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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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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획기사는 개혁정론 1주년을 기념하여 기획했습니다. 한국교회는 고도의 성장기를 지나 정체기를 거치지 않고 곧 바로 쇠퇴기에 접어 들어 급격하게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향후 10년이 골든 타임이라고 합니다. 이 골든타임을 놓치면 한국교회는 더 이상 회복하기 힘든 깊은 나락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간절히 구해야 하겠지만 지혜롭게 대비해야 하겠습니다. 이번 기획기사를 통해 교회쇠퇴시대에 우리가 어떤 분별력을 가져야 할지 살펴 보겠습니다. 개혁정론은 앞으로도 교회쇠퇴시대에 대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어 가겠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두 손을 같이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편집장 주- 




쇠퇴에 담긴 희망



권수경 목사


권수경 목사는 서울대 철학과 (B. A.)와 고신대학교 신학대학원 (M. Div.)에서 공부한 뒤 도미하여 예일대학교

신학대학원 및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조직신학과 종교철학 (S. T. M., Ph. D.)을 공부하였다. 현재 코네티컷주에 있는

그리니치 한인교회를 15년째 섬기면서 기독교 복음의 고유성을 설명하는 책을 집필하고 있다.




가. 번영과 쇠퇴와 번영복음


한국교회는 지금 교인 수가 줄어들고 있다. 헌금도 줄고 활동도 그만큼 위축됐다. 양의 감소를 쇠퇴라 한다면 지금은 분명 쇠퇴기다. 그럼 얼마전까지는 번영의 때였던가 하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선뜻 답하기가 어렵다. 그 번영의 중심에 번영복음이라는 기묘한 현상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의 쇠퇴가 번영복음의 퇴조를 반영하는 것이라면 그런 쇠퇴는 오히려 참 번영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하여 쇠퇴를 논하기에 앞서 생각해 본다. 무엇이 번영이며 무엇이 쇠퇴인가?


번영복음 (Prosperity Gospel). 이름은 낯설어도 내용은 친숙하다. 어쩌면 내가 매주일 들어온 설교가 번영복음일 수도 있다. 구원과 영생의 은혜를 받은 그리스도인은 내세의 복뿐 아니라 현세의 복도 함께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리스도인이 건강과 더불어 경제적인 윤택함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한다. 공부 잘 하는 자녀, 행복한 가정은 기본이요 사회적인 성취와 명예도 당연히 포함된다. 좋구나! 건강을 바라지 않는 이가 어디 있던가. 그리스도인도 열심히 살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책임 있는 자리를 맡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칭찬도 듣는다. 하나 그건 삶의 목표가 아니라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조건이요 방법이다. 그런데 번영복음은 그게 마치 목표인양 가르친다. 성경의 가르침 하나를 그렇게 뒤집었는데 성경 전체가 함께 뒤집어진다. 이름이 번영복음이니 옷은 기독교인것 마냥 입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구원과 그리스도 십자가의 복음을 짓밟는 실로 위험한 이단이다.


나. 번영복음의 배경: 신사상


번영복음은 뿌리가 깊다.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등장하던 20세기에 번영복음도 함께 자랐다. 원조는 노먼 빈센트 피일 (Norman Vincent Peale)이며, 로버트 슐러 (Robert Schuller)에게 갔던 바통을 오늘날은 조엘 오스티인 (Joel Osteen)이 이어받아 부지런히 달리고 있다. 복음이라는 이름답게 성경도 섞었지만 이 사이비 복음의 원뿌리는 19세기부터 미국인들의 정신에 스며든 신사상 (New Thought) 운동이다. 과학과 종교를 조화시켜 멋지게 살아보려 한 운동으로서 뉴 에이지도 그 한 분파다. 처음 아이디어는 18세기 스웨덴의 과학자요 신비사상가인 스베덴보리가 냈고 백년 뒤 미국의 사상가 에머슨이 그걸 짜임새 있게 엮었다. 사상의 큰 틀은 범신론이다. 우주가 곧 신이라는 믿음인데 오늘날은 우주가 신의 유출물 내지 자기표현이라는 범재신론의 형태로 발전했다. 신을 믿긴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창조주가 아닌 우주와 동일한 존재로 믿는다. 우주가 곧 신의 몸이요 사람 역시 신의 일부인 셈이다.


