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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논문은 故 도진해 선생 추모학술제에서 발표된 논문입니다. 
    관련기사: http://reformedjr.com/xe/9326 


 


<발표문>

 

한국신학의 자립: 한국교회를 위한 교부학의 기여

                                                                                            

유해무.jpg

유해무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발표자가 사랑했던 조교 故 도진해의 1주기를 맞아 모친을 비롯한 유족들에게 위로를 전하며, 이 학술대회를 구상하고 성사시킨 서원모 교수님과 유해신 목사님, 그리고 지원을 아끼지 않은 여러 교회와 단체에 감사를 드린다.

             진해는 발표자의 지도를 받은 비공식적인 공부 모임에 참석하였다. 진해는 1997년에 고려신학대학원 부산 교정에서 입학하여 19982학기 천안교정으로 옮겨 와서 2000 2월에 졸업하였다. 1998년 한 해 조교를 하였고, 그 해 말 발표자가 첫 안식년을 화란으로 떠나기에 앞서 언어에 재능이 뛰어났던 진해에게 졸업 후에 화란 유학 의사를 물었다. 그런데 그의 대답이 분명하였다. 공부 전에 교회를 경험하고 싶다는 답변이었다. 그때 강권하여 유학을 보냈더라면 하는 미련이 지금까지도 떠나지 않는다. 그 이후 발병으로 인하여 그는 어려움을 겪고 교역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내가 그에게 영국으로 가서 교부학을 할 것을 권하였다. 결국 그는 이곳 장신대학교에서 석사를 마쳤고 박사 과정을 밟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교수는커녕 목사도 아니었던 젊은이(1971-2015)를 추모하는 학술대회는 진해의 경우가 첨이 아닌가 한다. 눈이 부리부리하고 순수한 내면을 지닌 그가 교회와 영혼을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그를 추모하면서 기리며, 그가 이 땅에서 못 다한 연구를 계속 하여 한국교회와 신학을 바로 세우고 자립시키려고 한다.

 

 

             세계 교회사에서 전례가 없을 정도로 성장을 이루었다는 한국 개신교회는 성장 자체를 반성적으로 평가할 때가 되었다. 한국 교회의 성장도 교회사의 흐름 속에서 모범적인 전례를 찾기 원한다면, 왕성했던 교회들이 생산한 기독교 고전을 읽고 반성하는 훈련을 쌓아야 한다. 부흥한 교회가 때로는 아류의 기독교로 전락할 수도 있다. 교회사를 보면 큰 부흥 뒤에는 예외 없이 교회가 텅 비는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엄습하였다. 한국 교회가 교회사의 본류에 진입하려면, 지난 수십 년간 이룩한 성장을 유지하면서 내적 자정 능력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교회 개혁도 필요하겠지만 고전 연구를 통하여 교회사의 본류를 형성한 교회들의 신학 작업을 반성적으로 배워야 한다. 이것이 공교회성을 확보하는 길이다.

             한국에 복음을 전한 미국 등 영어권 교회는 유럽 이민자들이 호주나 미주대륙에서 세운 교회이다. 그들은 신앙의 자유이든 경제적 이유이든 신대륙으로 떠나는 순간 교회사 천오백년과는 단절하거나 새로운 관계를 정립해야 하였다. 특히 미국교회의 1800년대의 제 2차 부흥운동과 무디(D. L. Moody; 1837-99) 등이 주도한 부흥운동은 교회사에서 새로운 형태의 교회와 신앙생활을 창출하였다. 이런 유의 부흥은 한국교회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한국교회의 신학과 목회의 미국교회 편향성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교의와 전통에 대한 무지나 무관심까지 애써 답습할 필요는 없었다. 이런 배경에서 한국교회는 기껏해야 종교개혁사 정도는 언급하지만, 중세교회사는 말할 필요도 없고 고대교회사에 대해서도 여전히 기본 오리엔테이션을 갖추어야 하는 초보 단계에 있다.[1] 고대교회는 우리에게 삼위일체론과 기독론 등 중요한 유산으로 남겼고, 고대교회를 이은 중세교회는 교사가 되지 못한다면, 반면교사는 충분히 될 수 있다.

