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을 환영합니다.
최종편집
교계
설요한 기자

2014년 한국 신학계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단어 중 하나는 ‘공공신학’이다. 그동안 기독교와 교회의 공공성은 사회에서 계속되어 논의되는 주제였다. 그러다가 지난 4월 16일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로 인해 이러한 논의가 급증하였고 이후 기독교인 목회자, 지도자들의 발언이 일반 언론 및 대중에까지 널리 회자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흐름에 맞게 한국복음주의윤리학회에서도 공공신학에 대한 논의를 다루었다. 한국교회백주년기념교회에서 있었던 이번 복음주의윤리학회 정기논문발표회의 올해 주제는 “한국교회와 신앙의 공공성”이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믿는 자로부터 삶으로 뻗어나가는 것

1.jpg 개회예배 설교를 맡은 학회장 최영태 교수는 마태복음 6:33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교회”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였다. 최 교수는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로 의와 사랑과 진리가 시행되는 나라”라고 설명하였다. 이어서 최 교수는 로마서 14:17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설명하고 “여기서 의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넘어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사회 속에서 하나님의 이루어지는 것을 포함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최 교수는 우선 “믿는 자의 마음에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점을 언급하였다. 하지만 바로 이어서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는 믿는 자의 마음에서부터 나아가 삶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덧붙였다. 또한 최 교수는 기독교 종말론을 따라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은 예수님의 다시 오심”이라는 점을 언급하였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바로 “주기도문의 가르침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교회와 신자의 사명”이라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교회의 할 일로 “예수님의 사역을 예수님의 제자인 신자와 교회가 이어가는 것”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역을 그리스도의 세 직분, 즉 선지자, 제사장, 왕으로 설명하였다. “선지자로서 할 일은 하나님과 그의 뜻, 무엇이 진리인가를 사회 속에서 밝히 드러나는 것이다. 제사장으로서 할 일은 사람을 하나님과 화목시키고 힘들고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을 돌보고 양육하는 것이다. 왕으로서 할 일은 사회 속에서 정의를 실현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헌신과 충성을 다하는 것이다.”

개회예배가 끝나고 본격적인 발표회가 시작되었다. 최경환 연구원(프리토리아대학교 석사과정, 현대기독연구원)이 “공공신학의 기원, 특징, 최근의 이슈들”, 김병권 교수(침신대학교)가 “한국교회 갱신의 관점에서 본 공공신학 논의”, 김진혁 교수(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가 “다시 두 왕국론?: ‘공공하다’의 관점에서 본 마틴 루터의 신학”, 정광덕 박사(샬롬의교회)가 “아브라함 카이퍼의 교회론으로 본 공공신학의 의의”, 정재영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가 “시민사회에서 교회의 공적 역할”이라는 제목으로 각각 발표하였다. 정광덕 교수는 개인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하여 학회 부회장 김동춘 교수(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가 논문을 대독하였다.

아래는 각 발표의 대략을 정리한 것이다.

공공신학의 기원, 특징, 최근 이슈들 / 최경환 연구원

2.jpg 개별적으로 연구되어 오던 공공신학은 2007년에 “공공신학을 위한 국제 네트워크”(Global Network for Public Theology)가 설립되고 「공공신학 국제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 Public Theology)이 발간되면서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공공신학에 관한 연구 성과는 계속 누적되고 있다. 하지만 공공신학의 내용, 개념, 범위, 적용에 대한 일관된 합의점을 도출되지 않은 상황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표적인 공공신학자 스미트(Dirkie Smit)는 공공신학의 기원을 6가지로 추출한다.

1) 벌거벗은 공적 영역에서의 신학: 리처드 뉴하우스(Richard John Neuhaus)는 종교와 정치적인 삶 사이에 분리가 있다는 기존의 통념은 무너지고 벌거벗은 공론장(naked public sphere)이 시민종교의 중요한 특징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2) 공적 담론으로서의 신학: 데이빗 트레이시(David Tracy)는 “모든 신학은 반드시 공적 담론을 공유하고 모든 관심을 포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트레이시가 제시한 세 가지 공적 영역(교회, 학문, 사회)은 많은 신학자에게 영향을 미쳤다.

3) 신학과 공론장: 독일의 볼프강 후버(Wolfgang Huber)는 독일의 사회학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영향을 받아 공공신학에서 ‘공론장’(public sphere)의 개념을 제시한다. 공론장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공개성(open)과 접근가능성(accessibility)이다.

4) 신학과 공적 투쟁: 공공신학은 합의와 협력, 조화, 화합을 강조하는 서구적 기독교윤리다. 하지만 윌리엄 스톨라(William Storrar)나 티니코 말루레케(Tinyiko Maluleke)와 같이 공공신학이 해방, 정의, 평등을 향한 투쟁을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5) 세계화 속에서의 신학과 공적인 삶: 세계화는 보편적 현상이고 따라서 공공신학이 세계화를 다룰 때에는 보편적인 규범적 타당성과 가치를 찾는다. 하지만 세계화는 각 지역의 독특한 문화적 양식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되어 적용되었다.

6) 신학과 종교의 공적 귀환: 기존의 정치적 자유주의 관점에서는 종교적 교의를 가지고 공론장에 나오는 것을 꺼렸다. 하지만 실제로 정치 영역은 신학적이고 신념에 의해 좌우되는 의지의 각축장으로 보는 학자들이 있다. 후기 세속화 사회가 갖는 역설이다.

‘공공성’은 대개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들이 서로 비판적인 논의를 주고받으며 공적인 삶과 여론을 형성하는 그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아래로부터의 방식이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국가에 충성하고 봉사하기 위해 제공되는 삶’, 즉 위로부터의 방식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단일한 방식으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공공신학에서 ‘공공성’ 개념이 사용되는 일반적인 방식은 ‘복음, 교회, 신학이 항상 세상과 관련되어 있다는, 구체적으로는 공적인 삶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공신학은 공적인 삶 속에서 교회의 위치와 교회의 사회적 형식, 사회 속에서 교회의 역할을 다룬다.

