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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예배: 청교도로부터 배우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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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 비키

(Joel R. Beeke)

(미국 PRTS 총장, 조직신학 및 설교학 교수)

번역: 김재한

 

 

청교도들의 가정 예배 실천하기

 

   청교도들의 가정 예배를 뒷받침하고 있는 전제들을 검토했으니 이제 그들의 실천으로 눈을 돌려보자. 만약 우리가 한 마리의 파리가 되어서 그들의 집에 있는 벽에 붙어 있다면 우리는 그들이 가정 예배를 드리는 동안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1) 가정 예배는 매일 드려졌다.

   청교도 가정은 매일 모여 예배를 드렸다. 리차드 백스터는 하루에 두 번 이 가정 예배가 드려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약 시대에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하나님께 제사 드린 것처럼, 가정들도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에 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매일 아침 지난 밤에 휴식한 것에 대해 감사 드리고, … 오늘을 위한 가르침과 보호와 공급하심과 축복을 간구하는 것은 적절한 일이다. … 그리고 저녁에는 하나님께 그 날 하루 동안 베푸신 은혜에 감사 드리고, 그 날 지은 죄를 고백하며 용서를 구하고, 밤 사이 안식과 보호하심을 구하는 것이 적절하다.”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의 가정 예배에 대한 항목에도 이와 같이 써있다. “이는 모든 가정이 매일 아침과 저녁에 드려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상적인 청교도 가정에서 여러분은 온 가족이 이른 새벽과 해 질 녁에 예배드리기 위해 함께 모이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배는 매일을 시작하고 끝맺어야 했다.

   많은 가정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 매일 두 번은 고사하고, 한 번도 모이기 힘들다는 것을 안다. 특히 자녀들이 자라날수록 더 그러하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청교도들에게 예배 드리는 것은 그 날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었다. 어느 가정이 매일 가정 예배를 드릴 시간이 없다고 하면서 반대하자 이에 응답하면서, 사무엘 데이비스(Samuel Davies)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여러분이 오직 이 세상을 위해서만 창조되었다면, 이러한 반대에도 동일한 타당함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반대가 영원의 상속자에게서 나온다니 이 얼마나 이상한 일입니까! 기도해보십시오, 여러분의 시간은 무엇을 위해 여러분에게 주어졌습니까? 그것은 원칙적으로 여러분이 영원을 준비하도록 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인생에게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해서 낼 시간도 없단 말입니까?”

 

(2) 가정 예배는 기도를 포함했다.

   청교도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일에 실패한 가정에 임할 것이라고 믿었다(렘 10:25). 가정 기도는 가정의 의무이며 동시에 특권이었다. 청교도 아버지들은 대개 5분에서 10분간 기도했다. 그들은 피상적이지 않지만 단순하게 기도하려고 했다. 그들은 간구에 있어서 구체적이긴 했지만,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길 원했다. 그들의 기도는 크게 보자면, 하나님 자신의 말씀을 하나님께 되돌려드리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매튜 헨리의 유명한 저서 <기도 방법 A Method of Prayer>를 보면, 아침과 저녁에 드리는 가정 기도의 세부적인 예들이 나와있다. 그들은 찬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언약의 주,” 당신 자신을 신자들 그리고 신자들의 자녀들과 은혜롭게 묶으시는 분으로 고백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 가정에 보여주신 구체적인 자비들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가정의 죄를 고백한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끊임없이 당신으로부터 멀어지려고 결심하는 우리의 타락하고 죄악 된 본성에 휘둘립니다,” “우리는 우리 가족들에게 해야 할 우리의 의무를 저버렸습니다.” 이러한 기도에는 또한 가족을 하나님께 성별하여 드리는 것도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왕국이 임하는 것뿐 아니라, 앞으로 만날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도 은혜와 도움을 구하는 것이었다. 흥미롭고도 의미심장한 것은, 매튜 헨리가 주일에 드릴 별도의 아침 가정 기도와 저녁 가정 기도를 [그의 책에] 포함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도들은 공적 예배에 대한 청교도들의 사랑과 성령 하나님만이 그들이 하나님을 신실하게 예배하도록 하실 수 있다는 그들의 믿음을 보여준다.