우주가 곧 신이기에 범신론자가 보는 자연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다. 인간 본성도 마찬가지로 선하다. 악은 없다. 죄라는 건 사람이 만들어낸 엉터리 개념이다. 옛 스토아의 가르침처럼 똑바로 보기만 하면 모든 것이 선하고 아름답다. 그래서 이들은 사람을 죄에서 건지시려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부인한다. 죄가 없는데 구원이 왜 필요하겠는가. 구원의 사랑을 가르치는 성경도 당연히 필요 없다. 우주가 곧 신이니 자연을 통해 신을 얼마든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우주의 중심은 인간이다. 신의 모습을 가장 정확하게 반영하는 까닭이다. 그래서 신사상의 으뜸 가치관은 자기신뢰다. 너 자신을 믿으라! 사람의 마음은 신과 통하는 자리다. 특히 당시 심리학자들이 찾아낸 잠재의식에서 신의 생명과 인간의 생명이 만난다. 그런데 의식은 그걸 잘 모른다. 따라서 신과 내가 이미 하나가 되어 있음을 깨닫는 일이 시급하다. 내 의식의 주파수를 신의 주파수와 맞추는 일이다. 그렇게 서로 통하기만 하면 내 마음이 곧 신의 마음이 되어 나는 무한한 능력을 갖게 된다.


몇 가지 방법이 요긴하다. 첫째는 확언 (Affirmation)이다. 이미 하나가 되어 있음을 말로 선언해야 한다. 이들은 말의 힘을 믿는다. 큰 소리로 말하기, 아침마다 세 번씩 외치기, 하루에도 몇 번씩 되뇌기 등등이 효과가 있다. 이는 당시 부각되던 자기암시 이론에 바탕을 둔 것으로 특히 중요한 점은 오직 긍정적인 내용만 말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 그리기 (Visualization)도 중요하다. 내가 바라는 바를 마음으로 그리되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그 그림이 잠재의식에 스며들게 되고 우주의 힘을 받음과 동시에 현실로 이루어지게 된다. 확언이나 그리기를 할 때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의식에 담긴 내용을 잠재의식에 삼투시키는 파이프가 바로 이 믿음이다. 내가 이미 신과 하나가 되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믿고, 내가 마음에 그리는 그것이 그대로 이루어질 줄 믿어야 한다.


그렇게 나와 신이 통하는 세계를 이들은 사차원의 세계라 부른다. 우리가 사는 삼차원의 세계를 인과법칙의 원리가 지배하고 있듯이 사차원의 세계에는 사차원 나름의 법칙이 따로 있다. 범신론 자체에 인과론을 뛰어넘는 우인론이라는 법칙이 있는데 신사상의 사차원 법칙은 내 잠재의식이 신의 세계와 통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사차원에서 통하는 원리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조용기 목사가 <사차원의 영성>이라는 책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번영복음을 전파하는 책인데 내용은 그냥 신사상 그대로다.


다. 번영복음의 내용: 내가복음


신사상은 태어날 때부터 기독교와 뒤섞여 있었지만 신사상에게 기독교 복음의 옷을 그럴 듯하게 입혀준 사람은 번영복음의 원조 노먼 빈센트 피일이다. 피일은 주저 <적극적 사고방식>에서 신사상의 긍정적 태도를 소개하여 대히트를 쳤다. 뒤를 이은 슐러나 오스티인 역시 비슷한 내용으로 성공하여 번영을 이룩하였다. 그런데 기독교 복음과 정반대요 기독교 복음의 핵심을 거부하는 신사상을 어떻게 기독교 복음인 것처럼 소개할 수 있었을까?


