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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2016.12.04 22:43

[임직] 임직과 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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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획기사는 ‘임직’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기 위해 직분을 허락하셨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기도하는 가운데 직분자를 선택하여 임직을 합니다. 임직까지의 모든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려고 합니다. 요즘같이 직분이 희화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직분자가 바르게 세워지는 것이야말로 교회와 시대의 희망이 될 것입니다.  -편집장 주-  

 

임직과 안수

 

 

성희찬.jpg

성희찬 목사

(마산제일교회)

 

 

1. 질문

 

   목사, 장로, 집사로 임직할 때 흔히 안수를 시행한다. 그런데 임직식에서 안수는 왜 하는 것일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일까? 안수가 없으면 임직이 성립되지 않는 것일까? 임직을 받았느냐고 묻는 대신에 종종 안수를 받았느냐고 서로 말을 주고받을 만큼 안수는 직분 임직에서 중요한 순서로 이미 자리를 잡고 있다.

 

 

2. 그런데 놀랍게도 개신교회의 역사적 개혁주의의 뿌리가 되는 16세기 종교개혁 초창기에 개혁가들은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한 이 안수를 시행하는 것을 주저하였다. 

 

   그 이유는 중세 교회에서 팽배한 미신 때문인데 즉 그 사람에게 안수하는 것과 동시에 자동적으로 직분의 은사가 그 사람에게 함께 임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로마천주교는 안수를 성례로 보고 이를 통해 신비한 방식으로 그 직분에 은사가 임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개신교회 초창기에 안수는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보지 않았고, 그 결과 안수는 교회의 자유에 속한 사항이었다. 그러다가 서서히 안수 시행이 교회의 규정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예를 들어서 네덜란드의 경우 1571년 엠든에서 모인 노회는 다음과 같이 결정하였다: “사역자들이 예식문의 기도와 안수로 임직하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신이나 필연적인 의무로 행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이후 안수는 자유에 속한 것이 되었고, 도르트레흐르트 노회(1578년)는 다음과 같이 결정하였다: “안수 혹은 교제의 악수를 통해 임직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안수가 하나의 규정으로 자리를 잡게 되는데 즉 도르트레흐르트 총회(1618-1619)는 오직 목사 임직 시로 국한하여 안수를 임직의 과정으로서 규정을 하게 되었다.

 

 

3. 성경은 안수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구약시대에 레위인에게 안수한 것은 이들이 주의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민 8:10, 12). 신약에서 예수님이 병자들이나 아이들에게 안수하신 적은 있으나 직분을 세울 때 안수한 적은 없다. 즉 사도를 세울 때(마 10:1; 22:19)에 그러하다. 또 가룟 유다 대신 맛디아를 세울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바울과 바나바 역시 안수를 통해 세워졌다는 기록이 없다.

   사도행전 6장에서 일곱 사람을 세울 때에 안수하였다. 이 외에도 사도들이 어떤 사람을 교회 직분자로 세울 때 안수한 것으로 보인다(딤전 4:14; 5:22; 딤후 1:6).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들은 안수를 통해 직분에 적합한 은사가 주어진다고는 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도행전 6장에서 회중을 통해 일곱 사람을 선출할 때 분명히 볼 수 있는 것은 이미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을 세웠지, 안수를 통해 성령의 은사를 받은 후에야 임직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울과 바나바의 경우 임직이 아닌 선교사로 파송될 때에 안수를 받았다. 즉 안수를 통해 소명의 실행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직분의 은사가 임하였는지의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들이 안수할 때 성령을 받은 가시적이고 기이한 표가 나타났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행 8:15-17).

 

   안수 시에 직분에 합당한 성령의 은사가 임한다는 생각은 디모데후서 1:6(“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과 디모데전서 4:14(“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디모데에게 은사 곧 성령의 은사를 준 것은 안수가 아니라 성령이시다. 그래서 안수는 상징 즉 성령을 통해 성령의 은사가  임하며 또 그가 부름 받았다는 것을 가리키는 상징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안수가 직분의 봉사를 시작하는 도구이지 근원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신약교회의 토대를 놓은 당시 역사를 볼 때 로마천주교가 말하는 것처럼 안수를 통하여 특정한 은사가 가시적으로 임하며 그래서 안수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결코 할 수 없다. 