공공신학이 갖는 일반적인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공공신학은 모든 사람이 지적으로 동의하고 인지할 수 있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둘째, 공공신학은 신앙의 사사화와 개인주의에 반대하고 성도들의 삶이 교회 내적 윤리로 환원되는 것을 반대한다. 셋째, 공공신학은 사회 참여의 당위성을 넘어 그 방법의 정당성을 고민한다. 톰슨(Heather Thomson)과 같은 학자는 여기에 “기독교 역사 가운데 나타난 각각의 신학 전통이 만들어낸 사회윤리적 특징을 통해 보충할 것”을 요청하기도 한다.

공공신학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기독교 신학이 가지고 있는 복음의 독특성과 신학 전통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세상과 소통하며 기독교의 진리를 대중에게 합리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문제는 기독교 신앙과 윤리적 지침이 구체적인 현장의 필요와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보편적인 담론 속에 편입될 수 있는가이다. 이와 관련하여 제기되는 과제는 공공신학이 과연 차이와 다양성을 담아낼 수 있는 연대를 어떻게 만들 것이며 공론장의 주변부, 주변화된 이들을 어떻게 기독교와 연결지어 재구성할 것인가를 성찰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는 해방신학자들의 논의가 공공신학에 영향을 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해방신학자들의 논의에는 구체적인 정책적 논의가 없다’는 지적이 있기도 하다. 이에 대해서는 ‘아직도 실질적인 민주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 속에서 공공신학 논의를 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반박도 있다.

정리하면, 공공신학적 논의의 두 가지 논쟁점은 공공신학의 보편성과 특수성에 대한 논의, 해방신학과 공공신학의 관계에 대한 논의라고 할 수 있다. 공공신학이 형성된 장소에 따라 다른 색깔을 띠게 되는 것은 일견 당연하다. 공공신학이 발전하는 양상은 입체적이다. 미국의 비판사회학자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는 정의론을 논의하며 “공론장의 정당성은 포용성(inclusiveness)의 정도와 동등한 참여(participatory parity)를 실현하는 정도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프레이저의 논의를 빌자면, 공공신학은 공공성에 대한 다양한 담론 투쟁이 자유롭게 오고 가면서 다양성을 수용하고 감싸안을 수 있어야 하고, 동시에 대화 당사자가 출신, 조건에 의해 배제되지 않고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제안하자면, 희생자들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공적 자리를 마련해 주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울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교회 갱신의 관점에서 본 공공신학 논의 / 김병권 교수

3.jpg 한국 교회에서 공공신학에 대한 논의는 1970년대부터 다양하게 소개된다. 21세기 들어서도 2007년 ‘공공신학 전문가 집담회’, 2008년 공공신학 세미나 등이 꾸준히 개최되고 특히 올해 들어서 젊은 기독교 지식인을 중심으로 공적 신앙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나타났다. 하지만 이렇게 신앙의 공공성에 대한 요구가 계속해서 나타나는 것은 신앙의 공공성을 강조해온 기존의 신학이 계속 완성되지 못한 채로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공공신학은 이론 정립과 실천 대상(교회 밖)의 양자를 동시에 추구한다. 이 중 특별히 실천에 초점을 맞춘다고 할 때, 여기서의 실천은 단순히 사회적 행동만을 의미해서는 안 된다. 사회적 ‘존재 방식’도 포함되어야 한다. 한국 교회가 사회적 지탄을 받는 이유 역시 단순히 사회적 행동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적 존재감의 문제에서 찾아야 한다.

복음주의 신학 전통 안에는 공공성의 중요성에 대한 가르침과 언급이 많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한국의 복음주의 교회는 개인주의적 내적 퇴행을 보여 왔다고 비난받고 있다. 이것은 복음 또는 신앙의 공공성이 한국 복음주의 교회 안에서 명시적으로는 수용되었지만 실제로 교인의 삶이나 교회의 에토스(ethos)에 실제적으로 자리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2007년부터 한국에서 거론된 공공신학에 대한 논의를 검토해 보면 거의 모든 논의가 이론적 측면에 국한되어 있고 명시적 공공성과 실제적 공공성 사이의 간극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거나 해결책을 모색하는 내용을 발견할 수 없다.

한국에 소개된 공공신학은 크게 스택하우스(Max Stackhouse)와 후버(Wolfgang Huber)의 공공신학으로 나뉜다. 한국에서는 이중 미국의 스택하우스(Max Stackhouse)의 논의가 주로 논의되고 있다. 스택하우스의 논의에는 소종파주의 신학(또는 분파주의, 고백주의 신학)에 대한 일종의 편견이 담겨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스택하우스를 수용하여 논의하는 학자들이 스택하우스의 이러한 편견을 그대로 갖고 있는 경우가 있다.

스택하우스의 공공신학은 교회 및 신앙의 개인주의적 퇴행에 대한 응답이라기보다는 지구촌의 세계화 현상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문제에 대한 신학적 응답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스택하우스가 말하는 세계화는 ‘특정 콘텍스트 초월’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손규태는 스택하우스의 세계화 이해에 대해 세 가지를 지적한다. 첫째, 미국 중심의 제국주의적이고 신식민지주의적인 요소를 외면하면서 미국의 막강한 영향력과 세력 팽창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제안한다. 둘째, 세계교회협의회(WCC)에서 천명한 반세계화 선언과 해방신학적 성경해석에 대해 비판함으로써 에큐메니컬 운동의 사회윤리적 성향에 반대한다. 셋째, 세계화 현상 중 하나인 다국적 기업의 폐단을 인정하면서도, 시장의 경쟁 시스템과 국제법 및 규약에 의해 이러한 폐단이 조절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결국은 다국적 기업을 옹호하고 있다.

