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정론이 새롭게 시작하는 기획기사 ‘김 집사가 알아야 할 교회법’은 교회법의 전반적 내용을 쉽게 해설하는 시리즈입니다. 기독교보와 함께 진행하는 시리즈로서 여기에 싣는 것은 기독교보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글 내용은 기독교보에 실린 그대로인 경우도 있으며, 오프라인 신문 지면의 한계상 다 싣지 못한 내용을 여기에는 그대로 싣습니다. - 편집자 주
헌법은 싸울 때 보는 책이 아닙니다.
양명지 목사
(두레교회 부목사)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은 좋은 의미로 사용된다. 어떤 사람이 착하고 어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표현이다. 이 표현의 맥락에서 법은 그다지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법이 없는 것이 착한 것이고 좋은 것이니 법은 없어야 좋은 것이고, 적어도 법이 있는 것은 보통에 해당한다. 표현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실제 생활에서도 법은 이권을 다투고, 험한 일을 처리하는 맥락에서 주로 등장한다. 뉴스에서도 그러하다. 그래서 법은 대체로 분쟁을 조정하고, 잘못을 벌하는 맥락에서 소비된다.
하지만 법은 그렇게만 존재하지 않는다. 법을 전공하지 않아 말하기가 조심스러우나 상식선에서 우리가 아는대로 법은 사법에 해당하는 민법, 상법 등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본적인 관계와 질서를 다루는 공법에 해당하는 헌법 등이 있다. 건을 따라 따져야 하는 법이 있는가 하면 기본적인 우리의 삶의 원리와 기초를 정의한 법도 존재한다. 남에게 해를 끼쳤을 때를 염두에 두고 다루는 법이 있는가 하면, 국가와 주권과 자유의 개념과 원리와 정신을 다루고 있는 법이 있다. 실제 우리네 삶의 아주 깊은 기초로 자리잡힌 것들도 존재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와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런 법에 대한 인식은 교회에도 아주 유사한 분위기로 존재한다. 교회에서 법은 주로 목사와 장로가 싸울 때, 교회가 쪼개질 때, 상대를 제압하려는 무기로 사용된다. 평소에는 그런 것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런데 어떤 심각하고 조심스러운 일, 자칫하면 큰일 날, 아니 이미 나버린 일을 처리할 때면 갑자기 나타난다. 평소에는 존재하는지도 몰랐는데 말이다. 그런 사례들을 직간접적으로 겪고, 들으면서 교회법은 사회에서보다 훨씬 더 안 좋은 이미지로 소비된다. ‘법 없이도 살 사람’에 더하여 교회에서는 ‘은혜로 합시다’로 더욱 교회법은 부정적으로 변해버렸다. 물론, 교회법에 문제를 해결하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교회법은 헌법과 같이 우리 교회생활, 신앙생활의 근간과 기본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헌법은 싸울 때만 보는 책이 아니다. 평소에 보는 책이다.
1. 헌법의 구성
헌법의 구성에서도 우리는 교회법이 원리의 측면이 크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헌법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헌법전문을 시작으로, 제1부는 교리표준, 제2부는 관리표준이다.
헌법전문은 교회법이 다룰 내용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을 정리한다. 헌법전문은 신앙과 교리, 예배, 교회 정치, 고신교회의 사명을 설명한다. 신앙과 교리에서는 교회가 믿는 바가 무엇이고, 그 내용이 어떤 역사적인 흐름을 따라 전수되었는지 설명한다. 신앙은 바른 가르침을 따라 믿는 내용이 있고, 그 내용은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았고, 어디에 갈무리되어 전해졌는지 설명한다. 예배에서는 예배가 어떻게 성경에서부터 지금까지 이르렀는지와 무엇으로 구성되었는지 설명하면서 예배를 설명한다. 교회 정치는 교회를 돌보고, 다스리는 정치란 무엇인지와 중요한 구성요소에 대해서 설명한다. 우리 고신교회의 사명에서는 장로교 중에서도 고신교회의 신앙의 원리와 방향에 대해서 7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교리표준은 장로교회의 표준문서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이 수록되어 있다. 성경을 유일무이한 신앙과 생활의 법칙이자 진리이다. 하지만 이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한 기준으로 장로교회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교리문답을 고백한다. 헌법은 성경의 중요한 교훈들을 정리한 신앙고백서와 이를 가르치기 위한 교리문답을 표준으로 정하고 있다. 성경의 모든 구절의 해석의 경계를 제시하고, 제한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성경이 담고 있는 가장 핵심적이고, 기본적인 내용에 대하여 공교회적으로 바른 길잡이와 기준을 제시한다. 특이한 점은 34장 성령 하나님, 35장 하나님의 사랑과 선교의 복음이 추가된 신앙고백서를 수록하고 있다.