번영복음의 사상적 바탕은 분명 범신론이다. 그런데 범신론의 신이나 성경의 하나님이나 같은 용어를 쓰다 보니 구분이 안 된다. 그래서 너 자신을 믿으라 할 때 너 자신 및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한다. 내가 신의 일부라는 뜻이 거기 숨어 있지만 거의가 모르고 넘어간다. 확언을 소개할 때는 하나님도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셨음을 강조한다. 하나님 말씀의 능력이 곧 내 말의 능력 아닌가. 그리기는 기도와 연결시킨다. 결혼을 원하는 사람은 배우자의 스펙을 구체적으로 그리면서 기도해야 한다. 그래야 잠재의식에 들어가 그대로 이루어진다. 잠재의식도 물론 성경에서 찾아낸다.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있다 (눅 17:21)’고 가르치신 하나님의 나라가 잠재의식인데 성경은 그걸 ‘의심치 않고 믿는 마음 (막 11:23)’이라 부른다고 푼다. 성경에는 정말 없는 게 없다.


피일이 신사상을 복음으로 둔갑시킬 때 사용한 핵심 열쇠는 ‘믿음’이다. 신사상도 믿음을 제법 언급하는데 피일은 목사답게 믿음을 더욱 부각시킨다. 믿음과 관련된 성경구절을 집중 인용하면서 믿는 사람에게는 불가능이 없음을 강조한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빌 4:13)’ ‘네 믿음대로 되라 (마 9:29)’ ‘믿음은 산을 옮기는 능력을 가졌다 (마 17:20)’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 (막 9:22)’ 등이다. 번영복음이 말하는 믿음은 윌리엄 제임스가 말하는 것처럼 의지의 문제다. 확언과 그리기를 거듭하여 확고하게 믿는 단계에 이르면 하늘과 나 사이에 능력의 파이프가 연결되어 무엇이든 내가 믿는 대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그토록 믿음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그 믿음의 내용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이 종종 등장하지만 그건 나 자신을 믿는다는 말을 돌려 말한 것일 뿐 하나님의 능력이나 말씀을 믿는다는 뜻은 아니다. 피일, 슐러, 오스티인이 가르치는 믿음은 내용은 없는 어떤 틀과 같다. 무엇이든 담기만 하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괴력을 가진 것이 믿음이다. 그러니 믿는 내용은 내가 결정한다. 내가 곧 우주 아니던가. 내가 원하는 바가 곧 내 믿음의 내용이다. 나의 건강과 성취와 행복이 번영복음이 말하는 믿음의 내용이다. 이왕이면 크고 화려한 그림을 마음에 그리면서 ‘미쓔미다’를 큰 소리로 외치기만 하면 믿음대로 이루어진다. 번영복음은 곧 내가복음이다.


라. 번영복음의 문제: 뒤집기


성경은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체 (히 11:1)’라 정의한다.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았으니 이것도 하나의 틀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 틀에다 엉뚱한 걸 담을세라 내용도 서둘러 알려준다. 믿음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것이요 찾는 자에게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히 11:3, 6). 죄인을 구원하시려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 믿는 자는 누구든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다. 이런 내용을 제대로 믿을 때 그 믿음은 우리에게 구원과 영생을 주는 능력의 믿음이 된다.


그런데 번영복음은 믿음의 틀에서 성경이 가르치는 내용을 모조리 제거해 버렸다. 그렇게 해서 생긴 빈자리에는 내 욕심을 대신 담았다. 믿음의 내용 하나 바꾼 정도가 아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온통 뒤틀어버렸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본향을 사모하여 죽는 날까지 나그네로 살았는데 번영복음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우리에게 본향 같은 건 잊고 그저 좋은 집에서 떵떵거리며 살라 유혹한다. 모세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구원이 좋아 이집트 왕궁의 보화를 초개처럼 내던졌는데 번영복음은 그리스도를 위해 능욕 받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삶을 실패한 인생으로 만들어 버린다. 믿음으로 영생에 들고자 고난을 기쁘게 받고 심지어 목숨까지 내던진 사람이 수도 없이 많은데, 아....! 번영복음에 따르면 이들 모두가 개죽음을 한 셈이다.