 

   그래서 17세기 네덜란드의 교회정치학자 푸치우스(Voetius)는 목사 임직 시 안수가 반드시 필연적인 것이라고 보지 않았으나 선한 것이라고 보았다(Pol. Eccl. III, 452, 575, 579),

 

   칼빈은 교회의 봉사를 위해 헌신하였다는 뜻에서 안수한다고 하였다:

 

 “물론 손을 얹는 일에 대한 명확한 명령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도들이 이를 계속해서 사용했으므로, 매우 조심스럽게 이를 지키는 것을 명령에 준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역의 위엄을 이런 식의 표징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높이 드러내는 것이 유익하며, 뿐만 아니라 안수를 받는 사람에게도 이제는 자기가 자기의 것이 아니요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는 일에 매인 자가 되었음을 경고하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더욱이 안수의 진정한 원래의 의미를 회복한다면, 그것이 허망한 표징이 되지도 않을 것이다....이 예식 역시 성령에게서 나온 것이므로 미신적으로 잘못 악용되지만 않는다면 이 예식도 무용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껴야 할 것이다...”(기독교강요 4:3:16 임직의 예식)

 

   한편 미국 북미개혁교회(CRCNA: Christian Reformed Church in North America)는 1973년 총회에서 다음과 같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였다:

 

   안수식은 성례가 아니라, 교회가 목사의 소명과 임직을 공적으로 확증하는 상징적인 행위이다. 안수는 그 자체로서 유익하지만(useful), 필수적인 것(essential)은 아니다.1)

 

   따라서 안수는 하나님의 계명은 아니어서 반드시 필수적인 것은 아니나, 교회에 유익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임직식에서 안수에 지나치게 치중하는 것은 지양해야하며, 안수와 함께 목사의 서약이 신실할 수 있도록 서약에 보다 강조를 두어야 할 것이다.  

 

 

4. 목사 임직에서 누가 안수를 하는가?

 

  1) 목사의 소명은 대개 회중의 선출, 시취(시험), 청빙 그리고 임직예식의 절차를 따라서 이루어진다. 웨스트민스터교회정치(1645년)는 임직할 때 ‘금식하고 기도하며 안수함으로써 임직한다’고 규정하였다. 따라서 안수는 임직식에서 한 과정에 불과하며 설교와 임직 받는 자와 회중의 약속, 기도와 축복, 권면과 함께 임직순서를 이루고 있다.

 

  2) 목사 임직에서 누가 안수를 하는가?

 

   목사 임직에서 누가 안수를 하는가, 장로도 목사 안수에 참여할 수 있는가는 문제는 교회역사에서 항상 논쟁이 되어 왔다.

 

   칼빈은 저서 <기독교강요>에서 디모데전서 4:14에 나오는 ‘장로회의 안수’에서 장로는 목사로 보았기에, 안수에는 오직 목사가 참여한다고 하였다. 이는 칼빈이 초창기에는 장로의 기원을 목회서신이 아니라 로마서 12:8과 고전 12:28의 ‘다스리는 자’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이어서 웨스트민스터 교회정치, 도르트 교회정치 역시 목사만 목사 안수에 참여하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모든 말씀의 사역자는 임직 위원인 설교권을 가진 노회원들이 금식하고, 기도하며 안수함으로써 임직되어야 한다”(웨스트민스터 교회정치, 1645)2)

 

 “임직은 예배 시간에 임직을 인도하는 목사의 안수와 임직을 위해 채택한 예식서 사용으로 이루어진다”(도르트 교회정치, 1619).

 

   목사 안수에 목사가 아닌 장로가 참여할 수 있는가 하는 논의의 핵심은 디모데전서 4:14에서 ‘장로의 회’에 의한 안수를 언급하고 있는데, 이 장로의 회에 목사가 아닌 장로도 그 일원이 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그래서 목사 뿐 아니라 장로를 동등한 감독으로 보는 교회와 교단에서는 장로도 장로회의 일원으로 목사 안수에 참여하였으나, 그렇지 않게 보는 교회는 당연히 목사의 안수에 배제되었다.

 

   종교개혁 이후 개혁교회들은 계속 체계적인 성경주해를 통해 더욱 성경적인 직분관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해왔는데 미국의 미국정통장로교회(OPC), 미국장로교회(PCA), 이 양 교회들은 모두 고신교회와 우호관계에 있는데, 장로를 목사와 동일한 감독으로 이해한다. 이는 19세기 미국 남장로교회가 받아 온 전통의 결과이다. 그래서 이 교단은 장로도 장로회의 동등한 일원으로서 목사 안수에 참여한다.