   토마스 투리틀(Thomas Doolittle)은 가정 기도에 대한 한 설교에서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본성에 근거를 둔다고 말했다. 하나님은 우리 가정의 설립자와 소유자시고, 우리 가정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며, 동시에 공급자이시기도 하시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그는 왜 가정에서 매일 기도하기 위해 모여야 하는지에 대한 일곱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① 우리는 매일 가정에 주시는 은혜들을 하나님의 손에서 받기 때문에

② 여러분의 가정에는 매일 범해지는 죄들이 있기 때문에

③ 여러분의 가정에는 매일마다 하나님 외에는 채우실 수 없는 필요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④ 여러분의 가정의 매일의 일자리와 수고를 위해서

⑤ 여러분 모두는 매일 유혹 받기 쉽기 때문에

⑥ 여러분의 가정에 있는 모든 이들이 매일 위험과 사고, 어려움에 노출될 수 있기에

⑦ 기도하지 않는다면 바로 저 이교도들이 일어나서 그리스도인인 여러분을 대항할 것이고 정죄할 것이기 때문에 (그들도 자신들의 신들에게 제사하는 일에 그렇게 열심을 낸다)

 

   청교도들에게 모든 가정은 기도의 집이어야 했다. 토마스 브룩스(Thomas Books)는 “기도가 없는 가정은 지붕이 없는 집과 같아서 모든 하늘의 폭풍에 열려있고 노출되어 있다”고 말했다. 가족들이 매일 죄를 짓지 않는가? 그들이 매일 용서를 구하지 않아도 되는가? 이러한 축복들에 매일 감사 드리지 않아도 되는가? 가족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의 길을 인도해주실 것을 간구하면서,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아도 되는가? 그들이 매일 스스로 하나님의 돌보심과 보호를 구할 것을 권면하지 않아도 되는가? 이 모든 이유로 인해, 그리고 그 이상의 이유로 인해 청교도들은 우리가 매일 기도하기 위해 모이는 가정이 될 것을 요구한다.

 

(3) 가정예배는 성경 읽기와 토론을 포함했다.

   아버지가 주로 읽기를 담당했다. 그러나 때로는 읽을 줄 아는 가족 구성원에게 그 역할이 주어지기도 했다. 가족들은 대개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이것은 온전한 성경 전체가 온전한 그리스도인을 만든다는 확신에서 나온 것이었다. 특별한 날에는 아버지가 적절한 성경 본문을 선택하기도 했다.

   한편 청교도들은 아버지가 성경을 단순히 읽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읽은 내용을 가족들에게 해설해주고 적용해주어야 했다. 아버지는 가족들을 성경으로 지도할 책임이 있었다. 이는 질문과 대답 그리고 가르침을 통해 행해졌다. 청교도들은 아버지가 이 일을 성실하게 그리고 열정을 가지고 행해야 한다고 믿었다. 1647년 스코틀랜드 교회의 예배 지침서는 어떻게 그들이 이 일을 행했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 만약 읽은 말씀에서 어떤 죄를 꾸짖거든 신중하고 주의 깊게 모든 가족들이 같은 죄를 범하지 않게 하라. 만약 [그날] 분량의 읽은 말씀에서 어떤 [죄에 대한] 심판이 내릴 것이라고 선포되거나 언급된다면 같은 혹은 더 나쁜 심판을 받지 않도록 모든 가족들이 이를 두려워하게 하라 …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떤 의무가 요구되거나 약속 안에서 위로가 주어진다면, 그리스도께서 힘을 주사 명령 받은 의무를 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그리고 주어진 위로를 받을 수 있게 해주시기를 가족들로 하여금 간구하게 하라.”

