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요한 기자
올해 『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온 영국 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라스(Alister E. McGrath)의 『Christian Theology: An Introduction』은 교부시기부터 오늘날까지의 신학의 역사, 신학의 방법론, 신학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청어람아카데미(이하 청어람) 양희송 대표는 이 책을 가지고 지난 4월부터 강연을 하여 팟캐스트를 통해 공개해 왔다.
책을 따라 총 19회의 강연을 진행한 청어람에서는 지난 22일(월) 마지막 강연을 “신학이 빛나는 밤에”라는 제목의 공개강연회로 준비하였다. 서울시 인사동 낙원상가의 아트라운지에서 준비한 공개강연회는 패널로 강영안 교수(서강대 철학과), 김근주 교수(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이원석 저술가(『거대한 사기극』, 『공부란 무엇인가』 저자)를 초대하여 진행하였다.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에게 필요한 도구
패널 좌담회에 앞서 강영안 교수는 “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기조강연을 진행하였다. 강 교수는 이 주제를 ▲ 우리에게 신학이 필요한 이유 ▲ 신학이란 무엇인가 ▲ 어떻게 신학할 것인가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강 교수는 철학자답게 계속해서 물어가는 형식으로 신학의 필요에 대해 설명하였다. 강 교수는 ‘필요’에 대하여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사람에게 어떤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필요는 처한 상황에서 발생한다.” 하고 환기한 뒤 “우리에게 신학이 필요하다면 신학이 필요한 우리는 과연 누구인가.” 하는 질문을 던졌다. 아울러 청중에 대하여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적어도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관심을 갖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려는 사람일 것”이라고 정의를 내린 뒤에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려 하는 사람이 신학이 필요하다는 말을 긍정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이 필요하다”며 신학과 제자도를 연결지었다.
그렇다면 신학이란 무엇인가? 강 교수는 “신학, 즉 ‘테오로기아’(theologia)라는 말은 그리스 전통에서 온 것인데 고대 그리스에서 이 말은 ‘신을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찬양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강 교수는 신학을 이렇게 정의내린 뒤 현재 신학교에서 일반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4분법 신학에 대하여는 “조직신학, 성서신학, 역사신학, 실천신학으로 나뉘어지는 (슐라이어마허 이래로 내려오는) 4분법 신학에 해석학, 시대사, 교리사 등 과목이 들어와 신학이 개별화, 전문화되면서 왜곡되었다”고 비판하였다. “구약에 신학이란 말은 없지만 신학에 가장 가까운 말이 있다면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찬양하고, 알아가는 것이고 그 알아간 것이 구체적인 삶 속에서 공의롭고 정의로운 삶, 자비와 사랑의 삶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일차적으로 신학은 이론적이기보다는 실천적이다.” 하는 것이 강 교수가 설명하는 신학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신학을 이렇게 정의하면 신학이 신학자나 목회자의 전유물일 수 없다. 하나님은 구원이시다, 하나님은 방패이시다 할 때에 이것은 우리의 경험 가운데 하나님을 서술하고 찬양하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신학은 (하나님에 대한) 서술이면서 동시에 서술을 뛰어넘어 찬양하는 것이다.” 하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이제 신학을 어떻게 할 것인가? 강 교수는 루터 전집 서문을 인용하며 “기도, 묵상, 영적 시련(영적 싸움)이 신학자를 만든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강 교수가 설명하는 신학자는 “가르치는 신학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삶에 모든 의미를 거는 성도”를 말한다. 강 교수는 신학의 출발점은 “교회가 아닌 세상”으로 설정하고 “교회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도록 하는 역할을 직접적으로 해야 한다”며 “삶으로서의 신학을 반성하기 위해서는 신학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강 교수는 역사가 서술되는 방식에 대해 “신학의 역사도 있고 교회사의 역사도 있지만 성도의 삶을 기록한 역사는 없다”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일단은 교회의 역사, 기독교 가르침의 역사, 교회 형성과 투쟁의 역사를 통해 이를 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특별히 강 교수는 『신학이란 무엇인가』를 읽은 사람들에게 “본회퍼건 바르트건 스토트건 마음에 드는 한 사람을 골라서 계속해서 읽고 씨름해 보라”고 권면했다. 강 교수가 특별히 권했던 것은 아우구스티누스, 루터, 칼빈 등의 “고전을 읽는 것”이었다.
