. 이처럼 인기는 사람을 쉽게 교주로 만든다. 바나바와 바울도 자신의 능력 때문에 루스드라에서 교주가 될 뻔한 적이 있다. 그곳 사람들이 바나바를 제우스 신으로, 바울을 헤르메스 신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들은 외쳤다.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행 14:11). 이 때 바나바와 바울은 그들이 외치는 소리에 우쭐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의 옷을 찢으며 이렇게 소리쳤다.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행 14:15). 이것으로 바나바와 바울은 교주가 될 절체절명의 위기를 모면했다. 이 선언이야말로 지금도 스스로 교주가 되지 않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목사는 교인들에게 쉽게 우상이 될 수 있다. 특히 존경을 받는다든지 능력이 있다든지 언변이 탁월하다든지 인기가 있는 목사라면 특히 더 그럴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들이 자신보다 인기 없고 능력 없는 다른 동료 목사들보다 훨씬 더 자주 자신을 쳐서 하나님께 복종시키는 훈련을 스스로 해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벌써 교주가 되어 있을 것이다. 한 번 교주가 되고나면 그 자리에서 내려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니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자신의 순수한 영혼은 이미 팔려 버리고 없기 때문이다. 빈껍데기만 남아 있다. 하지만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자신도 자신의 영적 상태를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19장 10절에서 환상 가운데 자신에게 계시를 보여준 한 천사의 발 앞에 엎드려 그를 경배하려고 하자 그 천사가 사도 요한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언을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여기서 또한 우리는 얼마나 쉽게 우상숭배에 빠질 수 있는 존재인가를 실감하게 된다. 사도 요한조차도 그런 연약한 존재인데 하물며 우리는 두말할 것도 없지 않은가!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해야 한다. 천사조차도 숭배의 대상이 아니다. 하물며 아무리 뛰어난 사람일지라도 결코 경배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천사든 사람이든 경배의 대상이라면 곧 신이 되는 것이다. 추종자들에게 교주는 경배의 대상이므로 신이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무흠한 것처럼 여길 정도로 존경하는 것은 이미 우상숭배인지 모른다. 우리는 누구나 우리 마음속에 우리만의 우상을 쉽게 만들 수 있다. 그렇다고 사람을 존경하지 말라는 뜻도, 존경하기를 주저하라는 뜻도 아니다. 그가 흠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존경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존경이다. 역사 속의 위인들은 쉽게 존경할 수 있는 대상이지만 그들도 역시 우리와 같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망각한다면 존경의 대상이 아닌 숭배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천주교의 얼룩진 우상숭배 역사가 이것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곁에 없는 죽은 위인보다는 살아 있는 위인이 훨씬 더 쉽게 숭배의 대상이 된다. 사이비 종파의 교주는 바로 그와 같은 대표적인 인간들이다. 이런 점에서 교회는 사람을 내세우고 높이고 자랑하는 일에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교주가 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칭찬받고 싶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혹 자신에게 자랑할 만한 남다른 능력이 있는 자들은 그 능력이 자신을 넘어지게 하는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항상 조심해야 한다. 한 순간이라도 자신을 하나님께 의탁하지 않을 때, 그는 여지없이 넘어지고 말 것이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자만이 넘어지는 일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 교만과 거만한 마음 없이 교주가 되는 일은 불가능하다. 어떤 단체든 수장이라면 언젠가 그 단체의 교주로 군림하고 싶은 유혹과 욕망에 사로잡히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목사만 그런 것이 아니다. 장로도, 심지어는 권사나 집사도 얼마든지 자신을 모든 사람의 선두에 세우고 싶은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다. 누구든 이런 유혹과 욕망을 스스로 단속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 쉽게 실천적 이단아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기존교회도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과 자성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시다. 그런데 뛰어난 특정 인간이나 특정 그룹이 교회의 주인행세, 머리행세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말로는 하나님을 외치고 그리스도를 외친다. 하지만 정작 교회에 심각한 분쟁이 발생하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만 난무하여, 곧 그 교회는 이전투구의 난장판으로 사분오열 될 수밖에 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서로를 물어뜯는 자들만 남기 때문이다. 영역 싸움을 위한 동물들의 힘겨루기와 별다를 바 없어 보인다. 결국 힘 있는 자는 살아남고 힘없는 자는 쫓겨난다. 그런 교회에는 으르렁거리는 맹수의 소리만 있을 뿐 복음이 없다. 말씀과 성령은 떠나고 짐승 같은 인간만 남아 있다. 이런 교회와 사이비종파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단의 특징: 자신이 주인이 되고자 하는 것