             발표자는 1999년에 교부 공부를 시작하여 2007년에 그 결과의 한 부분을 「신학: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송영」으로 출판하였다.[2] 이 책에는 고대동방교부에 대한 간결한 소개에 이어, 그들의 신학 이해, 동서방 삼위일체론, 신격화와 은혜의 방편인 기도 등을 담고 있다. 그 책 291쪽에 다음과 같은 소회를 진솔하게 표현하였다. 저자는 1996년 말쯤에야 비로소 처음으로 교부 전집을 접했고, 민녀(Migne) 판을 만났다. 삼위일체론이나 기독론에 관한 전문적 연구서들이 제시하는 PG 또는 MPG의 약자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지 못하고 서성거리던 부끄러운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비록 언어적인 어려움으로 인하여 그 내용을 직접 읽지 못한 것은 차치한다 하더라도, 명색이 신학 교수가 서지학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하는 기본적인 지식조차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 교부학을 한다고 혼자서 애를 써 보지만 역부족이기에 계속 좌절하면서 자신과의 싸움을 싸우고 있다. 이런 몸부림 가운데서 나는 주로 국내외에서 구교 교부학자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삼위일체론이나 기독론에서는 여느 개신교 학자들보다 이들에게 더 친밀감을 느낀다. 한국의 개신교 교부학은 발아 단계에도 와 있지 않다. 그 이후 위 네 주제들을 라틴교부와 중세 신학 연구로 출판하려는 노력을 하였으나 지금까지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교부학은 과학과 공학의 기초분야처럼 한국신학의 자립과 토착화를 위한 기초이며, 교부학 연구는 한국교회의 공교회성을 확립시켜 줄 귀중한 분야이다.

 


             1. 교부학과 신학의 자립


             최근에 문득 어리석은 질문 하나가 불쑥 내게 떠올랐다. 우리 귀에 익숙한 신학(神學)이라는 말의 형성과정에 대한 질문이었다. 발표자는 1999년부터 교부학을 접하면서 신학(θεολογία)의 어원과 고대교회가 이 용어를 도입하는 과정을 꼼꼼하게 살핀 적이 있다. 그때에도 위의 질문을 한 적이 없다. 최근 신학서론을 집필하면서 문득 든 생각을 여러 사람들에게 질문하였으나, 뭐라도 아는 이가 없었고, 이 질문조차 해 본적이 없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고 있다. 그래도 겨우 이 정도는 알아내었는데, 신학은 중국에서 들어온 번역어가 아니다. 일본의 난학자(蘭學者) 타카노 쵸에이(高野長英; 1804-50)가 화란어(godskunde)에서 신학을 번역하였다. 이 번역어가 당시 조선에 도입되는 과정에 관한 연구는 없다. 지나치게 단적인 예이지만, 한국신학의 자립이나 토착화를 되씹게 하는 주제이다.[3]

             모름지기 기독교고전은 왕성하게 성장한 교회가 생산하였다. 가령 교부라고 후대에 알려진 이들은 개별적인 신학자들이기 이전에, 자기가 속해 있던 교회의 아들들이다. 그들의 어머니 교회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면서 교인들을 낳았고, 때로는 박해 가운데 처해 있으면서도 그렇게 낳은 교인들로 가득 찼었다. 이들에게 성경의 삼위 하나님을 가르치고 설교하고 세례를 베풀며 이들과 더불어 나누는 성찬으로 교회가 회집하였다. 이런 가운데서 설교집이 만들어졌고, 교리와 예배와 성례에 관한 글들이 나왔고 이후 그들의 어록이 편집되어 중세신학 형성의 기틀이 되었다. 이들의 적극적인 사역 중에 교회가 유대교나 이교도나 이단의 공격을 받기도 하였는데, 이때에 논쟁적인 글들이 출현하였다. 이리하여 삼위일체론이나 기독론이 형성되었고, 이것들은 지금 우리에게 교의로, 교부의 저작들은 고전으로서 길잡이가 된다. 교회가 최소한의 안정을 누리지 못하고 능력 있는 설교자와 지도자를 갖지 못했다면 초기의 변증서들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은 그 이후의 교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때로는 교회가 부패하고 타락하기도 하였으나, 항상 그 교회에서 훈련받았던 이들 가운데서 개혁자들이 나왔다. 종교개혁 이후에도 왕성하였던 교회가 고전을 생산할 수 있었다.

             한국교회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대분의 선교사들이 직접 전도하기보다는 주로 신학 교육으로 현지 지도자들을 양성한다. 그런데 이들 선교사들과 한국의 파송교회 목사들이 현지에서 가르치는 신학은 무엇일까? 아무리 교회가 수적으로 부흥하고 경제적 여건이 좋아 선교사를 파송하는 복을 받았다 하더라도, 고전을 생산하지 못하고 교회사의 주류에 편입하지 못한 교회는 복음을 선교하는 만큼 피선교지 교회에 신학적 혼란도 초래할 것이다. 한국교회 전체는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서 내부적인 신학적 정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교회의 현재로부터 과거로 회귀하면서 반성 작업을 할 수도 있지만, 교회사 초기부터 교회의 핍박과 왕성, 확장과 타락, 종교개혁과 미국교회사 등을 살피면서 한국교회의 신학적 터전을 단단하게 확립할 수도 있다. 이 후자의 방식으로 기독교고전을 공부하는 것은 신학의 기초분야에 해당되는 중요한 작업이며, 이 가운데서도 고전 중의 고전인 교부학 연구는 한국교회의 부흥에 튼튼한 신학적 지반을 제공할 것이다. 우리는 교부학의 몇 가지 주제로 이 주장을 논증하려고 한다.

