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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

 


   제70회 총회는 경남김해노회장 신성철 목사가 청원한 “고신교단 정체성에 반하는 신학사상 조사 및 처리 결과 요청 청원”과 부산서부노회장 이용창 목사가 청원한 “교회개혁운동에 대한 조사 및 연구 청원”은 하나로 병합하여 ①유보적 칭의론 ②신정통주의 ③신사도운동 등은 총회에서 이미 다루어진 것으로 잘못된 것임을 확인하고, 소위 “개혁교회 운동”에 대하여는 신학대학원 교수회에 맡겨 1년간 연구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제71회 총회는 신학위원회와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가 보고한 '개혁교회 운동에 대한 연구 보고서'를 받았다. 아래는 보고서의 전문이다. - 편집자 주


 

 

[71회 고신총회 소식15] 개혁교회 운동에 대한 연구 보고서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총회) 제70회 총회(2020년 9월)는 경남김해노회와 부산서부노회의 청원에 따라 신학대학원 교수회에 ‘개혁교회운동’에 대한 연구를 의뢰하였다. 소위 ‘개혁교회운동’을 하는 일부 교회와 목회자들이 주장하는 내용들이 고신 교회의 정체성에 비추어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연구하는 것이 본 연구의 목적이다.

   본 연구보고서는 먼저 ‘개혁교회’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부산서부노회장이 제안 설명한 내용을 중심으로 소위 ‘개혁교회운동’에서 하는 주장들의 문제점들에 대해서 고신 교회의 신학적 입장을 확인하는 순서로 작성하였다.

 

 

1. ‘개혁교회’의 정의

 

   ‘개혁교회’가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해 모호한 측면이 있다. 왜냐하면 ‘개혁교회’란 용어는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아주 넓은 의미로 로마 가톨릭교회에 대항하여 일어난 개신교 운동 전체를 의미할 수도 있고, 그중에서도 루터파 교회와 재세례파 교회와 구별되는 칼빈을 중심으로 한 교회를 가리킬 수도 있다. 이 마지막 의미의 개혁교회는 또 스위스의 개혁교회, 독일의 개혁교회, 프랑스의 개혁교회, 헝가리의 개혁교회, 네덜란드 개혁교회 등으로 구별되고, 또 이들의 이민자와 후손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남아공화국과 호주와 캐나다와 미국의 개혁교회 등으로 구분될 수 있다. 이 중에서도 네덜란드의 개혁교회가 한때 번창하고 그들의 신학이 발전하였다. 아브라함 카이퍼, 헤르만 바빙크, 클라스 스킬더, 헤르만 리덜보스 등은 다 네덜란드 개혁교회 출신이다.

   그러나 네덜란드 개혁교회 안에도 여러 교단이 있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헤르포름더 교회’(왕실이 속한 교회이며 레이던, 암스테르담, 위트레흐트, 흐로닝언 대학의 신학부에서 교역자를 양성함)와 ‘신오달 교회’(아브라함 카이퍼가 중심이 되어 1892년에 설립된 교단)가 있고, 1967년에 우리 고신교단과 자매 관계를 맺은 ‘해방파 교단’(31조파. 1944년에 클라스 스킬더가 중심이 되어 생겨난 교단)이 있으며, 또 1834년의 ‘분리’ 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는 ‘기독개혁교회’(아펄도른에 신학교를 두고 있음)가 있고, 그 외에도 작은 교단들이 여러 개 있다. 이 중에서 제일 큰 교단들인 ‘헤르포름더 교회’와 ‘신오달 교회’는 2004년에 ‘네덜란드 루터파 교회’와 합병하여 ‘네덜란드 개신교회’(PKN)를 형성하였다. 따라서 현재 네덜란드의 주류 개혁교회들은 거의 다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아 그 정체성을 상실하였으며 더는 ‘개혁교회’라 부를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 고신교단과 자매 관계를 맺고 있는 해방파 교단(캄펀에 신학교를 두고 있음)은 2017년에 목사와 장로직에 대해 여성 직분을 허용하였으며, 2020년의 총회에서 이를 다시 확인하였다. 또 우리 교단과 제한적 교류의 자매 관계를 맺고 있는 ‘기독개혁교회’(아펄도른에 신학교를 두고 있음)도 여성 직분 허용에 대해 강한 압력을 받는 중이며 어떻게 결정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따라서 2021년 현재 기준으로 볼 때 네덜란드 개혁교회 중에서 개혁교회로서의 역사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교회는 소수에 불과하며 그 명맥 유지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따라서 오늘날 고신교회 안에 있는 ‘개혁교회 운동’이라고 할 때 어느 교회를 모델로 하고 있는지, 어떤 교회를 기준으로 하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아마도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성경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며 정통 개혁교회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던 네덜란드 개혁교회, 그 중에서도 소위 ‘해방파 교회’(31조파)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하지만 소위 ‘개혁교회 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의 실체가 명확하지도 않고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들의 주장들도 다양하다. 그래서 여기서는 총회에 청원한 내용을 바탕으로 소위 ‘개혁교회 운동’을 하는 일부의 사람들이 주장한다고 여겨지는 그릇된 주장들을 다루는 것으로 갈음하고자 한다.