이러한 논의를 종합하여, 한국 교회 갱신을 위한 공공신학의 활용방식은 무엇일까. 첫째, 신학의 공공성은 공공신학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둘째, 각 교단 신학자들은 자기 교단 신학 속에 내장된 공공성의 내용을 조사하고 한국 교계의 실정에서 갖는 장점과 단점을 파악해야 한다. 셋째, 자신이 속한 교단 신학의 공공성이 교단 교회에 실제적으로 얼마나 내면화되어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넷째, 교단 신학의 특 안에서 진영 논리에 따라 공공신학을 대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다섯째, 교회의 실제적 공공성을 고양하기 위해 ‘에토스’(ethos)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여섯째, 교회의 에토스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교인들 사이에 편하게 주고 받는 작은 이야기의 성격을 공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다시 두 왕국론? ‘공공하다’의 관점에서 본 마틴 루터의 신학 / 김진혁 교수

4.jpg 한국 신학계의 공공신학 논의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공공성을 찾기보다는 서구 사상가들의 이론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공공신학은 신앙을 사적 문제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했던 한국 기독교에 공적 기독교의 모범을 제시한다는 차원에서 보면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전문신학자들의 전유물이 되는 소종파화, 서구 공공신학의 한국에서의 적실성 등을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

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한국적 공공 개념과 성경의 교리가 어떻게 공적 문제를 설명하는지 고민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연구에서는 마틴 루터의 두 왕국론과 한국의 공공철학자 김태창의 공공성 담론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루터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히 칭의와 더불어 성화를 강조하는 것보다는 칭의론과 두 왕국론 자체가 갖는 공공적 특징을 확보하는 작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또한 공공성이 형성되는 전제로 참 인간됨의 인식을 강조하는 김태창의 방식은 루터의 공공신학적 함의를 드러내는 데 적합한 틀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구에서는 공공성 자체가 중요한 학문의 대상이 되어 왔다. 하지만 동아시아 학자들은 서구에서 말하는 ‘공공적인 것’(public)이 동아시아 문명권에서 말하는 공공적인 것과 어떤 유사점과 차이점이 있는지 질문하고 있다. 김태창은 영어 ‘public’과 한자문명권의 ‘공공’ 개념의 차이를 드러내기 위해 공공철학의 세 가지 의미를 제시한다. 첫째, ‘공공의’ 철학은 시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철학으로 전문화를 피하고 대중과 호흡하며 대화하는 융합학문의 성격을 갖는다. 둘째, ‘공공성의’ 철학은 공공성이란 무엇인가를 철학적, 역사적, 현상적으로 분석하는 전문가 지향의 철학 형태이다. 셋째, ‘공공하는’ 철학은 공공을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이해하고 공과 사를 공공을 통해 상생시키고자 한다. 동사로서의 ‘공공하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김태창은 이를 “공과 사의 ‘사이’의 상호관계의 문제”라고 말한다. 즉 인간의 개인적 삶과 사회적 실존을 통해 형성되는 다차원적인 ‘사이’를 인식하고 이 ‘사이’를 중재하여 상생하는 것이다.

여기서 김태창은 ‘활사개공’(活私開公)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사적인 것을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살림으로써 공적인 것을 열리게 하는 것이다. 공공을 동사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공공이라는 것이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매개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특별할 것은 없다. 하지만 김태창의 특수함은 이 공공을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매개하는 ‘작용’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공사공매’(公私共媒)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공과 사가 함께 만들어가는 목적은 행복이라는 의미에서 ‘행복공창’(幸福公創)이라고 말할 수 있다. 활사개공, 공사공매, 행복공창은 자기와 타자와 세계를 상호연동적으로 이해하며 대화와 조정을 통해 공과 사를 상보적으로 개선하고 향상시키고자 하는 김태창의 세 가지 키워드이다.

루터의 두 왕국론은 흔히 복음과 정치사회적 차원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물론 이것은 루터의 칭의론의 윤리적학 약점이 두 왕국론에서 공공성의 부재로 나타났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은 공과 사를 나누고 신앙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근대적 정신을 루터에게 역으로 투사했기 때문에 일어났다고도 볼 수 있다. 오히려 공과 사를 구분하면서도 이 둘의 ‘사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하고자 했던 루터를 통해 개신교 공공신학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도 있다.

우선 루터에게 있어 ‘새 사람이 된다는 것’은 나의 공로나 신앙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한 것이다. 타자이신 그리스도와 만나고 믿음으로 연합함으로써 죄인은 새 사람, 즉 관계적 주체로 거듭나게 된다. 그런데 거듭난 인간은 여전히 육적 존재이고 세상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루터에 따르면 “이 생에서 그 사람은 자신의 몸을 제어해야 하며 사람들을 대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삶은 몸의 훈련(수신)과 구체적인 타자와의 만남이라는 두 활동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 선(coram deo) 존재이자 타자 앞에 선(coram humonibus) 존재이다. 이것이 루터식의 ‘공공하다’의 기본 틀이다.

그렇다면 루터는 세상의 영역, 특별히 정부를 어떻게 이해할까. 루터에 의하면 영적 정부와 세상의 정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세상의 권력과 법은 이중의 목적, 즉 사악한 자를 처벌하고 올바른 자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된다. 하지만 세속 정부는 세상의 왕국이라는 그들의 한계를 넘어서서 영혼을 위한 법을 규정하여 하나님의 정부를 침해하거나, 하나님의 뜻인 정의, 성실함, 진리를 거부하고 인간 영혼을 죽음으로 몰아갈 정도로 부패할 위험이 있다.

