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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획기사는 '종말을 말하다'입니다. 끝 날에 대해 무책임하고 신비한 이야기를 늘어놓아서 신자들을 유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늑대가 나타났다는 양치기의 거짓말에 속다 보니 종말에 대해 말하면 이단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하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성경적인 종말론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인해 종말이 이미 시작되었고, 또 다시 주님이 오고 계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고백하면서 마지막 때를 사는 지혜를 구해야 하겠습니다. -편집장 주-




2세기의 몬타누스를 통해 본 종말론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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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근 목사
다우리교회 담임목사



에베소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페푸자(Pepuza)에 한 교회가 있었다. 교회는 평안했다. 주일이면 온 교인이 함께 모여 예배했다. 함께 찬송을 부르고 설교도 듣고 헌금을 했다. 매 주일 똑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특별히 나쁠 것도 없고 특별히 좋을 것도 없었다. 늘 보던 사람이고 늘 듣는 같은 말씀이었다. 성령의 역사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 같고 교회는 열정이 없어 보였다. 성령의 열매도 보이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뭔가 특별한 것을 바라기도 했다.

바로 그 때 몬타누스(Montanus, AD 135-177)라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본래 이방종교의 제사장이었다. 나중에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성경을 읽었다. 몬타누스는 요한복음을 특히 좋아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이 ‘보혜사’에 대해 자주 얘기한다. 예수님이 보내실 성령에 대한 것이다. 몬타누스는 이렇게 생각했다. ‘지금 우리 교회에는 성령의 일하심이 있는가?’ ‘성령님의 표적이 없어!’ ‘방언에 대해 들어 본 적 있는가?’ ‘성령으로 충만 한가?’ 몬타누스는 이런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도 말하기 시작했다. 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생각에 동의하고 그를 따랐다.

어느 주일날 몬타누스는 두 여자를 데리고 와 교회에 소개했다. 한 여자는 프리스킬라(Priscilla)였고 다른 여자는 막시밀라(Maximilla)였다. 이 두 여자는 남편을 버리고 몬타누스를 따라다녔다. 그 여자들은 예언자라고 하면서 교회에서 이상한 말로 기도했다. “ㄹㄹㄹㄹ*$%#@!(+)_^%%44%67*87” 오순절 날 있었던 방언이라고 말했다. 바닥에 넘어지기도 하고 몸을 구르기도 하고 깔깔대며 웃기도 했다. 예언을 하면 그대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교회는 이런 이상한 것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와! 성령이 오셨어! 이것이 바로 보혜사 성령이 오신 증거야!’ 몬타누스는 이것이 보혜사 성령의 역사라고 설명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추종했다. 그런데 가끔씩 그 보혜사가 자기 자신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좀 이상했지만 대단한 기적과 능력을 행하는 그의 말을 믿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어느 날은 몬타누스가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페푸자의 진정한 성도입니다. 세상의 쇠사슬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깨어 있으십시오. 신랑 되신 예수님이 곧 오실 것입니다.”

교인들은 이 일 후 교회 목사를 몰아내고 몬타누스를 목사로 세웠다. 성도들은 몬타누스에게 완전히 빠져버렸다. 몬타누스는 아주 엄격한 생활을 요구했다. 금식을 자주 하고 재혼을 금지했다. 가장 멋진 삶은 순교하는 것이라고 했다. 자기 몸을 괴롭게 해야 예수님이 빨리 오실 것이라고 가르쳤다. 예수님이 오시면 고생한 사람들은 태양보다 백배나 더 빛날 것이라고 가르쳤다. 페푸자 교회에서 가장 작은 자도 달빛보다 백배나 더 빛날 것이라고 외쳤다. 그것을 생각하면 고행을 견딜 수 있었다. 페푸자 교회는 부흥하기 시작했다. 페푸자 교회 주변 사람들도 몬타누스에게 모여들었다. 몬타누스의 영향은 정말 대단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교회, 새로운 나라가 임한 것 같았다. 

그런데 몬타누스는 점점 이상하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세례를 베푸는 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라고 하지 않고 ‘성령의 이름’ 대신에 ‘몬타누스와 프리스길라의 이름’으로 라고 세례를 주었다. 또 몬타누스는 설교를 하다가 성경을 덮고는 이렇게 말했다. “성경은 종이일 뿐입니다. 이제부터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듣고 여러분에게 얘기합니다.” 몬타누스는 성경보다 더 따끈따끈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하면서 새로운 계시를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곧 새 예루살렘이 올 것이라는 예언했다. 몬타누스는 며칠 후 천년왕국이 페푸자 근처 큰 들판에 세워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수많은 신자들이 그곳에 모였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를 믿고 따르던 사람들이 실망했다. 그 때에야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 몬타누스는 나중에 미쳐버리고 말았다. 스스로 목을 매고 자살했다.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허탈해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지만 그의 영향력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를 따르던 많은 사람들의 율법적 삶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터툴리아누스(Tertullianus)도 이 그룹에 합세한 것은 믿어지지 않는 부분이다. 