 


             2. 신학인 고대교회의 삼위일체론과 예배와 직분, 그리고 한국교회


             2-1. 신학으로서 삼위일체론


             우리는 삼위일체론을 믿지 않고 삼위 하나님을 믿는다. 그런데 이 믿음의 고백에는 항상 내적인 오해와 외부의 곡해가 수반되었다. 교회사를 보면 예수님과 성령님을 하나님으로 고백하지 아니하는 이단이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교회 내적으로 삼위 하나님을 향한 고백과 믿음이 퇴락하여 단일신론이나 삼신론에  빠지거나 이단은 아니라 하여도 삼위 하나님 이해와 찬송이 왜곡되거나 편향될 위험은 상존한다. 이를 경계하고 삼위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고백을 보호하는 울타리가 삼위일체론이다.

             헬라 교부들에 의하면, 신학은 문자적으로 하나님을 말함이다. 신학은 성경에 나오지 않는 용어로서 어원적으로 신들에 관한 이야기(神話)였다. 플라톤은 헬라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전쟁, 불륜, 적대감 등을 비판한다. 그는 이상국가의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이런 신화가 아니라 미덕을 먼저 들어야 하며, 철학자들은 통치자로서 신화의 구성을 이성적으로 규정하고 신들에 관한 올바른 이야기, 곧 신학의 유형과 규범을 제정하여 시인들이 지키도록 감독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즉 신들은 문학적 상상력의 작품이 아니라 철학자의 이성적 판단의 잣대에 적합한 신성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전자이든 후자이든 헬라 신화와 철학에서 신과 신학은 인간의 산물이다. 고대교회는 다신론과 인간 이성의 판단에 근거한 이 신학이라는 용어를 선뜻 채택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교회는 하나님을 말하다는 문자적 의미를 따라 신학을 채택한다. 곧 교회는 예수님을 하나님이라 말하고 불렀다. 하나님이신 성자께서 성육신하신 것은 인간을 하나님처럼 만들기 위함이었다. 이것을 고대 헬라교부들은 신격화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그리스도를 주님이요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말하는 자들을 신격화하시는 성령님도 하나님이시라고 선포하였다. 이렇게 신학은 삼위 하나님의 고백과 설교라는 의미로 교회사에 등장한다. 삼위일체이 확립되기 전부터 교회는 이교 용어인 신학을 채택하여 세례 주었고, 성경에 기초하여 창의적으로 삼위 하나님을 말하다라는 의미로 채웠다. 신학은 삼위일체론에서 완성된다(아타나시우스).

             그렇다면 설교가 신학의 전형이다.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베푸는 세례도 신학이며, 성찬도 신학이다. 찬송도 신학이며, 기도도 신학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르는 예배가 신학의 현장이요, 삼위일체론은 이에 대한 반성의 산물이다.[4]

 

             2-2. 예배


             삼위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일차적 현장이요 삼위 하나님을 말하는 일차적 현장 역시 예배이다. 예배(λειτουργία)는 원래 공적 직무 또는 그 수행을 뜻한다.[5] 그래서 우리는 공예배(public service or worship)라는 말을 사용한다. 공예배는 은혜의 방편, 곧 말씀과 성례로 이루어진다.[6]

             종교개혁 교회는 은혜의 방편 가운데서 설교를 첫째로 중시한다. 이것은 예수님을 다시 바친다는 미사에 대한 반발로 나왔고 이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는 충분히 있다. 그런데 고대교회는 초기부터 말씀과 성찬을 포함하는 통합 예전을 시행하였다. 이에 앞서 세례식이 있다. 고백하고 믿는 자는 삼위의 이름으로 물에서 속량(λύτρον)된다. 이어서 그는 회중이 모인 곳으로 인도되어 함께 기도한 후, 서로 입맞춤(φίλημα)으로 인사한다. 그러면 빵과 포도주를 가져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만유의 아버지께 기도한다. 이 음식은 유카리스티아(εὐχαριστία)이며, 믿고 세례를 받은 자만이 참여할 수 있다. 이처럼 구주 예수께서 부활하신 주일(일요일)에 도시에 사는 신자들이 한 곳에 회집(συνέλευσις)하고,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낭독자가 사도들의 보고서나 선지자들의 글을 읽는다(ἀναγινώσκω). 그러면 집례자(προεστῶς)가 말씀(λόγος)으로 교훈하고 선한 일을 따라 행할 것을 권한다. 그러면 다 일어나 기도한 뒤, 빵과 포도주를 가져온다. 집례자가 기도와 감사를 한 후에 각자에게 배포한다. 유여한 정도에 따라 헌상하면 그것을 모아 고아 등 빈핍한 자들을 돕는다.[7]

             그런데 한국교회의 현실은 어떤가? 설교단의 설교가 삼위 하나님만을 말하는 신학의 현장인가? 삼위 하나님의 이름과 연합하는 세례를 너무 쉽게 베풀고 받으며, 그리스도의 몸과 연합하여 삼위 하나님과 교제하는 성찬도 아무렇게 집례하고 참석하고 있지 않는가? 신학의 현장이 비신학의 현장으로 변질되지는 않았는가?