루터에게 있어, 세속 정부의 법과 공권력은 그 오용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정당성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인은 세속 정부의 권위를 인정하면서도 폭력과 부패에는 편승하지 않아야 한다. 다수의 이웃이 세상의 왕국에 속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섬겨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무조건적 비폭력 복종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문제에 있어서는 자발적으로 고통받고 인내하지만 타자를 위해서는 복수, 정의, 보호, 도움 등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을 주어야 한다.

또한 루터는 두 왕국 사이를 매개하는 ‘이성’의 역할에 주목한다. 물론 루터는 이성이 하나님에 대해 정의하고 신앙의 영역에 침범하는 것을 경계한다. 하지만 『탁상담화』에서 ‘중생한 조명된 이성’이나 ‘계몽된 이성’을 언급하기도 한다. 즉 루터의 신학에는 선한 자연적 이성, 신앙을 오도하는 교만한 이성, 하나님 말씀에 조명된 이성의 세 가지 차원이 공존한다.

하지만 루터는 자연적 실천 이성의 요구를 뛰어넘는 고통과 인내를 통한 공공하기가 가능함을 보여 준다. 그리스도인은 이웃을 위해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다. 이러한 고통의 인내는 그리스도인의 의무라기보다는 ‘인간으로서의 권리, 자연적 권리’를 넘어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권리’이다.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영적 정부에 속한 그리스도인은 ‘더 나은 의’를 보여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루터의 신학에서 오늘날 회자되는 ‘공공성’이나 ‘시민사회’를 찾는 것은 시대착오적 해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공’과 ‘사’가 상생하는 ‘신학적 공공하기’의 좋은 모델을 도출할 수는 있다. 이러한 접근은 루터를 정치적 자유주의의 시발점으로만 보려 하는 기존 정치학계의 가설을 교정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공공하다’의 관점에서 정리한 루터의 공공신학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기독교인으로서 실존의 세속에서의 삶과 매개하는 이성과 자연법. 2)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이웃 사랑으로 구체화하는 활사의 관계적 주체. 3) 평화와 질서유지라는 신적 사명을 정당성의 근원과 권력 사용의 경계로 가지는 지상 정부.

물론 루터는 당시의 구체적 상황 속에서 상황에 맞는 구체적인 신학적 답변을 내놓았다. 구체적 상황 속에서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이웃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공공하는 삶의 영역을 만들어가는 것, 합리적 이성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으면서도 고통과 희생을 하면서까지 공공하려 애쓰는 것은 공과 사의 대립 속에서 그리스도의 실존을 고민하는 현대인에게 루터 신학이 던져 주는 미완의 답이라 할 수 있다.

아브라함 카이퍼의 교회론의 관점에서 본 공공신학의 의미 / 정광덕 박사

한국 교회의 추락 원인은 대개 교회의 내적인 부패구조와 배타적 신앙의식에서 찾는다. 부패와 관련한 한국 교회의 문제는 교회의 도덕성과 윤리의식이 세상보다 못하다는 데 있다.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고 세속화되어 기독교 신앙의 탁월성을 보여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기독교윤리학자인 요더(John H. Yoder)와 스탠리 하우어워스(Stanley Hauwerwas)에게서 나타난다. 다른 한편 한국 교회의 문제를 배타적 신앙의식에서 찾는 견해가 있다. 최근 대두되는 공공신학(Public Theology)은 이런 흐름을 담아내는 신학으로 교회의 공공성을 강조한다. 공공신학 혹은 공적 신앙(Public Faith)은 다원화된 사회에서 주변의 사람들과 공존하며 기독교적 신앙의 가치를 추구하여 드러내면서 공공의 유익과 공동의 선을 이루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칼빈주의 강연』을 중심으로 보자면,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는 칼빈주의를 인간의 근본적인 삶의 체계, 즉 포괄적인 세계관으로 제시한다. 카이퍼는 칼빈주의를 종교, 정치, 학문, 예술, 미래 등 포괄적인 영역 안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으로 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의 생활의 세 가지 근본 관계에서의 확실한 출발점이다. 그 세 가지는 하나님과의 관계, 인간과의 관계, 세계와의 관계이다.

우선 하나님과의 관계는 인간은 피조물이며 창조주이신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할 존재임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칼빈주의는 모든 인간을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동등한 자로 여기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권위와 재능 외에 서로 간에는 어떠한 차별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세계와의 관계에 대해 칼빈주의는 하나님께서는 피조물과 직접 교제하시고 다스리신다는 것을 주장하며 일반은혜라는 원리를 제시한다.

카이퍼의 하나님 주권 사상은 세 가지 면에서 그리스도인의 사회, 정치적 삶을 바르게 인식하도록 한다. 첫째,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말한다면 여타의 권력은 모두 상대적이다. 둘째, 인간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주권에 근거해 있다면 인간은 상호간에 섬기는 종으로서 존재한다. 셋째, 일상적인 삶 속에서 우리가 사회의 일원으로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서로 다른 사회적 책임성을 인식하는 것이며 사회를 위해 다른 가치들의 공헌을 인정하는 것이다. 카이퍼의 영역주권이 여기에서 나온다. 사회 내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권력들은 자신의 영역에서만 그 영향력을 가진다. 정부, 교회, 학교, 가정은 자신의 독립적 권위를 지닌다. 단 모든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유래하며 하나님의 뜻을 위한 책임이 주어져 있다. 