“성도가 신학을 누리고 잉를 통해 하나님을 배워갈 수 있다”고 설명한 강 교수는 강연을 마무리하며 신학의 기능을 세 가지로 정리하였다. “잘못 알아왔던 것을 비판하는 비판적 기능”, “어떻게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갈지 고민하는 건설적 기능”, “공동체를 세우는 기능.”
신학 교육, 파편화되어 있고 통전적 이해 부족해
강영안 교수의 기조강연이 끝나고 양희송 대표의 사회로 좌담회가 진행되었다. 3명의 패널은 각자의 신앙배경을 이야기한 후 한국 신학 교육에 대한 각자의 의견를 펼쳤다.
강영안 교수는 “지금 신학 교육의 문제는 파편화”라고 지적하였다. 성경 전체를 보는 일관적인 관점이 없고 삶과 연결짓지 못하다는 것이 강 교수의 문제의식이었다, 아울러 강 교수는 “교회에서는 성경만 강조한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성경을 읽을 때에 독자 나름의 성경을 이해하는 방식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었다. “성경도 해석학적 관점을 가지고 읽는 것이다. 우리가 큐티를 할 때에도 어떤 관점을 가지고 한다. 신학 공부를 하지 않으면 오늘 하나님께서 나에게 바라시는 것이 뭔가를 물으면서도 사실은 내가 하나님께 바라는 것을 투입하게 된다. 우리가 무언가를 읽는다는 것은 항상 해석학적 상황에 던져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원석 저술가는 현재 나타나고 있는 신학 교육의 문제점으로 “텍스트에 대해 총체적, 역사적, 체계적인 안목을 주지 못하는 것”과 “세상과의 소통을 위한 훈련이 되지 않는 것”을 지적하였다. 이 저술가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함께 모여 읽으며 텍스트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삶의 지평도 넓히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저술가는 이를 “신학교는 어떤 의미에서는 수도원이 되어야 한다”고 설명하였다. 하지만 이 저술가는 “(현재) 신학 교육에 이를 맡기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회의를 나타내기도 했다.
김근주 교수는 한국 교회의 문제에 대하여 “구약에 대한 경시”와 “구원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지적하였다. 구원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 즉 죽어서 천국 간다는 식의 이해나 조직신학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은 구약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김 교수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이었다. 아울러 김 교수는 본인의 영국 유학 시절 초기 경험을 이야기하며 두 가지를 언급하였다. 하나는 유학 당시 75세였던 김 교수의 첫 지도교수가 늦은 나이에도 공부할 환경을 찾아가 계속 공부했다는 것, 다른 하나는 교수와 학생은 기본적으로 배우고 듣는 관계이면서 토론을 하면 대등한 관계에서 한다는 것이었다.
양희송 대표는 본인이 청어람아카데미 사역을 하면서 겪었던 일화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2013년 있었던 톰 라이트 강좌 기획이 성황을 이룬 것을 언급하며(당시 10명을 예상했던 작은 기획 강좌는 기대와 달리 참가인원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150명에서 제한을 두어야 했다) 양 대표는 “정작 교회 내에서는 금기시되거나 꺼려지는 사람의 책이 평신도 중심으로 여기저기서 읽히고 있었다. 제도권 신학교를 통로로 하지 않고 사람들이 바닥에서 스스로 무언가를 뚫어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하는 소회를 밝혔다.
상생하는 삶을 위한 읽기, 벼랑에 서서 하는 고민 필요해
양희송 대표는 이어서 이원석 저술가에게 “한국의 자기계발 공부는 어떻게 진행되어 왔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공부란 무엇인가”를 질문하였다.
이 저술가는 “지금 신학 교육은 존재를 변화시키고 영적 지도자를 키워내는 과정이 아니라 단지 메가처치를 꿈꾸는 사람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이 저술가의 비판의 핵심은 “경쟁사회의 원리 속에서 모든 것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저술가는 “이제는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가 아니다. 개천이 바뀌어야 한다. 서로 함께 사다리를 만들어 올라가야 한다.” 하고 주장하였다. “사람 인(人)이 어떻게 생겼는가. 내가 넘어지면 누군가 받쳐 주는 것이다. 사람은 공동체적인 존재다. 홀로 서 있을 때 그것은 사람으로 있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전통적인 사람의 개념인데 사실은 교회론적이기도 하다. 모든 지체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 한 유기체로 있을 때 자기의 의미를 발견한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렇지 않다.”