 

             2-2-1. 설교


            세례는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시행되고 성찬용 빵과 포도주에 대한 감사(기도)도 삼위 하나님을 향한다. 따라서 그 사이에 놓인 설교도 삼위 하나님을 말한다고 추정할 뿐, 고대교회가 삼위 하나님을 예배 중에서 설교하였는지에 대한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 사도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완전히 확신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복음을 전했다.[8]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삼위 하나님을 전파(κήρυγμα)하도록 보내셨다[9].

             개혁자들이 중세교회의 폐단을 없애는 중에 교회의 모든 절기도 폐지하였다. 그러나 구원역사적인 절기는 지키면서 설교하는 것이 합당하며, 이는 중세의 성인절기와는 무관하다. 미국교회의 영향을 받은 한국교회는 이 조차도 오해하고 추수감사절을 포함시킨다. 교회의 삼대 절기가 있다면, 곧 성탄절, 부활절과 오순절이다. 은사운동과 오순절파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대부분이 여전히 오순절을 잘 지키지 않고 있다. 특히 5월에 어린이주일, 어버이주일, 교사주일, 부부주일은 지키지만, 성령님이 대체로 교사를 이기지 못하고 밀리는 경우가 많다. 주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지 사람이나 어떤 주제가 아니다. 따라서 삼위일체 주일을 지키는 것도 필요하다. 매주일 설교단에서 설교자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만을 말하고 선포해야 한다. 무슨 기념예배, 학위취득 감사예배 등은 어불성설이다. 이런 문제 제기나 제안은 교부학의 결실의 하나이다.

 

             2-2-2. 세례


             공예배에는 매주일 말씀과 더불어 세례나 성찬으로 이루어진 성례도 있었다. 고대 교회의 세례의식은 장중하였다. 세례를 받기 위한 준비 기간은 3년이었다. 먼저 학습자의 직업을 살핀다. 창녀를 조종하는 포주, 신상 조각가나 화가, 극장 배우와 연출자, 교사, 검투사나 (맹수) 투사, 우상 제사장과 신전 경비원, 군인과 관리, 창녀와 호색가, 마법사나 점쟁이, 해몽가와 협잡꾼, 화폐 위조범, 부적 제조자 등은 직업을 포기해야 한다. 세례식 직전에는, 학습 기간 동안 과부를 돌아보고 병자를 심방하고 여타 선행을 행하였는지를 살핀다.[10] 이처럼 엄격한 준비 과정은 학습자가 받을 세례의 제정 자체 때문이었다. 학습자는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살며 그분의 몸에 가입하고 연합한다( 6:1-11; 2:12). 기독교의 공인 이후 고대교회의 세례는 주로 부활절 전날 저녁에 성도들이 참석한 가운데 교회당의 세례조(洗禮槽)에서 이루어진다. 세례를 받아 교인이 된 자는 이제야 비로소 온전한 예배자로서 성도들과 함께 기도할 수 있다. 기도를 마친 다음에 모든 회중과 함께 평안의 입맞춤을 교환한다. 회중은 그리스도의 몸이 확장되는 장면을 가시적으로 목도한다. 그 다음에 헌금이나 헌물을 바쳐 완전한 교인의 의무를 처음으로 시행한다.

             한국교회는 미션 스쿨이나 진중세례 등 집단세례에 익숙하지만 세례 교육을 철저하게 시행하지 않는다. 학습자의 직업을 점검하지도 않는다. 그렇다 보니 재세례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이 나타난다. 그러나 교부들은 사죄나 에베소서 4:5절에 근거하여 재세례를 거부하였다.[11] 다만 이단의 세례는 세례가 아니기 때문에 교회로 돌아온 이전 이단자에게는 세례를 베풀었다.[12] 세례의 효력은 집례자의 정통이나 수세자의 경건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의 명령대로 시행한 삼위 하나님의 이름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13] 마태복음 28:19-20절에 나오는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세례 명령을 따라 교회는 먼저 삼위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가르쳤다. 세례는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시행되었고, 수세자를 삼위 하나님의 소유로 만든다. 그러면 세례교인은 삼위 하나님의 담지자로서 세상으로 파송 받아 세상에서 삼위 하나님을 드러낸다.[14] 그러면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하며,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할지를 분명하게 알고 실천할 것이다. 세례 명령 후에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명령이 나오는 것은 세례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가리키고 점검하고 반성하게 하라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교인이 절대 소수였던 일제 강점기나 그 이후보다 한국교회가 천만 성도를 자랑하는 현재의 한국사회가 더 깨끗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더 밝히 보여주고 있는가? 이런 질문은 교부학의 공부를 통하여 제기할 수 있으며, 개선할 수 있는 사안이다.[15]