   아버지는 교리에 있어서 순수하고 적용에 있어서 적실하게, 그리고 수단에 있어서는 애정 어린 방법을 사용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때로 그는 자녀들의 영적인 상태를 애정 어린 마음으로 검사했다.

   니콜라스 바이필드(Nicholas Byfield)는 가정에서 가르치기에 적절할 여덟 가지 주제가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을 경외하기, 성례의 의미, 하나님의 율법, 하나님의 심판을 묵상하기,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을 위해 하신 위대한 일, 하나님 안에서 소망하는 법, 성경의 일반적인 내용, 그리고 교회에서 설교된 것을 다시 강조하기.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살펴본다면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주제는 문자 그대로 수 천 가지나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가정을 하나님의 진리로 인도하기 위해 최근의 설교를 혹은 집, 교회 그리고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섭리적인 일들을 가져왔다. 또한 그는 죄, 그리스도, 은혜, 영적인 삶, 거룩, 그리고 여러 교리와 주제들에 대한 진리를 이야기하기 위해 상황에 맞는 그림들을 찾기도 했다.

   성경에 대한 이러한 논의들은 신앙적인 대화가 쉽게 이루어지도록 했다. 청교도들은 부모들이 정기적으로 자녀들에게 성경에 대해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들은 자녀들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만큼이나 속죄에 대해서도 편하게 이야기하기를 바랬다. 가정 예배는 가정에서 신앙적인 대화를 편하게 할 수 있게 만드는 수단이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가정 예배는 부모와 자녀들이 집 밖에서도 그리스도를 이야기할 수 있게 준비시켰다.

성경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더불어서, 청교도들은 자녀들에게 교리문답을 교육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일주일에 한 시간씩 각 자녀들에게 교리문답을 실시했다. 이를 돕기 위해 청교도 목회자들은 문답형식으로 된 기독교의 근본 교리들을 해설하는 책들을 썼다. 아버지들은 자녀와 대화하면서 교리문답의 진리들을 설명하고, 그림으로 그려주고 또 적용했을 것이다. 이를 통해 그들은 설교와 성례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얻었다. 이는 자녀들이 세례를 위한 신앙 고백을 준비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는 또한 언약의 자녀들이 교리나 실천에서 오류로 빠지지 않도록 지켜주기도 했다. 매튜 헨리가 말했듯이, “교리문답을 잘 한 이들은 무신론과 불신의 유혹에 대해 잘 저항할 수 있고,” “교황주의라는 독에 대해 탁월한 해독제를” 가지고 있다.

 

(4) 가정 예배는 시편 찬양을 포함했다.

   시편 118편 15절은 “의인들의 장막에는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음이여”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청교도는 이것이 이스라엘 가정에서 매일 찬양이 불렸음을 말한다고 믿었다. 더 나아가 그들은 기쁜 소리가 기독교 가정에서 매일의 찬양을 통해 울려 퍼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찬양 가운데,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가정은 올바르게 선다. 이러한 찬양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이를 노래하는 것은 교훈과 이해를 밝히는 수단이었다. 그들은 마음을 따듯하게 하는 예배를 높이 평가했다. 성령의 은혜가 우리 안에서 움직이면 은혜 안에서 우리가 자라나는 일이 더욱 촉진된다. 청교도는 찬양이 성경적이고 교리적으로 순수한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또한 마음을 다해 그리고 감정을 동반해서 행해져야 한다.

   청교도는 시편 찬송의 챔피언들이었다. 그들은 칼빈과 더불어서 시편이 “영혼의 각 부분에 대한 해부학”이라고 믿었다. 시편을 노래하는 이들은 깊고도 실천적인 경건의 가장 풍성한 금광과 조우하게 된다. 그리고 이 찬송을 통해 시편의 구절들은 우리 마음과 우리 자녀들의 마음 깊은 곳에 묻히게 된다.