교리 하나를 슬쩍 비튼 다음 성경 전체를 뒤집는게 바로 이단이 하는일 아닌가. 바깥에 있는 이단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이 이단이 실로 무섭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먹고 마시고 입는 문제에 신경 쓰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살라 가르치셨다. 그런데 번영복음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는 관심조차 주지 않고 주님이 신경 쓰지 말라 하신 그 한 가지에 모든 것을 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함으로써 영원히 살고자 하는 게 우리 사는 뜻인데 신사상에 물든 이들은 이 세상과 벗하여 멋지게 산 다음 이 세상과 함께 기꺼이 소멸되고자 한다.


다 뒤집었다. 목표와 방법을 뒤집더니 현세와 내세를 바꿔치기 했다. 그리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도 기어이 뒤집어놓고 말았다. 하나님처럼 되고자 한 것이 우리 인류의 원죄 아니던가. 창조의 꽃인 인간이 오랜 세월 범신론, 범재신론 하며 지혜를 갈고닦더니 드디어 피조물이 창조주와 같아지는 단계까지 왔다.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이 내 욕심을 담은 내가복음이 되더니 신분을 숨긴 채 교회에 들어와 복음 행세를 하고 있다. 이런 게 무슨 교회인가 싶겠지만 사랑하시는 하나님 대신 사랑받는 인간을 더 많이 노래하는 우리 시대에는 참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마. 우리의 모순된 현실: 번영복음


번영복음이 미국 다음으로 번영을 구가하고 있는 곳이 한국이다. 조용기 목사가 피일과 슐러의 이론을 소개하기가 무섭게 한국교회 곳곳에 스며들었다. 사랑이 국경을 초월하듯 번영복음은 교파의 장벽을 순식간에 뛰어넘었다. 우리가 미제를 좋아해서도 아니요 조 목사의 영향력이 대단해서도 아니다. 이론의 뿌리는 신사상에 두고 있지만 번영복음의 영적 뿌리는 그보다 깊은 곳 곧 인간의 본성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죄에 빠진 인간의 본성이 번영복음을 낳고 키웠다.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 남보다 더 가지고, 더 누리고, 더 즐기고, 그래서 남에게 과시하며 살고 싶은 그 마음이 번영복음의 진짜 뿌리다.


하나님을 모른다면 선택의 여지도 없다. 참 하나님을 알아 올바른 선택을 한 이들이라면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지난날 하나님의 백성이던 이스라엘도 이 번영복음 때문에 망했다. 영원한 구원과 생명의 하나님을 버리고 떡과 포도주를 준다는 바알과 아세라를 좇았다. 먹고 마시는 것들도 실상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만 그들은 우상이 준다 착각하고 멸망의 길로 가고 말았다. 그 우상을 그리스도께서는 재물의 신이라 부르시면서 우리가 그 우상을 하나님과 함께 섬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못 박으셨다.


한국교회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번영을 구가하였다. 교인수도 많아지고 헌금도 늘고 선교사도 미국 다음으로 많이 보내는 교회가 되었다. 우리의 이런 번영이 번영복음과 무관한 것일까? 공교롭게도 한국 번영복음의 본거지가 지금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가 되었고 이 사이비 복음을 받아들인 다른 교회도 수천, 수만의 규모로 자랐다. 이들은 사람과 돈의 힘을 이용해 건물을 짓고 사업을 벌이고 온갖 영향력을 발휘하여 제대로 번영하지 못한 수많은 교회와 교인들을 기죽이고 있다. 세계에서 성경을 가장 많이 배우고 기도도 가장 많이 하는 한국교회가 거짓과 간음과 쾌락과 탐욕과 싸움 등 도덕적으로는 가장 부패한 교회라는 이 모순된 현실은 번영복음의 힘이 아니고서는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다.