 

 

2. 십일조

 

   십일조에 대한 부분은 2002년 9월에 있었던 고신 제52회 총회에서 의뢰하여 제53회 총회에 제출한 고려신학대학원 연구보고서의 내용을 요약하고 일부 수정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율법의 문제에서 구약과 신약을 동일시하여 구약의 명령을 문자 그대로 적용하는 것도 삼가야 하지만, 또한 근본적으로 구약의 것은 더는 필요치 않은 것으로 생각해서도 안 된다. 신약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다. 구약의 성취이며 완성이다. 구약의 원리와 명령은 신약에도 그대로 살아있어야 하고, 그 의미가 내면화되고 더 완성적이어야 한다.

   구약의 헌금 원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부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에 근거한다. 나의 토지(기업)가 하나님의 것이며, 거기에서 발생하는 소출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바쳐야 한다. 그 기준이 바로 십일조였다. 구약에서는 제사 제도의 유지와 구제 그리고 예배를 위해 최소한의 경비를 하나님의 십일조라는 명목으로 여러 번 징수하셨다(창 14:18-20; 레 27:30-33; 민 18:20-32; 신 14:22-29). 구약의 원리에 의하면 만약 십의 일을 내지 않으면 ① 자신의 소득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원리를 망각하는 것이고, ② 하나님의 일에 필요한 것을 제공하지 않는 책임 유기이다.

   이러한 기본 원리는 신약에서도 그대로 살아 있어야 한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하셨다(마 23:23). ‘정의’와 ‘긍휼’과 ‘믿음’이 중요하며 이런 것들을 우리가 힘써야 하지만 ‘십일조’도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신약시대의 성도들은 불가피하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때 외에는 최소한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 그리고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있다면 그 이상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교회)를 유지하고 이루어나가기 위해 헌금이 필요하다. 그렇게 바칠 때 십일조를 기준으로 헌금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그러나 십일조를 하되 율법적인 의무로 하기보다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왔음을 깨닫고 그것을 고백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신약시대에도 사도 바울은 자신도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삯을 받는 것이 합당하다고 하였다(고전 9:6-14).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교회)를 유지하고 이루어나가기 위해 헌금이 필요하며, 그 헌금의 원리는 나의 것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아까워하거나 인색하지 않게 바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바칠 때 십일조를 기준으로 헌금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예수님은 장로들의 유전에 얽매여 있는 바리새인들을 준열히 책망하셨다. 그들이 그러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왜곡시키고 백성들을 얽어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 2장 15절에서 “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고 했다. 또 3:6에서는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라고 엄히 명한다. 또 사도들은 할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율법주의자들의 주장을 거부하면서도, 당시 그리스도인들의 생활 지침으로서 네 가지의 금령을 제시한다(행 15장). 그리함으로써 전환기에 처한 성도들에게 도움을 준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율법주의는 반드시 경계해야 할 함정이다. 그러나 자신과 이웃의 신앙 증진과 교회의 건덕을 위해 신앙생활에 필요한 지침은 유익이 된다.