 

 

청교도 가정 예배의 목적

 

   우리는 청교도 가정 예배가 가진 전제와 실천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런데 왜 가정들이 이를 행해야 하는가? 그들은 가정 예배를 어떤 목적을 가지고 행했는가? 청교도 올리버 헤이우드(Oliver Heywood)는 그의 유명한 책 <가정 제단 A Family Altar>에서 매일 가정 예배를 드려야 하는 네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이 이유는 물론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

 

   먼저, 가정 예배는 다른 어떤 것도 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가정을 아름답게 만든다. 헤이우드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그림이나 우아한 방 혹은 집안의 물건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처럼 정돈되고 장엄한 가구일 수는 없을 것이다. 정교한 장식품과 최고로 아름다운 그림도 이에 비하면 단지 지저분하고 구역질 나는 오물에 불과하다. 거지의 오두막을 이것 없는 왕자의 궁궐과 비교할 때 더 고귀하게 만드는 것도 바로 이 예배이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집이 거룩한 아름다움으로 꾸며지기를 원하는가? 열정적이고 성실하게 드려지는 가정 예배보다 이를 더 잘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둘째, 가정 예배는 가정을 아름답게 만들 뿐 아니라 보호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헤이우드는 시편 91편 1절을 인용한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그러고 나서 그는 쓰기를 “하나님과의 친교는 대게 하나님으로부터의 보호를 동반한다”고 썼다. 만약 우리 가정이 세상, 육체, 그리고 마귀로부터 구원받는 것에 대해 알고 있다면, 우리는 그분을 한 가정으로서 함께 찾아야 한다.

 

   셋째, 가정 예배는 “영적이고 영원한 구원을 여러분의 집에 가져오는 길이요, 수단이다.” 이 청교도는 말하기를 “사람들이여, 여러분이 만약 여러분의 아내와 자녀의 영원한 행복에 관심을 가진다고 말하면서 가정 예배를 무시하거나 온전치 못한 마음으로 이를 행한다면 여러분은 위선자입니다”라고 했다. 여러 면에서 가정 예배는 여러분의 가정에 있는 영혼들이 여러분에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이다. 리차드 마더(Richard Mather)는 신자의 자녀가 마지막 날에 심판을 당할 것에 대해 경고한다. 그는 이러한 심판이 부분적으로는 그들의 부모가 그들을 여호와를 경외하면서 양육하지 않았기에 임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자녀들은 그때가 되면 그들의 부모를 이런 말로 고발할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이렇게 고통 받고 있는 것은 다 당신들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한 것을 가르쳤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죄에 빠지지 못하도록 하고 우리를 교정했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가진 원죄의 통로였는데도 우리가 거기에서 구원받을 수 있도록 어떤 돌봄도 베풀지 않았습니다. 화로다, 이런 육신적이고 경솔한 부모를 가진 우리여. 자신의 자녀를 영원한 비참함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어떤 긍휼함과 연민도 가지지 못한 당신들에게도 화가 있기를.” 이런 일이 우리에게 결코 일어나지 않기를.

 

   넷째, 가정 예배는 “공적 예배가 부족하거나 이에 결함이 생길 때 이를 메꿀 것이다.” 여기에서 헤이우드의 초점은 특별히 박해의 시대에 맞춰져 있다. 그러한 시대가 교회에 닥쳤을 때, 공적으로 모이는 것은 종종 불가능해진다. 그러나 가정 예배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 속에 헌신의 불꽃이 타오르게 한다. 아마도 여러분은 “우리는 그런 박해를 겪지 않고 있는데요”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헤이우드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하면서 답했다. “여러분이 공적이고 힘있는 예배를 드릴 자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여러분의 가정에서 하나님이 복 주시기를 구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그런 공적 예배에 하나님이 복주시리라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만약 우리 가정이 공적 예배로부터 최적의 축복을 경험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성실하게 가정 예배에 헌신해야 한다.