카이퍼의 공공신학 적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일반은총론을 통해 진술되는 교회론을 살필 필요가 있다. 카이퍼의 교회론은 교회가 처해 있던 시대의 역사 속에서 형성되었다. 카이퍼의 교회론은 세 단계에 걸쳐 수정되었다. 첫 번째 시기 카이퍼의 교회론적 입장은 교회를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로 구분하고 불가시적 교회를 진정한 교회로 본다. 그리고 이 불가시적 교회는 아직 존재하지 않고 다가오고 있다고 보았다. 두 번째 시기의 입장은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의 구분을 제도로서의 교회와 유기체로서의 교회로 구분하고 가시적 교회가 불가시적 교회 안에서 발견된다고 하여 두 교회의 상호 연관성을 말한다. 비가시적, 유기체적 교회가 본질이고 이것은 가시적 교회 내에서 교회의 표지를 통해 드러난다는 것이다. 세 번째 시기의 입장은 유기적 교회가 제도적 교회의 영역 밖에서 활동하는 한 제도적 교회처럼 가시적이라는 주장이다. 이 입장이 카이퍼의 일반은총, 영역주권론과 연결되어 있다.

카이퍼에게 있어 그리스도인은 삼중적 소명을 가졌다. 첫째, 말씀 선포, 성례, 권징이 있는 제도적 교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둘째, 제도적 교회의 일원일 뿐 아니라 비신자들과 공유하며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의무를 가지는 것이다. 셋째, 인간사회의 전 영역에 걸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세상과 맞서 싸우는 다른 신자들과 함께 조직된 단체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카이퍼가 말하는 유기체로서의 교회를 통한 사회변혁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창조의 신적인 법 구조의 절대적 타당성 위에 사회의 구조를 세우는 것이다. 또한 기독교 문화의 발전은 중생한 유기적 교회가 일반은총의 영역에서 창조의 풍부함을 개발하고 개인과 공동체의 삶을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선 사회의 구조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카이퍼의 사회변혁론을 적용할 때 그리스도인의 적극적인 태도로 인해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무례하고 비난 받는 대상이 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종교, 문화적으로 다원화되어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지녀야 할 태도는 공정하고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교회 밖에서도 신자로서 우리는 사랑과 배려의 정신을 잃지 말아야 한다. 불신자를 대할 때는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함으로 소통의 단절을 배격해야 한다. 진정성 있는 배려로 이웃의 마음을 사야 한다. 세상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가짐으로 사회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잃지 않고 있음을 보여야 한다.

시민사회에서 교회의 공적 역할 / 정재영 교수

5.jpg 사회에서는 시민 사회에 대한 의제가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시민을 이기적 개인으로 보는지, 공공의식을 가진 존재로 보는지 등의 ‘시민에 대한 이해’에 따라 논의의 성격과 내용은 다르다. 시민은 고대 도시 국가에서는 노예를 부리고 공공 생활 참여를 통해 정치 결정권을 행사한 성인 남성, 중세에는 도시 성공업자, 근대에는 자유와 평등의 옹호자, 이후 근대 국가 구성원 일반을 가리키는 말로 인식하였다. 최근에는 ‘시민’을 특정한 부류라기보다는 특정한 가치와 행위를 뜻하는 말로 사용한다. 즉, 시민이란 ‘공공의 문제에 관심을 가질 뿐 아니라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유롭게 토론하고 참여할 수 있는 시민성을 가진 존재’를 말한다. 그리고 시민 사회는 이런 시민들의 상호 교섭의 공간이다. 개인의 사적 이해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사적 영역이지만 동시에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가 논의되고 질서를 만든다는 점에서 공적 영역이기도 하다.

공공의 담론은 몇 가지 특징을 갖는다. 첫째, 더불어 살기 위해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에 대한 공동의 헌신을 의미한다. 둘째, 단순히 공동의 것이 아니라 공동선과 관련된다. 셋째, 공공의 담론 양식은 강요나 조작이 아니라 이성과 설득이다. 그리고 공론의 장으로서의 시민 사회는 국가와 시장으로부터 억압이나 통제를 받지 않고 개인의 권리를 보호해 준다. 결사의 자유가 적용되고 헌신에 의해 동기 부여되는 삶의 영역과 관련된다.

교회는 국가의 통제로부터 자유롭고 시장 경제 체제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 사회의 제3섹터이자 시민 사회 영역에 속한다.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 이래 사회학자들은 교회의 중요성을 인식해 왔다. 퍼트넘(Robert Putnam)의 논의를 빌리면 “교회는 많은 사회 운동을 위한 조직적이고 철학적인 기초를 제공한다.” 퍼트넘이 말하는 사회 자본으로서의 시민의 참여는 자발적, 지역적, 사회적인 성격을 갖는데 이것은 교회의 특징과 어울린다. 우스노우(Robert Wuthnow)같은 학자는 『기독교와 시민 사회』라는 책에서 교회를 통한 기독교의 사회 참여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기도 하다. 우스노우는 교회와 시민사회의 관계를 연구하는 일이 중요한 것은 시민 사회가 규범적으로 선하며 사회적 삶 가운데 보존할 가치가 있는 바람직한 차원으로 널리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에 기인한다고 말한다.

우스노우는 ‘공공’이라는 말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개방 또는 접근 가능성을 말한다. 둘째, 공존하는 것이다. 셋째, 어린이가 아닌 성인의 책임감(성숙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교회의 공공성을 생각해 볼 때 교회는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사회 수준에서 표출되기 어려운 구조적 상황에 처해 있다. 급속한 사회 변동으로 인해 종교가 사라지는 세속화 현상은 일면 사실로 보인다. 하지만 급속한 사회 변동으로 인해 단지 종교의 성격이 변형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신앙은 개인주의화되었지만 모든 사회의 종교 현상이 사사화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스노우는 시민사회에서의 교회의 역할로 세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정체성 정치이다. 차이에 대한 공식적 인정을 포함한 깊은 존중을 나타내는 것이다. 둘째, 실용적 보편주의이다. 포괄성을 지향하는 것이다. 기독교 안에도 모든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 그리스도의 몸인 신자의 평등, 그리스도 안에서의 보편 사상 등이 있다. 문제는 실용적 보편주의 일변도로 흐르면 사회 문제에 대해 구별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할 수 있다. 셋째, 시민 비평의 역할이다. 기독교가 예언자적 역할을 회복하여 어떻게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지, 어떻게 비판을 제도화할 수 있을지 대안을 고려하는 것이다.

