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요한 기자
7월 17일(목) 서울 마포구 백주년기념교회 교육관에서는 “복음주의와 공공신학”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세미나가 있었다. 발제자는 현대기독연구원의 최경환 연구원. 이날 최 연구원은 최근에 번역된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 미국 예일대 신학, 윤리학 교수)의 『광장에 선 기독교』(IVP 역간, 원제 Public Faith)를 가지고 공적 영역(Public Sphere)에서의 교회의 역할에 대한 과제를 제시했다.
▲ 현대기독연구원 최경환 연구원 ⓒ 설요한
최 연구원은 “그간 교회 안에서만 통용되던 우리들의 언어와 사유가 이제는 공론장에 그대로 민낯을 드러냈고 모든 사람들에게 그 적실성과 타당성을 요구받게 되었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서 “수많은 가치와 이념들이 투쟁하는 다원주의 사회 속에서 기독교의 언어는 어떻게 자신의 독특성을 지키면서 가치를 전도시킬 수 있을까” 라는 물음을 덧붙였다. 여기서 말하는 다원주의는 “종교와 문화가 서로 뒤엉켜서 서로의 가치와 생각을 존중하며 조화롭게 공존해야 하는 사회”를 말한다. 여기서 최 연구원이 지적하는 것은 “‘어떤’ 진리를 전달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진리를 전달하느냐”다.
최 연구원에 따르면 “볼프가 제시하는 것은 성경의 지혜 전통”이다. 볼프는 “성경이 말하는 지혜는 보편적이면서도 모든 문화와 전통 가운데 접근 가능한 인류 공동의 가치”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 지혜는 “마치 선물을 주는 행위와 같다”고 한다. 오늘날 모든 인간의 활동이 자본주의적 교환관계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성경의 지혜가 말하는 은혜의 원리를 그 대안으로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논의의 연장선에서 최 연구원이 볼프를 통해 말하는 바는 “기독교는 이제 다원주의된 사회를 인정하고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나태하거나 혹은 강요하는 신앙의 기능장애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독특함을 유지하면서도 사회 속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원주의화된 사회 속에서의 논의와 관하여 최 연구원은 미국 정치철학계에서의 논의를 빌려 와 논의를 전개했다. 우선 최 연구원은 미국 정치철학계의 대표적인 자유주의자 존 롤즈(John Rawls)의 정의론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롤즈로 대표되는 정치적 자유주의에서는 공적인 영역에서의 정의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종교적, 철학적, 도덕적 신념을 무지의 장막으로 가리고 오직 절차적 정의에만 충실할 것을 요청한다.” 그리고 뒤이어 볼프가 니콜라스 월터스토프(Nicholas Wolterstorff)를 통해 제기한 “공적인 영역에서 개인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배제하는 것은 양심과 표현의 자유에 어긋나는 것”이라는 비판을 제시한다. 개인의 종교적 가치관과 세계관이라는 것은 개인의 두터운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는데 공적인 장소에서 이를 배제하라는 것은 오히려 자유주의가 강조하는 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억압하는 문제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볼프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차이와 경계를 통해 재구성되는 것”임을 주장한다. 실은 그리스도인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배타적인 문화적 영토는 존재하지 않고 실제로는 문화의 여러 측면을 받아들이고 변화시켜 나가면서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볼프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이 속해 있는 자리를 떠나지 않으면서도 다르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논의를 받아 최 연구원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분명한 정체성과 경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정체성이 결국 수많은 타자를 통해 구성된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들의 삶은 공동의 가치와 질서를 보다 아름답고 윤택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최 연구원은 이어서 “자신의 고유한 기독교 전통과 언어를 상실하면서까지 세상과의 소통과 보편성을 추구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자신이 속해 있는 특수한 종교 전통과 실천을 축약시키는 것은 정직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공적 영역에서 충분히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볼프는 그리스도인의 활동이 “하나님은 죄 지은 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것”, 그리고 “종교적 정체성은 통과할 수 있는 경계로 둘러싸여 있다”는 두 가지 근본 신념을 전제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최 연구원은 “그동안 한국 교회의 사회적 아젠다가 얼마나 합리적인 의사소통의 과정을 거쳤는지, 혹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기독교의 공적 가치가 시민사회의 공론장에서 충분한 토론과 비판의 무게를 견디어낸 여론이었는지를 묻고 싶다”는 질문을 제기했다. 그동안 기독교가 사회 속에서 말하는 방식이 기독교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이를 공적인 논쟁과 연결짓고 기독교 전통 밖에 있는 사람과 소통하는 언어를 사용했는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최 전도사는 세미나 도중 공공신학의 과제에 대해 “민주적인 국가를 건설하고 해방을 위한 투쟁에 헌신하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믿음의 내용을 사회에 증언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점을 지적하였는데 이것은 자의건 타의건 이미 공적 영역에 노출되어 있는 기독교가 앞으로는 좀 더 성숙한 논의를 해야 한다는 과제를 제시한 것이다.
특별히 최 연구원은 교회의 공공성을 언급하며 “교회는 사회에서 배제되고 밀려난 이들이 편하게 안식할 수 있는 교회, 누구도 자신의 편이 되어 싸워주지 못할 때 그 짐을 대신 지고 함께 싸워 줄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함을 주장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최 연구원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에 저항했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의 글을 인용하며 세미나를 마무리지었다.
“공공연한 논쟁을 회피한 인간은 개인적 미덕이라는 피난처에 도달한다. 그는 도둑질하지 않고, 살인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고, 힘을 다해 선을 행한다. 하지만 공공성을 임의로 포기한 그는 자신을 갈등에서 보호해 주는 한계선을 정확하게 지킬 줄 안다. 따라서 그는 자기 주위에서 일어나는 불의 앞에서 눈과 귀를 닫을 수밖에 없다. 세상 안의 책임적 행동 때문에 자신의 개인적인 순수성이 더럽혀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그는 반드시 자기기만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비록 그가 온갖 일을 행하더라도, 자신이 행하지 않은 일 때문에 평안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는 이러한 불안 때문에 파멸하거나, 가장 위선적인 바리새인이 될 것이다.”
(Dietrich Bonhoeffer(2010). 『윤리학』(손규태·이신건·오성현 역).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79-80쪽.)
설요한 기자 juicecrea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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