몬타누스가 예수님을 열심히 기다린 것은 잘못이 아니다. 좋은 의도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 것은 권할 일이다. 오히려 교인의 신앙생활이 미지근하고 세속적인 것이 문제이다. 당연히 성도는 성령의 인도에 민감하고 순종함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와 성령의 이름으로’ 거짓 교훈이나 잘못된 방법으로 믿으면 잘못이다. 몬타누스는 성경의 교훈과 다르게 가르쳤다. 몬타누스는 자신이 성령을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성령이 몬타누스를 통해서만 말씀하신다고 여겼다. 나중에는 몬타누스 자신이 성령이라고 주장했다. 몬타누스의 말은 곧 하나님의 말이었다. 몬타누스 자신이 예언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몬타누스 스스로 예수님이 언제 어디로 재림하실 지를 예측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의 생각이 성경보다 더 정확하다고 확신했다. 자기 생각에 떠오르는 것이 곧 진리라고 착각한 것이다. 사람은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는데 몬타누스는 교만하고 어리석었다. 

이단은 완전히 근절되지 않는다. 지금도 몬타누스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다. 기적과 이적과 신기한 생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령님은 우리가 느낄 수 없게 일하신다. 성령님은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거듭나게 하시고, 믿음을 주시고,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순종하게 하시고, 기쁨으로 예배하고, 말씀대로 살도록 하신다(웨스트민스터소요리문답 29-38문). 이런 성령님의 엄청난 일을 하찮게 여기고 무시한다면 큰 실수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참 교회는 단순히 감정이나 인간의 지혜나 의지에 끌려가서는 안 된다. 교회는 성령님이 주시는 평화와 질서로 이끌고 성령의 검인 말씀으로 잘 교육해야 한다. 말씀을 잘 가르칠 때 성령 하나님께서 성도의 마음속에 일하신다. 성령님은 지금도 우리의 생활 가운데 살아 계신다.  



몬타누스 종파의 경우를 통해 우리는 어떤 종말론적 관점을 배울 수 있을까? 몇 가지를 정리해 본다. 

1. 20세기 말에 대한민국에 있었던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해프닝은 1992년 10월 28일에 있었던 다미선교회이다. 몬타누스가 일으켰던 종말론적 종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재림의 날짜와 장소, 그리고 성경보다는 신비적 예언을 따랐다는 점이다. 물론 기적과 방언과 방서를 믿고 따랐다. 지금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앞으로도 얼마든지 그런 일들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2. 성경을 벗어나는 기적과 예언, 계시를 주장하는 은사주의파(오순절파 포함)는 대체로 역사적 교훈에 관심이 없다.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마음과 귀가 없다. 성경은 과거 역사에서 많은 것을 배우라고 지속적으로 얘기하고 있다. 

3. 종말론적 이단이 종종 빠지는 함정은 기록된 계시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넘어가는 것이다.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 22:18-19) 그들은 이 말씀을 쉽게 간과한다. 

4. 종말론적 이단들은 대체로 강하고 특별한 우월의식으로 사로잡히는 것이 특징이다. 교회의 교리를 초월한 새로운 메시지를 가진 종파는 일반적 설교로 살아가는 일반 성도들을 넘어서는 영적 엘리트 의식으로 충만하다. 이런 엘리트 의식은 신기한 기적과 이적으로 쉽게 형성된다. 조심해야 한다. 

5. 종말론적 종파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혼란스럽고 교회의 영향력이 약해졌을 때 더 큰 힘을 얻는다. 종말론적 종파는 일종의 도피처가 된다. 조심해야 한다. 

6. 종말론적 종파는 극단적 금욕주의로 엘리트 의식을 자랑하도록 한다. 삶에서 율법적 엄격성과 열광적 헌신은 그들 스스로 만족감을 얻도록 한다. 조심해야 한다. 

7.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주관적 성령님의 역사를 더 많이 얘기한다. 조심해야 한다. 

8. 이단들은 언제나 교회 가운데 생겨났다. 특히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에 대한 잘못된 이단사상이 교회에 들어왔다. 교회는 진리의 말씀을 잘 보존하고 전해야 한다. 지금도 교활한 이단들의 생각과 영향이 교회에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그런 교회 가운데 일어날 이리들을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행 20:2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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