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요한 기자
10월 28일(화) 고려신학대학원 경건회에서는 종교개혁기념특강이 있었다. 강사는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학사부총장 이정숙 교수(사진). 이 교수는 미국 프린스톤 신학교(Ph.D.)에서 칼빈을 전공했는데, 특별히 ‘제네바 컨시스토리(Consistory, 보통 당회라고 번역하지만 이 교수는 당회라는 말 대신 ‘컨시스토리’라는 말을 선호한다)를 통해 어떻게 성도를 훈련하고 권징했는가’를 연구하였다.
이 교수는 이날 특강에서는 “칼빈의 제네바와 디아코니아 사역”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강연하였다. 이 교수는 성경에서의 구제와 초대, 중세 교회사에서의 구제를 간략하게 짚고 16세기 칼빈의 종교개혁 시기에 제네바에서의 디아코니아 사역을 설명하였다. 디아코니아는 ‘집사를 통한 교회의 대사회 사역’을 말한다.
성경이 말하는 구제
이 교수는 우선 구제의 당위성과 성경에서 말하는 구제에 대해 설명하였다.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의 사역”이라고 하면서도 “가난, 약함을 돕는 것은 복음의 다른 표현이자 교회의 교회됨을 보여 주는 중요한 사역”이라고 강조하였다.
이어서 이 교수는 구약과 신약에서 구제를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신명기와 잠언, 누가복음을 가지고 설명하였다. 이 교수는 “하나님께서는 신명기 15:4-5의 말씀을 통해 내 명령을 지키면 가난한 자가 너희 중에 없으리라고 하시면서도 그 뒤에 15:11을 통해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않을 것이니 네 손을 펼치라고 하신다”며 이것은 “가난한 자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부자와 가난한 자가 평등하게 살아가는 세상이 될 수 있다는 대천명”이라고 설명하였다. 아울러 이 교수는 잠언 29:14, “왕이 가난한 자를 성실히 신원하면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는 말씀을 통해서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의 차원에서 오랫동안 해 온 일”이라고 설명하였다. 또한 신약의 누가복음 12: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는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전통을 이어서 가난한 자에 대한 관심을 깊이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초대, 중세 교회사에서의 구제
이 교수는 계속해서 교회사에서 나타난 구제에 대해 설명하였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초대 교회는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받아들여 가난한 자, 약자를 보살폈을뿐더러 특별히 전염병이 돌았을 때 죽어가는 사람들을 도와주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설명하며 “이것은 로마 사람들이 보면 매우 의문을 가질 일”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자격 없는 죄인이 받았으니 거저 주는 자비(mercy)가 기독교의 힘이었고 이로 인해 기독교는 제국의 종교가 될 수 있었다”고 설명하였다.
이어서 이 교수는 “중세 기독교도 마찬가지로 이런(구제) 전통이 다양한 방식으로 적용되었다”며 “적극적으로 교회 소속의 병원을 만들어 구제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여기서 병원은 단지 치료기관의 의미뿐만 아니라 약자에 해당하는 모든 사람, 즉 고아, 과부, 병자, 가난한 자, 난민 등을 포함해서 돕는 곳이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중세의 가난의 개념은 영적인 것으로 연결되어 가난, 구제, 구원은 얽혀 있었다”고 설명하며 중세 가톨릭 교회의 구제 사업의 특징을 “사제를 통해 구제하는 것”으로 꼽았다.
종교개혁 시기 제네바 디아코니아의 특징
이 교수는 “칼빈이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실천했을 때에는 (앞서 설명한) 이런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출발하는 것”이라고 언급한 후 제네바에서의 구제활동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이 교수는 칼빈의 초기 사역에 대해 언급하면서 “1538년 제네바를 떠나게 된 칼빈이 스트라스부르그에서 1541년까지 머무르며 확실히 목회자가 되었다”고 언급했다. 학자 성향이 강했던 칼빈이 스트라스부르그에서 마틴 부써와 함께 교회를 개혁하며 교회의 예전이나 목회에 관한 경험을 한 것을 지적한 것이다.
이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칼빈은 “1541년에 스트라스부르그에서 다시 제네바로 돌아왔을 때 컨시스토리를 설립하여 성도를 훈련시키고 교육시켰다.” 칼빈은 4중직과 4개의 기관을 연결시켜 종합적 목회를 했다. 4중직은 목사, 박사(교사), 장로, 집사이다. 이 교수는 여기서 제네바 종교개혁의 특징은 한 가지 꼽는데 그것은 “장로와 집사 등 평신도 직분의 위상을 분명히 세우고 실천하는 종합적 사역이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4개의 직분 중 목사는 당시 제네바에 있는 목사회와, 박사는 1559년에 세워진 제네바 아카데미와 관련하여, 장로는 컨시스토리에서 일하며 교인을 돌아보았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이 교수는 “당시에는 컨시스토리에 ‘법적으로 소환권이 있는 사람을 직원으로 두었으며’ ‘전문 서기를 두어 모든 회의 내용을 기록하도록 하여’ 이 내용이 오늘날까지 보관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집사에 대해서는 “칼빈은 집사를 두 종류의 집사로, 즉 기록관리나 돈의 출입 등 사무를 보는 집사와 직접 물자를 가지고 사람을 돕는 집사가 있다고 이해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교수는 제네바 디아코니아의 중요한 사실로 ‘프랑스 기금을 만들었다’는 것을 지적했다. 당시에는 특별히 프랑스 위그노들이 신앙의 박해를 피해 모여들었다. 이 교수는 “수많은 난민이 몰려들어 제네바 시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칼빈은 난민 대표자들과 함께 ‘프랑스 기금’을 만들었다. 이 기금은 제네바 종합병원에서 집사를 통해 관리했다.” 하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는 이런 기금 등을 통해 난민들이 잘 정착하게 되었다. 실제로 제네바에 정착한 난민들은 좋은 기술자들이기도 했다. 이 교수는 “원래 제네바는 오늘날과 같은 도시가 아니었다. 잘 살지도 않고 유명하지도 않고 고등교육기관도 없던 도시였다. 난민들이 정착하는 과정에서 오늘의 제네바가 되는 기초를 놓을 수 있었다.” 하고 설명하며 “프랑스 기금이 좋은 사례가 되어 독일 기금, 이태리 기금 등 난민을 위한 기금이 생겨났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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