시민 사회는 결사의 자유가 적용되는 자원의 영역이고 이윤이나 이기심보다는 헌신에 의해 동기 부여가 되는 삶의 영역과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사람들 사이의 교섭을 증가시키고 도덕성에 의한 동기부여할 수 있는 집합적 가치를 설정하는 일은 중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교회의 소그룹이 주목을 받는다. 기독교인 소그룹은 공동체 환경에서 서로 교섭할 때 대인의 신뢰를 발전시킬 수 있다. 이러한 식으로 기독교인은 사회에 종사할 수 있다. 다만 교회의 소그룹이 끼리끼리의 집단이 아니라 공공성을 확보하여 사회성을 키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교회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교회는 세속 사회의 모든 활동에 대하여 기독교의 가치를 부여하고 기독교인들이 따라야 하는 윤리적인 지침을 마련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교회는 일차적으로 예배공동체의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사회 속에 존재하는 시민공동체다. 교회가 할 수 있는 사회적 실천 방법 중 하나로 지역 공동체 운동을 들 수 있다. 최근 논의되는 것은 ‘마을 만들기’와 같은 것이다. 기존의 기독교 사회 운동이 대개 교계 지도자 중심의 운동이라고 한다면 지역 사회 공동체 운동은 일반 기독교 대중이 참여할 수 있는 풀뿌리 운동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논의를 정리하면, 현대사회에서 종교 신앙은 사회 수준보다는 사사로운 개인 영역에서만 중요성을 갖게 되었다. 문제는 종교를 어떻게 공공의 영역으로 끌어오느냐이다. 시민사회에서 교회의 역할은 종교의 공공성을 회복하는 중요한 방법이다. 교회가 사회의 책임 있는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 공공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해결을 위한 노력에 동참하여야 한다. 교회 스스로 공공의 공간이 되고 교회 내 의사결정 구조도 모두가 참여하는 방식으로 개선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교회 공동체 의식은 닫힌 공동체가 아니라 지역 사회를 향해 열린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 교회의 활동을 통한 가시적인 성과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보냄 받은 교회’로서의 사명에 충실하게 묵묵히 노력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0.jpg
▲ 11월 22일(토) "한국 교회와 신앙의 공공성"을 주제로 복음주의 윤리학회 논문발표회가 열렸다. ⓒ 설요한

전체 토론

발표를 모두 마친 후 진행된 전체 토론 내용 중 일부를 정리하였다.

1. 한국 기독교에서 공공신학 논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최경환 연구원: 지금 상황은 한국 교회의 공신력이 떨어졌거나 사회적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교회가 세상보다 못한 집단으로 보이는 것이 문제다. 즉 세상은 공론장에 나와서 말하자고 하는데 교회는 그냥 자기 이야기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다기보다는 오히려 세상과 소통이 되지 않는다. 앞으로 공공신학은 대화의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한편으로 한국 사회는 서구와 다르게 종교를 가지고 공론장에서 이야기할 대 역차별을 받을 우려가 있다. 공론장이라는 공간이 누구나 접근 가능하다면 종교에 대해서도 그래야 한다.
- 김병권 교수: 공공신학자들의 목소리가 현장의 목사들과 합의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모든 신학 전통에서 교회의 공공선을 담보해야 한다.
- 정재영 교수: 신학은 당연히 공적인 것이다. ‘사적신학’이라는 말은 이상하지 않은가. 사회학자로서 한국 교회를 보자면 현재 개교회주의가 만연하기 때문에 공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2. 루터의 두 왕국론, 카이퍼의 교회론, 칼빈주의가 한국 교회의 공공신학이나 교회의 공공성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
- 김진혁 교수: 롤즈나 하버마스가 최근 들어 공론장에 종교적 정체성을 가지고 뛰어드는 가능성을 열어 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어떻게 뛰어들 수 있는가. 그들이 열어 놓은 문이 있지만 여전히 닫혀 있는 문이 있다. 우리의 언어를 가지고 그들의 언어로 번역해서 들어갈 때 우리의 신학적 고유성이 사라진다. 통행증은 받았지만 발언권은 뺏기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공공신학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철학을 흉내내는 것에 불과할 수 있다. 루터가 두 왕국론을 가지고 이야기할 때 그것은 두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루터는 역설 속에서 긴장을 놓치지 말라고 한다. 신학적으로 보면 종말론적 실존이 유지되는 것이다. 이를 유지하는 공공신학이 가능하다고 하면 일반적인 논의와는 다른 기독교 공공신학의 논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언어에 대해 스스로 너무 위축되지 않아도 될 것이다.

3.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자본주의’라는 압도적인 가치가 있다. 복음을 제대로 가르치면 자본주의의 폐해에 저항해야 한다. 그런데 결국 그렇게는 하지 못하고 현실에 순응하고 결국 신앙은 사사화된다. 이것이 결국 권력에 그저 순응하는 것 아닌가. 로마서 13장을 이런 식으로 잘못 적용하는 현상이 있다.
- 김진혁 교수: 로마서 13장은 따로 논의해야겠지만, 현실에 순응하는 것이 무조건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은 모두 공감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맷집을 키우는 것이다. 맷집을 키우는 신학을 하지 않으면 공공신학은 아름다운 이론으로만 남을 것이다. 루터는 “내가 고통을 받으면 교회의 누군가도 고통을 받는 것이고 그리스도도 고통을 받는다”고 했다. 이것은 고통의 연대 분담을 말한 것이다. 아울러 루터는 “교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가 승리할 것”이라는 희망도 제시하였다.