번영복음의 사회적 한계는 번영이 상대적이라는 점이다. 내가 더 가지면 남은 덜 가져야 하는 게 돈이다. 남의 것을 빼앗지 않고 어떻게 내 지경을 넓힐 수 있는가. 그렇기에 번영복음으로는 참 교회를 이룰 수 없다. 성공한 사람은 자신을 과시하고 남들은 그 사람을 부러워하거나 시기할 뿐 기쁨을 함께 나누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사랑은 거기 없다. 잊지 말자. 내가 번영의 벅찬 감격을 나누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제대로 먹지 못해 죽어가는 사람이 하루에도 수만 명이다. 온 나라가 물질만능주의와 갖가지 불의와 무정함에 빠져있는 현실 역시 번영신학에 물든 교회의 현실과 무관할 수 없다. 번영복음은 가진 자들의 논리요 이긴 자들의 노래다. 번영을 누리는 사람들에게는 온 우주가 그저 좋게만 보인다. 가난, 고통, 빈부격차, 불의, 이런 건 없다. 날마다 자색 옷을 입고 연락하였던 그 부자의 눈에도 나사로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바. 쇠퇴와 번영의 길: 말씀


번영복음은 미국이나 여의도에서만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다. 한국교회의 수많은 강단이 오늘도 번영복음을 하나님의 말씀이라며 들려주고 있다. 축복의 언어가 범람하는 교회, 돈과 권세와 성취를 복이라 규정하며 더 큰 그림을 그리라 부추기는 강단이 오늘 우리의 현실이다. 알면서도 엉터리를 전하는 삯꾼 목사도 없지 않겠으나 번영복음의 실체를 몰라 참 복음과 혼동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 오늘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사람은 다 죄인이다. 나만 생각하고 탐욕을 추구하게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오셔야 했고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것 아닌가. 거듭난 삶을 사는 지금도 내 속에 웅크리고 있는 죄와 끝없는 싸움을 벌여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보내시고 당신의 말씀을 주셨다. 교회를 이끌어가는 목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이 바로 이 말씀의 전파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생명을 전해주고 새 생명을 얻은 이들에게는 육신의 욕심 아닌 성령을 따라 살도록 가르치고 힘주고 인도하는 것이 목사의 으뜸 과제다.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건 물론 따로 있다. 불신자는 교회 밖에 있든 교회 안에 있든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은 싫어한다. 대신 위로와 부추김의 설교를 선호한다. 한 주간 죄를 많이 지었으니 꾸중 들을 것도 어느 정도 예상하지만 더 벌려고 발버둥친 내 수고를 좋게 보아 주기를 더 기대한다. 거짓말한 일이나 남의 것을 빼앗은 일이나 어려운 이웃을 외면한 일은 시비하지 말고 그저 그렇게 해서 생긴 돈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 선포해 주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 가운데 일부를 교회에 갖고 왔으니 하나님이 더 부어주실 것이라는 축복의 말까지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가려운 귀를 쫑긋 세운 사람들과 그들의 가려운 귀를 부지런히 긁어주는 목사의 만남이다. 우리가 지난 날 경험했던 번영이 혹 이런 건 아니었을까?