 

 

결론

 

   청교도는 우리에게 가정 예배에 대한 멋진 비전을 제공한다. 모든 가정에서 높임 받으시는 하나님을 보고자 하는 그들의 열망은 도전적이고 또한 전파력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이 모든 가정에서 중심이 될 때까지 만족하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에 대해서도 동일한 것을 말할 수 있을까? 가정 예배에 대한 청교도적 비전이 여러분을 사로잡았는가? 아버지들이여, 여러분은 여러분의 가정에서 영적인 지도자로 성장하기를 결심했는가? 여러분은 이 청교도 개혁자들이 그리스도를 따랐듯이, 이들을 따를 것인가?

   만약 모든 아버지가 이 원칙들을 시행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보자. 만약 우리가 우리 자녀들과 손자들 그리고 손자의 손자들에게 이러한 매일 드리는 가정 예배라는 유산을 남겨준다면 그것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지 상상해보자. 그러한 가정에서 드리는 예배가 우리의 지역 교회에서 촉발시킬 개혁과 부흥을 상상해보자. 우리 가정이 그 안에서 날마다 하나님이 예배받으시고, 높임 받으시는 작은 교회들이 될 때까지 우리 마음이 쉬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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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없이 우리는 선할 수 있는가 저자: 마이크 베흐만(Mike Wagenman, 캐나다 웨스턴 대학교 신학 교수) 번역: 김재한 국립 대학의 기독교인으로서 나는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하나님 없이 우리는 선할 수 있는가?” 사람들은 의레 자신들...
    Date2020.01.13 By개혁정론 Views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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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예배를 통해 도르트 총회 400주년 기념하기

    예배를 통해 도르트 총회 400주년 기념하기 글: 캐서린 스미스(Kathleen Smith, 칼빈신학교 교수) 번역: 김재한 도르트 총회는 당시 각자의 교리를 따라 성장하고 있던 개혁파 교회들을 인도하고, 교회에서 예배와 사역을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지를 확정하기 ...
    Date2019.10.22 By개혁정론 Views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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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사설] 제7차 개정헌법 헌의안, 총...
[사설] 총회장은 교단의 수장이 아...
[사설] 명예집사와 명예권사, 허용...
[사설] 총회가 계파정치에 함몰되지...
[사설] 최근에 일어난 고려신학대학...
세계로교회 예배당 폐쇄 조치를 접하며 3
[사설] 총회(노회)가 모일 때 온라...
총회가 졸속으로 진행되지 않으려면
[사설] 누가 고신교회의 질서와 성...
공적 금식과 공적 기도를 선포하자
칼럼
왕처럼 살고 싶습니까? 왕처럼 나누...
푸틴의 머릿속에 있는 그림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3부)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2부); 교회...
백신 의무 접종과 교회 (1부)
우리 악수할까요?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 (Peter Holt...
관심을 가지고 보십시오.
동성애 문제에 대한 두 교단의 서로...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잘못을 통해서...
기고
직분자 임직식에서 성도의 역할
죽음을 어떻게 맞을까를 잠시 생각하며
제73회 총회가 남긴 몇 가지 과제
전임목사는 시찰위원으로 선정될 수...
고신교회와 고재수 교수; 우리가 왜...
왜 고재수는 네덜란드에서 고려신학...
제73회 총회를 스케치하다
신학생 보내기 운동에 대한 진지한 ...
명예 직분 허용이 가져다 줄 위험한...
[고신 70주년에 즈음하여 9] 고신교...
논문
송상석 목사에 대한 교회사적 평가 ...
송상석 목사와 고신 교단 (나삼진 ...
송상석 목사의 목회와 설교 (신재철...
네덜란드 개혁교회 예식서에 있어서...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 예배지침 부분...
제7차 헌법개정초안(2022년 6월) 분...
SFC 강령의 “전통적 웨스트민스터 ...
지역교회의 적정 규모(規模 size)는?