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요한 기자
2014년은 기독교의 사회적 의미를 묻는 사건이 많이 일어난 해였다. 특별히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에 나타난 기독교계의 여러 반응은 기독교인은 물론 외부에서도 기독교의 의미, 기독교의 공공성에 대해 묻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
11월 14일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에서는 강영안 교수(서강대 철학과, 전 기윤실 공동대표)를 초청하여 월례포럼을 개최하였다. 주제는 “기독교의 두 얼굴: 다원주의 사회를 사는 그리스도인”이었다. 이 포럼은 기독교 윤리적 관점에서 기독교계 내부의 정치적 분절과 다원주의 상황 속에서 기독교의 태도에 대해 고찰하고자 마련한 것이었다. 이번 포럼은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소재 IVP 회관에서 진행되었다.
▲ 강영안 교수 ⓒ 설요한
부끄러운 민낯 드러난 한국 사회
강 교수는 우선 최근의 교회 내의 정치적 분절에 대하여 “교회 안에서 보수와 진보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고 운을 띄웠다. 이러한 진보와 보수는 민주화 이전, 1960-80년대에는 주로 교파나 신학대학원을 기준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민주화를 거치면서, 특히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사실상 교파를 따라 분류하는 진보와 보수의 구분은 없어졌다. 지금은 세대에 따라서 정치적 성향이 나뉘어 있다”는 것이 강 교수의 분석이다.
교단 내 정치적 성향의 분화에 대한 간략한 개괄을 한 뒤에 강 교수는 세월호 참사를 언급하며 이를 통해 드러난 한국 사회에 대해 진단하였다. 강 교수는 “세월호 사건은 혹자가 말하는 것과 같은 사고(accident)가 아니라 사건(event)”이라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사고와 사건의 차이에 대하여 “사고를 통해서는 특별히 드러나는 것이 없지만 사건을 통해서는 무언가 감추어진 것이 드러난다”고 설명하였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를 통해 많은 것을 드러냈다. 세월호 사건은 한국 사회에 민낯을 드러낸 사건이다.” 하고 말하며 세월호 참사가 단순한 사고가 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강 교수가 세월호 참사를 통해 지적하는 ‘한국 사회의 드러난 모습’은 세 가지다. 첫째, 위험사회로서의 기술사회. 둘째, 사회의 부정의하고 부패한 모습. 셋째,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 무책임한 사회. 강 교수는 기독교가 지향하는 사회에 대하여 “위험한 사회가 아니라 안전한 사회, 부패하고 부정직한 사회가 아니라 정의로운 사회, 무책임한 사회가 아니라 자신의 일에 책임을 지고 소명에 응답하는 사회”라고 설명하며 “지금 교회가 과연 안전하고, 평화롭고, 정의롭고, 책임지고 응답하는 교회인가 자문해 보면 갸웃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신앙은 보수적으로, 행동은 진보적으로
왜 한국사회는 이러한 모습이 되었을까. 강 교수는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그 이유로 제시하였다. 그리고 특별히 6.25 전쟁을 강조하였다. “6.25 전쟁은 한국인에게 억압된 기억으로 남아 있고 가치 설정의 중요한 내항이 되었다. 한국인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가 ‘생존’이 된 것이다. 사회 정의, 책임, 안전, 평화 같은 가치는 사치스러운 가치가 되고 오직 살아남는 것이 유일한 가치가 되었다.” 이러한 분석 뒤에 강 교수는 “한국 사회가 급속히 잘 살게 된 1980년대 이후 세대와 그 이전 세대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며 한국 사회에 나타난 세대 분화를 지적했다.
그렇다면 이것은 한국 교회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강 교수는 6.25 전쟁과 한국 교회의 현세 중심적 신앙을 연결지었다. “일제 강점기 때까지만 해도 내세 중심적 신앙이 지배하고 있었지만 6.25 전쟁 이후, 특별히 순복음 교회의 영향으로 현세 중심적 신앙으로 전환되었다”는 것이 강 교수의 설명이다.
강 교수는 한국의 신앙과 정치 성향의 관계에 대해 “대개 신앙이 보수적인 사람은 정치적으로 보수적이고 신앙이 진보적인 사람은 정치적으로도 진보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강 교수는 “2000년대 들어 한국에서의 기독교 진보운동이 사라진 이후 사실상 보수 정통 교단 내에서 진보와 보수가 나뉘어졌다”고 변화한 흐름에 대해 지적했다. 강 교수는 그것이 특별히 이번에 세월호 참사를 통해서도 나타났다는 것을 언급하였다. 세월호 사건에서 단식 투쟁 등 진보적 방식으로 행동한 사람들 가운데 실제로 매우 보수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이어서 강 교수는 신학과 정치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신학은 보수적이더라도 사회 문제를 두고 행동하는 것은 진보적인 것이 합당한 신앙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는 말로 정리하였다. 여기서 강 교수가 말하는 것은 단순히 ‘신학의 보수, 정치의 진보’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신앙의 보수가 곧 정치적 보수라거나 신앙의 진보가 곧 정치적 진보라기보다는 철저하게 복음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우리 속에 내재하고 있는 자기 보존의 성향을 깨뜨리는 것”이 강 교수가 말하는 신앙이다. 여기서 자기 보존의 성향이라는 것은 17세기 유럽 철학자 스피노자가 말한 ‘코나투스 에센디’(conatus essendi, 존재 유지 경향)라는 라틴어 용어를 강 교수가 차용하여 부정적인 의미로 활용한 것이다. 개혁해야 할 것이 있음에도 개혁하지 못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었다. “복음의 내용이라는 기준을 가지면서 복음의 혁신적인 요소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강 교수의 의도다.