구체적인 현장을 담는 구성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

한편 이날 신학회에 청중으로 참석한 청어람 아카데미 양희송 대표는 “전반적으로는 학자들의 논의를 자세히 규명하고 토론하는 부분이 강조될 수밖에 없겠지만 하나 정도는 세월호나 차별금지법 등 한국 사회 이슈에 대해 깊이 파고들어가는 내용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학회에서는 공론장에서의 담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 만나는 것은 공론장의 붕괴다.” 하고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 현장에서는 합리적인 토의조차도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 많다는 지적이었다. 

설요한 기자 juicecream@naver.com

< 저작권자 ⓒ 개혁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1. 400년 전 도르트 회의,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400년 전 도르트 회의,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2019년 11월 1일(금) 오후 4시 30분, 서울역 인근에 위치한 성약교회당(독립개신교회, 김명순 목사 시무)에서 도르트 회의를 기념한 특강이 있었다. 개혁정론(위원장 성희찬 목사)과 독립개신교회신학...
    Date2019.11.05 By개혁정론 Views470
    Read More
  2. 진실이 있는가? - Post-Truth 시대에 진실을 찾아서

    진실이 있는가? - Post-Truth 시대에 진실을 찾아서 손재익 객원기자 2019년 7월 11일(목) 저녁 7시 30분 한국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는 진실과 거짓을 묻는 강의가 있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공동대표 정병오, 배종석, 정현구)이 발행하는 좋은나무 발...
    Date2019.07.12 By개혁정론 Views342
    Read More
  3. 지형은 목사, 한목협 제6대 대표회장에 선임

    지형은 목사, 한목협 제6대 대표회장에 선임 손재익 객원기자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이하 한목협) 제6대 대표회장에 지형은 목사(기성, 성락성결교회)가 선임됐다. 한목협은 2019년 6월 27일 새문안교회당에서 전국수련회를 가진 뒤 제12차 정기총회를 열고...
    Date2019.06.27 By개혁정론 Views3263
    Read More
  4. 공교회의 참된 의미를 묻다 - 한목협 제21회 전국수련회

    공교회의 참된 의미를 묻다 - 한목협 제21회 전국수련회 손재익 객원기자 2019년 6월 27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새문안교회당(서울시 종로구 사직동 소재, 이상학 목사 시무)에서는 2019년 제21회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이하 한목협) 전국수련회가 ...
    Date2019.06.27 By개혁정론 Views173
    Read More
  5. 대형교회를 논하다

    대형교회를 논하다 손재익 객원기자 한국교회목회자윤리위원회(위원장 전병금 목사, 대변인 정주채 목사)가 주최한 발표회가 “대형교회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열렸다. 2019년 6월 4일(화) 오후 2시 한국기독교회관(서울시 종로구 소재) 2...
    Date2019.06.04 By개혁정론 Views679
    Read More
  6. 도르트 신경 400주년 합신 대강좌

    도르트 신경 400주년 합신 대강좌 손재익 객원기자 2019년은 도르트 총회가 개최된 지 400년 되는 해다. 이에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총장 정창균 교수, 이하 합신)는 도르트 신경 400주년 합신 대강좌를 개최했다. 이 행사는 2019년 4월 30일(화)부터 시작해 ...
    Date2019.04.30 By개혁정론 Views673
    Read More
  7. 말씀을 낭독하라- 제프리 아서스 초청 심포지엄

    말씀을 낭독하라 - 제프리 아서스 초청 심포지엄 안재경 목사(편집장) 제프리 아서스 초청 심포지엄 ‘말씀을 낭독하라’가 2019년 2월 19일(화) 오후 6시 30분에 연세대학교 100주년 기념관 콘서트홀에서 열렸다. 초청받은 400이상의 청중이 콘서...
    Date2019.02.20 By개혁정론 Views430
    Read More
  8. 한국교회, 어떻게 예배하고 있나?

    한국교회, 어떻게 예배하고 있나? 안재경 목사 (개혁정론 편집장) 〈목회와 신학〉 창간 30주년 기념 세미나 ‘한국교회 예배 톺아보기’가 2019년 2월 18일 서빙고 온누리교회 두란노홀에서 열렸다. 〈목회와 신학〉 편집장 스티브 차 목사는 30주...
    Date2019.02.19 By개혁정론 Views1041
    Read More
  9. 20년이 흘렀지만, 계속되어야 할 20년

    20년이 흘렀지만, 계속되어야 할 20년 - 한목협 20주년 기념 감사예배 및 포럼 손재익 객원기자 “20년이 흘러 이렇게 기념하지만 정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회개와 기도입니다.” 한목협 20주년 감사예배 설교를 맡은 전병금 목사(기장, 한목협 명...
    Date2018.11.21 By개혁정론 Views263
    Read More
  10. 청교도 연구의 새로운 산실이 될 것-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청교도연구센터 오픈

    청교도 연구의 새로운 산실이 될 것 -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청교도연구센터 오픈 손재익 객원기자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이하 합신대학원)가 합신 청교도연구센터(센터장 안상혁 교수)를 오픈했다. 합신대학원은 무너진 한국교회의 도덕성 회복은 신앙회복운...
    Date2018.11.15 By개혁정론 Views717
    Read More
  11. 30년이 지나도 기억되는 이름

    30년이 지나도 기억되는 이름 - 정암 박윤선 30주기 기념대회 손재익 객원기자 정암 박윤선 30주기 기념대회가 2018년 11월 5일(월) 은평교회당(서울시 강동구 길동)에서 열렸다. “한국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선물, 정암 박윤선”이라는 주제로 열...
    Date2018.11.06 By개혁정론 Views432
    Read More
  12. 선교한국, 더운 날씨에도 선교를 향한 열정은 계속된다