이 저술가는 현재 상황에 대한 대안으로 “모여서 고전을 함께 읽을 것”을 제안하였다. 함께 읽으며 서서히 존재를 변화시켜 나가는 것은 이 저술가의 자기계발 비판과 대안적 공부의 핵심이다. “독서는 근본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일단 모여서 읽으라. 나라가 바뀌지 않더라도 여러분이 바뀔 것이다. 한국 교회 내에서 10%만 모여서 위대한 고전과 신학책을 읽으면 교회가 바뀔 것이다.”
이어서 양희송 대표는 김근주 교수에게 “비제도권 신학 교육기관(기독연구원 느헤미야)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기대하는 것이 있는가”를 질문하였다.
김근주 교수는 “느헤미야는 한국 교회 비판에서부터 시작했다. 이 땅에 임하는 하나님 나라, 현실 사회의 변화, 한국 교회의 변화라는 뚜렷한 목표가 교수들에게 있었다.” 하고 대답하였고 이어서 “저희도 전통적 틀을 따라 성서학, 조직신학, 기독교 윤리, 교회사로 나누어서 가르치고 있는데 무엇을 가르치건 텍스트를 기본으로 해서 현실로 넘어가는 교육을 하고 있다. 한국 사회가 이렇게 굴러가도 되는지, 우리 교회가 이래도 되는지. 이 점에서 느헤미야 교육이 통합점을 찾았다고 본다.” 하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기독연구원 느헤미야가 가지고 있는 고민과 그로 인한 장점을 역설적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기독연구원 느헤미야는 교단도 없고 교육부가 인정하는 학교가 아니기 때문에 학위도 없다. 그러면서도 주간 수업을 한다. 그래서 직업을 가질 수 없다. 느헤미야에 있는 사람 중 목사가 되겠다는 사람은 1/3이 되지 않는다. 살다 보니 이게 뭔가 싶었고 그래서 3년 동안은 돈 안 벌고 공부 제대로 해 보겠다고 오신 분들이다. 그러다 보니 방학이 되면 ‘내가 계속 이래도 되는지’ 하는 고민을 다들 가지고 있다. 앞으로 그려지는 그림이 없기 때문이다. 모두 벼랑에 서서 고민하고 있다. ‘내가 이것 공부해서 무엇 하는가. 지금 이 시간에 나는 왜 신학책을 읽는가.’ 이런 것을 고민해야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다.”
대안 신학 교육, 아래로부터의 운동
패널 좌담회가 끝나고 청중과의 대화 시간이 있었다. 한 청중은 김근주 교수에게 “우리가 아는 구원이 구약에 등장하지 않는다면 성경이 제시하는 구원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김 교수는 “우리가 생각하는 구원은 예수 믿고 구원 받자는 것이다. 그런데 그 구원은 영생과 내세에 대한 약속이다. 하지만 구약 어디를 보아도 내세에 대한 기대가 보이는 구절이 없다. 단 한 군데 있다고 하면 다니엘 12장이다. 그런데 다니엘 12장의 배경은 기원전 2세기다. 구약 시대에는 내세와 관련된 구원 개념이 없었다. 구약에서 구원은 전쟁의 승리, 하나님의 약속의 삶, 사망의 골짜기를 걸어갈 때 지키시는 하나님 등으로 이해하고 있다.” 하고 설명하였다.
또 한 청중은 강영안 교수에게 “철학 공부를 하면서 신 존재에 대한 도전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질문한 후 한국 교회 신학의 파편화의 문제에 대해 “사회가 파편화된 사람을 양성하기 때문이라고 본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강 교수는 철학 공부와 신앙과의 관계에 대해서 “칸트 같은 경우에는 신 존재를 의심한 적이 없다. 우리의 공통감각으로 보면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칸트는 하나님을 학문적으로 논의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도덕적 삶을 통해서 알 수 있다고 하였다. 기독교가 하나님을 안다고 하고서 실제로는 하나님을 하나님을 모르는 방식으로 행했다. 가톨릭과 개신교의 30년 전쟁 당시 독일의 2/3가 초토화되었다. 같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그럴 수 있는가. 무신론 철학자들의 도전은 그들을 설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돌아보기 위한 것으로 써야 한다.” 라고 답변하였다. 아울러 신학의 파편화를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러한 평신도 운동을 하는 것”이라고 답변하였다. 강 교수는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질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한다면 신학교 커리큘럼과 신학 교육에 변화가 있을 수 없다”고 지적한 후 “그런 면에서 아래로부터의 민중이나 제자의 운동, 십자가의 부활을 경험하고자 하는 열망이 신학 교육을 변화시키는 길이라고 본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설요한 기자 juicecrea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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