▲ 강영안 교수가 가 다원주의 사회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지혜와 태도에 대하여 강연하고 있다. ⓒ 설요한
교회는 복음 전도와 사회 참여 모두 놓치지 말아야
강 교수는 간략하게 기조발제를 마친 후에 질의 응답을 받으면서 계속해서 논의를 이어갔다. “왜 개신교가 특별히 두드러지게 두 얼굴이 나타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 강 교수는 “교회 활동이 모두 제각기다. 공교회로서의 개신교의 모습이 없다는 것이 이번 세월호 참사를 통해서도 그대로 드러나지 않았나 싶다. 개별 단체, 개 교단, 개 교회가 한국 개신교가 현존하는 방식이다.” 하고 대답하였다.
“한국 사회에서는, 그리고 교회에서는 사회참여에 대해 왜 안 좋은 것(예. 종북주의)으로 바라보는가” 하는 질문도 있었다. 이에 강 교수는 유학 시절에 영국 성공회 사제이자 인도 선교사, 에큐메니칼 활동가이자 복음주의자인 레슬리 뉴비긴을 만난 일화를 이야기해 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당시 강 교수는 박사 학위를 쓰던 도중 휴식차 스위스에 방문하였고 마침 스위스에서 열린 레슬리 뉴비긴에 관한 컨퍼런스에 참석하였는데 우연찮게 레슬리 뉴비긴과 대화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 때 강 교수는 뉴비긴에게 “당신은 복음주의자인가?” 하고 질문하였는데 뉴비긴은 “아뇨. 난 복음주의자가 아닙니다!”(No, I'm not!) 하고 강하게 대답하였다. 강 교수가 이유를 물었을 때 뉴비긴은 “복음주의자는 성경을 인용하고 외우지만 실제로 읽지는 않는다”고 대답했다. 강 교수가 이해한 뉴비긴의 대답은 “성경은 사회 정의를 분명히 말하고 있는데 복음주의자는 성경이 말하는 사회 정의를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강 교수는 1974년 로잔 언약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전도와 사회 정의를 모두 강조한 로잔 언약이 한국에 소개되었지만 당시 한국 장로교회에 영향을 준 것 같지는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전도와 사회 정의는 이것이냐 저것이냐(either)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both) 강조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아울러 강 교수는 “목사가 설교를 할 때나 양육을 할 때에는 성도가 어떻게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복음을 가지고 계속해서 개혁해야 한다
질의 가운데에는 “보수적인 신학의 내용의 변화나 개혁이 없이 삶의 진보성이 나올 수 있는가” 하는 질문도 있었다. 강 교수는 “삶의 진보성은 보수신학의 보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보수에서 나온다. 예수의 인격과 신격, 삶과 사역에서 나올 수 있는 진보성이다.” 하고 대답하였다. 강 교수가 이와 관련하여 제기한 문제는 “한국 교회는 복음서를 제대로 설교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만을 이야기하고 복음서 내용(예수님의 사역 전반)이 지니는 급진성은 주목하지 않는다”는 것이 지적하는 내용이다. 즉, “예수의 선포, 가르침, 치유를 강조하는 것과 십자가에서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강조하는 것이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 강 교수의 논지다. 강 교수는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가운데 나타나는 정서를 “고통받는 자에 대한 공감, 고통 받는 자와의 연대와 사랑”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러한 복음의 종합적인 내용을 ‘보수’해야 여기서부터 ‘진보’가 나온다는 것이 강 교수의 설명의 요지다.
이와 관련하여 강 교수는 “한국에서 개혁주의는 구호로만 남아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계속해서 개혁되어야 한다”(semper reformanda)는 원리를 잊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강 교수는 인간이 가진 두 가지 성향, 즉 자기 보존의 성향과 자기 초월의 성향을 언급하며 “신학이 형성된 다음에는 그것대로 보존하려고 하지 이를 쇄신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했다. 아울러 “한국 신학이 교단 중심 신학이 되어 버려서 신학 교수들도 짖지 않는 개가 되어 버렸다”고 개탄하기도 했다.
특별히 강 교수는 보수신학이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카이퍼와 바빙크는 한때 자유주의 신학자에게 배우며 당대의 논의를 학습하였고 이후 정통신학으로 돌아왔다. 칼빈은 23살에 세네카의 관용론 주석을 썼다. 여기에 나오는 라틴 저자만 55명이다. 칼빈은 세네카, 키케로, 베르길리우스의 저작에 통달했다. 철저한 인문주의적 바탕 위에 있었다. 그리고 나서 이를 극복하고 넘어서서 성경을 토대로 한 신학이 나올 수 있었다. 철저하게 보수적인 것만 공부해서는 보수 신학의 쇄신이 일어나지 않는다.”