    선교한국, 더운 날씨에도 선교를 향한 열정은 계속된다 손재익 객원기자 선교한국 2018(조직위원장 김종호 목사)이 세종대학교(서울시 광진구 소재)에서 2018년 8월 6일(월)부터 10일(금)까지 열리고 있다. 선교한국은 학생선교단체, 해외파송단체, 지역교회 ...
    Date2018.08.08 By개혁정론 Views476
    Read More
  13. 교회탐구포럼 8회 “페미니즘 시대의 그리스도인” 

    교회탐구포럼 8회 “페미니즘 시대의 그리스도인” 윤웅열 지난 6월 4일 한국교회탐구센터에서 주최하는 교회탐구포럼 8회 “페미니즘 시대의 그리스도인”이 열렸다.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미투 운동과 페미니즘 운동의 거센 물결, 또 여...
    Date2018.06.10 By개혁정론 Views473
    Read More
  14. 오스 기니스, 한국에 오다

    오스 기니스, 한국에 오다 손재익 객원기자 『소명』(IVP 간)이라는 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오스 기니스(Os Guinness)가 한국을 방문했다. 2018년 5월 21일(월) 오후 6시 30분 전경련 플라자 1층 그랜드볼룸(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대로 24)에서 지앤엠글로...
    Date2018.05.23 By개혁정론 Views489
    Read More
  15. 도르트 신조 공개강좌

    도르트 신조 공개강좌 - 독립개신교회 신학교 주최 손재익 객원기자 독립개신교회 신학교가 주최한 2018 공개강좌가 “칼빈과 도르트 신조”라는 주제로 열렸다. 강사로 캐나다개혁교회 신학교에서 교의학을 가르치는 제이슨 판 플릿(Jason P. Van ...
    Date2018.02.27 By개혁정론 Views605
    Read More
  16. 독립개신교회 신학교의 날, 도르트 신조 발표 400주년을 기념하다.

    독립개신교회 신학교의 날, 도르트 신조 발표 400주년을 기념하다. -주권적 은혜의 참 복음, 그리고 그것을 전하는 복음 설교의 중요성을 확인하다 안재경 편집장 제8회 독립개신교회 신학교의 날 행사가 2월 23일 성약교회 예배당과 동자아트홀에서 열렸다. ...
    Date2018.02.27 By개혁정론 Views1063
    Read More
  17. [분석] “한국인의 종교의식과 목회자의식 조사” 결과 - 2017년 한목협 발표

    [분석] “한국인의 종교의식과 목회자의식 조사” 결과 - 2017년 한목협 발표 손재익 객원기자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이하 한목협, 대표회장 이성구 목사)가 2017년 한국인의 종교의식과 목회자 의식 조사를 발표했다. 2012년 이후 5년 만에 시행...
    Date2018.01.15 By개혁정론 Views371
    Read More
  18. 한목협 신년예배 및 2차 목회자의식조사 발표회

    한목협 신년예배 및 2차 목회자의식조사 발표회 손재익 객원기자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이하 한목협, 대표회장 이성구 목사)의 신년예배 및 기도회가 2018년 1월 9일(화) 오후 2시 30분 성락성결교회(지형은 목사) 2층 성산홀에서 있었다. 특히 이번 행사는...
    Date2018.01.11 By개혁정론 Views294
    Read More
  19. 새로운 500년의 시작

    새로운 500년의 시작 -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한국교회 국민일보 CBS 공동심포지엄 손재익 객원기자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두 언론인 국민일보(사장 최삼규)와 CBS(사장 한용길)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2017년 한 해 동안 “나부터 개혁”...
    Date2017.11.01 By개혁정론 Views206
    Read More
  20. 한국목회자협의회, 제19회 전국수련회 개최

    한국목회자협의회, 제19회 전국수련회 개최 손재익 객원기자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KACP, 이하 한목협) 제19차 전국수련회가 2017년 6월 20일(화) 고려신학대학원 강당에서 열렸다. 김경원 대표회장의 개회메시지로 시작된 이번 행사는 루터대학교 신학과 ...
    Date2017.06.21 By개혁정론 Views296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Next
/ 5
사설
[사설] 제7차 개정헌법 헌의안, 총...
[사설] 총회장은 교단의 수장이 아...
[사설] 명예집사와 명예권사, 허용...
[사설] 총회가 계파정치에 함몰되지...
[사설] 최근에 일어난 고려신학대학...
세계로교회 예배당 폐쇄 조치를 접하며 3
[사설] 총회(노회)가 모일 때 온라...
총회가 졸속으로 진행되지 않으려면
[사설] 누가 고신교회의 질서와 성...
공적 금식과 공적 기도를 선포하자
칼럼
왕처럼 살고 싶습니까? 왕처럼 나누...
푸틴의 머릿속에 있는 그림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3부)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2부); 교회...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1부)
우리 악수할까요?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 (Peter Holt...
관심을 가지고 보십시오.
동성애 문제에 대한 두 교단의 서로...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잘못을 통해서...
기고
직분자 임직식에서 성도의 역할
죽음을 어떻게 맞을까를 잠시 생각하며
제73회 총회가 남긴 몇 가지 과제
전임목사는 시찰위원으로 선정될 수...
고신교회와 고재수 교수; 우리가 왜...
왜 고재수는 네덜란드에서 고려신학...
제73회 총회를 스케치하다
신학생 보내기 운동에 대한 진지한 ...
명예 직분 허용이 가져다 줄 위험한...
[고신 70주년에 즈음하여 9] 고신교...
논문
송상석 목사에 대한 교회사적 평가 ...
송상석 목사와 고신 교단 (나삼진 ...
송상석 목사의 목회와 설교 (신재철...
네덜란드 개혁교회 예식서에 있어서...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 예배지침 부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SFC 강령의 “전통적 웨스트민스터 ...
지역교회의 적정 규모(規模 size)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