   신약시대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어떤 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구원이 임한다는 오해를 물리쳐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율법의 정신을 망각하고 규모 없이 행해서는 결코 안 된다. 즉 십일조 이상의 헌금을 하며 이웃을 돕고 하나님의 나라를 섬기는 그리스도인은 십일조의 법에서 자유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율법에서 자유하게 되었다는 말씀을 곡해하여 십일조는 폐지되었으며, 헌금을 개인의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구약의 율법의 원리가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적용되어 십일조를 헌금 생활의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완성으로 말미암아 십일조의 가르침은 완전히 폐지되었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또 구약의 십일조를 율법주의적으로 지켜야 한다는 반대의 주장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와 성령의 법을 무시한다는 점에서 잘못되었다. 따라서 올바른 입장은, 구약과 신약의 원리에 따라 십일조를 하는 것이 합당하나 너무 ‘십일조’라는 문자에 얽매여 율법적인 태도로 지킬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믿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자원하여 기쁨으로 힘써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구약에서 가르치는 바와 같이 모든 것이 주의 것이요,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모든 것을 주님의 뜻대로 사용하고, 주님이 원하시면 기꺼이 십분의 일 이상, 더 나아가 모든 것을 주님께 드려야 한다. 이것은 율법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주관자이시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을 고백함과, 신앙생활의 증진과 건덕, 그리고 교회와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큰 유익이 되기 때문이다.

 

 

3. 복음 전도

 

   전도는 서양 개혁교회에서 오랫동안 약한 부분이었다. 왜냐하면 과거 서양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전도할 대상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종교개혁 시대에는 하나님을 믿느냐 안 믿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바로 믿느냐 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잘못된 가톨릭교회에 대항하여 바른 교리가 무엇이냐 하는 것과 바른 교회, 바른 제도가 무엇이냐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런 시대적 배경으로 인하여 그 후의 네덜란드 개혁교회에서도 바른 교리, 바른 신학에 관해 관심이 집중되었으며 전도에 관한 관심은 약하였다. 대부분의 성도는 믿는 부모에게서 태어나서 유아세례를 받고 중고등학생 때에 교리 교육을 받고 신앙고백(입교)을 하였다. 전도를 받고 교회에서 성인세례를 받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도 명령은 모든 성도에게 주신 명령이 아니라 사도들에게 주신 명령이며 오늘날 목사들을 통해 말씀 전하는 것으로 계승되었다고 보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그러나 마태복음 28:16-20의 말씀이 열한 제자에게 주어진 것은 당시 갈릴리의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열한 제자였기 때문이며 이 전도 명령이 꼭 사도들에게만 주어졌다고 볼 수는 없다. 열한 제자에게 주신 말씀은 또한 모든 성도에게 주신 말씀으로 보아야 한다. 사도행전에 보면 초대교회의 ‘일곱’ 일꾼 중 하나인 스데반도 전도하였으며(행 6-7장), ‘일곱’ 중 또 다른 하나인 빌립도 사마리아에 내려가 전도하고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였다(행 8장). 그래서 그는 후에 ‘전도자’라고 불리고 있다(행 21:8). 이뿐만 아니라 스데반의 순교로 인하여 흩어진 사람들이 유대와 사마리아 땅으로 흩어져 복음을 전하였다(행 8:1, 42). 이 ‘흩어진 자들’은 사도들이 아닌 일반 성도들이었다. 또 스데반의 일로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에 이르러 복음을 전하였다(행 11:19-21). 빌립보서에서도 “형제들 다수가 바울의 매임을 인하여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다”고 말한다(빌 1:14). 따라서 사도들만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복음을 전한 것을 알 수 있다. 전도는 사도들에게만 주신 명령이 아니라 모든 성도에게 주신 명령이다.

   그러므로 일부 극단적인 ‘개혁교회운동’에서 복음 전도는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경적이지도 않고 서양 개혁교회의 역사적 배경도 무시한 편협한 주장이므로 배격해야 한다.

