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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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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획기사는 제자입니다. 한국교회에서 유행하던 제자훈련을 비판적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과연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사는지, 또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기에 부활의 능력으로 사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한국교회가 경건의 능력을 상실해가고 있는 시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제자들이 많아져야 하겠습니다. 아니, 모든 신자가 다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부활의 능력으로 사는지를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 편집자 주 -

  

 

마태복음에 나타난 ‘제자’

 

 

 

성희찬.jpg

 

 

 

 

 

 

 

 

성희찬 목사

(마산제일교회)

 

 

   마태복음은 교회에 관한 책이다. 다른 세 복음서에 비해서 교회에 대한 사상이 돋보인다. 사 복음서를 통틀어 ‘교회’라는 용어는 오직 마태복음에 두 군데 나온다(16:18; 18:17). 예수님은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16:18) 라고 하시며 교회를 세우는 이가 바로 자신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교회를 친히 세우시는 예수님은 도대체 어떤 교회를 세우기를 바라신 것일까? 마태복음 28:16-20에 나타난 지상 대명령을 보면 예수께서 어떤 교회를 세우시는지, 그 교회 상이 잘 나타나있다. 여기에 교회의 표지인 말씀과 성례가 언급되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특히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20절)는 명령에서 보듯이 교회는 제자들로 이루어진다는 것과 또 교회의 기본 구조가 제자도임이 강조되고 있다. 그렇다면 제자는 어떤 자이며 제자도는 어떤 것일까? 제자라는 말이 남발되고 있는 이때에 마태복음을 통해 예수님께서 의도하시는 제자가 어떤 자인지를 보자. 예수님은 자신이 세우시어 말씀과 성례의 표지를 가지는 교회가 제자들로 이루어지는 교회임을 말씀하셨다. 

 

 

첫째, 제자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다

 

   ‘따르다’는 말은 마태복음에서 제자와 관련해서 자주 나오는 표현이다(4:20, 22; 8:19): “ 예수께서 그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9:9).

   그런데 제자는 어떤 위험과 시련이 닥치더라도 예수님을 따르는 자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곁에 계셨지만 여전히 의심하는 제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참 제자는 예수님을 항상 따르는 자로서 예수님과 운명을 같이 하는 자이다. 머리 둘 곳이 없었던 예수님처럼 그런 각오를 가져야 한다(8: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따라서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을 말한다: 10: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참고/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그런데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기 이전에 사실은 예수께서 먼저 이들을 제자로 부르셨다!

   예수께서 주도권을 갖고 특정한 사람을 제자로 부르신 것이다. 사람에게 주도권이 있지 않다. 예수님은 자기 사역의 결과로서 자기 백성을 모으는 일을 하신다. 그리고 자기 백성을 모으시므로 친히 자기 교회를 세워 가신다(참고. 이사야 27: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너희를 일일이 모으시리라. 하이델베르크교리문답 54문답). 따라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은 예수님의 주권적인 은혜의 부름에 응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제자도를 향한 이 부름은 한 번에 그치지 않고 계속 된다. 제자가 된 이후에도 이 부름은 계속 된다. 다음을 보라. 이미 제자가 되었으나 예수님은 다시 ‘나를 따르라’고 부르시고 있다: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8:21-23).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는 한 번 부름을 받은 것으로 머물지 않고 날마다 새롭게 자기의 제자도를 갱신해가야 한다.

 

 

둘째, 제자는 예수님께 항상 배우는 자세를 가진 자다(20절,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제자에게 유일하고도 영원한 선생은 예수님 밖에 없다: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23:8). 제자는 예수님의 영원한 학생이다. 따라서 제자는 무엇보다도 항상 예수님께 배우는 자가 되어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는 일에 힘써야 한다: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이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16:12). 제자라 하면서 항상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배우려는 자세를 가지고 여기에 주력하지 않는다면 이는 실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셋째, 제자는 순종하는 자다. 제자도는 그리스도요 교사이신 예수께서 “분부하신 모든 것”을 지키고 순종하므로 이루어진다(20절,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지키게 하라”)

 

   제자도는 단순히 말에 그치지 않고 교훈과 생활로 나타나야 한다. 예수님은 율법과 선지자를 완성하셨을 뿐 아니라 ‘행위’로 ‘순종’하는 것을 또한 말씀하셨다(5:20).