사도 바울은 목사들에게 말씀을 똑바로 전하라고 거듭 경고한다.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 분의 재림과 나라를 두고 엄히 명령하였다. 말씀을 바로 전하느냐 엉터리로 전하느냐 하는 건 죽고 사는 문제다. 전하는 자가 바로 전하면 본인도 살고 듣는 사람도 산다. 혹 듣는 사람이 거부하여 멸망한다 해도 전한 그 사람은 죽음을 면한다. 파수꾼이 나팔을 불지 않으면 저도 죽고 다른 사람도 죽는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위로하라 말하기 전에 책망하고 꾸짖으라고 명령하였다. 번영복음을 전하는 것은 그냥 같이 죽자는 소리다. 에이, 설마 우리 목사님이? 바울이 경고하였다. “여러 사람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사. 쇠퇴: 참 번영의 길


교회의 쇠퇴는 위기일 수도 있고 기회일 수도 있다. 만의 하나 주님이 촛대를 옮기기로 하셔서 지금의 쇠퇴가 시작된 것이라면 실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번영복음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우리 모습을 보면 그럴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하지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자 하신 주님의 자비를 기대한다면 희망을 가져볼 수도 있다. 거짓 번영을 끝내고 참 번영을 시작하는 은혜다.


주님이 본을 보여 주셨다. 적은 음식으로 수많은 군중을 먹이셨을 때 사람들은 주님을 왕으로 모시고자 했다. 주님만 계시다면 먹을 걱정 아플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 주님은 그런 번영복음 추종자들을 단호히 내치셨다. 떡 먹어 배부를 게 아니라 표적을 보아야 한다고 꾸짖으셨다. 그렇게 해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참 생명의 복음을 깨달은 소수의 인원만 주님 곁에 남아 함께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루어 갈 수 있었다.


쇠퇴 자체가 안타깝다면 내 생각이 이미 물든 건 지도 모른다. 번영복음을 생각한다면 쇠퇴를 두려워할 게 아니라 그 길로 얼른 들어서야 한다. 조금이라도 더 지키려고 발버둥치지 말고 오히려 쇠퇴를 가속화시켜야 한다. 과감하게 쳐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주님이 하신 것처럼 지금도 말씀의 칼이 그 일을 할 것이다. 말씀의 힘을 믿는다면 시급히 새로워져야 할 곳이 강단이요 그러자면 결국 가장 큰 책임은 목사를 길러내는 신학교가 져야 할 것이다. 서두르자. 주님이 촛대를 정말로 옮기시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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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호 2015.05.07 11:37
    번영신학에 대한 매우 탁월한 글입니다.  "쇠퇴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그 길로 얼른 들어서야 한다"는 주장에 깊이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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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그리스도인의 혼인] 혼인에 이르는 여정: 만남, 사귐, 혼례 

    사회에서 ‘혼인(婚姻)’을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로 부르는 것만큼 기독교도 혼인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나 그 중요성에 비해 혼인에 대한 체계적인 가르침이 부족한 형편이다. 특히 결혼을 앞 둔 젊은 성도들은 혼인을 개인의 소관 영역에서 ...
    Date2018.04.04 By개혁정론 Views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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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그리스도인의 혼인] 교회 역사 속에서 배우는 결혼과 가정

    사회에서 ‘혼인(婚姻)’을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로 부르는 것만큼 기독교도 혼인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나 그 중요성에 비해 혼인에 대한 체계적인 가르침이 부족한 형편이다. 특히 결혼을 앞 둔 젊은 성도들은 혼인을 개인의 소관 영역에서 ...
    Date2018.03.30 By개혁정론 Views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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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그리스도인의 혼인] 성경이 말하는 혼인

    사회에서 ‘혼인(婚姻)’을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로 부르는 것만큼 기독교도 혼인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나 그 중요성에 비해 혼인에 대한 체계적인 가르침이 부족한 형편이다. 특히 결혼을 앞 둔 젊은 성도들은 혼인을 개인의 소관 영역에서 ...
    Date2018.03.21 By개혁정론 Views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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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교회조롱시대, 길찾기] 세계선교, 건강을 회복해야