 

 

4. 수요기도회와 새벽기도회

 

   수요기도회와 새벽기도회는 한국교회의 특징 중 하나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모임을 찾기 힘들다. 서양 개혁교회에도 이런 모임이 없다. 물론 종교개혁 당시에 제네바 교회는 매일 아침 6시에 예배를 드렸지만, 이것은 설교 중심의 예배였다. 존 웨슬리는 가는 곳마다 동료들을 모아 놓고 새벽 5시에 설교하고 기도하였으며, 찰스 피니는 개인적으로 새벽에 기도를 많이 하였다. 한국 교회사에서 새벽기도회가 시작된 것은 1906년 가을에 한국의 길선주 장로와 박치록 장로에 의해서였다.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시작된 새벽기도회는 1907년의 평양 대부흥으로 이어졌고, 이 부흥의 물결은 한국 전체로 번져 나갔다. 이때 길선주 목사가 전국을 다니며 부흥회를 인도하였는데, 이때 초청 교회가 부흥회를 앞두고 새벽기도회로 모여 기도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점차 한국교회 전체에 새벽기도회가 정착되어 갔으며, 일제 강점기를 지나면서 새벽기도회는 한국교회의 독특한 특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 새벽기도회를 통해 한국교회는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고 교회의 부흥과 많은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다. 한상동 목사는 새벽기도회를 중요하게 여겨 다른 예배 설교는 부교역자에게 맡겨도 새벽기도회 설교만큼은 직접 인도하였으며 아침에 해가 돋을 때까지 기도했다고 한다(심군식 외 5인 공저, 『한상동 목사의 삶과 신학』, 34f.). 주남선 목사도 새벽기도에 힘썼는데 새벽 4시에 교회에 나가 기도하고 아침 9시가 지나서야 집에 돌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기도한 자리는 항상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 흘러 마루가 얼룩졌다고 한다(심군식, 『해와 같이 빛나리. 주남선 목사 전기』, 420). 이처럼 새벽기도회는 한국교회의 중요한 특징이며 전 세계에 내어놓을 자랑이며 한국교회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시편에 보면 ‘새벽(이른 아침)’에 드리는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신다고 말한다(시 5:3; 88:13; 119:147). 예수님도 매일 새벽에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하셨다(막 1:35; 눅 4:42; 5:16). 사도 바울은 주야로 심히 기도하였으며 항상, 쉬지 않고 기도한다고 하였다(롬 1:9; 엡 1:16; 빌 1;4; 살전 1:2; 4:10).

   따라서 한국교회의 새벽기도회는 성경의 맥을 이어받은 아름다운 전통임을 알 수 있다. 이 새벽기도회가 없었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한국교회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시간이나 제도에 얽매이기보다 기도하는 것 자체에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새벽이든 저녁이든, 아침이든 낮이든 간에 항상 기도를 힘쓰는 것이 중요하다. 다니엘처럼 하루에 세 번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는 것도 좋고, 초대 예루살렘 교회처럼 제9시(오후 3시경) 기도를 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많은 사람의 경험에 의하면, 새벽 또는 이른 아침이 방해받지 아니하고 집중해서 기도하기에 가장 좋은 때라고 한다.

   수요기도회도 마찬가지이다. 수요기도회는 전에는 삼일기도회라고 하였는데 수요일 저녁에 모여 예배드리고 나서 불을 끄고 다 함께 기도하였다. 이처럼 이전의 수요기도회는 찬송을 부르고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은혜로운 시간이었다. 요즘은 예배 중심으로 변화되고 시간도 수요일 오전과 저녁 등으로 나눠지기도 했지만 이전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수요기도회는 성경에 있는 것은 아니며 서양 개혁교회에도 없는 한국교회의 전통이다. 따라서 수요기도회를 성경의 계명처럼 강조할 것은 아니나 성도들이 자원해서 힘쓰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형편에 따라 다른 날, 다른 시간에 모이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어쨌든 주중에 성도들이 한번 모여 찬송하고 예배드리며 기도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이 모든 것은 율법적으로 강요할 것이 아니다. 자원해서 오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모임에 은혜가 있고 사랑이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처럼 새벽기도회와 수요기도회는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전통이며, 교회가 주중에도 함께 모여 서로의 신앙을 격려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이다. 이것은 모이기를 힘쓰고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고 한 성경의 가르침(히 10:24-25)을 따르는 것이자, 성경에 입각한 개혁신학의 정신도 따르는 것이다. 성경에 가르침이 없다거나 개혁신학에 맞지 않는다고 운운하며 이런 기도회들을 폐지하자고 하는 주장은 오히려 개혁신학에 위배 된다. 교회의 형편을 따라 자발적으로 모이되 가능하면 많은 성도가 이런 기도회들을 통해서 신앙을 북돋우도록 더 강조해야 할 것이다.