 

             2-2-3. 성찬


             세례로 삼위 하나님과 연합하고 교제를 시작하였다면, 성찬으로 이 연합과 교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 성찬은 초기부터 제사로 이해되었고, 삼위 하나님과의 교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성찬 기도는 항상 삼위 하나님을 향한다.

             고대교회는 주일마다 성찬을 시행하였다. 주님의 주일마다 여러분은 모여서 빵을 나누고 감사드리시오. 그러나 그 전에 여러분의 범법들을 고백하여 여러분의 제사가 깨끗하게 되도록 하시오.[16] 그런데 한국교회는 성찬이 없는 공예배에 익숙하다. 칼빈도 매주 성찬 시행을 옹호한다. 신자들의 모임에 최소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주님의 성찬을 베풀어 거기에 선포되는 약속들로 신령하게 양육 받게 해야 한다.[17] 그런데 중세교회의 미사를 혐오하는 종교개혁의 전통은 잉글랜드의 청교도와 미국교회를 거쳐 한국교회는 성찬 없는 공예배를 전수받았고, 한국교회 안에는 성찬에서 상징설 또는 기념설이 지배한다.[18] 한국교회는 고대교회의 전통을 따라 매주일 성찬을 시행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한국교회의 성찬의 이해는 더 심각하다. 고대교회에서 세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아나는 잔치였다( 2:12).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여져 참여하는 첫 성찬은 성도의 거듭남을 경험하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혼인에 비견할 수 있는 세례와는 달리 성찬은 혼인의 사랑을 거듭 확인하는 방편이다. 세례가 우리의 출생이라면, 성찬은 성장을 위한 식사이다.

             문제는 고대교회부터 성찬을 그리스도의 죽음에만 고정시켜 이해하였다는 점이다. 이것을 종교개혁도 극복하지 못하였고, 한국교회는 말할 필요도 없다. 성찬식은 엄숙하며 십자가와 보혈의 찬송만 울린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에만 머물러 계신다면, 우리에게 부활의 의미는 무엇일까? 무덤에 머물러 있는 예수님이 과연 성찬에 임재할 수 있을까? 교회는 성찬이 예수님의 임재를 실제로 체험하는 은혜의 방편임을 보여야 한다. 성찬에서 왜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지 않는가? 왜 성찬식에서 재림과 어린양의 혼인 잔치를 대망하는 찬송은 없는가? 마치 반쪽인 듯한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가 되실 수 없다. 신학의 자립은 이처럼 말씀과 성례, 곧 세례와 성찬의 올바른 이해와 집례에서 출발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교부학을 통하여 공교회적 전통을 이어받고 토착화시켜야 한다.

 

             2-2-4. 찬송과 기도


             예배에는 회중의 응답도 있으니 이 또한 신학이다. 고대교회는 창조주 하나님께 찬송을 드렸다.[19] 구속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찬송하는 것은 신학이다.[20] 신학의 어법을 따라 초기부터 그리스도를 향한 찬송은 신학이었다.[21]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도 신학이다.[22]

             한국 찬송가에는 예수님과 보혈의 십자가 찬송이 많이 나온다. 그러나 여기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 보혈의 능력은 나오나 부활의 능력(고후 13:4; 3:10)을 부르는 찬송은 거의 없다. 나아가 우리 찬송가에는 삼위 하나님을 향하는 송영이 많지 않다. 개인적 체험을 담은 간증이나 계몽적인 가사를 담은 것들조차 찬송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것은 신학의 부재 또는 빈약의 소산이다. 또 고대교회의 예전에는 규칙적으로 삼위 하나님을 향한 송영이 울려나온다.[23] 이것은 집례자가 단독으로나 회중과 더불어 교창으로 말하거나 부른다. 이런 전통이 한국교회에 아예 소개되지도 않은 것은 퍽 아쉬운 대목이다. 예배는 삼위 하나님의 자기 주심이요 동시에 회중도 자기를 이 삼위 하나님께 드림이다.

             찬양과 기도는 신학이며 동시에 신학의 방법이다.[24] 설교와 성례로 삼위 하나님께서 자기를 주시면 회중은 찬양과 기도로 이 하나님께 자기를 드린다.

