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요한 기자
7월 24일 서울시 마포구 소재 백주년기념교회에서는 “톰 라이트, 그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라는 주제의 포럼이 있었다. 이 포럼은 현대기독연구원에서 마련한 “톰 라이트, 제대로 아십니까”라는 기획 강연의 마지막 순서로 마련한 것이었다. 톰 라이트는 성공회 신학자로서 현재 스코틀랜드 성 마리 대학의 신약 및 초기 기독교사 교수다. 국내에는 그의 책이 40여권 정도 번역되어 있고 ‘바울에 대한 새 관점’과 연관되어 논쟁이 되고 있는 학자이기도 하다.
이날 포럼에서는 최흥식 교수(횃불트리니티신학교 신약학)가 “바울에 대한 새 관점”에 대한 개요를 강의하였다. 이후 김동춘 교수(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연구위원)의 사회로, 이택환 목사(그소망교회), 톰 라이트 번역가 최현만 대표(에클레시아북스)가 패널로 참가하여 톰 라이트에 관하여 토의하였다.
최근 신약학계의 동향: 샌더스, 던, 라이트
최흥식 교수는 최근 수십 년 사이에 신약학 연구를 바탕으로 등장한 바울 신학의 새로운 흐름을 소개하였다. 특별히 최 교수는 E. P. 샌더스(E. P. Sanders), 제임스 던(James Dunn), 톰 라이트(Tom Wright)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설명하였다.
최 교수의 강의에 따르면 “최근의 여러 학자들은 1세기 유대주의를 율법으로 지키는 행위구원종교로 보았던 이전의 관점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제기”한다. 이것을 언약적 신율주의(Covenental nomism)라고 한다. 샌더스는 “바울 당시의 유대인들은 율법준수를 의를 얻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여겼다”고 주장한다. 바울은 바로 이 언약적 신율주의를 비판했다는 것이 샌더스의 주장이다. 최 교수는 “1세기 유대교가 루터가 16세기 맥락에서 생각했던 유대교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샌더스, 던, 라이트 같은 새관점 학파 학자들뿐만 아니라 슈라이너(Thomas Schreiner), 카슨(D. A. Carson), 무(Douglas Moo) 등의 복음주의 학자들도 나름 동의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이어서 최 교수는 제임스 던에 대해 설명하며 “제임스 던은 기본적으로 샌더스에 동의하면서 율법의 행위가 유대인의 정체성을 규정짓는 경계 표지라고 본다”고 설명하였다. 즉 던은 율법의 사회적 기능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 가운데 ‘칭의는 구원론이 아니라 교회론’이라는 새관점 학파의 주장이 성립한다. 최 교수는 “본인은 던의 주장에 기본적으로 동의하면서도 던이 율법의 사회적 기능만을 너무 강조하다 보니 율법의 구원론적 기능을 간과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율법의 행위가 하나님의 언약 백성 안에 머물기 위해 지켰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율법의 행위들을 지켜야 했다”는 것이 최 교수의 설명이다.
최 교수는 톰 라이트의 신학을 라이트가 이해한 유대교, 율법의 행위, 칭의 등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이에 따르면 라이트는 유대교에 대해 “유대문헌 저자들이 이야기한 내용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가 약속하신 일을 언제, 어떻게 행하실 것이며 그 때 하나님의 참 백성은 누구인가라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라이트의 율법의 행위에 대한 이해는 제임스 던과 같다.” 라이트의 칭의에 대해서 최 교수는 “라이트는 의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성을 통해 주어진다는 기독론적인 칭의를 말하고 있으며 이 칭의는 개인 구원이 아니라 언약 백성이 된다는 하나님의 선언으로 이해한다”고 설명하였다.
최 교수는 논의를 정리하며 “1세기 유대교 이해나 칭의론의 사회적․교회론적 의미, 하나님의 의, 율법의 행위를 바울 사도가 반대한 이유 등에 대해 정통 개혁주의가 잘 본 부분도 있지만 놓친 부분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아울러 “샌더스, 던, 라이트의 주장이 밝혀 주는 부분을 잘 융합하면 바울이 이해한 복음과 그가 1세기 유대교의 율법을 비판한 이유를 종합적, 체계적, 균형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왼쪽부터 최흥식 교수, 최현만 대표, 이택환 목사, 김동춘 교수 ⓒ 설요한
톰 라이트와 전통 신학의 접점은 있는가
최흥식 교수의 강의가 끝난 후 패널과 청중의 참여로 토론회가 진행되었다. 토론회에서는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와 믿음에 대한 해석, 의에 대한 해석, 톰 라이트의 신학과 기존 개혁신학과의 연결점 등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패널들은 헬라어 ‘피스티스 크리스투’에 대해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성’으로 보는 것이 맞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기존의 개역한글판이나 개역개정판 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번역하고 있다. 최흥식 교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성은 칭의의 객관적 근거를 말하는 것으로 이는 정통 개혁주의에도 동의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택환 목사는 “하나님이 다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함에 따라서, 우리는 그 신실함 안에 들어가서 구원을 얻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톰 라이트에 관하여 국내에서 가장 뜨겁게 논의되는 것 중 하나가 칭의에 관한 것이다. 최흥식 교수는 “라이트의 칭의론에서 최종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성을 본받는 삶에 근거한다고 하는데 어떤 면에서 이는 세미-펠라기안이 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최 교수는 “그렇다고 라이트가 세미-펠라기안을 염두에 두고 이런 신학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바울의 편지, 야고보서, 히브리서를 주석하여 나온 결과이다. 이에 대해 너무 조직신학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텍스트 자체로 보아야 한다.” 라고 덧붙였다. 최현만 대표는 “이것은 프레임 논의다. 종교개혁 당시에 행위냐 믿음이냐의 이분법을 가지고 접근했기 때문에 우리도 계속해서 그런 구분법을 가지고 접근하고 있다.” 라고 지적했다. 이어서 “공로의 논리가 아니라 사랑의 논리로 보게 되면 믿음과 행위가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가 된다. 이를 자꾸 구분하려다 보니 라이트의 논의를 세미-펠라기안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다.” 라고 덧붙였다.
톰 라이트 신학과 기존 전통 신학의 접점에 대해 최흥식 교수는 “라이트는 ‘솔라 스크립투라’(오직 성경)를 인정하면서도 1세기 유대 문헌이나 로마 문헌을 하나의 배경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성경이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1세기 유대 문헌이나 그리스-로마 문헌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하는 것은 역사-문법적으로도, 조금 넓게는 역사-비평적으로도 맞지 않는다. 라이트의 방법론은 학계에서 정설로 인정되는 방법론이다. 우리는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두어야겠지만 배경을 정확하게 이해하면서 바울과 예수님을 봐야 한다.” 라고 주장하였다. 아울러 “우리가 (성경에서) 못 본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라이트를 바라보고 우리가 믿고 있는 정통 교리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최현만 대표는 “톰 라이트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라이트가 특별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레엄 골즈워디의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 시리즈, 오스카 쿨만의 구속사 이야기,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이어지는 성전신학 등의 이야기는 이미 신학계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따라 어떻게 우리와 함께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이 일을 완성하시고 교회 시대의 백성, 새 창조의 인류에게 어떤 것을 요구하시는가를 보면서 읽으면 라이트의 글이 특별하다거나 기존의 성경적 관점과 배치된다고 보이지 않는다.” 라고 설명하였다.
설요한 기자 juicecrea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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