 

 

5. 찬양대

 

   찬양대 또는 성가대는 한국교회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전통이다. 물론 작은 교회들 중에는 형편이 안 되어 찬양대를 두지 못하는 예도 있다. 대부분의 교회는 찬양대를 두어서 예배를 돕고 있으며, 열심 있는 성도들은 찬양대에 속하여 찬양을 준비하면서 은혜를 많이 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찬양대 찬양이 너무 기교 위주로 흐르고 또 찬양 연습에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됨으로 말미암아 교회의 일꾼들이 교사나 다른 일에 봉사하지 못하는 문제들도 생겨났다. 하지만 성가대를 성직으로 여겼던 중세시대의 전통과 현대 교회의 찬양대를 동일시하고 찬양대는 만인 제사장 신앙과 부합하지 않는다며 폐지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너무 극단적이다.

   원래 개혁교회 전통에는 찬양대가 없다. 예배 중에 찬양대의 찬양이 없으며, 대표기도 후에 찬양대의 기도송 같은 것도 없고 오직 예배 전후와 예배 중에 파이프 오르간 연주가 있을 따름이다. 이처럼 개혁교회가 성가대를 없앤 중요한 이유는, 중세 가톨릭교회가 성직의 하나로 성가대를 운영하면서 예배 순서 중에 성가를 너무 많이 부르고 또 의식적(儀式的)으로 불렀으며, 찬양을 성가대의 전유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교개혁가들은 이런 성가대를 없애버리고 모든 성도가 함께 찬송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시편을 가사로 하여 만든 시편 찬송을 많이 부르도록 하였다. 오늘날 서양의 개혁교회들은 시편 찬송(Psalms)과 함께 찬송가(Hymns)와 신령한 노래들(Spiritual Songs)을 부르고 있다. 최근에는 복음 성가 중에서 선별하여 부르는 교회들도 많다. 혹 찬양팀이나 악대를 운영하는 교회는 있지만 찬양대를 운영하는 교회는 없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 우선 명칭으로는 중세교회의 성직자 개념을 떠올리는 ‘성가대’보다는 ‘찬양대’가 더 좋다고 본다. 그리고 예배 시에는 시편과 찬송가를 주로 부르고 또 복음 성가 중에서 적절한 것을 선택하여 사용할 수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찬양대를 운영하는 것은 교회 형편에 따라 결정할 성격의 것이라고 본다. 구약 시대에는 성전에서 봉사하며 전문적으로 찬양을 담당한 ‘노래하는 자들’이 있었다(대상 16-22장). 이들은 여러 악기를 연주하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고 가르치기도 하였다. 물론 구약 시대의 ‘성전’과 오늘날의 ‘교회’는 다르지만, 원리적으로 찬양단원들을 따로 두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럴 때 주의할 것은 찬양대의 찬양은 성도들의 찬양을 대신하거나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돕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 가능한 한 모든 성도가 다 함께 찬송을 부르는 것을 원칙으로 정하고 찬양대의 찬양은 보조적으로 운영하면 좋을 것이다. 전통적인 찬양대를 따로 조직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간단하게 찬양팀을 만들어서 운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현대 교회들의 찬양대가 지닌 문제점들 때문에 찬양대 자체를 없애는 것만이 개혁교회 전통으로 돌아가는 본질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중세교회에서 성가대가 노출한 문제점들을 보완하면서 찬양대가 성도들의 찬양을 잘 도울 수 있도록 한다면, 찬양대는 개혁주의 전통 위에서도 예배를 더 풍성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6. 대표기도

