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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개혁의 칭의론과 성화론

 

우병훈.jpg

우병훈 교수

(고신대 신학과)

 

 

2017년 새해가 밝았지만, 교회적으로 국가적으로 문제가 많은 시점에서 새해를 맞이하기에 마음이 무겁다. 특별히 올해는 루터의 종교 개혁이 일어난 지 50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에 좀 더 진중한 자세로 새해를 맞이하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전에 루터와 그의 주장에 동의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 개혁과 사회 개혁에 헌신했다. 16-17세기의 종교 개혁을 위해 활동했던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은 문헌이 남아 있는 사람들만 해도 5천 명은 족히 넘는다. 어떻게 해서 그들은 그러한 엄청난 ‘개혁’의 물결을 이뤄낼 수 있었던가?

 

그 ‘개혁’ 원동력의 핵심에는 루터 신학의 “이신칭의론”이 놓여 있었다. 사람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게 된다는 진리 말이다. 그런데 종교 개혁 500주년이 된 지금 루터의 칭의론을 버려야 한다는 주장들이 일고 있다. 이것을 칭의론의 ‘탈루터주의화(delutheranizing)’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 대안으로 제시된 칭의론들이 루터의 칭의론보다 더 낫기는커녕, 도리어 루터가 반대했던 로마 가톨릭의 칭의론의 약점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이 글에서는 종교 개혁 신학의 칭의론과 성화론이 어떤 주요한 특징을 갖고 있으며, 그것이 신자의 구원에 대해서 어떻게 전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하에서 ‘종교 개혁 신학’은 루터파와 개혁파를 다 아우르는 신학이며, ‘개혁주의 혹은 개혁파 신학’은 특히 칼빈주의를 따르는 신학이다.]

 

 

종교 개혁의 칭의론과 성화론의 특징은 무엇인가?

 

종교 개혁 신학의 중요한 특징은 칭의와 성화를 구분하면서도 연결시킨다는 점이다. 칭의와 성화는 반드시 연결된다. 칼빈이 주장하듯 하나님은 둘 중에 하나만 주시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칼빈은 이렇게 적고 있다. “그대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를 얻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우선 그대는 그리스도를 소유해야 한다. 그러나 그대가 그리스도를 소유하면서 그의 거룩함에 참여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 둘을 나누려는 것은 헛된 일이기 때문이다(『기독교강요』, 3.16.1).” 우리는 성화를 이루기 위해서 칭의 받았다. 그런 뜻에서 칼빈은 최종판 『기독교강요』에서 성화론을 칭의론보다 앞에 두는 대담성을 보였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종교 개혁 신학은 칭의와 성화를 구분한다. 둘을 섞어 버리면 칼빈이 경고하듯 신자는 구원에 대한 불안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칭의와 성화를 섞는 순간 루터가 경고하듯 십자가의 가치와 능력이 평가 절하되고, 우리의 신앙생활은 공로주의의 희생물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개혁 신학의 교리들이 가르치듯이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았음에 대한 감사에서 성화의 역동성이 나오는 것이지, 아직 불확실한 구원을 이루기 위해 성화를 두려움 속에서 이뤄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빌립보서 2:12의 “두렵고 떨림”은 구원이 불확실하기에 생기는 ‘불안감’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소원함과 일함을 이뤄내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기에 생기는 ‘경외감’이다(고후 7:15, 엡 6:5에서도 섬기는 대상이 “두렵고 떨림”을 유발하고 있음을 주의하라).

 

 

또한 개혁 신학의 칭의론은 “언약 신학” 안에서 칭의와 성화를 위치시킨다.

 

하나님은 신자와 은혜 언약 즉 약속과 의무를 부과하시는 상호 책임적 관계를 맺으셨다. 아담의 타락 이후에 인간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인간과 맺으신 모든 언약들은 은혜 언약이다.

 

이 은혜 언약은 체결될 때에는 ‘일방적’이다.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그저 주어진다. 죄인은 그 언약을 기대하지도 원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혜’ 언약이다. 하지만 한번 이 언약이 맺어지면 하나님은 신자에게 순종의 책임을 요구하신다. 이처럼 신자와 맺으신 모든 언약에는 ‘쌍방적 측면’이 들어 있다. 그래서 은혜 ‘언약’이다.

 

이것이 개혁 신학이 말하는 ‘언약 체결의 일방성’과 ‘언약 유지의 쌍방성’이다. 그런데 이 쌍방성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주도권 속에서 형성된 쌍방성이기에 신자 ‘개인’의 연약성이 그 ‘개인’과 맺으신 하나님의 ‘은혜 언약’을 파기할 수 없다고 개혁 신학은 가르친다. 이처럼 개혁주의 언약 신학은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신실함을 강조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최고로 높인다. 우리를 자녀 삼은 아버지가 우리 죄 때문에 얼마든지 우리를 포기해 버릴 수 있다면, 어찌 그 아버지를 존경과 사랑 가운데 의지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성경에서 언약이 파기 되는 경우는 어떻게 된 것인가?