 

   한편 미국 북장로교회는 찰스 핫지의 견해가 대표적인 것인데 목사와 장로는 서로 다른 성경적 근거를 가진 직분이요 장로교회는 ‘소교구 감독제도’ (parochial episcopacy)라고 하여 목사 중심의 교회정치를 강조했다.3) 찰스 핫지의 조카 J.A. Hodge가 쓴 ‘교회정치문답조례’(원제목: 장로교회 헌법이란 무엇인가: What is Presbyterian Law as defined by The Church Courts, 1882. 곽안련 목사와 박병진 목사가 각각 번역하였으나. 최근 예장 합동 총회에서 주관하여 완역본을 내었다-배광식 외 역, 교회정치문답조례, 서울: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2011)가 이 미국 북장로교회의 견해를 대변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 북장로교회의 전통은 목사 안수에 장로는 참여할 수 없다. 장로는 장로회의 일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은 교회정치문답조례가 규정하는 내용이다:

 

 목사 장립식 때 누가 안수를 하는가? 소속 노회의 목사들과 언권회원들이 목사 장립식에서 안수를 한다....치리장로들은 노회의 회원들로서 후보자의 자격을 심사할 책임은 갖지만 장립식에 참여하지는 못한다. 1842년 구파 총회는 최근까지 장로교의 일관된 규례를 준수할 것을 권고했다. 다시 말하면 설교장로와 감독만이 이 예식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다음 해와 1844년에 총회는 장로교의 헌법이나 전통이나 헌법의 문자나 정신에서도 종교개혁 후 유럽과 미국 장로교회의 원리와 관례 어느 곳에서도 목사 장립에 안수하는 권한이 없다고 확언했다. 1860년 신파 총회도 똑같이 분명히 했다(<교회정치문답조례>626문답)

 

 

   한국교회는 처음부터 미국의 북 장로교회, 남 장로교회 선교사들을 통해서 영향을 받다보니 양 교회의 직분관을 모두 받아들이게 되었다. 즉 두 교회의 전통적 견해가 교회정치에 용해되었다. 고신교회의 경우 1980년의 교회정치에서는 ‘장로와 집사’ 두 직분을 규정하므로 미국 남장로교회의 전통을 따라 목사와 장로가 동등한 장로라는 것을 전제하였으나, 1992년과 2011년 교회정치에서는 목사 장로 집사 세 직분을 말하므로 목사와 장로를 구별하게 되었다. 이는 어쩌면 큰 변화라고도 할 수 있으나 그 배경은 알 수 없다.

   장로가 목사 안수에 참여할 수 있는가는 문제는 디모데전서 4:14의 ‘장로의 회’에 목사를 포함하여 지금의 장로가 포함될 수 있는가에 있다. 따라서 다음의 질문들, 디모데전서 3장에 나오는 감독은 목사만을 가리키는가, 장로도 포함되는가? 바울이 밀레도에서 고별사를 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은 목사들인가 지금의 장로도 포함되는가? 이 질문에 먼저 답해야 한다.

 

 

5. 장로와 집사에게도 안수할 수 있는가?

 

  1) 개혁주의 전통은 오직 목사에게만 안수하는 것이다. 개혁가 칼빈 역시 그러하였다. 성경에서 비록 장로와 집사 역시 안수로 세워졌다고 확신하였으나(기강4:3:16; 4:312) 실제로는 이를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다.

   프랑스 개혁교회의 경우 최초의 대회에서 직원의 선출 방식에 대해서는 논의가 있었으나, 안수는 거론하지 않았다. 그런데 1603년에 Gap에서 열린 대회는 당시 소수 교회에서 시행하고 있었던 장로 안수를 반대하고, 대신 1601년에 Gergeau에 열린 대회에서 목사 임직 시 안수를 했던 것을 촉구하였다.

   스코틀랜드의 경우, 제1/2권징서를 보면 장로 임직 시 안수를 언급하지 않았다. 이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웨스트민스터교회정치(1645년) 역시 장로와 집사의 안수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한편 종교개혁 직후 1568년 Wezel에서 열린 회의에서 장로에 대해 안수를 배제하지 않고 이를 허용하였다. 그러나 ‘s Gravenhage에서 열린 대회(1586년)에서는 장로임직예식서에 안수를 생략하게 되었고, 이후 교회정치에서는 장로 안수를 다루지 않고 있다.

 

  2) 미국 교회

   미국 남 장로교회의 경우 아마도 쏜웰(Thornwell) 사상의 영향으로 장로와 집사 역시 안수로 임직되었다. 이는 목사 역시 장로로서 목사와 장로의 동등에 기초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남 장로교회의 전통을 이어받은 PCA 역시 장로와 집사에게도 안수를 시행하고 있다. 미 정통장로교회(OPC) 역시 1967년의 새 교회정치에서 장로와 집사의 임직 시 안수를 허용하였다.

   미국 최대의 장로교회인 PCUSA(2005/2007, G 14:1) 역시 장로와 집사에게도 안수를 하고 있다.