 

   대륙의 개혁교회 전통에서 예배 중의 기도는 죄를 고백하는 기도, 설교 전에 하는 조명을 위한 기도, 교회와 성도를 위한 기도의 세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다. 이 중에서 교회를 위해 하는 기도로 알려진 목회 기도는 대개 설교 후에 목회자가 했다. 말씀 선포에 근거해서 교회의 소원과 간구를 하나님께 올려드렸다. 이 목회 기도가 오늘날의 대표 기도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이 기도는 목회자의 직분 중의 하나인 공예배 시의 기도 인도의 책임을 감당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서양 개혁교회에도 변화의 시도들이 있다. 전통적으로 예배 순서에 참여하지 않았던 장로들이 광고를 하거나 일반 성도가 성경 봉독을 하는 경우들이 생겨나고 있다.

   한국교회에서는 대개 주일 공예배 시의 대표기도는 설교 전에 장로가 한다. 장로가 없을 시에는 목사나 집사가 하기도 한다. 장로도 교회를 영적으로 감독하기 때문에 목회기도 혹은 대표기도를 할 수 있다. 중세 로마교회는 기도를 성직자들의 전유물로 삼아서 성직자만 미사 시에 기도문을 사용했다. 하지만 종교개혁은 예수님의 속죄로 말미암아 모든 성도가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음(히 10:20; 요 14:14-15; 16:24, 26-27)을 재발견하였다. 성직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가 예수님의 이름을 힘입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재천명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교역자만 대표기도를 하는 것보다 장로가 대표기도에 참여하는 것은 신약성경의 원리에 어긋나지 않는 좋은 관행이라고 생각된다. 장로가 없는 경우에는 당회나 목회자가 정하는 집사가 대표기도를 하는 것도 허용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대표기도를 하는 사람은 그야말로 성도들을 대표해서 기도를 인도하는 것이고, 그것이 목회기도라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기도할 필요가 있다. 당회나 목회자는 대표기도에 대한 이런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대표기도자를 정해야 할 것이다.

   이 외에도 예배 중에 개혁교회 전통을 따르되 다양한 방법으로 기도의 정신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설교 후에 말씀을 따라 온 교인이 합심하여 기도하는 것도, 적절하게 시행되기만 한다면 모든 성도가 각각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신약의 원리를 실천하는 좋은 훈련이 될 것이다.

 

 

7. 결론

 

   이상에서 우리는 소위 ‘개혁교회운동’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았다. ‘개혁교회’라고 할 때 그 의미 범주도 넓고 오늘날에는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지만, 과거에 성경에 충실했던 서양의 개혁교회는 여러모로 배울 만한 장점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특히 칼빈의 가르침을 직접 받은 사람들이 세우고 칼빈의 신학을 따르고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서양의 개혁교회는 종교개혁 후 유럽에서 로마 가톨릭교회에 대항하면서 발전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고신 교회가 서양 개혁교회의 모든 부분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거나 서양 개혁교회에서 행하는 것들만 절대적으로 옳다고 주장하며 그것을 ‘개혁교회운동’으로 표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 고신 교회는 장로교회이면서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을 추구한다. 한국의 장로교회는 19세기 말에 미국과 호주와 영국과 캐나다 선교사들의 선교로 시작되었지만, 한국인 고유의 정서와 문화, 시대적 배경 등에 의해 한국 고유의 특징을 가진 장로교회의 모습을 발전시켜 왔다. 한국의 장로교회는 장로회 정치제도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칼빈의 신학을 배운 존 녹스(John Knox)가 스코틀랜드에 돌아가서 발전시킨 교회 정치제도이다. 이 장로교회가 미국과 호주, 캐나다 등을 거쳐 한국에 들어와서 한국의 장로교회가 된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장로교회, 그리고 그중의 하나인 고신교회는 신학적으로는 칼빈주의(개혁주의) 노선을 따르지만 교회정치로는 장로회 정치제도를 따르고 있다. 장로교회의 정치제도는 개혁교회의 정치제도와 비슷하지만, 노회에 좀 더 비중을 두고 있는 점에서 다르다. 예를 들어 목사는 개혁교회의 정치제도에 의하면 당회 소속이지만, 장로교 정치제도에서는 노회 소속이다. 꼭 어느 것이 옳다기보다 각각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각각 믿고 따르는바 ‘신조(信條)’도 엄밀하게 말하면 서로 다르다. 개혁교회는 벨직 신앙고백과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과 도르트 신경을 신봉한다. 그러나 고신교회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소교리문답을 신조로 삼고 있다. 이 둘의 신학은 근본적으로 같으나 그 표현과 강조점에 있어서 조금 다르다. 어쨌든 고신교회는 장로교회로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소교리문답을 신조로 채택하였으므로 이것들을 중심으로 믿고 가르치는 것이 옳다고 하겠다. 개혁교회의 위 신조들은 수시로 참조하면 좋을 것이다.