   이와 관련하여 마태는 마가보다 ‘외식하는 자’를 더 많이 언급하고 있다(6:2, 5, 16; 7:5; 15:7; 22:18; 23:13, 15, 23, 25 등). 예를 들어 다음을 보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가로되”(23:27-29),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24“51). 예수를 입으로 주(主)라 고백하는 것과 선지자의 가르침이나 주의 이름으로 행하는 구원 자체로 ‘참 제자’가 될 수 없다(7:21-22). 오직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라야 제자이다(7:21, 24).

 

   따라서 지상에 있는 교회는 의인과 악인이 섞여 있는 곳이어서 마지막 심판까지 열려 있다. 즉 그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하나님 나라에 참으로 선택된 자가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의인과 악인의 분리에 대한 성경은 오직 마태복음에서 나타난다(25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 지상 교회는 부단히 회개와 개혁을 이루어 가야 한다.

 

   예수님은 재림 때에 참 제자를 구분하실 것이다. 그 기준은 다름 아니라 열매를 맺는 것이다(7:16-20). 이런 관점에서 재림에 관한 네 비유를 이해해야 한다: 밤중에 집을 뚫는 도적의 비유(24:42-44); 악한 종과 충성된 종의 비유(24:45-51); 열 처녀 비유(25:1-13); 달란트 비유(25:14-30). 즉 지금 교회 시대는 교회가 열매를 맺도록 주님께서 기다리시는 은혜의 때라고 할 수 있다.

  

   이 ‘순종’의 요소는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21:43)는 말씀에도 나와 있다. 순종은 하나님의 나라와도 관련이 있다. 누가 진정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가? 외식하는 자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계명에 순종하는 자다.

 

   율법에 대한 순종 뿐 아니라 율법을 재해석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즉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율법의 완성이라는 맥락에서 율법을 재해석해야 한다. 이로써 옛 이스라엘과 분리 된다.

   예수님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5:17)라고 하셨다. 또 마태복음에서만(19:19, 22:39) 이웃 사랑 계명이 전 율법의 요약으로 제시되고 있다. 15:1-10에서도(장로의 유전, 손 씻는 규정) 마태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율법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재해석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대적하는 자가 ‘외식하는 자’ 로 나오는 것에 유의하라(15:7). 또 살인하지 말라는 제6계명에 대한 재해석(5:21-26), 간음하지 말라는 제7계명에 대한 재해석 (5:27-32) 등을 보라.

 

  

넷째, 제자는 예수님과 항상 있는 자다(20절,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예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있기를 약속하셨다. 그래서 제자로 살아가는 생활은 이 약속을 믿고 예수님과 항상 함께 있으므로 가능하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자기 백성 곧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보이셨다(1:23-임마누엘). 그런데 그 예수님은 누구신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세상을 다스리는 주권자이시다. 복음서에서 제자들이 이미 경험한 것이었다: “인자는 죄 사하는 권세를 가졌다”(9:6),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11:27). …

   8:23-27에 보면 풍랑 사건이 나온다. 8:18-20절에서 나를 따르라는 제자도에 관한 말씀을 하시고 나서 이 사건이 나온다: “예수님이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라.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는 주무신지라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가로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이 사건에서 보듯이 제자들은 예수님이 함께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굳게 믿지 못하였다. 따라서 여기서 주는 교훈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는 온갖 어려움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며 예수께서 함께 계신다는 믿음과 확신과 신뢰를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제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끊임없는 교제를 가지며 그를 신뢰하는 자이다.

 

 

다섯째, 제자는 이방인의 구원을 위해 세상에 보냄을 받은 자다(19절,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예수님은 제자들을 “모든 민족” 즉 이방인들에게 보내신다. 즉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영역은 온 세상이다. 이방인까지 구원하고자 하시는 이을 위해 제자를 세상으로 보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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