    종교개혁 500주년이 지나갔습니다.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조금이나마 회복하였을까요? 행사만 요란했지 세습을 포함하여 개혁에 역행하는 일들이 더 많았습니다. 한국이 복음을 받은 지 130여년 후에 교회는 이 민족에게 길을 제시하기는커녕 스스로 ...
    Date2018.03.08 By개혁정론 Views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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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교회조롱시대, 길찾기] 청소년, 제대로 키우자

    종교개혁 500주년이 지나갔습니다.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조금이나마 회복하였을까요? 행사만 요란했지 세습을 포함하여 개혁에 역행하는 일들이 더 많았습니다. 한국이 복음을 받은 지 130여년 후에 교회는 이 민족에게 길을 제시하기는커녕 스스로 ...
    Date2018.03.05 By개혁정론 Views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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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교회조롱시대, 길찾기] 개혁신앙과 기독교 문화 건설

    종교개혁 500주년이 지나갔습니다.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조금이나마 회복하였을까요? 행사만 요란했지 세습을 포함하여 개혁에 역행하는 일들이 더 많았습니다. 한국이 복음을 받은 지 130여년 후에 교회는 이 민족에게 길을 제시하기는커녕 스스로 ...
    Date2018.02.25 By개혁정론 Views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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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교회조롱시대, 길찾기] 직분, 새롭게 하자

    종교개혁 500주년이 지나갔습니다.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조금이나마 회복하였을까요? 행사만 요란했지 세습을 포함하여 개혁에 역행하는 일들이 더 많았습니다. 한국이 복음을 받은 지 130여년 후에 교회는 이 민족에게 길을 제시하기는커녕 스스로 ...
    Date2018.02.21 By개혁정론 Views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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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교회조롱시대, 길찾기] 은사운동과 기복신앙, 어떻게 할 것인가?

    종교개혁 500주년이 지나갔습니다.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조금이나마 회복하였을까요? 행사만 요란했지 세습을 포함하여 개혁에 역행하는 일들이 더 많았습니다. 한국이 복음을 받은 지 130여년 후에 교회는 이 민족에게 길을 제시하기는커녕 스스로 ...
    Date2018.02.19 By개혁정론 Views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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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교회조롱시대, 길찾기] 세례교육, 제대로 시키자

    종교개혁 500주년이 지나갔습니다.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조금이나마 회복하였을까요? 행사만 요란했지 세습을 포함하여 개혁에 역행하는 일들이 더 많았습니다. 한국이 복음을 받은 지 130여년 후에 교회는 이 민족에게 길을 제시하기는커녕 스스로 ...
    Date2018.02.12 By개혁정론 Views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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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교회조롱시대, 길찾기] 개(個)교회주의를 극복하자

    종교개혁 500주년이 지나갔습니다.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조금이나마 회복하였을까요? 행사만 요란했지 세습을 포함하여 개혁에 역행하는 일들이 더 많았습니다. 한국이 복음을 받은 지 130여년 후에 교회는 이 민족에게 길을 제시하기는커녕 스스로 ...
    Date2018.02.07 By개혁정론 Views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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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기획-교회조롱시대, 길찾기] 인문교육, 제대로 시키자

    종교개혁 500주년이 지나갔습니다.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조금이나마 회복하였을까요? 행사만 요란했지 세습을 포함하여 개혁에 역행하는 일들이 더 많았습니다. 한국이 복음을 받은 지 130여년 후에 교회는 이 민족에게 길을 제시하기는커녕 스스로 ...
    Date2018.02.04 By개혁정론 Views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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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기획-교회조롱시대, 길찾기] 예배, 제대로 하자

    종교개혁 500주년이 지나갔습니다.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조금이나마 회복하였을까요? 행사만 요란했지 세습을 포함하여 개혁에 역행하는 일들이 더 많았습니다. 한국이 복음을 받은 지 130여년 후에 교회는 이 민족에게 길을 제시하기는커녕 스스로 ...
    Date2018.01.30 By개혁정론 Views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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