   장로교회이든 개혁교회이든 성경 말씀을 따르고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장로교회와 개혁교회의 표준은 신구약 성경 66권이다. 따라서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 있는 교회라 할지라도 성경을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표준으로 삼아 성경에 충실하게 나아가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고신 교회는 성경적 원리를 이 시대 상황에서 어떻게 예배와 선교를 통해 구현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그것에 적합한 제도와 형식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한국의 장로교회는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많이 간직하고 있다. 길선주 장로에 의해 시작된 새벽기도회, 믿지 않는 가족과 친지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 한국인 고유의 공동체 문화의 영향을 받은 활발한 교제와 교회 활동 등은 온 세계 교회에 내어놓을 만한 자랑스러운 모습들이다. 한국교회에 베풀어 주신 이런 은혜를 무시하고 무턱대고 서양의 개혁교회를 모방하려는 운동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잘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여 일부 극단적인 ‘개혁교회운동’에서 주장하는 부분에 대한 위의 논의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일부 ‘개혁교회운동’에서 십일조는 구약적 신앙행위이므로 반드시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한 것은 극단적이다. 십일조 율법의 정신은 그대로 살아있으며 그 정신과 원리는 신약교회에서도 그대로 실행되어야 한다. 구약과 신약의 원리에 따라 십일조를 하는 것이 합당하나 너무 ‘십일조’라는 문자에 얽매여 율법적인 태도로 지킬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믿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자원하여 힘써 드려야 한다.

   둘째, 일부 극단적인 ‘개혁교회운동’에서 복음 전도는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경적이지도 않고 서양 개혁교회의 역사적 배경도 무시한 편협한 주장이므로 배격해야 한다. 하나님은 복음 전도의 방법으로 당신이 택한 자들을 구원하시기에 교회는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한다.

   셋째, 새벽기도회와 수요기도회는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전통이며, 교회가 주중에도 함께 모여 서로의 신앙을 격려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이다. 이것은 모이기를 힘쓰고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고 한 성경의 가르침(히 10:24-25)을 따르는 것이자, 성경에 입각한 개혁신학의 정신도 따르는 것이다. 성경에 가르침이 없다거나 개혁신학에 맞지 않는다고 운운하며 이런 기도회들을 폐지하자고 하는 주장은 오히려 개혁신학에 위배 된다. 교회의 형편을 따라 자발적으로 모이되 가능하면 많은 성도가 이런 기도회들을 통해서 신앙을 북돋우도록 강조해야 할 것이다.

   넷째, 현대 교회들의 찬양대가 만인 제사장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찬양대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은 지나치다. 중세교회에서 성가대가 노출한 문제점들을 보완하면서 찬양대가 성도들의 찬양을 잘 도울 수 있도록 한다면, 찬양대는 개혁주의 전통 위에서도 예배를 더 풍성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있다.

   다섯째, 대표 기도는 예배 중에 성도들의 기도를 인도하는 직분의 수행이기에 일부 ‘개혁교회운동’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만인 제사장 원리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당회나 목회자가 대표 기도 혹은 목회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서 충분히 인식하면서 적합한 대표 기도자를 정하고 대표 기도를 시행하는 것은 개혁교회의 원리를 잘 표현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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