 

             2-3. 직분과 교회 정치


             고대교회는 지역회의와 공회의에서 교의와 더불어 예배와 교회정치도 다루었다. 그러나 고대교회와 교부학의 지식이 일천한 한국 신학은 교회사 강의에서 대체로 교의만 다룰 뿐, 예배와 정치는 거론하지 않거나 무시한다. 중세교회의 교황권의 확립을 대항한 루터의 저항을 교회정치 측면에서 접근하면서 교회정관을 개정하면 한국교회를 정화하고 개혁할 수 있다는 인식이 교회 내의 지성인들 사이에 팽배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피상적인 접근일 뿐이다. 교리와 예배의 개혁 없는 정치와 제도와 직분의 개혁은 불가능하다.

             교회정치는 직분론의 또 다른 이름이다. 구약과 신약에는 여러 직분들이 나온다. 고대교회에는 상당히 빠르게 삼직이 확립된다. 주교와 장로와 집사이다.[25] 문제는 주교가 최고의 직분으로서 장로와 집사를 임명하고 감독하며, 장로와 집사는 주교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사실이다.[26] 이후 서방교회는 주교가 장로를 지역교회로 파송하여 미사를 집전하게 하되, 견신례와 서품 등은 주교의 고유권으로 정착시켰다.[27] 종교개혁도 이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하였다. 루터파는 감독정치를 채택하였고, 칼빈은 성경적으로 삼직분을 회복하였다. 그러나 장로교정치는 위로부터의 개혁을 시행하여, 주교가 관장하는 교구를 노회로 개편하였다. 결과적으로 목사의 소속은 노회, 장로의 소속은 지역교회라는 이상한 직분론이 등장한다. 한국장로교회는 동양적인 위계질서에 걸맞은 장로정치를 그릇되게 토착화하여 목사와 장로 간의 갈등의 제일 큰 원인이 되고 있다. 은연중에 목사가 곧 교회로서 장로를 세우고, 노회는 목사들만의 입지를 보장하는 위험한 교회정치를 시행하고 있다. 교회회의인 당회와 노회와 총회는 치리회이다. 한국 신학교의 교회사 강의와는 반대로, 한국교회의 치리회는 교의와 예배는 거론하지 않거나 무시하고 교회정치만을 취급하는 관행에 빠져있다.

             교회정치와 직분론의 기초는 삼위 하나님의 내적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삼위 하나님의 동등성이다. 이 동등성은 성자와 성령의 신성을 확보하고 난 후에야 논의될 수 있었다. 신학자 그레고리우스의 다음 발언은 그의 입장을 더욱더 분명하게 드러낸다. 아리우스는 성부에게 나온 자를 신성에서 열등하다고 함으로써 성부를 존귀케 하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성부의 한 영광을 인정하고, 독생자의 동등성과 성자와 성령의 한 영광을 인정한다. 삼위 중 한 분을 격하시키는 것은 전체를 폐지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한다. 우리는 그분들을 고유성에서는 삼위요 신성에서는 일체이심을 인정하고 예배한다.[28] 교회 역사에서 직분의 동등성을 구현한 적이 거의 없다. 직분의 동등성은 삼위 하나님의 동등성에 기초한다. 직분의 서열이나 상호 갈등은 신학의 부재와 무지의 소치이다. 어디 하나님 삼위 간에 서열이나 상호 갈등이 있는가? 직분은 삼위 하나님께서 자기를 보여주도록 세우신 제도이며, 치리회는 어떤 직분이 주도할 수 없다. 삼위 하나님을 말하는 신학이 교의와 예배 뿐만 아니라 교회 현장과 교회정치에서도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 수 있다.

 


             3. 한국신학의 자립과 토착화


             신학이 하나님을 말함이라면, 설교는 신학이여야 한다. 찬송과 기도도 신학이며, 세례와 성찬도 신학이다. 신학의 현장은 예배이며, 특히 설교단은 일차적인 신학의 현장이다. 설교는 神言전달이며 이를 넘어 애초부터 삼위 하나님의 자기 계시와 임재의 현장이다. 세례와 성찬도 마찬가지이다. 직분론의 원초적 뿌리도 삼위 하나님의 내적 관계이기 때문에 신학의 확립이 선행해야 직분의 개혁도 가능하다.

             그렇다 하여 고대교회가 이상적인 교회는 아니었다. 예배가 신학의 현장임을 잘 보여주었지만, 신학으로서의 설교는 발전하지 못하였다. 초기부터 집례자를 제사장으로 보았고, 이 때문에 성찬은 은혜의 방편이 아니라 제사(θυσία)로 정착하였다. 단적으로 고대교회 500년이 오류가 없는 모범교회는 아니었다.[29] 우리는 유일한 표준이요 잣대인 성경 말씀에 비추어 우리 자신과 모든 것을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하며, 고대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그럴 때에 고대교회의 고백과 실천을 비판적이고 유용하게 수용할 수 있다.