이단이나 사이비 종파는 교회 안에 나타나는 새로운 가르침이면서 동시에 핵심적인 기독교 신앙과 교리에 대한 파괴적 요소를 가진 가르침을 의미한다. 즉 기독교의 심각한 결함이나 왜곡이라고 할 수 있다. 이단의 공통적인 특징은 신앙의 유일한 대상이신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다른 무엇을 첨가하여 숭배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다른 무엇을 하나님처럼 숭배하기 때문에 기독교의 하나님을 숭배하지 않는 것이므로 결국 기독교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없다.

인간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는 눈에 보이는 그 무엇을 훨씬 믿음직스럽게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이단과 사이비 종파는 이런 인간의 심리를 잘 파악하고 이용한다. 그러므로 모든 이단과 사이비종파는 그 시대의 기독교 영성의 부정적인 측면과 왜곡을 가장 잘 보여준다. 그 시대와 대중의 마음을 읽고 이용하는 능력을 가진 자가 교주가 되는데, 사이비 종파의 교주는 대부분 자신의 능력을 의도적으로 악용하기 때문에 가장 악질적인 인간일 가능성이 높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곳, 이곳이 바로 이단의 소굴이다.

안타깝게도 한국교회에는 사이비 교주처럼 되고 싶어 하는 인간들이 한 둘이 아닌 것 같다. 이들은 대부분 인기라는 강력한 마약에 중독된 환자들이다. 돈과 권력의 맛을 아는 자들이요, 그것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조종하는 비법도 터득한 자들이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조차도 그들 자신의 뜻을 이루고 욕구를 채우는 도구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들은 말씀 앞에 부복하는 겸손한 자세가 없다.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기보다는 자신에게 묶어 두기 위해 성경을 자구적으로 해석하기를 즐긴다. 왜냐하면 자신을 말씀의 종으로 성경 아래 종속시키는 것을 싫어하고 대신에 자신을 말씀의 주인으로 성경 위에 세우고 교회를 지배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장 먼저 할 것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일은 무너진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회복하는 것이다. 바른 기독교 교리가 정립되어야 한다. 건전한 교리가 없는 신앙적 열심과 열정은 이단과 사이비종파로 변질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성경에 대한 바른 가르침이 얼마나 중요한지 망각하고 등한시할 때 기존 교회는 어느새 이단과 사이비종파가 양산소가 되어버릴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단과 사이비종파는 그 시대 기존 교회의 부정적인 모습, 일그러진 얼굴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준 이단적 작태에 대한 반성과 자성의 목소리가 없다면 한국교회의 미래는 지금보다 훨씬 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사후약방문의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이단적 가르침에 대해 일치된 목소리로 좀 더 신속하고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이단 문제는 기독교 교리와 신앙의 문제이기 때문에 신학적으로만 처리되어야 하고, 돈과 권력과 인간관계에 얽힌 정치적 문제로 희석되거나 해소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구원파와 같은 이단이 계속 기승을 부리고, 제 이 제 삼의 유병언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작금의 고신교단 안에도 이단적인 사설이 얼마나 난무하고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말씀의 권위가 상실된 곳은 어디나 이단적 사설이 난무할 수밖에 없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가 회복되어야 한다. 언변 좋은 인간의 세치 혀가 아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최고의 권위가 될 때, 비로소 이단과 사이비 종파의 번식이 억제되고, 교회가 교회다운 모습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각자에게 있는, 우리 교회 속에 감춰진 이단적인 성향부터 뿌리채 도려내도록 해야 한다. 오직 성령의 검인 말씀으로! 그래서 ‘내 교회’, ‘우리 교회’로 대변되는 ‘인간의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과 성령을 통해 머리이신 그리스도께로 친히 그 지체들을 불러 모으시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교회’와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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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 직분 허용이 가져다 줄 위험한...
[고신 70주년에 즈음하여 9] 고신교...
논문
송상석 목사에 대한 교회사적 평가 ...
송상석 목사와 고신 교단 (나삼진 ...
송상석 목사의 목회와 설교 (신재철...
네덜란드 개혁교회 예식서에 있어서...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 예배지침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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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C 강령의 “전통적 웨스트민스터 ...
지역교회의 적정 규모(規模 size)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