 

구약의 이스라엘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것에 대해서 칼빈은 ‘교회론적 의미에서 언약 파기 가능성’과 ‘구원론적 의미에서 언약 파기 불가능성’으로 구분하여 설명한다(피터 릴백의 설명). 하나님께서 어떤 한 개인과 은혜 언약을 맺으시면 구원론적 의미에서 그 언약은 파기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영원 가운데 예정하신 사람을 버리실 수 없기 때문이다(엡 1:11). 하지만 “교회론적인 의미”에서 은혜 언약은 파기될 수 있다. 그것은 백성들의 편에서 언약을 깨뜨릴 때이다.

 

예를 들어 구약의 모세 언약(혹은 시내산 언약)도 역시 은혜 언약이었다. 하지만 그 언약을 맺은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구원 받지 못했다. 교회론적인 의미에서 언약을 맺었지만 개개인과 구원론적인 의미에서 언약을 맺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 때에도 하나님께서 한 개인과 은혜 언약을 맺으셨다면 그것은 결코 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예정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칼빈은 이렇게 ‘교회론적인 의미에서 언약’과 ‘구원론적인 의미에서 언약’을 ‘넓은 의미에서의 언약’과 ‘좁은 의미에서의 언약’, 혹은 ‘넓은 의미에서의 선택’과 ‘좁은 의미에서의 선택’으로 명명한다.

 

 

이제 마지막으로 최종 심판을 생각해 보자.

 

종교 개혁 신학 역시 불신자뿐 아니라 신자 역시도 최종 심판을 받게 될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불신자가 받는 최후의 심판은 영벌을 위한 심판이요, 신자가 받는 최후의 심판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기 위한 심판이다.

 

불신자는 선행이 없어서 구원 받지 못한다. 그들이 선행이 없는 까닭은 한 번도 예수 그리스도를 참되게 믿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불신자의 선행은 그 ‘근거(1)’와 ‘참조점(2)’과 ‘원리(3)’와 ‘목적(4)’이 ‘믿음(1)’, ‘성경(2)’, ‘성령(3)’, ‘하나님의 영광(4)’과 전혀 무관하다. 아름다울 수 있으나 하나님이 받지는 않으신다. 그런 선행으로는 구원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반면에 하나님은 신자의 선행을 인정해 주신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1)’, ‘성경에서 배워(2)’, ‘성령과 더불어(3)’,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4)’ 행한 선행이기 때문이다. 물론 신자의 선행은 오점 투성이다. 하지만 지금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신 하나님은 마지막 때에 신자가 행한 행위들 역시 그리스도 때문에 받아주신다.

 

칼빈과 웨스트민스터 신조는 이것을 ‘신자의 인격에 대한 칭의’와 ‘신자의 행위에 대한 칭의’로 이름 붙였다. 하나님의 자녀는 부족하지만 자녀이기 때문에 받아주신다. 성령 안에서 행한 선행은 참된 믿음이 있음을 보여주는 ‘표지(mark)’이요 ‘징표(sign)’이기에 필수적이다. 하지만 신자의 선행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까닭은 그것이 온전하기 때문이 아니라, 신자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임을 그것이 ‘증명’해 주기 때문이다. 그 선행은 표지이기 때문에 양(量)보다는 질(質)과 상관이 있다. 또한 그 선행은 전혀 자랑할 수가 없으며, 공로주의나 무사안일주의에 우리를 빠뜨리지도 않는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가 성령의 능력으로 행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선행은 마지막 심판 때에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의 제목이 된다.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만(Soli Deo Gloria)!

 

 

종교 개혁 신학은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성을 드높이면서도 인간의 책임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은혜 언약 신학의 구도 속에서 칭의와 성화의 역동성을 설명했다.

그것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고, 그리스도 중심적이며, 성령 의존적이다. 하나님의 영광만을 바라보기에 공로사상을 배격한다. 그리스도 중심적이기에 확실하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께서 이미 다 이루셨다!) 성령 의존적이기에 우리로 늘 깨어있게 한다. (성령의 사역 가운데 그리스도는 이제 우리와 신비한 연합을 이루고 계신다!) 이처럼 종교 개혁 신학의 칭의론과 성화론은 삼위일체적이며, 언약적이며, 성경적으로 일관성 있고, 목회적으로 건전하다.

 

< 저작권자 ⓒ 개혁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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