             이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고대교회는 신학의 자립과 토착화에 도움을 줄 것이다. 예배를 신학의 현장으로 확립하지 못한 한국교회는 교회사의 주류가 아니라 이미 아류의 반열에 들어서있다. 교부학 연구로 교회사의 주류에 편입해야 한다. 교부학은 성경 말씀 이해를 도우며, 교회의 전반적인 측면을 살피고 개혁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부흥한 한국교회가 교부학을 통하여 바로 서서 개혁하면, 신학의 자립과 토착화를 가능하게 하며 지금까지 받는 교회가 빚을 갚고 주는 교회로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1] 발표자 역시 일찍부터 종교개혁자들을 읽었지만 고대교회나 중세교회의 고전은 근래에 와서야 읽기 시작하였다. 「신학: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송영」을 발표한 후 중세교회를 공부하려고 하였으나 한국인 교회사가 저술한 마땅한 중세교회사를 발견하지 못하였다. 다른 언어로 된 교과서를 읽고, 수년간 유럽의 성당과 수도원을 찾아다니면서 현장에서 중세교회를 공부하였다.

[2] 서울: 성약, 2007.

[3] 일본의 난학자들은 의학(특히 해부학), 법학 등의 용어를 화란어에서 번역하였다. 일본의 철학 용어 형성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강영안, 「우리에게 철학은 무엇인가」(서울: 궁리, 2002), 216-232.

[4] 예배가 신학의 일차적 현장이요 교회가 신학의 주체이며, 반성과 그 결과인 신학은 부차적이다.

[5] 예배에 해당하는 두 헬라어 용어가 있다. 헬라어에서 공무를 의미하는 ‘λειτουργία’는 LXX역에서 제사장의 직분 수행을 뜻하였고, 신약에서는 이를 완성하신 예수님의 사역을 지칭한다. “예수님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8:6) 여기서 직분이 ‘λειτουργία’이다. 이 직분은 예물과 제사를 드리는 일을 한다( 8:3). 그런데 구약의 제사장과는 달리,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드렸다( 7:27, 9:14,26). 우리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다(벧전 2:5). ‘λατρεία’는 제사장적 직무도 포함하지만, 모든 회중이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과 기도 등 예전적 관계와 일상적인 삶을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 교회의 예전에서 ‘λατρεία’는 회중의 응답을, 교회 밖에서 행하는 삶으로서의 예배를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cf. ‘λατρεύω & λατρεία’, in G. Kittel, ed., TDNT, 4,63.

[6] 설교, Clemens 1, Epistola 1 ad Corinthios, 42, PG 1, 292A; 세례와 성찬, Ignatius Antiochenus, Epistola ad Smyrnaeos, 8, PG 5, 852A.

[7] Justinus Martyr, Apologia 1, 61 & 65-67, PG 6, 420C & 428A-432A. 이 작품은 155년경에 저술된 것으로 추정한다.

[8] Clemens 1, Epistola 1 ad Corinthios, 42, PG 1, 292A.

[9] Eusebius Caesariensis, Epistolae 1,3, PG 20, 1537C.

[10] Constitutiones Apostolicae, 8,31, PG 1,1128-1136.

[11] Athanasios, Epistola ad Serapionem, 4,13, PG 26, 656A.

[12] Origenes, Exhortatio ad Martryium, 30, PG 11, 601A; Gregorius Theologus, Epistola ad Serapionem, 4,13, PG 26, 656A; idem, Oratio, 33,17, PG 36, 236B; Basilius, Epistola, 199,47, PG 32, 732A; Cyrillus Hierosolymitanus, Procatechesis, 7, PG 33, 345A-B.

[13] Gregorius Thaumaturgus, Expositio fidei, 9, PG 10, 1109C; Athanasios, Epistola ad Serapionem, 1,30 & 4,3, PG 26, 597C & 621B. 아타나시우스는 아리우스파는 성자와 성부를 부인하기 때문에 삼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어도 효력이 없다는 것도 말한다, Athanasios, Oratio contra Arianos 2,42, PG 26,237A-B; 바실리우스는 삼위 하나님의 이름과 동시에 수세자가 믿음을 고백해야 함도 강조한다, Basilius, De Spiritu Sancto, 28, PG 32, 117B. 세례의 효과는 설교자나 집례자와는 무관하다, Gregorius Theologus, Oratio, 40,26, PG 36, 396B.