다원주의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이 사는 지혜
아울러 “다원주의와 가나안 성도(신앙인을 자처하지만 교회에는 다니지 않는 사람)의 관계”에 대해 묻는 질문이 있었다. 강 교수는 우선 다원주의에 대해 설명하였다. 이에 따르면 다원주의에는 ‘현상으로서의 다원주의’와 ‘추구하는 가치로서의 다원주의’가 있다. 현상으로서의 다원주의는 한국에 음식이 여러 종류가 있듯, 종교가 여럿 있듯 ‘다양한 것이 공존하는 것’을 말한다. 추구하는 가치로서의 다원주의는 종교적 다원주의와 같은 경우를 말한다. 종교 간 갈등 해결을 위해 다원주의를 한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다원주의와 가나안 성도를 특별히 연결짓지는 않았다. “가나안 성도는 다원주의 문제라기보다는 기존 교회에 불만이 있거나 불신하거나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강 교수는 “굳이 연결지어 보자면 오늘날 문화가 지니고 있는 개인적 경향과 연관되어 있을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한편 강 교수는 최근에 사회 일각에서 부는 ‘인문학 열풍’에 대하여 “사람들이 교회에는 가지 않지만 인문학 강좌에 몰리는 이유가 있다. 교회에 가면 헌금을 강조하고 (세속)사회와 크게 구별되지 않는 가치를 이야기한다. 차라리 사람들은 그보다는 삶의 의미를 묻는 인문학 강좌에 간다. 지금 교회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하고 지적했다.
또한 강 교수는 다원주의 사회에서 기독교가 다른 종교, 다른 가치관과 공존하는 지혜에 대해서도 설명하였다. “리처드 마우의 『무례한 기독교』를 가지고 기독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말할 수 있겠다. 마우가 강조하는 것은 확신은 확실히 갖되 전달하는 방식은 타인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방식으로 하라는 것이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도 그 사람 역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으로 대접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수 천당, 예수 번영 대신에 '예수 닮자'
강 교수는 강연을 마무리하며 앞서서 언급한 신앙의 원리를 다시금 반복하였다. 한국 개신교 초기부터 지금까지의 모습을 강 교수의 논지에 따라 정리하면 일제 강점기 때부터 6.25 이전까지의 기독교 신앙을 소위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 지배한 내세적 신앙으로, 6.25 이후의 기독교 신앙을 ‘예수 믿고 복 받자’는 현세적 신앙으로 정리할 수 있다. 강 교수는 “이제는 ‘예수 천당’, ‘예수 복’이 아니라 ‘예수 믿고 예수 닮자’가 앞으로 한국 교회의 구호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물론 강 교수는 신앙의 순서에 대한 언급을 빼놓지 않았다. “19세기 자유주의가 실패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Savior)라는 것을 거부하고 이상적 인간의 모습으로만 그렸기 때문”이라고 언급한 강 교수는 “순서는 (우선) 예수가 우리의 구주가 되신다는 것이고, 그 예수가 단순히 우리의 구주뿐만 아니라 우리의 주(Lord)도 되시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의 주 되심 다음에는 예수가 우리의 삶의 모범이 된다는 것.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지향해야 할 점이다.” 하고 설명하였다.
청중 가운데에서는 “앞으로 한국 교회가 급속도로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는 우려를 표하는 질문이 있었다. 강 교수는 앞으로 한국 교회가 규모 전망에 대해 구체적으로 답하지는 않고 서양권의 기독교 약화에 대해 설명하였다. “유럽은 정치, 경제, 학문 영역에서 세속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미국은 유럽과 같은 세속화가 두드러진 것으로 보이지는 않으나 신앙이 매우 개인주의적으로 변했다”는 것이 강 교수의 설명이다.
강 교수는 앞으로 한국 기독교 신앙이 나타나게 될 과정을 두 가지로 전망하였다. “하나는 그저 위로 받고자, 복 받고자 하고, 큰 교회에서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소속감을 느끼는 유형의 신앙이고, 다른 하나는 작고 가난한 교회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알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삶을 나누는 신앙”이다. 물론 강 교수는 후자가 참된 신앙의 길이라고 보며 “복음서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 길을 가는 사람은 적다. 그럼에도 이 길이 아니고서는 문화를 쇄신하는 복음주의는 작동할 수 없다”고 설명하였다. 강 교수는 “(기독교라는 것이) 예수라는 복음의 핵심을 통해 자신의 것을 버리는 길을 가느냐 아니면 그저 세상 살아가는 하나의 수단으로서의 길을 가느냐”라는 과제를 제기하였다. 강 교수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현실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택과 결단을 하는 것이고 우리의 의지가 필요한 것이다.”
설요한 기자 juicecrea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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