관리표준은 그 내용이 방대하다. 관리표준은 실제 교회생활에서 피부에 와 닿는 내용들을 많이 다루고 있다. 예배, 정치, 권징, 헌법적 규칙으로 나눠진다. 예배지침에는 예배, 주일, 예배순서, 말씀의 선포, 성례, 신앙고백, 기도회, 주일학교, 시벌과 해벌에 대해 다루고 있다. 기도, 헌금, 설교 등의 개념과 내용에 대해 설명한다. 정치는 앞서 말한 교회생활의 기본이 되는 개념과 생활에 대해 다루고 있다. 교회가 무엇인지, 누가 교인인지, 교회 안에 있는 직분의 의미와 직무를 설명한다. 그 중에 항존직으로 불리는 목사, 장로, 집사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치리회인 당회, 노회, 그리고 총회, 그리고 교회의 회의인 제직회와 공동의회가 무엇인지도 알 수 있다. 교회의 재산, 재정의 원리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은 권징이다. 권징은 진리를 보호하고, 악행을 제거하고, 교회의 정결과 덕을 세우며 죄를 지은 사람의 영적 유익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 속에서 누가 벌을 받는지, 이를 결정하기 위해 어떤 절차를 따라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를 다루고 있다. 무엇이, 누가 잘못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어떤 절차를 따라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를 다루고 있다. 헌법적 규칙은 예배, 정치, 권징의 내용들을 집행하는데 필요한 구체적인 규칙들을 다루고 있다.
2. 헌법의 사용
신앙생활, 그 중에 특별히 교회생활 가운데 여러 가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그러면 보통 한국교회 성도들은 소위 대형교회에서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참고하려고 한다. 규모가 크고, 사람이 많은 교회이니 거기에서 하는 방식이 맞거나 좋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성경적이고, 바른 대답은 교회 역사 가운데 전수되어 온 교회법에 원리와 개념이 매우 실제적인 것들과 함께 잘 정리되어 있다.
성경의 핵심적인 내용과 구원에 대해서, 하나님의 법에 대해서 궁금하다면 신앙고백서와 요리문답을 참고하면 된다. 예배의 순서, 설교, 헌금에 대해 질문이 생겼거나 대표기도를 해야 하는데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하는지 궁금하다면 예배지침이 잘 안내하고 있다. 교회가 무엇인지, 목사, 장로, 집사, 권사, 전도사는 무엇이고, 왜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궁금하다면 정치를 참고하면 된다. 왜 장로교회가 예배만 아니라 신기한 이름의 회의(?)를 하는지도 잘 설명되어 있다. 교회에 생긴 갈등은 어떤 절차로 처리해야 하는지, 거기에는 무슨 원리가 있는지도 싸움의 당사자들이 주장하는 카더라가 아니라 성경적으로, 역사적으로 검증된 절차와 원리를 권징조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굉장히 실제적이고, 자세한 내용과 그와 관련된 의문들을 교회헌법이 해소해줄 수 있다. 큰 교회가 하고 있는 방식이라고 다 옳다고 볼 수 없다. 신앙고백에 따라 다른 원리와 절차를 따라야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통용되는 방식이 아니라 교회이기에 선택하고 따라야 할 정신과 방식을 알 필요가 있다. 물론 교회헌법이 교회 생활의 모든 사안에 즉답한다거나 법이 능사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통용되는 방식이 아니라 교회이기에 선택하고 따라야 할 정신과 방식이 있다. 당위만 아니라 효율에 있어서도 교회헌법은 유의미하다. 세상과 담을 쌓자는 말이 아니다. 신앙과 교회가 바른 원리와 방식을 따를 때, 제대로 세워지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헌법은 너무나도 필요한 평소에 보아야 하는 책이다. 목사는 고시와 노회와 교회의 행정적인 일을 처리하거나 분쟁이 생겼을 때만, 장로와 집사는 고시를 앞두거나 교회에 문제가 생겼을 때만 헌법을 볼 일이 아니다. 좀 지루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교회법에 대하여 함께 배우고 대화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성경에서 드러난 교회가 우리 시대에는 어떤 모양으로 고백되고 세워지는지 생각하고 나누는 것을 통해 함께 교회를 세우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가 갈등과 재판과 분열에 이르기 전에 함께 은혜 가운데 교회를 세워가게 하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
미국의 개혁교회들은 시편찬송 뒤편에 헌법(Church Order)를 넣어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언제든지 원할 때, 헌법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그래서 한국의 장로교회도 헌법을 성도들 가까이 가져오게 하는 구조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편의와 효율을 위해 선택해왔던 방식을 수정해야 하는 근원적인 노력에서부터 시작하여, 헌법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실제적인 방안도 필요하다. 재정적인 문제가 있겠지만 교단 홈페이지에 교회헌법을 게재하고, 교회헌법 책의 편집과 판형, 표지의 개선을 통해 원가를 절감하여 가격을 낮추는 것도 고려해볼 일이다.
교회헌법은 교회가 어떻게 세워지고 운영되는지 잘 보여준다. 성경을 기초로 한 신앙고백이 믿음과 삶의 기초가 되며, 그 위에 교회가 세워진다. 그렇게 세워진 교회는 그 고백에 따라 예배하고, 직분자를 세워 성도를 돌아본다. 이를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하고 조화롭게 적용 가능하게 하면서 동시에 역사적으로 통일성을 유지하도록 하게 하는 것이 바로 교회의 헌법이다. 성경과 교회헌법에 기초하여 교회를 세우고, 중요한 일들을 결정하는 문화가 교회 안에 생겨나기를 기대한다. 시비를 가리기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바르고, 장기적으로 효과적이기 때문에 그리되면 좋겠다. 법 없이 자유롭게 사는 사람이 아니라 질서 위에 바르게 세워지는 교회를 함께 소망하며 노력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