 

  3) 즉 안수는 하나님의 소명 즉 하나님께서 어떤 특정한 사람을 교회를 위하여 주신 은사와 직무로 부르시는 상징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안수는 목사 개인의 행위가 아니라 노회의 일이고, 더구나 목사 장로 집사, 세 직분간의 동등을 생각한다면 모두 안수로 임직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할 것이다(행 6:1-6; 13:3; 딤전 4:14).

 

 


1) Act of Synod (1973), 64.

2) 딤전 5:22,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지 말고 네 자신을 지켜 정결케 하라.

    행 14: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저희를 그 믿은 바 주께 부탁하고.

    행 13: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3) C. Hodge, The church and its polity (1879)를 보라. 핫지는 이 책에서 치리 장로가 목사안수에 참여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다루었다('Whether Ruling elders may join in the Impositions of Hands when Ministers are Ordained': “....1842년 총회에서 치리장로가 안수할 권리가 있는지 질문에 대한 투표결과, 만장일치로 부결되었다. 그러나 이 대답이 토론 없이 이루어졌고, 또 이 주제에 대하여 관심 있는 회원들이 없는 동안 이루어졌기 때문에, 재고하는 투표를 하기로 했고, 그래서 다른 미결 안건들과 함께 1843년 총회로 넘겨졌다. 한편 켄터키 대회는 이 주제에 대하여 장로에게도 권한이 있다는 것을 결정하였고, 서부 렉싱톤 노회 역시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이 주제에 대하여 위원회는 헌법이나 교회의 관습에서 치리장로가 목사 안수에 참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결의안을 제출하였고, 총회는 다음의 투표결과로 이 안을 채택하였다: 찬송 138, 반대 9. 기권1. 여기서 반대 9 중 장로는 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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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기획기사는 ‘기도’입니다. 모든 종교는 다 그들의 신께 기도합니다. 기독교도 예외가 아닙니다. 심지어 종교를 가지지 않는 이들도 어려움을 당하면 누구에겐가 기도를 합니다. 힌국 기독교인들은 기도를 많이 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기도...
    Date2016.10.31 By개혁정론 Views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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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기도] 중보기도는 가능한가?

    이번 기획기사는 ‘기도’입니다. 모든 종교는 다 그들의 신께 기도합니다. 기독교도 예외가 아닙니다. 심지어 종교를 가지지 않는 이들도 어려움을 당하면 누구에겐가 기도를 합니다. 힌국 기독교인들은 기도를 많이 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기도...
    Date2016.10.26 By개혁정론 Views3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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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사설
[사설] 총회가 계파정치에 함몰되지...
[사설] 최근에 일어난 고려신학대학...
세계로교회 예배당 폐쇄 조치를 접하며 3
[사설] 총회(노회)가 모일 때 온라...
총회가 졸속으로 진행되지 않으려면
[사설] 누가 고신교회의 질서와 성...
공적 금식과 공적 기도를 선포하자
[사설] 어느 교회의 교단 탈퇴를 보며
[사설] 고신언론사 순환보직시행, ...
[사설] ‘표현’ 못지않게 중요한 것... 2
칼럼
관심을 가지고 보십시오.
동성애 문제에 대한 두 교단의 서로...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잘못을 통해서...
페이스북을 떠날 때인가?
성찬은 오히려 우리의 육체성 때문...
더 나은 가정 심방을 위한 제안
가정 예배: 청교도로부터 배우기(2)
가정 예배: 청교도로부터 배우기 (1)
우리는 실천적 아르미니우스주의자...
[해외칼럼] 편향된 선지자, 제사장, 왕
기고
케임브리지와 바젤에서 바라본 로테...
고신은 개혁할 것들이 보이지 않는가?
[고신교회 70주년에 즈음하여 7] 고...
[고신교회 70주년에 즈음하여 6] 고...
[고신교회 70주년에 즈음하여 5]  ...
[고신교회 70주년에 즈음하여 4] 고...
청년 사역자의 눈으로 본 교회 청년
[고신교회 70주년에 즈음하여 3] 고...
[고신교회 70주년에 즈음하여 2] 총...
예수님께서 바닥에 쓰신 글 2
논문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교회 위협세...
바른 교리와 이단 개론: 이단의 뿌...
고신교회 제7차 헌법개정의 방향과 ...
뇌과학이 본 인간 이해 (박해정 교수)
인공지능기술의 현황과 전망 (김상...
현대생물학과 하나님의 창조 (박치...
빅뱅 천문학과 하나님의 창조 (성영...
고통의 신약적 이해
고통의 신학적 의미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미래목회 (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