[14] 수세자는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후 부활하여 유아의 음식인 꿀을 섞은 우유를 마시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 땅을 다스린다, Barnabas, Epistola catholica, 6, PG 2, 741B-744A. 또 수세자는 시편 1편의 약속을 따라 삼위 하나님의 사역으로 형통하다, Barnabas, Epistola catholica, 11, PG 2, 757A-760B.

[15] 고대교회에서는 세례조에서 침례를 베풀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침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사는 영적 사실을 훨씬 더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강점을 지닌다.

[16] 「디다케: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 14,1, 정양모 역주 (왜관: 분도, 1993), 93.

[17] Calvin, Institutio, 4,17,46.

[18] 성찬론 논쟁은 중세부터 있어왔다. 9세기에 프랑스 Corbie의 수도원장 Paschasius Radbertus와 수도사 Ratramnus, 그리고 11세기에 Bec 수도원장 Lanfranc Berengar of Tours의 논쟁에서 점차 화체설이 득세하면서 1215년 제 4차 라테란회의는 이를 교의로 선포한다. 종교개혁 당시의 성찬론 논쟁에서 잉글랜드의 N. Ridley(1500-50) Ratramnus의 저술을 번역하였고 그의 영향으로 Cramner는 실재적 임재설을 거부한다.

[19] Justinus Martyr, Apologia 1, 13, PG 6, 345B.

[20] Origenes, In Jeremiam Homilia, 18, PG 13, 476A; idem, Scholia in Cantica Canticorum, 7, PG 17, 280D(7:1).

[21] Caius, Fragmenta, PG 10, 28A. 카이우스는 고대 교회에는 그리스도께 부르는 시편과 찬송이 있었다고 증언한다, Plinius, Epistola, 5,19, in R.A.B. Mynors, ed., Epistularum Libri Dece (Oxford: Clarendon, 1963), 339; Eusebius Caesariensis, Historia ecclesiastica, 5,28, PG 20, 512C-513A.

[22] Origenes, Libellus de oratione, 21, PG 11, 480C.

[23] Liturgia Sancti Basilii Anexandrina, PG 31, 1630ff; Socrates, Historia ecclesiastica, 6,8, PG 67, 692A. 교부들의 저작에는 삼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송영이 규칙적으로 나온다. 성자와 성부께, Clemens 1, Epistola 1 ad Corinthios, 20 & 38, PG 1, 255A & 285A. 성자께, Origenes, Homilia in Jeremiam, 1,16,  PG 13, 276C; Athanasios, Vita S. Antonii, 94, PG 26, 976C. 성령께, Gregorius Nyssenus, Homilia in Cantia Canticorum, PG 44, 1088A. 삼위 하나님께, Gregorius Nyssenus, Oratio in Christi Resurrectionem, 3, PG 46, 681A; idem, Epistola, 24, PG 46, 1092B; Gregorius Theologus, Oratio, 19,17 & 26,19, PG 35, 1064B & 1252C. 아우구스티누스는 삼위일체론을 송영으로 마친다, Augustinus, De Trinitate, XV,51, PL 42, 1098.

[24] Justinus, Dialogus cum Tryphone Judaeo, 7, PG 6, 492C; Clemens, Stromatum, 7,7, PG 9, 469B; Origenes, Epistola ad Gregorium, 3, PG 11, 92A-B; Eusebius Caesariensis, Historia ecclesiastica, 10,3, PG 20, 848A; Dionysius Areopagita, De divinis nominibus, 3,1, PG 3, 680D; Sozomenus, Historia ecclesiastica, 6,33, PG 67, 1393A.

[25] Clemens 1, Epistola 1 ad Corinthios, 42 & 44, PG 1, 292A & 300A; Ignatius Antiochenus, Epistola ad Philadelphenses, 4, PG 5, 700B; idem, Epistola ad Smyrnaeos, 8, PG 5, 852A.

[26] Ignatius Antiochenus, Epistola ad Magnesios, 13, PG 5, 673A; idem, Epistola ad Trallianos, 2, PG 5, 676B.

[27] 주교좌는 이미 Hippolytus에게서부터 나온다, Contra Haereses, 9,11, PG 16, 3378C. 주교만이 기름(χρῖσμα)을 바를 수 있으니, 곧 견신례를 집례한다, Didymus, De Trinitate, 2,15, PG 39, 721A. 주교를 대제사장으로 부르는 것이 초기부터 나온다, Clemens 1, Epistola 1 ad Corinthios, 40, PG 1, 289A.

[28] Gregorius Theologus, Oratio, 43,30, PG 36, 537A-B.

[29] 칼빈은 형상(우상)을 비판하면서 500년간 참 신앙이 번성하고 보다 순정한 교리가 생동하였던 고대교회의 권위를 말한다, Institutio, 1,11,13. 마리아론과 성인 숭배, 로마 주교의 우위성 등도 이미 고대교회부터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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